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은 예수님의 고난을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장사 지내심, 음부에 가심, 이 네 가지로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으로 고백이 끝날 수 있는데, 장사 지내심을 구채적으로 고백 하는데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죽으신 후 장사 지냈다는 것은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죽어야 할 나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고, 그 시신을 무덤에 두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죽음과 죽음의 권세, 어둠과 어둠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사흘 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의미가 바로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깨시고 어둠의 권세를 깨시고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시는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바로 가지 않고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음부에 가신 후 부활하심을 매우 중요한 의미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달려 죽으신 곳도, 무덤이 위치한 곳도 동산이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 동산이 가지고 있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완벽한 공간으로 에덴 동산을 만들어 인간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는 그 완벽한 곳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본향을 잃어버린 인간이 유리하고 방황하면서 타락과 변질의 역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내신 곳이 모두 동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잃어버리고 쫓겨난 에덴 동산의 회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인간의 모든 죄 값을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치루신 은혜가 있는 곳이 동산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바로 이 잃어버린 동산의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 치르는 현장에는 어제 배운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또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에게 배반하거나 도망가거나 숨었습니다. 혹은 어리석은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 예수님 앞에 용기를 내어 당당히 예수님께 나아왔던 자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였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데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밤에 찾아왔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찾아왔다는 의미도 있고 인생의 가장 어두울 때 찾아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의식해서 보이지 않게 조용히 믿어야 되기 때문에 밤에 찾아왔던, 인생의 어려움과 깊은 고난의 어둠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중요한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데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생사 화복이 다 있는데 그 생사 화복 자체가 복과 화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생사 화복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만드는가 아닌가에 복과 화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낮이던 밤이던,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예수님을 찾아오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는 게 복인 것입니다. 내 인생의 생사회복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도구와 기회가 되게 만드는 게 복된 인생이자 형통한 인생입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생명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너의 인생 본질적인 문제는 거듭남에 달려 있음을,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며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핵심을 짚어 주십니다. 육신의 자연적인 출생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을 통해 네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고 천국 백성 되는 놀라운 복이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복음 3장은 니고데모가 거듭났는지 아닌지, 변화했는지 변화하지 않았는지를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하루 아침에 뒤집어 진건지 점진적으로 변한 건지 모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니고데모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 거듭난 제자가 되었음을 증언합니다. 거듭난 제자로서 니고데모는 결정적 순간에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용감한 제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다시 한번 예수님께 용기 내어 찾아와서 가져온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몰약입니다. 몰약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동방 박사들이 가지고 왔던 것, 황금과 유향과 몰약, 그 중에 하나입니다. 몰약은 고대에 향수나 의약품으로 쓰이는 것으로 에센셜 오일 중에 최고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귀한 몰약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에 부은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가져온 몰약을 통해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값비싼 향유를 부으며 곧 일어나게 될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했던 여인의 헌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인이 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이 낭비라고 막 몰아 세웠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이 나에게 곧 찾아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여인이 부었던 그 비싼 향유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았듯이, 동일한 마음으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을 부으며 장차 있게 될 부활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 앞에 나아온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어두워 가고 소망이 사라지는 것 같고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모두 숨고 도망 간거 같이 보이는 어둠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의 시대에도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 떠난 것 같은 십자가 앞에서도 예수님을 찾아간 제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니고데모도 더 이상 숨어서 몰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질 정도로 나는 예수님과 한 편입니다…나는 예수님과 함께 함을 선명히 고백하는 놀라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찾아온 거와 마찬가지로 나의 인생이 모든 사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도구와 기회 되는 인생이 복된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니고데모와 같이 인생의 깊은 어둠 속에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내 인생의 십자가가 예수님을 찾아오는 도구와 기회 되는 인생이 형통한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 인생에 펼쳐지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도구와 기회가 되도록 나의 인생을 드리며 끝까지 주님 앞에 충성된 하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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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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