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수넴 기적의 은혜로 주셨던 아들, 그 아들에게 찾아오는 죽음과 다시 살리심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주신 아들이면 그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아들이 축복 가운데 놀랍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된다…그러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겁니다. 어린 시절 그 기적의 아들은 잘 자라났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그 아이를 잘 자라게 하시는구나…고백하고 간증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의 아들에게 하루 아침에 마음이 무너지는 큰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루는 그 아이가 아버지에 와서 갑자기 “아빠 머리 아파...”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게 두통 정도로 생각하고 머리 아프면 엄마에게 가봐….말하며 엄마에게 보낸 겁니다. 그리고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는데, 머리 아프다고 온 아들이 엄마 무릎에서 한 나절 누워 있다가 죽은 겁니다. 머리가 아프다는 것은 좀 아프긴 하지만 그게 죽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기적의 아들은 엄마 무릎에 있다 갑작스럽게 죽은 겁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매달려 얻은 아들이 아닌, 기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내려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필요까지 채워 주시며 선물로 주신 아들인데, 그 기적으로 주신 아들이 자신의 무릎에 누워 죽어가는 것을 보는 이 수넴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 기적으로 주신 아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가다니….하나님이 먼저 나서 주시며 가장 귀한 선물로 주신 아들을 기적으로 허락해 주셨으면 이렇게 갑자기 데려가시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기적으로 놀랍게 주시고는 이렇게 허무하게 뺏아 가시면 어떡합니까?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땅을 쳤을 것입니다. 그렇게 숨을 거두며 죽는 아들을 바라보는 이 수넴 여인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망감이었을 겁니다. 우리 인생이 계산한 대로 모든 게 수학 공식과 같이 딱딱 맞아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우리 인생에는 우리 계산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공식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공식을 넘어서는 놀라운 역사로 임하시기 하지만 동시에 때로는 기대하지도 못하는 공식을 넘어서는 어려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는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수넴 여인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상상해보면 요즘 말로 하면 멘탈이 나가는 게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멘탈이 나가는 대신, 맨붕이 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대신, 당황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반응과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위기가 찾아왔는데,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이 여인을 통해 성도로서 따라가야 될 믿음의 반응을 배우게 됩니다. 먼저, 맨붕이 오거나 맨탈이 나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대신 수넴 여인은 그 죽은 아이를 엘리사를 위해 만들어줬던 방에 눕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만나러 달려 갑니다. 그게 그 여인이 했던 첫번째 믿음의 반응입니다. 왜 이 아들을 엘리사가 머물렀던 그 방에다 눕혀 놓았는가? 이것은 오직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 그거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나의 인생에 큰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정말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성도들의 믿음의 반응이란, 이 상황과 일은 오직 주님 외는 답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것을 풀어 주실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엘리사에게 달려 갑니다. 근데 엘리사를 만나러 달려 가는데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은 평안을 비나이다 평안을 비나이다…입니다 지금 절대로 평안할 수 없는 상황인데, 계속해서 평안하다는 것을 입술로 반복되는 이유는 내가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바로 달려가듯, 우리 인생에 절박하고 힘들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닥쳤을 때 우리는 바로 하나님에게 달려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달려 나아가 나의 문제를 내려놓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고백하며 하나님의 이름만 붙드는 것입니다. 두번째, 수넴 여인의 믿음의 반응은 엘리사에게 엎드려 그의 발을 꼭 붙드는 것입니다. 그 무너진 마음 눈물을 심지어 남편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그 무너지는 마음을 엘리사 앞에 가서야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와서 엘리사 앞에 엎드릴 때 까지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 마음을 쏟지 않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눈물과 마음을 쏟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눈물과 마음을 쏟고 그 발을 꼭 앉는 겁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을 일차적으로 누구에게 쏟아야 되냐면,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쏟아야 합니다. 수넴 여인과 같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가야 하고, 사람들에게 내 힘든 마음을 먼저 쏟는 대신, 제일 먼저 하나님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것이 성도의 믿음의 반응입니다. 그렇게 엎드려 발을 꼭 붙드는 여인을 바라보며 엘리사는 이 여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직시했습니다. 그의 영혼이 괴로워 한다는 겁니다….하나님이 나에게 숨기셔서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데 분명한 건 지금 이 여인의 영혼은 너무 괴로워 마음을 쏟으며 내 발을 안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앞에 무너지는 마음을 통곡하며 쏟아내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 수넴 여인의 마음 쏟는 통곡의 이야기를 듣고 그 집으로 찾아 갑니다. 먼저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달려가 자기 지팡이를 먼저 가지고 가서 그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 명령합니다. 왜 그랬냐 하면 그 당시의 고대 근동의 문화로는 죽은 시신에 지팡이를 논다는 것은 그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보류하라는 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게하시는 착각하고 엘리사의 지팡이 자체가 어떤 능력 있을 줄 알고 착각하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얼른 가서 그 아이의 얼굴에는 지팡이를 두었는데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지팡이를 먼저 가져다 두라 한 목적은 치료 목적이 아니라 그 지팡이가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잠시 보류하라는 명령이자 요청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방 문을 닫고 그 기적으로 태어났다가 죽은 아이와 대면하게 됩니다. 엘리사와 그 아이 둘만 남아 여호와 앞에 간절히 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어떻게 기도했는가 하면 아이 위에 올라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며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몸을 맞대며 하는 기도는 예전에 그의 스승이었던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릴 때 했던 기도 방식과 동일합니다. 그렇게 몸을 다 포개고 기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절박한 기도인가 하면 나를 죽여서라도 이 아이를 살려달라는 생명을 거는 기도였습니다. 이 아이를 나를 죽여서라도 나 대신 살려 주세요….긴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하여 놀랍게 역사하셔서 이 아이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그 기적의 아들이 다시 한번 기적으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고, 그 가정에 평안과 복을 주시는 것으로 말씀을 결론 맺습니다. 엘리사를 통하여 일어난 놀라운 역사는 엘리사의 특별한 지팡이도 아니고 엘리사 자신도 아니고 엘리사를 쓰신 하나님을 통한 역사일 뿐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기적을 행한 엘리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를 사용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께서 역사 하심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내 계산 대로, 내 계획과 예상대로 흐르지 않는 인생임을 인정하며 예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 닥쳤을 때눈 앞이 캄캄해 져서 맨탈이 나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인생 대신, 수넴 여인과 같이 그 속에서 믿음의 반응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달려가며 주님께 먼저 마음을 쏟아내는 인생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큰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셔야만,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셔야만 살 수 있는 인생임을 인정하며 내 안에 행하신 주님의 역사를 사모하며 살아가십시오. 나를 통해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통로가 되기를 사모하며 하나님만 높이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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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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