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도 기독교에도 다 수도원 전통이 있습니다. 불교도 사찰에서 수도하는 많은 수도승들이 있고, 기독교 전통에도 수도원에 많은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불교의 수도승들은 사찰에서 대부분 공동생활을 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자고 같이 모여서 밥 먹고 모든 것을 같이 하는 공동생활을 한다 하면 기독교 수도원 전통은 철저하게 수도사들이 혼자 지냅니다. 각자의 방이 있어서 혼자 성경 읽고 혼자 묵상하고 혼자 자는 생활을 합니다.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혼자 사는 것을 통하여 나의 인생을 계속 하나님 앞에 두는 싸움을 평생 벌이는 것이 기독교의 수도원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살다 보면 참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되는데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환경과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화할 때 우리는 참 힘들고 어려움을 느끼고요. 또한 내가 의지하고 믿는 것이 사람이든 대상이든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변화를 경험할 때 우리의 인생이 참 힘들게 됩니다. 그렇게 인생이 참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그동안 의지하고 붙들었던 것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이 훨씬 더 많았음을 발견하는 것이 믿음의 반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그동안 자기 인생에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믿는 구석이 훨씬 많은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몰랐던 자가 아니었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따른다 말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나님 외에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의지하며 그것으로 문제를 계속 해결하려고 시도했던 자가 바로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형이 와서 죽이려 그러니까 가족들을 먼저 보내기도 하고 그 다음에 머리를 굴려 자기 재산을 둘로 나눠도 보고, 한쪽이 공격당하면 한쪽이라도 얻으려고 계산도 해보고, 형 에서에게 구제 받아보려고 선물을 보내 기름칠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너무 무서워서 밤에 강도 건너 봤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해봤는데 결국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지지 않고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이 홀로 남았더니… 이 상황까지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야곱이 홀로 남았다는 것은 참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상황에 혼자 남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그동안 야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계획과 머리 굴리는 것을 다 내려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가족도 보내고 사람들도 다 보내고 혼자 남아서 그동안 내가 머리 쓰고 굴렸던 모든 계획과 생각들을 다 내려놨다 이게 바로 야곱이 홀로 남았던 시점인 것입니다. 결국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어디까지 갔냐면 자기 혼자 남는 순간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저는 군대에 들어갈 때 이걸 좀 경험하게 됐습니다. 결국 내가 혼자 가야 되는 길이 있구나 또 제가 전신마취하고 수술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수술할 때도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도 결국 내가 혼자 들어가야 되는게 수술대구나…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사랑하고 나를 지지해도 어느 순간에는 혼자 들어가야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야곱과 같이 이런 홀로 남는 시점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나의 계획도 나의 모든 생각도 다 내려놓고, 심지어 나의 가족들도 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결국 내가 혼자 져야 하는 짐이 있고 혼자 가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도 함께 갈 수 없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혼자 서야 되는 때가 있고 혼자 남아야 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에는 이런 결정적인 순간, 홀로 남아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시점이 있다는 것을 미리 깨닫고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계속 하나님 앞에 홀로 두는 연습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이 세상 것들을 붙들고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을 철저하게 붙드는 단독자로 서게 되는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의지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인간적인 계획을 다 내려놓고 사람들과 심지어 가족들도 다 떠나보내고 지금 하나님 앞에 혼자 서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성경은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선 기도를 밤새 씨름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밤새 씨름하는 기도를 할 수는 없으나, 때로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잠깐 앉아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밤새 씨름하는 기도를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가 있듯이 때로는 우리가 밤새 씨름하는 기도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얍복강에 있을 때,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다 사라질 때, 결국 내가 혼자서야 할 때 그때에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야곱과 같이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는 기도입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야곱과 같이 홀로 남아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며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보니까 소망이 없고, 환경을 보니까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내일 아침이면 형 에서의 손에 죽음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야곱의 밤새 씨름하는 기도가 얼마나 절박했고 간절했는지를 선명히 증언합니다. 어느 정도로 야곱이 간절하게 매달리고 부르짖고 기도했냐 하면 하나님의 천사가 허벅지 관절을 쳤는데도 불구하고 놓지 않는 겁니다. 옛날 성경에는 환도뼈라고 되어 있는데 이 허벅지 관절이 어디냐면 정확하게 얘기하면 사타구니입니다. 사타구니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인데 사타구니에 힘줄이 나가면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아이고 나 죽겠네…그러고 그냥 떼굴떼굴 구르겠죠. 