역대상과 역대하는 다윗 왕조의 다윗 언약을 회복해야 될 본질로, 우리가 초대교회를 회복해야 할 원형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 그 소망을 붙들고 과거의 다윗 왕조를 복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에 대한 실정이나 실수가 많이 생략되어 있고 다윗왕의 영광을 회복하기 원해서 좋은 면들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13장 말씀은 다윗 왕의 실정인 베레스 웃사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다윗 왕조의 실패와 실패를 증언하는 것을 통해 어떤 목적의 의미를 되새기기 원하는가? 이것이 바로 저와 함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눌 큰 그림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몇 가지 결정적 실수가 등장하게 됩니다. 먼저 다윗왕이 하나님의 법계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려는 그 생각 자체는 굉장히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방치돼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법계를 가까이에 두고 중심에 두고 살아야 될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법궤를 가지고 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적은 좋았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나 의도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나가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번째 실수는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 이야기를 먼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정치 지도자들과 군인들 하고 먼저 상의했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군인들과 정치인들과 이 일을 먼저 더불어 의논하고 있습니다. 모든 물밑 작업은 정치인들과 그리고 군인들과 먼저 의논을 한 후 제사장들에게는 그냥 통보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을 통하여 다윗 왕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 것, 아무리 의도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다윗 왕의 결정적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를 옮겨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고 있다는 그림을 보이는 것을 오늘 역대상 말씀은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죠. 좋은 일을 하는데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비슷한 실수가 그 다음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뭇 백성의 눈에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따라갑니다. 백성들에게 굉장히 민주적인 모습으로 지금 다윗 왕이 다가간 겁니다. 왕인데 자기 혼자 결정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상위에서 결정하는 것 어떻게 보면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고 굉장히 이상적인 왕의 모습과 같이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역대상은 이것을 지금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 거예요. 민주적인 절차가 잘못돼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다윗 왕의 마음에는 사람들의 민심에 민감한 사람 중심의 왕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 것이 백성들의 눈에 그 일이 족히 어겨 진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 좋게 여겨 지는지 아닌 지는 고려하지 않고 민감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점과 눈이 더 민감하게 나아가는 이 영적인 모습을 우리가 놓쳐버리면 결국 사람들의 민심에 민감하며 사람들의 의견에 왔다 갔다하며 사람들의 눈에 좋게 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되는 겁니다. 지금 그것이 바로 다윗왕의 두번째 실수였습니다. 세번째 실수는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데 수레에 운반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반드시 메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나 메는 것도 아니고 아주 구별된 사람에게만 맬 수 있도록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6-7절을 보면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오는 겁니다. 그 당시 수레를 이용하는 것은 이방 종교에서 쉽게 했던 방법들입니다… 왜냐하면 편하니까요 간편하고…그러니까 비 인격적인 존재인 그 우상들을 싣고 다니는데 무겁고 힘들고 그 당시 땅이 또 메마르고 덥지 않습니까…그러니까 수레가 얼마나 옮기기가 편해요. 일도 간편하고 그러니까 수레로 그냥 짐 싣고 다니듯이 쉽고 편안하게, 세상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고 하나님은 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는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세상적인 방법으로 쉽고 편한 방법으로 법계를 가져오면 안되는데 그냥 생각없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겉으로 보기 문제 없으니까 새 수레에 싣고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러다가 9절 말씀 보면 결국 이런 실수들이 다 모여서 터지는 사건이 일어나는 겁니다. 타작 마당까지 하나님의 법궤를 수레에 싣고 편하고 쉽게 오다가 타작 마당에 땅이 고르지 않으니까 소들이 막 뛰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흔들리니까 그 흔들리는 궤를 붙잡았다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치셔서 죽는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관심이 없고 인간적인 방법과 사람들의 민심에만 민감했던 이 모든 것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터지게 된 사건이 바로 이 웃사의 사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에 손을 대서 죽게 되는 이 비극의 사건, 베레스 웃사를 통해, 지금 다윗 왕은 정확하게 진리를 깨달았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죠. 하나님의 일을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정치적으로 사람들에게 왔다갔다 해선 안 되는구나…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하면 안 되는구나…내가 왕이 됐다 고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사람들이 다 좋다 그러면 되는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거죠. 하나님이 어떻게 좋게 여기시며 하나님의 눈에 이것이 좋은 방법인가 를 내가 상의하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다 깨닫게 되며 하나님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도, 잘못된 방법으로 추진하면 어려워 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지혜, 하나님의 눈에 좋게 여기시는지 민감하게 바라보는 지혜, 하나님과 상의하는 이 겸손한 마음을 붙들고 나아가는 이 마음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려주며 역대상은 이 성전 건축이라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눈에 좋게 여기시는 기준을 분명히 붙들고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좋은 대로 가면 안되고,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가면 안되며 오직 하나님의 눈에 기뻐하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성전이 재건되야 하는 것을 현재화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께 기쁘시게 하는 이런 좋은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과 상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 좋게 여기시는 지 둔감한 채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박수 치면 만사 ok라고 여기는 착각을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게 여기시며 하나님과 상의하며 하나님의 눈에 좋게 여기시는 이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하는 주님의 귀한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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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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