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하여 시기와 질투를 가지고 분쟁하는 사람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선교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환란과 고난도 어렵지만 인생을 사노라면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중에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싫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에 제일 어려운 점 1순위는 언제나 인간관계이고,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의 첫번째도 늘 사람들로부터 오는 어려움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함께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그렇게 마음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가까이에서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을 오늘 말씀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라고 칭합니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일은 영혼들의 불쌍한 마음과 그 영혼을 건지고자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서 사도 바울은 라이벌로 여기며 투기와 분쟁을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 올인하여 선명하게 복음을 전해서 열매를 맺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 질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어려움과 더 이상 전도를 못하고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는 매임을 자신들을 드러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던 겁니다. 사도 바울이 투옥된 그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같이 중보기도한 게 아니라 그 어려워진 고난과 어려움을 자신들에게 기회로 삼으려 하며 이겨보려고 전도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사도 바울의 투옥과 어려움을 가지고 자신들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나쁜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지금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사도바울의 어려움을 이용해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감옥 안에서 억울해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복음 전하는 일에 열심을 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힘들게 하고 괴로움을 더하게 할 목적으로 지금 그리스도를 열심히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비뚤어지면 겉으로 봐서는 좋은 일을 이렇게 잘못된 동기로, 사람들의 괴로움을 더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좋은 일을 하고 선행을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 안에 있는 동기는 이렇게 악할 수 있는 게 죄악된 인간의 모습 이라는 것이죠. 심지어 복음 전파도, 전도도 이런 잘못된 동기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기 위해 했던 말문 막히는 일이 초대교회 안에 있었음을 우리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행 하고 구제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하나도 잘못되지 않은 데,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그들의 종교 생활을 비판했던 것은 그들의 종교 생활의 겉모습이 문제 있어서가 아니라 그 겉모습의 열심에 담긴 그들의 동기가 불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아니라 자기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의식하는 그 행위의 집중된 종교 행위를 예수님은 비판 하셨음을 깊이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분명히 이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천국에 갔을 때 예수님은 분명히 책망하셨을 것입니다. 나의 복음을 이렇게 잘못된 동기로 옆에 동료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기 위한 이런 악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것 잘못된 거다…책망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하실 일이고, 그것을 당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어떻게 그것을 해석하는가 하면 선교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거예요. 힘들게 하려고 발버둥치며 전도에 열심을 내는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도 바울은 열 받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괴로워하고 분을 내며 열 받아 괴로워 하는 대신 선교적으로 해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된 동기로,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게 옳으냐 나쁘냐는 것을 자신이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으면 순수한 동기로 하든지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하든지 그게 뭔 상관이냐는 거예요. 전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면 나는 그걸로 말미암아 충분히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이것은 단순히 사도 바울이 수행을 많이 해서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인생에 닥치는 모든 삶의 일들을 상황 중심, 나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선교적으로, 영적 안목을 가지고 해석하는 겁니다. 사도바울 개인적으로 괴로움이 없었겠습니까? 인간적인 배신감이 없었겠습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등 돌리며 자신의 투옥와 어려움을 가지고 재를 뿌리고 기회로 삼는 것이 괴롭지 않았겠습니까? 분명히 다 그런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그런 것들이 자기 인생을 주도 하도록 놔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교적인 관점으로 그 어려움들을 해석하기로 작정한 거죠. 그래서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춰 선교적인 의미를 찾으면서 내 마음의 섭섭함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괴롭게 하려는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나는 기뻐한다는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 오면 내 마음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교회 안에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마음이 안 맞고 갈등과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내가 경쟁하고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협력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나하고 마음이 좀 안 맞고 부딛힐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 밖에 있는 사단 마귀와 그 수많은 악한 세력 대신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 편을 갈라 싸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우리가 함께 쓰임 받는다는 동지 의식이 없이, 내 옆에 있는 성도가 나의 경쟁자가 내 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눈꼴 사나워서 볼 수가 없는 것이고,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싸워 이겨야 되는 대상으로 여기며 교회 안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죠. 그런 일이 이미 초대교회 안에 왕왕 일어났었다는 것을 가감없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사도바울의 심정을 헤아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어떤 영적 준비를 하며 신앙 생활해야 하는지를 영적 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이 찾아오거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면 왜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 에 대한 상황 중심, 나 중심으로 해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나에게 괴로움을 더 하려는 것을 보면 정말 극심한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게 당연지사 입니다. 그게 당연한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괴로움을 더해서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삶의 무게에 지쳐가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런 일반적인 반응을 넘어 놀라운 믿음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 승리하고 이기는 것이며, 그런 삶을 나의 힘을 넘어서는 영적인 은혜에 붙들려야 가능한 삶임을 잊지 마십시오. 중단되지 말아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어렵게 하기 위해 그 잘못된 열심으로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기 만 하면 나는 기뻐 한다고 고백하는 이 놀라운 선언이 우리의 고백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다보면 종종 어려움을 당하고 배신 당하며 낙망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음의 상처 받는 말과 행동에 낙심하고, 좋은 일을 하면 꼭 괴롭게 하려고 하는 이런 악한 자들이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 하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 되는 말이나 안 좋은 들으면 우리는 그냥 손을 놔 버립니다. 내가 무슨 아쉬운 게 있어서 이런 소리 들으면서 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가…그러면서 당연히 놓아 버려요. 그러면 전해져야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 중단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임을 기억하는 이 선교적 관점으로 나의 삶을 해석하는 기적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초점을 맞춰 내 삶의 환란과 어려움도 내 주변에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부어지는 사랑을 끊지 못하며 내 안에 있는 복음에 대한 열망을 끊지 못한다는 고백으로 일어서기를 소망하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최후 승리를 믿으며 모든 인생의 삶의 사건들을 선교적 의미로 풀어내고 해석해 내는 나를 넘어서는 영적인 삶, 기적적인 삶이 저와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삶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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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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