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1장까지 말씀은 솔로몬 왕에 대한 증언들이고 오늘 12장 말씀부터는 솔로몬 왕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에 대한 증언들이 시작됩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이름이 비슷해서 늘 헷갈릴 때가 있는데 둘은 형제 지간이 아닌 사이로 르호보암은 솔로몬 왕의 아들이고 여로보암은 나중에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부터 안타깝게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분단의 역사를 결국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르호보암 왕이 결국 남과 북이 갈라지는데 있어서 방아쇠를 당긴 원인 제공자로서의 악한 왕임을 강조하게 됩니다. 사실 솔로몬 때부터 모든 문제는 쌓여져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금하게 하신 은과 금을 쌓지 말고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말고 여자를 많이 두지 말라는 이 모든 것들을 솔로몬은 지키지 않으면서 타락과 변질로 나아가게 됐고 그의 영적 하향 곡선은 결국 아들 르호보암에게 와서 결정적으로 일이 터지게 되는 것이죠. 남과 북이 분단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11장 말씀입니다. 특별히 겉에 보이는 표면적인 의미와 해석에 머물지 마시고 그 표면적인 의미와 해석을 넘어 깊은 영적 의미와 해석이 오늘 말씀에서는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갈라지고 서로가 원수가 되어가는 그 분단에 있어서 표현적인 의미를 넘어 깊은 영적 문제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첫번째 영적 문제는 왕을 백성이 세운다는 착각과 불신앙입니다. 르호보암을 세겜으로 불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와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고 증언하는데, 이것은 성전과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불신앙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먼저 온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르호보암을 세겜으로 불러냈습니다. 솔로몬에게 성전을 만드심으로써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도록 재편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 예루살렘 성전 중심, 하나님이 세우신 왕 중심으로 모든 질서를 재편 하셨는데, 백성들이 그 질서를 거절하고 예루살렘 중심의 성전에서 왕을 세겜으로 불러내는 겁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라 그랬는데 이 온 이스라엘을 주도하는 세력은 결국 나중에 북 이스라엘이 되는 열 지파들입니다. 르호보암을 세겜으로 불러내서 하려는게 뭐냐면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그러니까 백성들이 왕을 세우고 삼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왕이 되려면 적어도 우리 동네에 와서 인증받고 approve사인 받아야 왕 될 수 있다는 자기들 만의 질서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을 하나님이 세우신다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마치 백성들이 왕을 인준하고 세우듯이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 대신 백성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스스로 세우는 왕이라는 이 착각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영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민심은 중요하고 우리 성도들의 의견과 백성들의 의견은 중요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왕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이 기준, 절대 가치를 놓쳐 버리게 되면 결국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가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두번 째 영적 문제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지혜를 피해 애굽으로 도망한 자라는데 있습니다.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한 이유는 솔로몬 왕이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왕이 죽이려 하니 여로보암이 당연히 애굽으로 피하게 된 것이다…로 끝나면 표면적 의미 해석에 멈추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깊은 영적 의미로 오늘 말씀이 증언하는 것은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애굽으로 도망간 자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한 왕이었고 나중에 솔로몬이 사모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림자처럼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피하는 거며 하나님의 지혜를 피하는 거며 하나님이 재편하신 성전 중심의 신앙을 피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망간 곳이 애굽인데, 애굽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세상 가치와 문화로 상징되는 곳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애굽으로 돌아가 도망간 탕자나 똑같은 자이고 백성들은 그런 여로보암을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결국 이 모든 영적인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은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영적 문제는 주신 사명을 저버리는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왕에게 백성들의 민심의 소리니까 왕은 이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민심의 소리란 아버지 솔로몬 때에 백성들에게 무거운 멍에와 고역을 너무 많이 지워 힘들었으니, 지금 그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주면 우리가 왕을 잘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면적으로 읽으면 당연히 이해되는 말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백성들이 너무 힘들었고 백성들의 멍에가 너무 무거웠으니까 이제 좀 쉬게 해주고 가볍게 해주는게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이게 뭐가 잘못된 거냐 이럴 수 있는데 그건 표면적인 의미고 그 밑에 깔린 깊은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그들의 불신앙입니다. 기본적으로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과 성전 중심의 신앙을 세우는 그 일을 벗어버리고 내려놔야 편한 고역과 무거운 멍에라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불신앙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은 물론 굉장히 힘들고 되고 어려운 일이었고 온 몸과 마음을 쏟아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사명, 맡기신 일이 단순히 고역과 무거운 멍에로만 여겨졌다면 이건 영적 문제라는 것이죠. 그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만 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 따르겠다는 겁니다. 교회에도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든든하게 하는 맡기신 사명과 사역이 있습니다. 그 맡기신 사명에 결코 쉽지 않고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 일들인데, 그 맡기신 사명이 단순히 고역과 무거운 멍에로만 여겨져 그런 거 다 내려 놓고 가벼워지면 내가 부담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 잘 하겠다 말하는게 심각한 영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명의 짐 없이 그러 부담 없이 편하게 신앙 생활하게 하면 그러면 교회 잘 나오겠다는 겁니다. 그게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태도, 즉 불순종이고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통하여 이루시는 사명들이 있죠 그것이 고역과 무거운 멍에만 되어 그걸 가볍게 해야 할 짐만 된다면 그게 영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시고 내 가정을 주님이 세우셨다라는 걸 정말 믿는다면 일상에서 감당하는 그 맡기신 사명이 고역과 무거운 멍에만 되는 것, 그저 가볍게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게 불신앙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 일들이 사명이 아니고 그저 고역과 무거운 멍에만 된다면 비참한 인생이자 불신앙으로 나아가는 첩경임을 잊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그 영적 질서를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모습이 바로 왕을 세겜으로 불렀고 백성이 왕을 세우는 주체가 백성이 되는것, 이것이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 성전 중심으로 모든 영적 질서가 재편되며 그 영적 질서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열망하십시오. 불신앙이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세상으로 도망가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더 가까이 가는 자인지,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며 애굽으로 도망하는 불신앙의 모습인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얼굴을 더 가까이 가며 그 은혜 가운데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이 새벽에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고 반성하며,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성전 중심으로 내 신앙 생활이 재편되며, 주님의 영적 질서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이 그저 고역과 무거운 멍에가 되는 것은 넘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의 사명이 되는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히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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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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