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서 성경은 다윗왕 이후에 이스라엘 왕국과 백성이 멸망할 때까지의 흥망성쇠를 우리에게 말씀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 나라나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왕 중심의 역사이고 지도자로서 왕이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업적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 역사 해석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왕 중심으로, 사람 중심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스라엘 왕국과 그 왕들의 역사를 평가할 때 업적이 무엇이고 왕이 남긴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초점은 어디 있냐면 그 왕이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따랐는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는가, 얼마나 하나님에게 순종하였는가를 가지고 왕이 선하고 악했음을 평가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서를 통해 나라와 왕을 평가하는 동일한 방식과 관점으로 결국 나의 인생도 하나님의 시선 아래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또한 그 평가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기준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과 백성들은 결국 망하고 멸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들의 역사는 그런 의미에 있어서 불순종의 역사이며, 하나님과 단절된 역사이며 하나님에게서 멀리 도망가는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 아픈 역사를 열왕기서를 통해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신 이유는 우리 인생 또한 이렇게 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이스라엘의 망한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내가 하나님 편에서 있으며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되며 나아가는 삶을 살기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악입니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 선이며 내가 하나님과 멀리 가는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삶을 사는 유무에 따라 결국 나의 인생이 순종의 역사를 살아가는가, 불순종의 역사를 살아가는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열왕기 상하에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열왕기상 1장은 다윗왕이 죽을 때가 임박한 때에 다음 왕이 세워져야 하는 왕의 자리를 노리는 아들 아도니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다윗왕이 너무 늙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할 정도로 해가 넘어가기 일보직전의 때입니다. 다윗왕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왕이 세워져야 되는 시점에, 찾아오는 문제와 도전은 그 왕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 그 왕의 자리는 거룩하고 구별된 자리,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하나님이 맡겨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사람을 친히 세우시고 맡기시는 자리가 왕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아버지 다윗을 이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아도니야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말씀의 시작입니다. 다윗을 이어 왕이 될 사람은 아들들 중에 하나일 텐데, 아도니아가 치고 나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아도니아가 스스로 높여서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몇가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아들들 중에 소위 말하는 짬밥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아들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아들이었습니다. 사실 아도니아 위에 형들이 있었는데 암논과 압살롬이었습니다. 그런데 압논도 압살롬도 다 살해 당하고, 둘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남은 아들들 가운데 제일 장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아도니아였습니다. 그 당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 집안에 큰 아들에게 왕위가 계승되니까 아도니아는 당연히 자기 순서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도니아가 용모가 준수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결국 사람들에게 끄는 매력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호감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지지하는 세력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변에서 아도니아가 다음 차기 왕이 분명하다고 부추키는 사람들이 주변에 깔린 것입니다. 그들 중에 대표가 바로 다윗의 오른팔과 같았던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무슨 얘기 하겠습니까? 다윗왕이 돌아가시기만 하면 다음 왕은 아도니아 당신입니다…라고 부추기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병거와 50명이 넘는 기병과 호위병을 만들었습니다. 자기를 부추기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곳마다 자기의 세력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과시하는 거죠. 다윗왕 다음에는 내가 왕이 될거라고 흘리듯이 이야기하는 겁니다. 스스로 높여서 내가 왕이 되리라…생각하며 자기를 위해서 왕이 될 준비를 차곡차곡 하는 겁니다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두 단어가 있는데, “스스로 높인다”와 “자기를 위하여” 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는 인간이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스스로 높이고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끊임 없이 틈만 나면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 하고, 끊임없이 틈만나면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겁니다. 아도니아는 주변 돌아가는 정황과 상황을 보니 내가 차기 왕이 될게 분명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착각한 겁니다. 결정적 문제는 이 아도니아를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자리를 아도니아에게 맡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이라는 자리는 스스로 되고 싶다고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맡겨 주셔야 하는 자리이고 거룩하고 구별된 자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는 상황과 정황과 계산으로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야 되고 내가 그 왕이 되어야 되고 내가 높아져야 되고 내가 커야 되고 내가 강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는 인강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든 기준은 내 스스로 높여서 내 자신을 위해서 내가 왕이 되려 하고 내가 높아지려 하고 내가 크려고 하고 내가 강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고 아버지 다윗 왕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정말 찰나와 같이 순간과 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내일이라도 다 놓고 떠날 인생이 우리 삶입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 허락하신 시간을 살아가며 그 맡기신 일과 세우신 자리를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망각한 채 내 스스로 높이며 내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며,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을 계산하면서 내가 스스로 왕이 되려 하는 아도니아와 같은 삶은 결국 패망과 파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평가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나라를 평가하시고 왕을 평가하시듯, 이 시간 나의 인생은 하나님 말씀과 영적 기준으로 평가되는 삶임을 잊지 않고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사는 것이며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 사는 것임을 늘 깨우치며 살기 원합니다. 주님과 연결되며 주님 앞에 나아오는 삶, 끊임없이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경주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부추깁니까? 주변 사람들이 나를 흔듭니까? 내 생각에 내 스스로 높아져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올라가야 된다고 보암직도 먹음직도 하게 보입니까? 하나님이 주시고 맡기시지 않은 자리면 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세우시고 맡기신 자리라면 내가 불편하더라도 내가 부담스럽더라도 그 자리를 아멘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자리를 세우셨나 맡기셨냐의 여부입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April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