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축복과 지혜를 부어 주셨던 왕인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며 이방여인들을 품고 우상숭배를 하는 나라로 만들어서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되었습니다. 그래서 12지파중 10지파를 떼어주시며 다윗의 씨앗도 아닌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이유는 자격이나 조건은 하나도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은혜로 왕을 세워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면 너의 나라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자랑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야 사는 왕인 여로보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짧은 시간에 변질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빨리 잃어버리고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떠난 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무시하며,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대체해서, 예루살렘에 내려갈 필요 없이 가까이에서 쉽고 편하며 부담없이 드리는 종교행사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사장을 레위인이 아닌 아무나 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입맛에 맞는 권력의 아부하고 길들여진 사람들을 세우게 됩니다. 절기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때가 아닌 자기 마음대로 편한때로 바꾸게 됩니다. 백성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쉽고 편하고 간편하게, 부담없이 때우듯이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제사를 왜곡 시키고 변질시켰습니다. 이렇게 여로보암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섰고 백성들은 우상숭배로 끌려가게 영적 기초를 다 무너뜨리는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왜곡과 변질로 무너진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여로보암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대신 편하고 싶고 간편하게 금송아지로 예배를 드리면서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착각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를 지속하고 있는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늘은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유다로부터 보내서 이런 왜곡되고 변질된 예배와 제사를 경고 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누구인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더 본질은 누가 전하고 누가 말하는가는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한다는데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 주목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에 주목해야 산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이름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무명의 선지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와서 여로보암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무명의 선지자가 여로보암 왕에게 외치며 경고합니다. 지금 여로보암이 제단 앞에서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단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단을 치시는데,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재가 쏟아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모든 내용이 지금 당장 정신 차리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의 찌르시고 깨우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 앞에 엎드리어 회개하고 정신차리면 사는 겁니다. 나를 찔러주시고 깨워주시는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정신 차리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새 출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들은 여로보암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붙잡는 대신 그 말을 하는 선지자를 붙잡으라 명령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깨지고 정신 차리는 대신, 그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그 선지자를 붙잡으로 명령합니다. 지금 감히 왕 앞에 왕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여로보암을 통하여 세워진 수많은 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다 왕의 권력에 길들여져 듣기 싫은 얘기는 하지 않는 겁니다 진짜 들어야 될 말은 하지 않고, 왕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진짜 마음을 찌르고 흔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화가 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전하는 선지자를 잡아 입을 막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시는데 바로 여로보암의 손을 마비시키시는 겁니다. 그 선지자를 잡으라고 명령한 여로보암의 손이 갑자기 마비가 되어 꼼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그 제단에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그 현장을 지금 여로보암이 목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그 가운데 회개하고 엎드리고 하나님 말씀 아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왜곡되고 변질된 예배로 말미암아 깨지고 무너진 제단, 하늘에서 재가 쏟아지는 제단을 바라보면서도 무너진 예배,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멸시한 예배에 대한 회개나 자복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내 마비된 손만 회복시켜 달라고만 기도합니다. 자신의 상황과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며 그저 나의 필요 나의 어려움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여로보암의 모습을 통하여 북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영적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로보암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쉽고 편하고 간편하게 부담없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이 시대가 점점 더 간편하게, 부담없이 드리는 예배에 길들여지고, 내가 와서 예배 드려 주면 하나님은 그냥 나에게 고마워하셔야 할 분으로 착각하는데, 그런 예배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예배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타락한다는 것은 겉모습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과 상관 없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드는 대신 세상의 금송아지를 바라보고 붙들고, 금송아지를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배드리고 있는데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그저 금송아지를 위한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예배, 쉽고 간편하게 부담없이 드리면서 나는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 착각하는 모습을 통해 여로보암을 통하여 인본주의에 길들여진 왜곡되고 변질된 신앙생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예배 제단은 결국은 무너져야 되는 곳이 되어 제단이 갈라지고 제단 위에 재가 쏟아지는 무너져야 되는 예배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 되시며, 말씀되며 성전되는 은혜를 꼭 붙들고 예배 회복에 나의 마음을 쏟기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싶을 말만 듣고 들어야 될 말을 듣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망하는 징조입니다. 말씀 앞에 굴복하여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될 말을 붙들고 내 인생의 주님 앞에 조율되기 원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고 회개하는 대신 말씀에 귀를 막고 듣기를 거절하는 태도가 바로 나를 죽이는 행동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고 영광 돌리는 예배, 하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예배를 드리기를 사모하십시오. 왜곡과 변질이 가득한 이 시대에 제대로 드리는 그 예배자 한 사람, 제대로 서 있는 예배 제단 한 곳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귀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분명한 믿음을 붙들고 주시는 말씀 앞에 엎드리고 순종하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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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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