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탈진하고 슬럼프에 빠진 엘리야, 큰 승리 이후에 그렇게 마음이 무너진 엘리야에게 바른 훈계와 바른 교훈을 주시기 전 먼저 그를 재우시고 먹이시고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충분히 재우시고 충분히 먹이시고 충분히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른 소리도 바른 가르침도 이렇게 온전한 회복과 쉼이 있은 후에 해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죠. 너무 조급하게 힘들고 아파하며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정답을 던져 주려고 하는 조언을 해주려 하는 우리의 조급함을 내려 놓고 먼저 먹이고 재우고 충분히 어루만진 후에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이 영적 기다림과 분별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충분히 재우시고 먹이신 후 드디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엘리야야 내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이 말씀을 하시기 전 이렇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엘리야 내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이 말씀은 단순히 장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지금 너가 왜 이러고 있느냐에 대한 자신을 돌아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어 있던 아담을 향해 “아담아 아담에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듯이, 엘리야에게 동일하게 물으시는 겁니다. 너가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될 사람인데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고 사명을 향해 달려가야 되는데 내가 모든 사명을 버리고 지금 너가 너의 모든 형편에 압도 당하여 왜 이렇게 죽기를 구하며 무너져 있느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엘리야는 대답하는데 그 대답 속에 왜 그렇게 엘리야가 영적으로 탈진하고 슬럼프에 빠지며 우울증에 빠졌고 지금 죽기를 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대답에는 자신의 열심이 방점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특별했고 유별났다는 것입니다. 항상 나의 열심과 나의 무엇을 한 것이 강조될 때 이렇게 확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물론 놀라운 선지자고 위대한 선지자입니다만 그가 놀랍고 위대했던 이유는 그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위대함이었고 그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과 능력이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갈멜산에 임한 불의 기적과 물의 기적은 엘리야의 열심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개입하신 하늘의 은혜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그릇과 같이 도구와 같이 쓰임 받은 자가 엘리야인데 마음이 무너지고 탈진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일하심과 능력과 역사하심은 보이지 않고 오직 나의 열심만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헌신했는데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유별나게 잘 섬겼는데 그렇게 되니까 마음에 공허함이 찾아오고 무너지고 이세벨의 카톡 메시지에 그렇게 탈진에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탈진하고 무너지기 위해 우리가 특별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대신 나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냥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 눈이 보고 싶은 대로 가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엘리야의 대답 속에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뭐냐면 오직 나만 남았다는 착각입니다. 엘리야가 그렇게 탈진과 우울증에 빠진 이유는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히 유별났고 또 그렇게 하나님께 헌신하는데 둘러보니 오직 나만 남았다는 것이죠.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겁니다. 좀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다 사라지며 나만 남았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니까 시야가 좁아져서 나만 이렇게 열심히 하고 나만 목숨 걸고 충성하고 왜 나만 유별나게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가 생각하니까 당연히 그 구조 가운데 우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형편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봐 벌벌 떨게 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가게 되는 겁니다. 사실 아합왕도 이세벨도 오랫동안 엘리야의 목숨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엘리야는 아합왕의 위협 가운데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언제나 이런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지금이 순간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는게 그렇게 크게 다가오고 그렇게 큰 문제가 되며 그것이 자신을 압도하는 그런 탈진과 슬럼프와 우울을 찾아오게 만드는가…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지금 내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고 나만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오직 자기밖에 보이지 않는 거죠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그 탈진과 무기력과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리십니다. 지금 자기밖에 보이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진 엘리야에게 나가서 하나님 앞에 서라…즉 엘리야 자신을 하나님 앞에 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진 엘리야를 데리고 나와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겁니다. 너는 원래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던 자야…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통해 하늘의 은혜를 공급받은 자야…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며 그를 여호와 앞에서 서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엘리야 앞에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놀라운 역사를 먼저 보여주시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부는데 그 놀라운 바람 가운데 하나님이 안 계셨습니다. 바람 후에 땅이 진동하는 지진이 있었는데 그 지진 가운데도 하나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 지진 후에 놀라운 불이 임했는데 그 불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뭐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 임재에 놀라운 역사의 모습이죠. 성령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신다 그러면 이 셋 중에 하나 아니겠습니까? 크고 강한 바람, 그 가운데 흔들리는 지진, 그리고 놀라운 불…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 감각적이고 시각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와 역사인데 그 속에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세가지 놀라운 모습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대단하고 놀랍게 역사하실 것 같은 그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은 실제 안 계셨다는 겁니다. 그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 안 계셨는데, 그 후에 세미한 소리에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때로는 바람과 지진으로 때로는 불과 같이 놀랍게 역사할 때가 있습니다. 갈멜산에서도 오순절 성령 강림 때고 분명히 불의 놀라운 역사로, 물의 놀라운 역사로 하늘로부터 임하셨습니다. 내가 위로 올라갈 때나 갈멜산 같은 영적 승리를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그런 방법으로 임하실 때가 많습니다.반면에 인생이 바닥으로 내려가고, 인생이 힘들고 탈진하여 죽을 것 같은 터널을 통과할 때, 엘리야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임재는 그런 큰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였음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특별히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눈에 보이는 감각적이고 가시적인 기적을 붙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에 찾아오시는 세미한 말씀, 그동안 늘 있어 왔는데 내가 깨닫지 못했던 그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 터널 한 복판에서, 깊은 수렁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탈진하고 자빠져 있는 엘리야에게 가장 필요한 하나님의 임재, 그가 붙들어야 될 하나님의 임재는 그가 잊어버리고 놓치고 있는 세미한 음성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입니다. 수렁에 빠져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엘리야를 그 세미한 말씀이 살린다는 겁니다. 매일 내 삶의 바람이 임하고 지진이 임하고 불이 임하는게 아닙니다. 그건 아주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사건 가운데 우리에게 임하시는 초자연적 역사이고 임재입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우리 삶에 경험됩니다.그런데 매일매일 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과 말씀 또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을 듣지 못하면 내가 주님을 만났는데도 여전히 힘들고 내 삶에 믿음의 기복이 너무 큰 거예요. 엘리야와 같이 저 위에 올라갔다 땅에 떨어지는 이런 경험을 할 때 우리가 붙들어야 될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세밀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매일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젖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는 그 세미하게 찾아오시는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리고 놓치고 무감각하게 살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저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모든 것을 놓고 싶고 죽고 싶을 때, 나밖에 보이지 않고 상황 밖에 보이지 않아 앞이 캄캄해질 때 세미하게 주시는 말씀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삶 가운데 매일매일 세미한 말씀을 귀담아 들을 때가 있고, 그 세미한 말씀을 붙들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내 상황과 형편에 집중하여 오직 나만 남았다 생각이 들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상황에 눈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불러 세우시는 주님의 그 놀라운 계획하심에 내 인생을 맡기십시오. 늘 주셨던 그 말씀이 세미한 음성으로 마음을 치시며 그 세미한 말씀을 붙들었을 때 저와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회복이 은총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 세미한 말씀을 들을 때 엘리야와 같이 다시 살아날 것이고,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놀라운 역사를 여러분들이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엘리야와 같이 세미한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회복과 돌파가 일어나는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풍성히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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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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