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9장까지 말씀은 솔로몬 왕에 대한 증언들이었고 오늘 10장 말씀부터는 아들인 르호보암 왕에 대한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왕기서를 통하여 이 르호보왕이 바로 남과 북으로 이스라엘이 나누어지는데 단초를 제공하게 된 악한 왕이라 강조하며 증언합니다. 솔로몬으로부터 시작된 재물을 탐하고 여자를 탐하는 타락과 변질이 분단의 단초를 제공했고 결국 르호보암 때에 와서 결정적으로 일이 터지면서 분단 되었다는 것이죠. 그 터진 일이 바로 오늘 말씀 배경인 북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로보암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오늘 역대기서는 이 사건을 열왕기서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솔로몬 왕과 달리 르호보암의 지혜 없음이 분명히 분단의 아픔을 제공했지만,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원인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성전 건축과 왕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백성들의 성전 건축과 성전 자체를 바라보는 마음과 태도가 얼마나 큰 문제였는가? 이미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완성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이 성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다 재편하셨습니다. 왕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지도자인 왕이 성전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구도가 이미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됐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세겜으로 내려오라고 압박을 하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는 의도적인 백성들의 불순종과 반역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물론 12지파를 다 포함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주도 세력은 바로 북쪽에 있는, 나중에 북 이스라엘이 되는 그 열 지파들이 르호보암을 세겜으로 와서 우리 인준을 받으라고 압박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 성전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세우신 왕이 아닌 아닌 백성들이 인준하고 세겜에서 왕을 삼으려 하는 인본주의의 태도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든 영적 질서가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 앞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이 거룩한 질서를 거절하고 거부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백성들의 리더로 여로보암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여호보암은 “솔로몬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한 자”로 묘사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한 왕, 하나님의 지혜를 품고 성전을 완성한 위대한 왕이었죠. 그런데 그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피하고 하나님이 재편하신 성전 중심의 신앙을 피하는 자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리고 도망을 간 곳도 애굽이지요. 세상 가치와 문화로 상징되는 애굽으로 도망간 자가 여로보암입니다. 북쪽의 10 지파가 이렇게 하나님이 세운 지혜의 왕을 피하여 애굽이라는 세상으로 도망가는 이런 여로보암을 추종하고 있음을 지금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전 중심의 신앙, 지혜를 피해 세상가치과 문화로 도망간 여로보암과 그를 따르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과 태도에서 이미 인본주의로 타락하고 변질되고 있음을 분명히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돌아와 르호보암 앞에 와서 민심의 소리라며 이야기하는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이루었던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에 따라 완성된, 하나님의 설계도에 따라 움직인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거룩한 사역이자 성역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여로보암은 그 성전 건축의 일을 뭐하고 폄하하는가 하면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무거운 멍에” 라고 선언합니다. 즉 성전 건축을 위해 했던 성전 건축의 모든 사역들이 고역이자 무거운 멍에였다...그게 다라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영적 태도를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전 건축은 매우 힘들고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고 온 몸과 마음으로 쏟아내야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일과 사역이 고역이고 무거운 멍에로만 여겨졌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는 태도, 성전에서 일하는 모든 사역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악한 모습이고 타락한 내적 동기였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로보암을 추종하는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건 뭐냐면 단 한가지, 백성들이 기뻐하고 편하게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쉽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과 소통 잘하고 백성의 의견을 존중하는 왕 잘 섬기겠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고역과 같은 사역을 가볍게 하면, 교회에서 무거운 멍에와 같이 일하는 헌신을 가볍게 하면 교회 잘 섬기겠다는 겁니다. 이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 대하는 태도입니다. 성전 사역과 교회 사역에 헌신하는 일이 그저 고역이 되고 무거운 멍에가 되어 그런 것을 가볍게 하면 교회 잘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하나님의 지혜와 낯을 피해 세상인 애굽으로 도망가 철저히 세상과 인본주의 가치에 물든 백성들의 불신앙과 반역의 모습을 그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역대기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와 마음이 영적인 문제이며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로보암이라는 인본주의 지도자를 추종하며 이미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악한 태도와 불신앙의 태도를 품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본질적 영적 문제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성전 사역이 고되고 무거운 멍에 였기에 무조건 가벼워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 생각 자체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이 불신앙의 근거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역대기 말씀은 저와 여러분들이 교회 사역을 그저 고역으로 여기고, 무거운 멍에로만 여기며 그것을 가볍게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을 기쁘게 하는 일로 여기는 이 태도와 마음을 경고하며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피하여 세상 지식과 문화인 애굽으로 도망하여 철저히 인본주의적 태도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역과 사명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역과 사명도 있고, 가정적인, 그리고 교회에 주신 사역과 사명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그 맡겨진 사역과 사명을 이루며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개편 되서 살아 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들이 그냥 고역이고 멍에이고, 그것을 가볍게만 해주는게 좋은 그런 영적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기 원합니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이 그냥 벗어 버려야 될 것처럼 생각하는 이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이 아닐까 반성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나를 비추고 반성하며 성전 중심의 신앙,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 중심의 신앙,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개편되며 주님이 맡기신 사역과 사명이 고역이나 무거운 멍에되는 것을 넘어 기쁨과 감사의 도구가 되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이 풍성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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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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