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 왕은 온 백성들을 모아두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게 했고 읽혀지게 했습니다. 읽혀지고 들려고 말씀은 마음에 담겨 살아 있는 하나님의 숨결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함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마음에 담아 말씀을 지켜 행하는 순종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때 일어나는 역사가 바로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시아 왕이 이루고 있는 부흥과 개혁이었습니다. 그 개혁과 부흥은 말씀이 이루어지기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철저하게 다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 두지 말아야 될 것들,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 있습니다. 다 제거한다는 의미는 소위 말하는 진멸의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모든 우상들을 모든 산당들을 다 태우고 진멸하는 겁니다.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돌이킴, 회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 그게 다 죄라는 것을 깨닫는 게 회개입니다. 우리가 죄를 태우고 죄를 제거하고 죄를 없애며 죄에서 돌이키는 모든 것들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부흥이라는 찬양에서 우리 앞에 모든 죄들을 태우고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이여 임하여 달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게 내 안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죄들, 모든 불순물들 우상들과 태우고 무너뜨리는 회개입니다. 말씀이 말씀으로서 역사하여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면 우리는 죄에서 돌이키게 되며 불순물과 우상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요시아의 부흥과 개혁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부흥과 개혁의 하이라이트는 진정한 유월절 정신의 예배로 돌아오는 겁니다. 진정한 유월절 예배란 유월절 정신을 회복하는 예배이자 하나님만을 섬기는 예배입니다. 성경은 오랫동안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봐야 될 건 남 유다 백성들은 오랫동안 유월절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가? 라는 겁니다. 분명 그들은 유월절 예배와 제사를 계속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평가는 오랫동안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었다고 증언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진정한 유월절 예배와 제사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동안은 어떻게 드렸다는 겁니까? 분명히 유월절 제사와 예배가 있었는데 유월절 정신이 없이 드렸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드린 겁니다. 껍데기로 유월절 제사와 예배는 계속 행해져 왔지만, 진짜 유월절 정신을 붙들고 하나님만을 위해 드린 예배와 제사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요시야 왕이 지금 여호와만을 위해 유월절 예배와 제사를 드리기 전까지 이 순전한 예배, 유월절 정신을 붙드는 예배가 다 무너져 있었다는 겁니다. 예배가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문제 의식을 모르고 살아 왔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을 해보면 우리도 새벽 기도도 드리고 성경 공부도 하고 주일 예배도 드리고 그동안 예배를 빠진 적 없이 잘 드려왔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예배가 늘 있어 왔지만, 하나님은 오랫동안 진정한 예배가 없었다고 평가하실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과연 여호와만을 위하여 드리는 예배인지, 유월절 정신을 붙들고 드리는 예배인지, 십자가 정신을 붙들고 드리는 예배인지, 점검하고 반성하지 아니하면 껍데기 예배는 존재하지만 하나님과는 무관한 예배,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시는 예배를 지속할 수 있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의 핵심은 내가 정말 하나님만을 위해 예배하고 있는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유월절 정신을 제대로 붙들고 드리는 유월절 예배와 제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들고 어린양의 보혈의 공로만 붙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기 전에 그들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애굽에 종살이하는 노예, 죄와 저주에 결박되어 살아가고 있는 노예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구원해 주셨음을 망각하지 않고 깨닫는 게 유월절 정신입니다. 그들이 착해서, 열심히 덕을 쌓아서 구원받은 게 아니라 문설주에 바른 유월절의 어린양의 보혈로 말미암아 심판과 저주로부터 건짐 받은 것입니다. 그게 유월절 정신의 핵심인 흠 없는 어린양 보혈의 공로입니다. 유월절 정신이 복음으로 재해석된다면 바로 십자가 정신입니다. 우리 예배 가운데 이렇게 큼지막하게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구원받고 내가 저주와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이유는 오직 예수님 때문임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 때문이고, 예수 공로 때문이고, 예수 보혈 때문임을 철저하게 붙드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십자가 정신의 회복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그 땅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살려 주셨음을 철저히 믿고 예수 공로만 붙들고, 예수 보혈만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드리러 나왔는데도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붙들려 하고, 여전히 내 공로와 내 이름을 붙들려 한다면 십자가 정신이 빠진 예배이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새 사람 되고 건짐 받고 구원받은 유일한 이유는 뭡니까? 예수 보혈, 예수 공로, 예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붙들고 나아갈 때 십자가 정신이 회복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십자가 정신을 붙들고 유월절 정신을 붙들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예배 드리고 있는가를 늘 점검하며 본질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부흥이자 변화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한 부흥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회복과 진정한 변화를 원하십니까? 그 부흥과 개혁의 하이라이트는 여러분들의 예배입니다. 진정한 부흥과 진정한 변화를 갈망한다면 바로 이 예배가 회복되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겸하여 붙들고 섬기려 했던 세상 것들과, 우상과 잘못된 것들을 모두 태우고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만을 위해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기를 간구하십시오. 그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유월절 정신, 십자가 정신을 회복되어 흠 없는 어린양 되신 예수 보혈만 붙들고, 예수 공로만을 붙들고 나아오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드리는 예배, 유월절 정신과 십자가 정신을 붙들고 드리는 예배를 통해 오직 예수 공로를 붙들고, 오직 예수 보혈 붙들고, 예수 이름으로 나아오는 주의 백성 되십시오. 예배 때마다, 새벽기도 때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자격 없는 내가 예수 공로 의지하여 나왔습니다… 자격 없는 내가 예수 보혈 의지하여 나왔습니다…그 영적 겸손함과 은혜를 구하는 태도가 회복될 때 진정한 부흥과 변화, 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흘러 넘치는 은혜가 예배 가운데 임하며, 예배로부터 모든 것이 풀어지는 귀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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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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