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3장 말씀은 다윗이 거의 독 안에 든 쥐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잡히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보내셔서 어쩔 수 없이 사울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잡은거나 마찬가지인 다윗을 놓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정반대로 사울왕이 거의 굴 안에 든 쥐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전개 됩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영적으로 분별하고 행동하는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를 쫓아가서 싸우고 끝나자마자 다시 사울왕은 다윗을 찾으러 옵니다. 그냥 다윗을 찾기 위해 모든 것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때 또 한 명의 간신이 사울 왕에게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것을 밀고 하게 됩니다. 사울 왕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간신배들은 사울에게 빌붙어서 사울이 원하는 것들을 제공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 3000명을 이끌고 추격해 갑니다. 다윗에게 600명 정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600명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5배수인 3000명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윗과 그의 사람 600명을 죽이기 위해 3천명을 전국에서 다 모아 가지고 최고의 정예 부대를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윗이 있을 만한 곳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지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어디 있었냐면 사울왕의 군대가 있는 동굴 깊은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3000명의 군대가 굴 밖에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 군대가 들어오는 순간 자신들은 도망갈 데가 없으니까 몰살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3000명의 군대와 사울왕이 저 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들을 발견만 하면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고 숨죽이고 벌벌 떨면서 있었는데 거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사울왕이 혼자 굴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용변을 보러 군대는 밖에 둔 채 혼자 사울왕이 들어온 겁니다. 지금 자신들은 죽었다 생각했던 다윗의 사람들, 이제 우리는 사울 왕의 손에 죽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마음에 터질 수 없는 분노와 떨림과 흥분이 있었던 것이죠. 사울왕이 혼자 용변을 보러 굴 안으로 들어온 이 상황이 다윗의 측근들에게는 모두 뭐라고 느껴졌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우리를 그렇게 피말리게 했던 사울왕을 우리 손에 붙이신 절호의 찬스라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측근이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칼을 들어 치시라고…부추기며 말합니다. 그 동안 사울왕 때문에 도망자로서 당한 고생과 피눈물을 생각하면 손이 부들부들 부들 떨리는데, 우물 안에 든 쥐와 같은 사울왕을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찬스에 고민하지 않고 당장 처단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시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다윗과 그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피눈물을 지나왔습니까? 얼마나 어려운 고난의 길 눈물의 길 도망자의 길을 갔습니까... 다윗의 입장에서도 지금 죽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이 들겠습니까? 지금 당장 눈 딱 감고 한번 칼로만 치면 그동안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사울왕이 그대로 끝나는데….머리 위까지 죽이고 싶은 충동이 다윗에게도 막 올라왔을 거예요. 그 상황이 어렵고 절박하다는 것을 다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것이 여호와께서 사울을 죽이고자 허락하신 하나님이 주신 그 날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측근들은 얼마 전에 기브아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가려고 다윗이 고민할 때 모두 나가 싸우는 것을 반대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거기 내려가면 우리가 위험해지고 우리의 위치가 노출되니까 가면 안된다고…큰일난다고 다 막았던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귀해 보이지만 그것은 때로는 영적인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다윗의 측근들이 모두 이 날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며 행동을 촉구할 때,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이 이끄는 결정, 거기에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서 하는 결국 감정에 휩쓸리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다윗은 분별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은 그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사울왕을 죽이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울왕이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이 상황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다윗의 측근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했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눈으로 바라봤을 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테스트였다는 것을 다윗은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세우고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내 손으로 죽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순간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것이 절호의 찬스라고 막 북추기고 있는데 내 분노와 억울한 감정이 이끄는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이 기뻐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근거로 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죽이고 싶은 나의 충동과 욕망을 다 꼭꼭 누른 채 죽이지 않고 겉옷만 살짝 베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목을 뵙고 싶고 딱 처단하고 모든 걸 끝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었고요. 내 육신의 열망을 죽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만을 신뢰함으로 결정하며 나아가는 위대한 다윗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것은, 영적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민심을 거슬러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민심이 원하는 거와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있다는 그 순간을 분별하는 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눈 딱 감고 죽이고 싶은 충동,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충동,목을 베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에 확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부추기는 그런 상황으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기에는 절호의 기회인 것 같은데 그 때를 잘 분별하여 내 감정이 이끄는대로, 사람들이 몰아가는 대로 결정하는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며 영적 원리를 붙들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 원합니다. 내 충동과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호와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내가 처단하지 않겠다는 하나님 말씀의 원칙을 붙들며 자기의 칼을 내려놓는 다윗의 모습을 저와 여러분들은 마음에 새기며 배우기 원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결정은 분노와 억울함이 이끄는 결정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며 선호하는 민심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결정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는 영적인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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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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