그런데 야곱은 사타구니 힘줄이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손을 놓지 않는 겁니다. 주님 저 이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주님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저 이거 못 놉니다…그게 힘줄이 끊어져도 놓지 않는 야곱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축복 받지 않으면 전 죽습니다...라는 간절함이죠. 그만큼 생사를 걸고 지금 기도하는 겁니다. 주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이곳을 나가지 않겠습니다…밤새 씨름하며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가 야곱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나의 사건이 되어 내가 곧 죽는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거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곧 죽는다는 것을 내가 사건화하고 내면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간절히 붙들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 없으면 죽는 것을 다 알지만 때로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내 혼자 하나님 앞에 서서 정말 나는 하나님 앞에 축복이 없으면 죽는 존재는 것을 깨닫고 밤새 씨름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축복 주시지 않으면 저 이거 놓지 않겠습니다… 내 뼈가 부러지고 내 힘줄이 나가도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이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에 모든 의지하는 것을 다 내려놓고 나서 하나님께 그렇게 간절히 씨름하며 밤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이 질문을 야곱은 오래전에 아주 중요한 순간에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털을 붙이고 변장하고 음식을 만들어 갔을 때 아버지 이삭을 통하여 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야곱은 뭐라고 대답했냐면 저는 당신의 아들 에서…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인데 그렇게 변장하고 털을 붙이고 서서 에서로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에서 같이 살아야만 자기가 죽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며 가면 쓰고 산 것입니다.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에서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나는 축복받고 승리하는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았던 것이죠. 우리도 야곱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가면을 쓰고 이 세상에 힘과 능력을 쫓아 오늘도 열심히 달려 살아가는게 우리 삶의 실존일 수 있는 겁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야곱은 가면을 벗어버리고 철저하게 엎드리며 “ 주님 저는 야곱입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야곱인데 나다움을 잃은 채 가면 쓰고 에서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야곱이에요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야곱의 이름이 뭡니까? 발꿈치를 붙드는 자, 속이는 자…주님 나는 속이는 자고 늘 다른 사람의 발꿈치를 붙들고 산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나는 주님의 은혜 없으면 무너지는 가능성 없는 자…이렇게 절망하고 신음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종 야곱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직면하고 가면을 벗어버리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리는 놀라운 고백이죠. 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야곱에게 임했습니다. 그 밤새 씨름하는 야곱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천사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 응답은 갑자기 상황이 확 바뀌는게 아니라 야곱의 이름이 바뀌는 축복입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이 바뀌는게 아니라 그의 인생의 방향성과 우선순위가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입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그의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내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 보다는 struggle with God and overcome…,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그 상황과 환경을 넘어섰다는 의미입니다. 내 인생에 넘을 수 없는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을 나 혼자 씨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기도로 씨름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기도를 씨름하면서 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넘어선다… 이게 이스라엘이라는 영적 의미입니다. 야곱은 힘줄이 끊어져서 평생 절둑 거리며 살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영광의 상처가 됐고 평생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는 더 이상 에서가 아닌, 더 이상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살아가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혼자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 새벽 기도의 시간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시간, 환경과 상황을 다 내려놓고 내가 의지하는 모든 계획과 뜻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동일한 사건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이 시간 손들고 옵니다…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주님의 은혜 아니면 저는 죽는 존재, 축복해 주지 아니하시면 저는 죽는 존재임을 고백하며 간절히 매달리고 밤새 씨름하며 주님 이름을 붙드는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이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어보실 때,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저는 주님의 은혜 없으면 죽는 존재입니다…난 이렇게 연약한 존재,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고백하며 진실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인생이 놀랍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 밤새 씨름하는 기도를 통해 이름이 바뀌며 하늘의 축복이 임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상황과 어려움을 놀랍게 넘어서는 은혜가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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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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