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성경적 본질에 근접한 교회라고 믿는 초대 교회들에 사도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라이벌들이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투옥된 어려운 상을 자신들의 기회를 삼고 바울을 더 괴롭게 하기 위한 잘못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열심을 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어떤 동기로 했던지 전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면 나는 상관 없다고 훌훌 털며 그 모든 것을 선교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떻게 환란과 어려움도,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도 이렇게 넉넉히 이기며 선교적 의미로 해석하며 이런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그 비결을 오늘 말씀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죠.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삶을 이 세상에 살아 갈 때 내가 아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도하시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에게는 소망이 없고 어떤 구원 받을 조건도 없다는 것을 늘 뼈저리게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격 없는 나 자신을 고백하게 만드시는 분이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내 안에 내주 하시는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나는 죄인이고 자격 없는 자임을 나는 철저하게 무능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만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것, 이 진리를 실체로 알게 해주시는 분, 또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사도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그는 전천후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가운데도 그 마음이 매몰되지 않고 그 삶을 선교적 의미로 해석하는 놀라운 비결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끝까지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낙망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도록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이 성령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린다는 것은, 배가 잘 정박하기 위해 배보다 더 단단한 곳에 묶어야만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로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곳에 내가 잡혀 있어야 내 마음과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에게 우리가 꼭 붙들려 있어 그 분의 도우심 가운데 있을 때 이런 사도 바울의 놀라운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사도바울이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주님께 꼭 묶여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면서 고백하는 두 가지가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데, 둘 다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첫째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 해지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기에 살고 죽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한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인생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 부끄러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가 부끄러워진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이 우리를 보내셨을 때 우리에게 이거 이거 하기 원하시는 명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을 붙들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가, 그 당연히 해야 될 것들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서서 느끼는 감정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맡기신 일은 결과와 열매가 어찌 된 것과 상관 없이 무슨 일이든 내가 사명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고 올인 했다…는 그 전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적어도 사람들 앞에는 모르겠지만 예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사도 바울의 고백은 너무 유명한 말씀이지요. “ 내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 Christ is in me…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거죠.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 되기 원합니다. 이 시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로 함께 하시고 지금 살아 계십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 살아온 삶을 포기하고 이제 주님이 내 안에서 함께하시고, 내 삶을 이끌고 가심을 믿고 고백하십니까? 그게 바로 위로부터 태어난 자이며, 바로 거듭난 자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천국 백성으로 하늘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로 함께하시기에 죽는 게 손해 보는게 아니라 훨씬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to die is to gain…죽는데 남는 거다/얻는 것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주님의 유익을 위해 있는 것이고 내가 죽는 것도 주님의 유익을 위해 있는 것인데, 내가 감옥 안에서 혹시나 죽는 때가 오더라도 그 죽는게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임을 믿기에 나는 죽는 것도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죽음을 회피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죽음의 때에 그 죽을 자리에서 당당하게 죽겠다는 이 용기와 담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힘으로 살라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내 삶을 이끌고 오심을 믿고 경험한 자이기 때문이죠. 이 시간 내 안에 살아 역사 하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 보시고 믿고 그분 가까이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도 잠시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은 인생 가운데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이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사명 가운데 해야 될 일을 하며 나아가는 주님의 백성 되길 원합니다. 또한 신앙 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내가 주님을 위해 이것저것 한다고 계속 뛰어다니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삶에 찾아오셔서 내 삶의 핸들을 운전 하셔서 온전히 내 안에서 주인 되시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열심이 아니면 예수님 안에서의 헌신이 아니면 그것이 결국 나를 무너뜨림을 분명히 자각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내 힘이 아니라 내 열심히 아니라, 나를 이끄시는 그 예수님이 주시는 힘을 통해 내 삶이 인도함 받았음을 믿고 이 시간 겸손히 내 안에 계신 예수님에게 나의 운전대를 넘겨 드리며 의탁하며 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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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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