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같이 살아남은 유일한 다윗의 혈통 요아스는 40년동안 남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그의 전반기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행했습니다. 그 하나님에게 정직하고 신실했던 증거 중에 하나가 바로 그의 성전 수리를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 낡고 초라해진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요아스 왕에게 성전은 그냥 신앙을 재건하는 하나님을 향한 봉헌의 의미를 훨씬 넘어섭니다. 요아스가 태어나서 한 살에 도망가 일곱살이 될 때까지 어린 시절을 성전에서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서 성전은 마음의 고향이자 자기를 살려준 특별한 장소이기에 그 성전에 대한 애착이 남유다의 다른 왕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으로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고 나서 요아스 왕은 성전 중수하고 재건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게 됩니다. 성전을 수리하는데 있어 모든 결정과 헌금 사용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어, 성전을 잘 수리하는데 사용됐고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 정직하게 행하게 되는 참으로 중요한 업적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동시에 이 말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요아스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실패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 요아스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 후반전에 무너지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요아스 왕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큰 화근이 되는 것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는 일입니다.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은 백성들의 일상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그 산당들을 놔뒀다는 것인데, 그것이 결국 무엇으로 변질되는가 하면 우상숭배의 현장으로 왜곡되고 변질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강조하셨던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불순종으로 나아가는 모든 것을 무너뜨려야 되는데, 이 분명한 기준 앞에 그가 끝까지 온전히 전심으로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후 결국 이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 때문에 나중에 백성에게도 왕 본인에게도 바른 길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삶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여호야다가 죽고 나서 요아스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왕이 되었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이 자리까지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무뎌지니까 내가 잘해서 왕이 되고 내가 잘해서 이 나라가 잘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전 수리했던 요아스가, 인생의 후반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펼쳐 보려는 겁니다. 하나님을 부각하지 않고 나를 부각하려고 하니, 내가 대단해 보이는 것을 부각하는 산당을 통해, 바알 우상숭배의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중수하고 재건하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보이지 않는 신앙을 더 분명히 세우기 위한 고백으로 나아가게 했어야 하는데,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 왕은 이 본질을 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강조했던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순종으로 나아 갔어야 하는데 정반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성전은 수리되어 겉모습을 괜찮게 세워졌는데, 실제로 보이지 않는 성전은 점점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성전은 멋지게 세워졌는데 보이지 않는 성전은 무너져서 그 틈으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성전을 재건했던 놀라운 업적을 뒤로 한 채, 요아스 왕 통치 후반에 산당을 중심으로 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들이 확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 열왕기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평행 본문인 역대기를 보게 되면, 이렇게 변질되고 내리막길로 질주하는 요아스 왕을 건지시기 위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의 말씀을 들리게 하고 다시 돌아오도록 경고합니다. 그런데 요아스 왕은 이미 들을 귀를 상실해서 자신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고 평생 멘토이자 스승이었던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를 죽여버립니다. 그러니까 요아스 왕의 후반전에 안타까움은 그렇게 변질되고 타락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이상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말씀을 들을 귀가 없어진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리까지 내가 너무 높아진 겁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나락과 내리막길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질되고 무너진 요아스 왕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그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살해 당하며 그 인생이 비참하게 끝나게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말 칼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인생을 살려서 성전에서 그렇게 숨겨서 7 살까지 키웠고 거룩한 쿠테타 이후에 드디어 왕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40년을 통치했는데 그의 말로는 결국 가까운 심복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끝나게 되는 겁니다 내 인생의 결론은 인생을 어떻게 끝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요아스 왕은 유일하게 남은 다윗 혈통으로 기적과 같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표적인 왕이 돼 버렸고, 그의 인생 결론은 용두사미로 끝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높는 대신 보이는 우상을 붙들고 나를 높이고 참 신앙에서 이탈하는 요아스 왕, 그래서 그의 인생 후반전은 완전히 변질되고 타락하는 내리막길로 가게 됩니다. 처음이 아무리 좋았어도 우리의 끝이 이렇게 무너지면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첫사랑을 기억하고 나를 끊임없이 돌아오기 원하시고 교정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들려질 때 외면하지 않고 말씀을 듣고 엎드릴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며, 보이는 성전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성전을 끝까지 지키며, 끝까지 주님을 향하여 순전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결론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10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