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에 보이는 왕이 생기면 더 행복하고 안전하며 모든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고 결국 왕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왕이 있으면 백성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호해 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근데 오늘 말씀을 통해 증언되는 뼈아픈 진리는 백성들이 고통에 빠지고 피폐한데 왕이 상관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원해서 세운 왕의 현주소가 무엇인지 보았느냐? 그게 열왕기상하의 매우 중요한 핵심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선지자의 과부와 두 아들은 삶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눈물 나는데 왕이 상관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받은 백성의 대표입니다. 선지자의 남겨진 가족…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잘 쓰임 받은 건 좋았는데 문제는 일찍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시고 나니까 남겨진 가족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게 됩니다. 선지자가 그 당시에 뭐 남겨 준 게 있겠습니까? 재산을 남겨준 것도 아니고 뭔가 살아갈 버팀목이 될 만한 것이 남겨진 건 없어요. 대신 큰 거 하나 남겨 주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입니다. 선지자가 무엇 하느라고 그렇게 큰 빚이 있었을까….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상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다는 것을 통해 탕진해서 빚을 진 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그 빚은 생활고로 인한 빚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선지자는 큰 빚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가족들은 큰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조금 힘든 고통이 아니라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던 게, 그 큰 빚으로 말미암아 두 아들이 노예로 팔려갈 정도로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를 보호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는 건드리지 않는 게 그 당시에 하나님의 명령이었는데, 그 약자 보호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성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시대에 과부가 된다는 것은 벼랑 끝에 서는 고통이었는데, 두 아들마저 빚을 못갚아 노예로 팔려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런 선지자 가정 하나를 통하여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눈물 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가를 대표 선수와 같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 가운데 정말 죽는 것 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 왕은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상관하지 않는 절박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과부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건져 주시고 살 길을 열어 주시는 기적의 이야기가 오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그 집에 기름을 펑펑 채워 주셨다…이걸로 끝나시면 안되고 주신 말씀으로 주목하고 마음에 새길 것은 하나님이 기적으로 일하실 때 쓰시는 방식과 프로세스입니다. 부르짖음, 드림, 전적 순종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기적은 선지자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 부르짖는 데서 시작됩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절박하고 긴급하게 부른다는 의미이자, 세상에서의 도움은 다 끊겨 주님밖에 소망이 없다는 고백적 표현입니다. 세상에서도 도움 얻으려 하고, 주님에게도 도움 얻으려는 사람은 부르짖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주님 밖에 답이 없습니다…라는 처절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은 하나님도 섬기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이에요. 마찬가지로 기적의 역사 첫 단추는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가지고 있는 것을 드림…입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이냐…물으시며 그걸 드림…을 통해 일하시는 겁니다. 선지자 과부의 집에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겨우 기름 한 그릇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이상하죠. 그 한 그릇도 채 안 되는 그 기름을 가지고 나오라…그 남은 기름을 드리라는 겁니다. 그렇게 드려진 기름 한 그릇을 통해 통한 하늘의 기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시는 프로세스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고 매달릴 때 하나님이 물어보시는 것은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이냐…입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고 모든 걸 날려버린 상황인데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그거를 가지고 나와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다섯 개의 빵과 두 개의 물고기가 드려짐을 통하여 시작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기적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미약한 것을 통하여 기적을 시작하심을 잊지 않는 게 믿음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이 기적으로 일하시는 방법 세번째는 믿음으로 전적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체적인 설명을 해주지 않고, 부분적으로 희미하게 설명을 해주시고는 믿음의 반응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엘리사가 만약에 이 여인에게 기름 그릇을 빌려오는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그릇들에 기적으로 기름이 다 담길 거니 가능한 많이 빌려와…알려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엘리사가 이 여인에게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할 거니까 그릇을 많이 빌려오라…이러지 않았습니다. 아주 애매하게 알려주고는 그냥 무조건 나를 믿고 내 말만 믿고 그릇을 믿음으로 빌려오라는 겁니다. 지금 자기는 죽기 일보 직전이고 우리 자녀는 노예를 팔려가기 일보 직전인데 나가서 그릇 빌려 오라는 게 상식적으로 마음에 부대끼는 명령입니다. 죽을 지경인 나에게 왜 나가서 이웃에게 아쉬운 소리하며 그릇을 빌려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가능한 기름 그릇을 많이 빌려와… 조금이 아니라 많이 빌려와…그리고는 설명이 멈추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의 반응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이 여인이 과연 기쁜 마음으로 이 그릇들을 빌려 왔을까? 아니면 속으로는 불평하고 원망하며 빌려 왔을까? 성경은 증언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평하고 원망하며 빌려왔을 확률이 많습니다. 이 여인은 기쁨으로 많이 빌려왔을 수도, 불평하며 조금 빌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몇 그릇을 빌려왔던지 준비된 그릇, 빌려온 그릇만큼만 기적의 기름이 채워졌다는 데 있습니다. 나중에 되서야 그 그릇들을 많이 빌려 오라 한 이유를 알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 그릇은 기적으로 기름이 채워지는 것임을….이 그릇들은 하늘의 기적으로 주시는 기름을 담는 놀라운 그릇들이었음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기름 부으심이 딱 멈추는 것을 보면서 이 여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겁니다…기름 그릇 더 빌려올 걸…이럴 줄 알았으면 기름 그릇 정말 목숨 걸고 더 많이 준비할 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그 종들에게 하셨던 그 명령을 생각해보면 결이 거의 비슷합니다. 집안에 결혼 잔치 중에 포도주가 똑 떨어졌습니다. 잔치가 완전히 망쳐질 위기 상황에 예수님은 그 하인들에게 그냥 빈 통에 물을 가득 채워서 연회장에 가지고 가라는 겁니다. 그렇게 가는 순간 하나님의 역사로 물이 포도주로 변할 거야…이런 이야기는 전혀 안 해 주셨습니다. 그냥 물만 가득 채우고 믿음으로 그 물통 가지고 연회장 들어가라는 겁니다. 하인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 가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놀랍게도 그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그냥 물이 담긴 것을 가지고 갔다는 거죠. 그 믿음의 반응을 사용하셔서 그 곳에서 놀라운 포도주가 나온 겁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거는 부분적으로 알고 희미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길을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 순종의 반응을 통해 하늘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별 설명 없이 가서 기름 그릇을 많이 빌려 오라는 명하십니다.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고 부대껴서 투덜거리면서 가져올 수도 있고, 믿음으로 많이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 믿음의 반응으로 준비된 그릇만큼만 하늘의 기름이 채워짐을 잊지 마십시오. 그릇이 준비되는 만큼만 은혜가 담긴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은혜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이 그 그릇을 채우실 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릇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워진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희미하게만 아는 가운데 믿음의 반응을 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믿음의 반응을 요구하신 이유는 나중에 무릎을 치며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신앙 생활의 신비입니다. 세상 왕은 여러분들의 아픔과 눈물을 해결해 주지 않고 여러분들을 붙들어 주지 않습니다. 나의 삶이 힘들고 아프고 눈물 날 때, 절벽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마음이 들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살길을 열어 주신다는 이 믿음을 굳건히 붙드십시오. 준비되는 만큼 기름 받을 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믿음의 순종으로 기름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우리의 어리석음을 넘어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불확실한 가운데, 희미한 가운데 믿음의 반응으로 순종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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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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