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왕은 그 인생이 높아지고 큰 승리 가운데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며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마지막으로 준 돌아올 기회를 핑계와 탓,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며 돌아올 길을 또 한번 놓쳐 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제는 사울왕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나서야 사울왕의 입술에서 내가 범죄하였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에 청종하였음이라.” 사울왕은 스스로 불순종의 원인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끝까지 하나님과 사무엘 앞에서 숨겼고 아닌 척 포장했던 것이죠. 시치미를 뚝 떼고 승리 앞에 자기는 여호와의 말씀을 잘 청종한 것처럼 그럴 듯이 포장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면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을 텐데, 사울왕은 하나님보다 백성들을 더 두려워했고, 하나님 말씀보다 백성들의 말에 더 민감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과 백성들의 민심이 충돌할 때 백성들을 두려워 하여 백성들의 말을 청종하고 따른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과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반쪽 순종의 원인도,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려는 대신 자신의 흔적을 남겼던 기념비를 세우는 모습도 결국 하나님께 더 이상 쓰임 받을 수 없는 왕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리고 나서 너무 늦게, 결국 모든 버스가 떠난 뒤에야 내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울왕의 여러가지 실수와 실패, 무너짐의 행동과 증상들이 있었지만 그 원인은 늘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사울왕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대신에 백성들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붙드는 대신 백성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사울의 어리석음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울왕을 하나님이 버리셨다…즉 더 이상 쓰실 수 없음을 사무엘은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붙들지 않는 인생,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인생,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 하지 않는 인생은 왕으로서 더 이상 쓰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린 왕은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말씀 보면 결국 사울왕과 그 나라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찢어진 옷을 통해 알려줍니다. 잡은 옷자락이 찢어지듯 하나님에게서 찢어져 버리는 불쌍한 인생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사울의 영적 현주소가 거짓과 변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직시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이나 변개함이 전혀 없는 분이신데, 하나님의 사울왕을 향한 마음과 기준은 언제나 거짓이 없었고 변함이 없었는데, 거짓과 변절로 돌아선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울왕 자신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사무엘은 이렇게 정확하게 사올 왕에게 너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이며 너의 왕국이 어떻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에게 나는 범죄했고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다고 고백하면서도 사울왕은 끝까지 온전한 돌이킴으로 나아오지 못합니다. 벼랑 끝에서도 사울왕은 하나님 대신 여전히 사람과 자기 자신을 붙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가 범죄 했을 지라도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돌아가서 사무엘과 함께 여호와를 경배하기를 예배하기를 원했습니다. 회개와 자복함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나를 높이사…”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에요. 내 백성들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서…즉 사람들을 앞에서 예배와 제사 드리는 겁니다. 그 예배를 통해 누굴 높이려 합니까? 나를 높이사…자기 면상 떨어지지 않게 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백성들의 장로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예배를 드리겠다는 겁니다. 그는 여전히 이 예배와 제사를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드리는 제사로 여기고 있는 겁니다. 사울 왕에게 예배는 뭡니까? 사울 왕에게 제사는 뭡니까?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도구이자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제사가 아니라, 예배와 제사를 이용해 사람들 앞에 자기를 높이려는 그 모습, 그러니까 예배에서 조차도 끊임없이 누구를 의식하겠습니까? 사람들을 의식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며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좌지우지 되는 예배가 되는 것이죠 예배 좋고 나쁨이 다 사람들의 평가에 달린 거예요. 그렇게 거짓되고 변절된 사울왕은 끝까지 예배와 제사에서 조차도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도구로 변절 시키고 왜곡 시키는 불쌍한 인생, 하나님께 버림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이 되 버리는 겁니다. 이게 사울왕의 비극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진짜 두려워 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입니까? 내가 정말 청종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말입니까? 인간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누구 앞에서 누구를 높이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드리는 예배 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뭐라고 포장을 하든 간에 그 진심은 사람들 앞에 나를 높이기 위한 예배 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십니다. 항상 거짓과 변개함으로 주님을 떠나가며 이탈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임을 잊지 마시고 사울왕의 실수와 무너짐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롭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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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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