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깊이 읽지 않는 분들은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는지도 몰랐던 분들도 있는 말씀이 오늘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사 시대의 옛날 이야기인 금도끼 은도끼 이이야기가 생각 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우화와 같은 도끼 이야기를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주셨으며, 엘리사의 기적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함께 마음에 새기며 은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엘리사가 거처하는 선지 동산과 요단강입니다. 참 선지자 엘리사에게 제자가 되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엘리사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며 찾아와 엘리사와 함께 먹고 자면서 숙식을 같이 하며 선지 동산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엘리사가 거처하는 곳이 너무 좁아진 거죠. 그래서 신학생들이 너무 많으니 이제 선지 동산을 확장공사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선지동산의 모든 학생들이 요단강으로 가서 벌목을 해 오기로 한 겁니다. 스스로 나무를 베어와서 선지동산 확장공사를 하기로 한 겁니다. 거예요 그래서 나무들을 베어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선지 동산을 확장하겠다고 모두 요단강으로 갔습니다. 요즘 시대로 얘기하면 교회가 부흥되서 너무 좁아지니, 예배당을 증축 확장한다 생각하시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지동산을 위해 헌신하며 좋은 의도로 하나님 영광 위해 헌신함으로 시작했는데, 그 일로 말미암아 큰 어려움이 생기는 사건입니다. 한 신학생이 나무를 베다가 너무 열심히 하는 도중에 쇠도끼를 요단강에 빠뜨린 겁니다. 쇠도끼 하나가 강물에 빠진 왜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이렇게 큰 일인가….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쇠도끼가 빠지면 Home Depot 가서 사오면 되는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은 물건이지만, 그 당시 쇠도끼는 지금으로 얘기하면 최신 중장비, 고가의 포크레인이 생각하시면 딱 맞습니다. 전쟁에서 사울왕과 요나단만이 철제 무기가 있었고, 나머지 군사들은 없었다고 증언할 정도로 쇠라는 것은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던 고가의 물이었습니다. 그만큼 쇠도끼라는 것은 당시에 귀한 도구였고 고가의 도구였고 쉽게 살 수 없는 도구였습니다. 더구나 그 쇠도끼는 너무 고가여서 차용증을 써 가지고 빌려온 것이었기에 고가의 쇠도끼를 물에 빠뜨린 신학생이 멘붕이 온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면, 빌려온 쇠도끼를 못 찾아오면, 차용증에 빚을 고스란히 이 신학생이 지는 것이고, 그 돈 못 갚으면 그 사람이 종으로 끌려가게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선지 동산을 확장한다고 헌신했다 빌려온 쇠도끼 잃어버리고 자기는 종이 될 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큰 문제로 번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그냥 적절하게 살아가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니까 때로는 하나님께 이렇게 자신을 던지면서 헌신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정말 헌신하기로 결정하고 내가 인생을 던졌는데 결과가 정반대의 큰 위기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 영광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헌신했고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올인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집을 홀라당 날리고 쫓겨날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굉장히 완곡하게 표현됐는데 이것은 큰 절망과 탄식의 부르짖음입니다. 이거 어떻하죠? 주여 나 도와주세요…이 쇠도끼 주의 영광위해 빌려온 건데 이거 못 찾으면 나는 종이 될 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일인데 결과적으로는 큰 문제가 벌어진 큰 위기, 그 절박한 현장에서 엘리사가 이 신학생을 기적의 역사로 건져 줍니다. 오늘 말씀에 엘리사의 기적의 역사는 예수님이 풍랑위를 걸으시는 것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합니다. 엘리사가 그냥 나뭇가지를 베어 던졌더니, 그 베어진 나뭇가지를 통해 가라앉은 쇠 도끼가 공중부양 하듯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렇게 믿기 어려운 기적을 통해 쇠도끼를 잃어버린 신학생을 건져 주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기 원하시는 영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먼저 주목할 것은 쇠도끼가 물에 빠졌다는 것은 쇠의 무게로 물에 가라앉았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물에 빠진 무거운 쇠도끼는 절대 물 위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될 건 이 쇠도끼가 빠지고 물위 올라온 장소인데, 그 장소가 바로 나아만의 나병이 치유 받았던 곳, 요단강이라는 데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요단강에서 나아만이 여섯 번 목욕할 때까지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순종으로 자기 생각을 온전히 내려놓고 의탁했을 때, 일곱 번째 기적적으로 그의 어린 아이와 같이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그 기적의 현장 요단강에서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서 던지니까 물에 빠져 가라앉은 쇠도끼가 중력을 거스르고 올라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은혜 밖의 우리 인생은 다 죄의 중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죄에는 반드시 힘과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를 가라앉게 하는 힘이 있고 우리를 죽음과 사망으로 짖누르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스스로는 절대로 쇠도끼와 같이 무거운 이 죄의 중력을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죄의 중력에 따라 우리는 가라앉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스스로 발버둥쳐도 거스를 수 없는 죄의 심각한 무게와 권세가 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귀하고 비싼 도구였던 쇠도끼와 같이 존귀하게 만드셨는데 우리는 죄의 무게로 말미암아 죽음과 사망의 자리로 가라앉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의 무게로 가라앉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은혜의 나뭇가지로 중력을 거스르며 떠오르게 하시는 기적으로 살려 주셨습니다. 나뭇가지를 잘라 그곳에 던지니까 중력으로 가라 앉아 있던 그 쇠도끼가 떠오르는 것과 같이, 십자가를 통과하니까 죄의 무게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사망과 죽음에서 떠오르게 하신 겁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건지시기 위해 나뭇가지와 같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죄의 짓누르는 힘을 이기고도 남는 놀라운 복음의 힘, 십자가 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끌어올리게 되는 기적이 바로 복음입니다. 요단 강가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그분이 죄가 있는 자처럼 여김을 받으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세상 죄를 모두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그 모든 것을 쏟으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음의 강에 던져 지신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죽음과 사망의 현장에서 건짐 받고 위로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그림자를 오늘 말씀에서 엘리사의 쇠도끼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통해 바라보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죄의 무게로 말미암아 가라앉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죄의 중력으로 바닥에 가라앉아 어둠과 죽음 속에 헤메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는 나를 가라앉게 하는 무거운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를 결박해서 그 바닥에서 어둠과 사망과 함께 주저 앉게 만드는 무서운 힘과 권세가 실체로 존재함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죄의 무게를 넘어서서 우리를 떠오르게 만드는 십자가의 힘 기적의 힘 은혜의 힘이 우리에게 부어져 있음을 믿으십시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가라앉아 있는 우리를 건지시는 유일한 소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 무거운 죄의 무게를 넘어서는 놀라운 십자가 은혜의 힘이 나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하는 역사가 부어졌음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우리를 살리고 건지시는 유일한 길은 그 십자가 은혜를 붙들고 매달리는 것 밖에 없음을 철저하게 고백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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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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