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놀이 할 때 조커라는 카드가 있습니다. 조커는 게임을 할 때 결정적 순간, 마지막 기회에 딱 써야 되는 카드입니다.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아무데나 쓸 수 있는 카드이기에 조커는 신중하게 있다가 꼭 필요할 때 결정적으로 써야 하는 카드입니다. 남 유다의 국가적 운명에 조커와 같은 왕이 바로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요시아 왕이 멸망으로 질주하는 남유다를 돌이켜서 건짐을 받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와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여호와 앞에 정직하고 순전한 왕이었으며 성전 안에 모든 우상과 산당과 불순물들을 다 제거했습니다. 아주 철저할 정도로 다 제거하고 하나님만 예배하는 공동체로 부흥과 개혁에 앞장섰고,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유월절 예배와 제사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기반을 다 마련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부흥과 회복의 길, 축복의 길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요시야는 조커와 같은 자기 목숨을 너무 중요하지 않은 곳에 자신의 교만한 생각에 갇혀 갑자기 써 버림으로써 죽어버렸습니다. 요시야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나라는 멸망을 향하여 질주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시야 왕은 자기 혈기를 부리고 자기 확신에 차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전쟁에 나가서 전사함으로서 남유다 나라 전체를 구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할 기회를 날려버리는 겁니다.
요시아 왕의 안타까운 죽음, 애굽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는 말씀을 잘 지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국제 정세를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강대국이었던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됐습니다. 그런데 그 강대국인 앗시리아가 갑자기 나라의 운이 다하고 지는 별과 같이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강대국인 바벨론이 세력을 키우며 점점 뜨는 별이 되어서 세계 정세가 막 변화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이 나라가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지는 별과 같은 앗수르와 손을 잡고 연합군을 만들어 바벨론을 치려고 하는 것이죠. 그게 평행 본문인 역대하에 등장하는 갈그미스 전투입니다. 오늘 말씀에 “앗수르왕을 치고자~”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한글대역에 보면 “앗수르 왕을 향하여~”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국제정세로 보아서는 ~향하여...가 맞는 표현이고 앗수르를 애굽이 나아가 연합군을 이루며 바벨론을 대항하려 하는 겁니다. 애굽이 그렇게 전쟁을 하러 올라갈 때 애굽 왕이 남 유다에게 우리는 너희와 싸울 마음이 없고 그냥 바벨론과 싸우려 올라가니 너는 가는 길만 좀 비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 끼지 않고 조용히 비켜 줬으면 좋는데 요시아 왕이 자기 교만과 자기 생각에 갇히게 됩니다. 자신은 앗수르를 돕는 일은 숟가락을 얹는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왜냐면 북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앗수르가 빨리 멸망해야 남유다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앗수르를 돕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에 스스로 개입하며 애굽과 등을 지는 겁니다. 그렇게 불필요한 전쟁에 요시야 왕은 휘말리게 되고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 왕의 손에 전사하게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전사하지만 않았더도 요시아 왕이 훨씬 더 오래 하나님 앞에 선명하게 쓰임 받으며 남유다의 역사가 훨씬 좋은 방향으로 돌여질 수 있었을 겁니다.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에서 전사함으로 말미암아 본인에게만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남유다 전체가 풍전등화 같은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평행 본문인 역대기를 보게 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요시아 왕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나 슬퍼하고 애곡합니다. 전쟁에 나가서 갑자기 전사한 왕을 보면서 그렇게 애곡하고 슬퍼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은 단순히 개인적인 연민으로 말미암아 요시아 왕이 너무 일찍 죽어서 안타깝다는 것을 넘어서 요시아 왕이 죽음으로써 곧 이 나라는 끝난다는 것을 미리 보는 애곡의 눈물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멸망을 향해 질주하며 처참하게 짓밟히게 되는 남유다의 모습을 미리 바라보면서 예레미야는 요시아 왕의 죽음을 애곡하며 가슴을 치는 겁니다. 요시아 왕이 갑자기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니까 급히 세워진 왕이 그 아들 여호아하스입니다. 사실 여호아하스는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인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어야 하는데 너무 왕으로 될 자질이 부족한 아들이었습니다. 그 백성들이 봤을 때는 형은 도저히 왕이될 수 없는 자격미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똘똘하고 자질이 있어 보이는 둘째, 여호아하스를 백성들이 왕으로 세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똘똘한 왕을 세우고 나니까 애굽이 가만 있지를 않는 겁니다. 애굽은 남유다에 어떤 왕을 원하겠습니까 그냥 길들이기 편한 왕, 애굽의 말에 고분고분하고 순종하는 왕을 원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세달 만에 내려와 여호아하스 왕을 갈아버립니다. 고작 세 달 동안 왕으로 있다가 애굽왕의 손에 쫓겨나 폐위됩니다. 그리고는 자질 미달, 함량 미달인 여호야김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 버리는 겁니다. 이처럼 남유다의 상황은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애굽에 지배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어 왕도 자기들 스스로 세울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놓였습니다. 애굽에 조공을 바치며 왕도 애굽에 의해 허수아비가 세워지는 반식민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애굽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왕, 애굽의 하수인 여호야김은 11년동안 왕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여호아하스도, 여호야김도 아버지 요시야 왕의 바른 길을 가는 왕이 아니라,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왕,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결국 남유다 전체가 풍전등화 같은 길로 나아가며 결국 멸망을 향해 돌진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요시야 왕의 전사를 안타깝게 증언하는 이유는 마지막 남은 카드, 조커와 같은 카드가 허무하게 사라져 멸망밖에 남지 않은 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남유다가 멸망에서 돌이키고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 하나님 앞에 회복받고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조커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이 안타까움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마음 먹으면 주님 앞에 돌이킬 수 있고 마음 먹으면 주님 앞에 나와 은혜받을 수 있는 때가 언제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때가 바로 요시아 왕 때였다는 겁니다. 요시아 왕의 허망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는 다시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돌이키고 싶은데 돌이킬 수 없고 그냥 멸망을 향해 질주하게 되는 마지막만 남은 안타까운 남유다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나라의 운명도, 개인의 운명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타이밍이 있고 시간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고, 기회가 있을 때 예배하고 기도하고, 기회가 있을 때 충성하는 것이 잠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지혜입니다. 남유다의 비참한 역사를 반면 교사 삼으며 주님이 주시는 기회에 잘 살리며 허락하신 때에 끝까지 충성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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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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