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르호보암 왕이 얼마나 하나님의 지혜와 멀어져 있는 무지한 왕이었는가, 하나님의 지혜가 결핍된 무지한 결정으로 말미암아 분단의 단초를 제공하는 왕이 되었는가를 증언합니다. 여로보암이 백성들의 민심을 담아 전달한 요구는 물론 백성의 불신앙과 불순종에 대한 표현이었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사명을 그저 고역이나 무거운 멍에로만 여긴 잘못된 가치관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호소임을 알고 그 백성의 소리를 귀 기울일 수 있는 왕이 됐어야 하는데 르호보암은 백성의 소리에도 귀를 닫고 하나님의 소리에도 귀를 닫는 영적 무지로 나라를 분열과 분단의 아픔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민심을 듣고 나서 르호보암의 세 가지 지혜 없는 세 가지 모습을 말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의 지혜 없음은 하나님에 묻지 않는 어리석음입니다. 민심의 소리라고 말하는 요구에 르호보암왕이 고민이 됐겠죠. 그 고민을 가지고 제일 먼저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대신 생전에 아버지가 모셨던 원로들에게 먼저 찾아갔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의 영적 무지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나아가지 않는 무지입니다.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으면 제일 먼저 해야 되는게 하나님께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를 물었어야 하는데, 르호보암에게는 그런 지혜가 사라졌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고백이 르호보암 왕의 삶 속에 드러났어야 되는데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등한시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건너 뛰고 먼저 사람들에게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에서 벗어난다는 증거는 그저 사람의 소리에 집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의견과 충고가 중요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나에게 절대적인 우선순위와 먼저 만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의 지혜 없는 행동은 들어야 할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무지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르호보암왕이 먼저 원로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원로들이 왕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라고 조언합니다. 왕에게 이 원로들은 왕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한게 아니라 왕이 들어야 될 말을 한 것입니다. 내가 듣기 좋은 말과 내가 들어야 될 말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결정적인 결정의 순간에는 그게 다를 수가 있어요. 내가 들어야 될 말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원로들은 왕이 들어야 될 말을 정확하게 얘기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르호보와 왕은 들어야 할 말인 그 얘기를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하면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에서 알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양쪽 의견을 다 들어보고 고민하면서 최종적으로 원로들의 의견을 버린 게 아닙니다. 먼저 원로 그룹의 충고를 들었는데, 그 말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젊은 그룹의 얘기를 듣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그 원로들의 말을 버린 겁니다. 이미 원로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건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생각하며 르호보암의 마음은 닫혀 버린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도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기 듣겠다는 태도와,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듣겠다는 태도는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의 비극은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고 귀를 막아 버린 무지에서 오는 겁니다. 세번째, 그의 지혜 없는 행동은 듣고 싶은 말에만 귀 기울이는 무지입니다. 함께 자라난 소년들 소위 말하는 젊은 리더들이 조언하는데, 그들의 말은 왕이 들어야 될 말을 하는게 아니라 왕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이 말이 굉장히 아부성 발언이라는 걸 딱 아시겠습니까? 아버지 솔로몬 왕은 천천이요 르호보암은 만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 들으면 사람들은 기분이 좋죠. 문제는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사람들의 말을 분별할 수 있으면 지혜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무지한 자들은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그저 기분이 좋고 나에게 듣기 좋은 소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 귀에 듣기 좋고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취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듣고 싶은 말에만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야 될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감언이설에 다 이미 마음이 넘어간 거예요. 그러고 나서 뭐라 그럽니까? 아버지는 무겁게 했는데 나는 더 무겁게 하고 아버지는 채찍으로 했는데 나는 전갈채찍으로 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 아닙니까? 결국 이것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신다고 증언합니다. 이 얘기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르호보암이 어쩔 수 없이 불순종했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들이 말하는 예언은 특별히 잘못된 일이 벌어지는 예언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너네가 불순종을 계속하면 너희들 망한다는 말씀이 너희 망하면 좋겠다는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제발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원하시는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면 통곡을 했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그렇게 원하고 바라면서 백성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는데, 결국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르호보암은 여러번 돌아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 돌아올 기회를 날려버리고 불순종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이 부분을 성경은 매우 안타까운 증언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12 지파들 중 10 지파가 떨어져 나가 르호보암의 왕권을 거부하며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이스라엘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냥 분열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불순종과 배반으로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분열은 백성들의 불순종과 불신앙, 거기에 르호보암의 영적 무지가 결합된 합작품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스라엘 나라가 무너지게 되고 나라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르호보암의 영적 무지와 백성의 불신앙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르호보암의 비극은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고요. 들어야 할 말 대신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얘기만 취한 것도 잘못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태도, 결국 그것 때문에 무너지고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무지와 잘못된 태도는 결정적으로 나라와 백성을 파탄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성도의 특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풀 수 없는 일들을 먼저 하나님에게 나아가 자문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성도됨의 특권입니다. 인생의 고민을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아뢰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제일 먼저 사람들의 소리와 충고를 들으려고 따라가십니까?사람들보다 하나님이 앞서며 사람들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앞서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지혜가 내 삶을 이끌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사람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어보고 사람의 의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중을 먼저 물어보며 하나님을 먼저 붙드는 자가 되십시오. 듣고 싶은 말에만 귀 기울이는 대신 내가 들어야 할 말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귀하고 복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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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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