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과 4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는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나 다른 두사람으로 성별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사회적 지위도 다른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처지와 환경과 상황에 맞게 눈높이에 맞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며 그들을 찾아가시고 만나시는 모습을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복음의 맥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열왕기하 4장에는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는 두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 여인은 저번 주에 배운 선지자의 아내이자 가난한 과부였고,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여인은 완전한 대조를 이루는 부자이며 이방인 귀부인과 같은 여인입니다. 선지자의 아내이자 과부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아들 둘이 노예로 팔려가기 직전이었으며, 엘리사에게 도와달라고 그냥 손을 붙잡은 정도가 아니라 부르짖으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삶의 필요가 명확했고, 살려달라고 요청이 간절하다 못해 긴급했습니다. 반면에 오늘 말씀의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간절한 도움이나 필요를 위해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삶의 위기가 절박함이 가득했던 선지자의 아내도, 겉으로는 부유하고 모든 것이 채워진 것 같이 보이던 부유한 여인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자가 없음을 말씀은 선명히 보여줍니다. 엘리사는 이 두 여인의 상황과 처한 처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며 그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굉장히 부자 마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돈이 많고 넉넉하다고 마음까지 넉넉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 여인은 재물의 부요함이 마음의 넉넉함과 풍족함으로 이어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한번이 아니라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준비하며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다 나아가 음식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미션 센터같이 쉴 거처까지 제공해 주는 세심한 배려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엘리사에게 세심한 배려와 봉사를 하는데 아무것도 엘리사에게 요구하는 게 없었습니다. 이 수넴 여인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런 것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엘리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며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심지어 쉴 거처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던 여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과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도움 받기 위해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오는데, 이 여인은 정반대로 엘리사에게 부족한 것이 없나 필요한 것이 없나….세심하게 살피면서 그를 도우며 필요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나 간절한 요청을 위해 하나님을 찾아오고 하나님께 간절하다 못해 긴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보통 나에게 사람들이 잘하고 무언가를 베풀고 환대를 베풀 때는 일반적으로는 목적성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갑자기 인사 안 하던 사람이 와서 인사를 잘 하고 갑자기 밥을 사주고 뭘 잘해 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 이 사람이 혹시 나에게 부탁 할 게 있나? 혹시 내가 나를 통해 도움 청할 게 있나…이렇게 생각하게 되는데 이 수넴 여인에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필요나 부탁이 있어서 엘리사 선지자를 이렇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였기 때문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를 환대하고 맞아주며 세심하게 배려하며 식사와 거처를 챙겨준 것입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때로는 선지자의 아내와 같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매달려 살려달라고 간구하며 우리 필요를 도움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선지자의 아내이자 과부와 같이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간절하게 매달려 부르짖으며 나의 필요를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아야 되죠. 그런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에게 나아오는 이유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목적성과 의도성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그저 원하는 거 없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는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냥 하나님 그분을 만나고 싶어서 오는 순전한 마음,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 그냥 하나님을 만나는 게 기쁘고,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해 드리면 좋을까, 하나님께 내가 어떻게 하면 기쁨 되는 인생일까…를 생각하며 하나님 그분 자체를 열망하는 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콩고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을 갈망하고 하나님 그분을 원하며 수넴 여인과 같이 어떤 의도나 목적성이 없이 어떤 필요가 없이 그냥 그분을 만나기 위한 갈망, 그분의 기쁨되기 위한 갈망으로 나아오는 신앙의 순전함이 필요합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도움이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체가 되는 삶, 내가 간절히 원하고 구하는 것은 주님 당신입니다…라는 이런 삶의 고백을 주님은 너무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 수넴 여인의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엘리사 선지자 입장에서도 그런 수넴 여인의 모습이 얼마나 감사하고 특별했겠습니까? 엘리사가 보기에도 이런 수넴 여인이 베푸는 호의와 환대, 세심한 배려가 너무 고마웠던 겁니다. 그래서 네가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니까 구하거나 필요한 게 없다는 거죠. 정말 자기에게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절한 기도 제목을 위해, 아들을 달라는 기도제목을 위해 엘리사에게 환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섬기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 자체에 만족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엘리사가 하는 일이 뭡니까? 구하지 않은 도움, 내 놓지 않은 기도제목을 찾아 이 여인에게 가장 중요한 필요를 채워주고 기도제목을 기적으로 응답해주는 것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자기 기도 제목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나 이것이 정말 눈물 짓고 힘든 나의 기도 제목이 들어 주세요…라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엘리사를 향하여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그 여인에게, 엘리사는 찾아서 가장 필요하고 원하는 기도제목을 기적으로 응답하며 아들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내년 이맘때 증에 아들이 있을 거야…그랬더니 이 여인이 사람 속이지 말고 놀리지 말라고 대답합니다. 이미 그 기도 제목은 포기 한지 오래고 내려 놓은 지 오래라는 겁니다. 지금은 남편이 너무 늙어서 이제 애 같기는 힘들다고 포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말 대로 그 여인의 태를 여시고 아들을 낳게 되는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구하지 않은 것까지 나보다 나를 더 세심하게 챙기면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엘리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이죠 우리는 수넴 여인의 이 순전한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부르짖으며 매달리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귀하지만 때로는 내가 구하는 첫 번째는 주님 당신 자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순전한 신앙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시대를 우린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수넴 여인과 같이 하나님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내가 쓰임 받는 도구가 될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 그 분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함을 누리며 살까? 를 고민하고 갈망하기 원합니다.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 그분 자체임을 고백하며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오고, 섬기는 것을 열망하는 영성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그러면 내 입술을 벌려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것 내에게 중요한 것 나에게 있어야 될 결핍을 다 아시고 하늘의 은혜를 부어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 그분을 갈망하고 원하며 하나님을 바른 태도로 섬기며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 나의 필요와 결핍을 채워 주심을 믿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바라기는 이 수넴 여인과 같은 순전한 믿음, 하나님 그분 자체를 만나기 원하는 갈망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 주시며 친히 채워 주시는 풍성함과 축복이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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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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