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죄로 무너진 후 하나님 앞에 먼저 돌아왔으면 좋았을텐데, 다윗 왕은 1년 가까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을 책망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이 행한 죄들을 말씀 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행하신 일들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세워주고 지켜주며, 내가 이만큼 하늘에서 많은 것을 부어 주었다는 것을 구구절절 말씀하십니다. 너를 왕으로 삼기 위해 기름을 부어 주셨고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준거 모르냐…내가 너에게 이거 다 은혜로 준 거 아니냐…집도 주고 아내들도 주고, 그 다음 너에게 왕이라는 권한과 자리도 줘서 내 백성들을 너의 손에 잘 치리 하라고 맡긴 거 아니냐… 다윗이 왕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 자리는 오로지 하나님을 통하여 올라가게 된 자리이며 하나님이 맡기신 권한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자리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잘 섬기라고 하나님께 위임 받은 자리이며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정말 그 많은 풍성한 것들을 다 다윗에게 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이게 부족하면 말만 했으면 내가 더 줬을 거다…. 네가 누리는 모든 것 다 내가 준 건데 이렇게 많이 줬는데 너는 이게 지금 부족하고 불만족스러운 거냐? 하나님이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느냐… 다윗의 마음을 찌르는 경고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은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냥 글씨로 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통로이자, 말씀하게 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김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마치 안 계신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악을 행했다는 거예요. 사람들의 눈을 가렸을지 모르나 그것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한 일이라는 것을 다윗은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았던 자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자이고 통일 왕국을 이룬 후 인생의 정점에서도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쁨 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었던 삶을 경주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처절하게 한 방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없는 것처럼,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람들의 눈만 가리면 되고,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며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한 악을 두 가지로 명시해 주십니다. 살인죄와 간음죄….겉으로 보기에는, 다윗은 한 번도 직접 칼을 들고 우리아를 죽인 적이 없습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본인이 직접 칼을 휘두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이것을 아무 문제 없다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분명한 악이었습니다. 그건 사람들이 바라보는 생각이고 다윗이 자기의 죄를 합리화하는 방식일 뿐이고 하나님이 바라보신 평가는 뭐였습니까? 다윗이 우리아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 우리야는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이지 다윗이 직접 죽이지 않았지만 다윗의 죄는 뭡니까? 네가 우리아를 죽인 살인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왕이라는 자리와 권한 스스로 남용하여 우리아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야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그 아내를 빼앗아 너의 아내로 삼았다….그 방법은 왕의 권한 남용과 간음죄임을 실랄하게 지적합니다. 음욕이 다윗의 마음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내면화 되어 밧세바의 목욕하는 모습을 주목하며 마음에 심기우며 파괴적인 결과가 결국 간음 죄를 범하고 분별력을 상실하고 그 부인을 빼앗아 와서 자기의 아내를 삼은 것입니다. 너에게 지금 아내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한 두명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부족해서 살인에 간음까지 하면서 남의 아내를 빼앗아 오냐….하나님의 탄식과 안타까움의 경고입니다. 너는 살인자이고 간음자…이게 바로 지금 다윗이 하나님 앞에 받는 평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이 다윗의 지은 살인죄와 간음자, 그 죄에 대한 결과를 여러 가지로 말씀하여 주십니다. 칼이 집에서 떠나지 않고 너의 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억지로 동침하는 일이 백주 대낮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너가 하나님 앞에 행한 간음죄와 살인죄가 얼마나 크게 두고두고 너의 집안에 화근이 될지 네가 보게 될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무서운 결과가 있고 무서운 상처가 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모든 문제가 지나가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다윗왕에게,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윗왕에게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미혹 할 때 그가 거절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요…아무도 보지 않는 그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보고 계심을 분명히 붙들고 간음의 죄를 거절했습니다. 그 요셉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계속 득죄하면서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득죄했는데도 그것이 문제인지 모르고, 회개할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다 날려버리며 그것을 핑계와 정죄의 도구로 날려버릴 정도로 다윗은 영적으로 둔감해졌고 영적 감각이 다 마비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이 뭐라 그러지 않으면 괜찮고 문제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그를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으로 찌르시며 깨우시는 겁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그 하나님의 평가에 그 다윗 왕이 서도록 직면하게 만드시는 거죠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민감하게 체크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둔감해지고 영적감각이 마비되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망각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다 그러면 좋고, 사람들이 문제 없다 그러면 문제 없는 것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현존하시는 존재로 분명히 믿고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의 특권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인식하며 민감하게 바라보고 체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영적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며, 영적으로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이며,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내 영적 감각이 살아나고 영적으로 민감해지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말하는가에 나의 인생을 걸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많은 것들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신 놀라운 은혜와 놀라운 일들이 무감각해지고 당연해지면 내 삶의 불평만 올라옵니다. 당연한 삶에는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얼마나 많이 부어졌는지, 얼마나 풍성히 나에게 주셨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 은혜의 시간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다윗을 향한 나단 선지자의 지적이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지적임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다 주관적이고 부분적이라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바라보시기에 내가 어떤 존재인가…임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늘 하나님의 말씀을 중하게 여기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삶을 살아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 가느냐가 내 삶의 평가 기준이라는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이 다윗의 실패와 무너짐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 시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되며 주님 앞에서의 삶을 선명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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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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