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하박국의 이름은 “두 손을 모으다…껴안다…붙들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그 이름대로 그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어둠과 문제를 마음에 품고 씨름하며 그것을 놓고 눈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박국 말씀을 보면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탄식으로 부르짖는 선지자, 아무 외쳐도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은 절망 속에 탄식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비슷해 보이는데 결이 전혀 다른 개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불가능한 상황과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려운 상황과 불가능한 상황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굉장히 다른 의미입니다. 하박국 3장이 증언하는 상황은, 탄식하며 부르짖고 떨림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상황은, 단순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오늘 말씀 3장에 등장하는 삶의 자리,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 우리에 양도 소도 없는 상황은 불가능한 상황과 현실 속에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는 상황, 심은 나무들에 열매가 없는 상황은 뒤뜰에 취미로 심은 유실수에 열매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나무들을 심어 이걸로 1년을 먹고 살아야 되는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자리입니다. 그냥 쉽게 읽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1년의 농사와 비즈니스가 흉년이고, 삶의 모든 상황이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펼쳐지고 있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삶의 자리입니다. 나름대로 노력했고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한 거 같은데 손에 남은 게 하나도 없는 텅빈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포도나무가 열매가 적음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열매가 아예 없는 겁니다. 밭에 소출이 적은 게 아니라 소출이 아예 없는 겁니다. 우리의 양과 소가 적은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겁니다. 17절이 보여주는 삶의 자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넘어 있을 수 없는 일어난 듯한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박국의 탄식은 표면적으로는 개개인의 삶에 처한 인생에 처한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로의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하긴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개인을 넘어 남유다 전체에 임한 공동체적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개개인이 직면하는 불가능한 상황을 넘어 공동체 전체, 남유다 전체가 직면하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가 어떻게 하나님을 이렇게 대적하고 불순종할 수 있는가…도데체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남유다를 탄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의 부조리와 불합리와 불순종과 반역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방법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었는데, 바로 남유다보다 훨씬 더 악하고 나쁜 바벨론을 들어 남유다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하고 반역하고 불순종한 남유다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그럴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심판하시는 도구가 우리보다 훨씬 더 악하고 나쁜 바벨론이냐는 겁니다. 바로 잡으시려면 우리보다 좀 낫고 괜찮은 민족을 들어 쓰셔서 남유다를 치시면 회개하기도 돌아오기도 수월할거 같은데, 왜 하필 우리보다 훨씬 못하고 악한 바벨론을 들어 심판하시냐는 겁니다. 하박국 선지자로서는 이걸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겁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그 썩는 것처럼 내가 뼈마디가 쑤시며 내 처소에서 내 몸이 벌벌 떨리는 겁니다. 거예요 단순히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 하박국 선지자가 온몸으로 탄식하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 단순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넘어, 도저히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숨쉬기가 어렵고 가슴이 턱 막혀 정말 아무런 답도 없는 상황,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남유다 공동체가 직면하는 바벨론을 통해 치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환난의 예고, 이 고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하박국은 탄식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를 하는가 하면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목한다는 기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적의 힘으로 하나님만을 붙들겠다는 하박국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런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주목하고 바라보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그때 하박국의 기도는 내가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도록 나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달라는 선포 기도입니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 속에 당연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주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처한 상황과 환경이 내 기쁨과 즐거움도 내 슬픔과 눈물도 모두 지배하는 삶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하나님을 주목하고 붙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절대 가치로 붙들고 왔다 갔다 하는 인생이 아니라 그 가운데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목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너무나 고통스러운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바라보고 주목하는 것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기를 지금 하박국은 처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처한 상황이나 환경은 다 상대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가운데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목하는 것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를 원합니다…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상황이 잘 펼쳐지고 계획대로 되어서 내 처한 상황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너무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않기를, 상황이 꼬이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내 처한 상황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너무 낙담하고 슬퍼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상황과 환경은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악하고 나쁜 바벨론을 통하여 남유다를 심판하신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고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에 담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완벽하신 뜻을 믿고 순종으로 나아가겠다는 고백입니다. 이렇게 심판을 해서라도 당신의 나라 유다를 바르게 세우겠다는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옳습니다…고백하며 순종으로 나아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그 현실 가운데 절망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대신, 그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주목하고 바라보며 살기를 결단하는 기도입니다. 하늘의 힘을 공급받아 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 아닌 하나님을 먼저 주목하고 바라보는 기적, 그 기적의 삶을 간구하며 선포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상황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인생을 넘어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인생으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상황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절망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인생을 넘어,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하늘에서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뺴앗기지 않는 인생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먼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 그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처한 상황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빼앗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에 펼쳐지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나아갈 때,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상황과 환경이 펼쳐 질 때,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이 고백의 기도는 절대 쉽게 할 수 없는 고백이며 절대 가볍게 할 수 없는 고백이며 나의 인생을 담아 고민하고 고민하며 참으며 마침내 눈물과 함께 드리는 고백이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에게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이 놀라운 고백이 내 삶에 체득되고 내 삶에 내면화되어, 처한 상황과 환경을 넘어 하나님에게 주목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즐거움과 기쁨으로 내 삶이 인도함 받는 복된 삶으로 나아갈 줄 믿습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너무 즐거워하거나 너무 너무 기뻐 지 않는 겁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 때문에 너무 절망하거나 너무 좌절하지 않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다 상대적이고 다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될 본질은 내 안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하고 절대적인 은혜가 내 안에 담기는 것임을 선명히 믿고 고백할 때 이 하박국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줄 믿습니다.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불가능한 것 같은 현실을 버티며 주님을 바라보는 많은 성도들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 하박국의 기도를 마음에 새겨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직면하는 불가능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늘의 것을 주목하고 하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며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기쁨이 머무는 선포의 기도로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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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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