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4장은 엘리야 이후 그 선지자였던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여러가지 기적들을 말씀의 은혜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기적들의 모든 배경에는 북 이스라엘이 이렇게 영적으로 어둡고 신앙의 본질에서 이탈한 불순종으로 가득한 시대, 왕이 왕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엘리사의 사역이 한줄기의 빛과 같이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4장 앞부분의 선지자의 아내였던 과부 가정을 기적으로 살 길을 마련해준 엘리사의 기적의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큰 연결점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그 땅에 큰 흉년이 든 것으로 시작합니다. 큰 흉년이란 일차적으로는 그 지역이 정말 먹을 것이 없는 기근과 고난의 어려움입니다. 마치 앞에 나왔던 선지자 가정의 피눈물의 인생, 남편은 죽고 빚만 남아 그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지경이었던 빚더미의 인생이 시대 상황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큰 흉년으로 정말 먹을 것이 없는 위기에 빠진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실제로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그것 때문에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흉년, 그게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동시에 이 흉년은 영적인 흉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씀이 기갈, 말씀이 사라져서 영적으로 굶어 죽는 흉년, 백성들이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해서 영적인 존재로 살지 않고 육신으로 그냥 짐승으로 살아가도록 방치되는 삶 그것이 바로 큰 흉년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가 이거 혹은 저거의 취사 선택이 아니라 상대적 절대적 의미로서 같이 붙들고 가야 되는 흉년의 의미입니다.
그 땅에 그렇게 흉년이 들었을 때 100명이 넘는 선지자들이 엘리사 앞에 왔습니다.굶주림으로 찾아온 선지자들을 엘리사가 기적으로 먹이 이야기가 오늘 말씀입니다. 두 가지 기적으로 엘리사는 그들의 육신의 필요를 먹이고 동시에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먹입니다. 첫번째 기적은 국을 끓이는데 마법가루로 해독하는 기적, 두번째는 구약의 오병 이어와 같은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입니다. 기적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거의 똑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부어 주시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패턴이 비슷한데,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을 부어 주시기 위해선 우리들의 믿음의 반응과 내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절대 큰 그림을 알려 주시지 않고 부분적으로 희미하게만 알려 주시지만, 그 가운데 믿음의 반응을 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적에서 믿음의 반응은 많은 선지자들을 먹이기 위해 한 사람에게 국을 끓이라고 엘리사가 명했더니 한 선지자가 거기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여 밖에 나가서 어떻게든 채소를 찾아와 옷자락에 채워 돌아옵니다. 자기에게는 큰 기근 중이어서 가진 게 하나도 없기에 가서 될만한 채소를 찾고 찾아서 것가지고 왔습니다. 그게 들포도 덩굴 가운데 있는 호박이라 하는데, 그게 정확하게 뭔지 모르지만, 먹을 수 없는 채소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면 먹을 수 있는 버섯이 있고 먹을 수 없는 버섯이 있지 않겠습니까? 근데 먹을 수 없는 버섯 같은 것을 모아서 가져온 거예요. 왜 그 먹을 수 없는 독버섯과 같은 것을 가져 왔냐면 그 사람이 분별력이 없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 못해서 가져온 게 아니라, 큰 기근 중에 가지고 올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먹을 만한 버섯은 이미 다 가져가고 그니까 남아 있는 거라고는 먹을 수 없어 보이는 그런 독버섯 같은 것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라도 다 모아 가지고 썰어 가지고 국을 끓이는 겁니다. 먹을 수 없는 건 아는데 그것 밖에 없으니까 엘리사의 명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그거라도 가지고 와서 들여서 국을 끓이는 겁니다. 근데 끓인 국을 맛보니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라 난리가 난 겁니다. 그렇게 써서 먹을 수 없는 국,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 국을 엘리사에게 가져가니까, 엘리사가 소위 말하는 마법의 가루를 가져와서 솥에 넣으니까, 독이 든 것 같이 써서 먹을 수 없었던 국이 해독된 겁니다. 마치 광야에서 쓴 물이 단물이 되어 먹을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쓴 국에 독이 해독되어 먹을 수 있게 되어 그 허기지고 배고파 고통 당하는 선지자들과 그 무리들이 다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먹을 수 없었던 쓴 국을 먹을 수 있는 국으로 해독시켜 주신 겁니다. 두 번째 기적도 비슷한데 한 사람이 처음 만든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를 엘리사 앞에 드립니다. 그 정도면 큰 기근 중에 자기 혼자 먹으면 가족이랑 며칠은 먹을 수 있는 양인데 그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자면 100명, 가족까지 하면 400명은 족히 넘는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거의 불가능합니다. 절대 먹일 수 없는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엘리사는 이 것을 무리에게 줘서 먹게 하라고 명합니다. 아니 몇 사람도 먹기 어려운 보리떡 20개를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눠 먹으라고? 측근들이 귓속말로 이건 절대 먹일 수 없는 양입니다…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때 엘리사가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을거라 하시니 무리에게 나눠주라는 겁니다. 그 엘리사의 말에 순종해서 그냥 믿음으로 그걸 무리들에게 나눠 주든지 그건 불가능하다 여기고 포기하든지…이게 바로 믿음의 결정적 순간입니다. 부분적으로만 희미하게만 알려주고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반응하기 원하는 거죠. 놀랍게도 그들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무리들에게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 채소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근 한 가운데서 그 많은 무리가 모두 먹고도 남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절대 그걸로 먹일 수 없는 작은 양인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늘로부터 역사하시며 모든 사람이 먹고 충분히 먹고 남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패턴이 예수님이 5천명을 먹이신 패턴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말씀을 믿고 그 드려진 작은 것들로 장정만 오천명을 먹이는 것이나, 엘리사가 기적으로 먹이는 패턴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첫번째 기적에서 엘리사가 라면 스프 같은 비법 가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 엘리사를 통하여 하늘의 역사가 그 땅에 임하게 하신 축복이 임한 겁니다. 그 하늘의 역사와 축복이 임하기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셨던 건 바로 믿음의 반응이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명령에 어쨌든간에 먹을 수 있던 없던, 있는 것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을 그 믿음, 그것을 가지고 불가능하지만 국을 만드는 순종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엘리사의 기적은 이렇게 믿음의 반응으로 하나님께 드릴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내가 드려지지 않은 것 가운데 그냥 일방적으로 역사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드리는 말도 안되는 작은 것을 통하여 믿음의 순종과 반응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그것을 통해 역사하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 게 바로 하늘의 축복 원리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 보시기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떠나며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붙들고 백성들과 무관하게 살아갔기에 백성들은 큰 흉년으로 육신의 양식 기근, 영적 양식의 기근으로 아사 직전에 빠지는 어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엘리사를 통하여 한줄기의 빛과 같은 그 은혜로 그들을 육적으로 영적으로 먹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아가기 원하며 내 육신의 필요가 채워지며 내 영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풍성함이 경험되기 원합니다. 말씀이 희귀하며 말씀의 흉년이 되는 이 말씀의 기근 때에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면 말씀으로 공급하시는 하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히 담기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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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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