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산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언제든 부르시면 떠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자로 살고, 또한 눈에 보이는 이 세상보다 앞으로 살게 될 천국이 훨씬 더 좋은 곳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분명히 드러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 있는 것보다 천국 가는 게 훨씬 좋다는 고백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누리게 하신 많은 복들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 이 세상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잠시 있다 떠날 곳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고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게 더 좋은 일이라는 이 고백이 사도 바울의 고백 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허락하신 삶을 끝내고 우리가 가야 될 곳이 훨씬 더 좋은 곳임을 믿는 삶,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믿음의 실체로 바라보고 그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가 천국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현주소가 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믿음의 대상으로 믿고 십자가 은혜를 경험한 자들의 고백은 이 세상은 언젠가는 떠날 텐데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떠날 텐데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 가는 것이 지금 여기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며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 만을 다 붙들고 소망을 두고 죽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인생이 아니라 죽음은 우리의 인생의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환승역 임을 분명히 믿으며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국에 있는 게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분명한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 사도 바울의 간결하고도 분명한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실체적인 고백이 될 때 우리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붙들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내 눈과 마음은 하늘을 향하여 다가올 천국을 준비하며 오늘 하루를 꾹꾹 눌러 기대하는 마음으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천국을 지금이라도 당장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데 훨씬 더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죽지 않고 여전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 갈 수도 있고 당장 천국 사면 더 좋은 일이지만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좀 더 있어야 되는 이유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가득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 충만”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천국 가기 전 올인 해야 할 부르심과 사명이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의 사명입니다. 즉 천국에 돌아가기 전 이 땅에서 맡기신 그리스도의 사명,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열매 맺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예수님과 함께 천국 가는 게 훨씬 더 좋은데 너희를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려고 여기 잠시 동안 있다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믿음의 진보를 보면서, 그 가운데 부어 주시는 영적 기쁨 충만을 위해 여전히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모두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인생으로 내 인생은 이미 정해졌다고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죠. 믿음이 진보한다는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왕성하고 선명히 이끄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 분을 더 선명히 바라보고 의탁하는 삶, 되는 삶이 줘 내가 그리스도 안에 철저히 자격 없는 자이자, 일방적으로 부어 주시는 사랑을 받고 지금도 살고 있음을 믿으며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는 자가 바로 믿음의 진보가 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퇴보란, 하루 하루 살기는 사는데 그리스도에 대해서 점점 멀어지는 겁니다. 내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에게 내 마음과 시선이 가는 대신 분산되고 흩어지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의탁하지 않고 자꾸 내가 이 세상에서 빌붙어 살려고 살아가는 삶, 내가 자격있다고 착각하고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삶, 그게 바로 믿음의 퇴보의 삶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을 넘어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누구를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가 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크고 대단하다는 것은, 내가 믿는 믿음의 크기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믿음의 대상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게 큰 믿음이자 믿음의 진보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 믿음의 진보를 이룬다는 것은 내가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더 선명히 더 분명히 더 가까이 나아가 붙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감옥에서 죽어서 천국 가도 그리스도께 영광이고 그러지 않고 더 이 세상에 좀 더 살아도 복음의 사명에 올인 하며 복음의 그 놀라운 파급력을 경험하며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보기 때문에 또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왜 지금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습니까? 여전히 숨 쉬고 존재하며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 하나님의 뜻이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숨 쉬고 살아 있고 건강하게 있는 동안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 싶으신 열매 맺고 싶으신 하나님의 뜻이 여전히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가지 않고 100년 정도 이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렇게 보내신데에는 그 분의 부르심과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그리스도께서 주신 명을 위해 그 사명을 수행하려고 이 세상에 주님의 뜻이 열매 맺는 삶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잠시 존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내 눈과 마음이 하늘을 향해 고정되며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잘 살다 때가 되면 나는 죽어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며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천국에 그리스도와 함께 돌아가는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나 죽으나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거룩하고 구별된 성도로서 살아가는 삶의 큰 축과 방향성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많은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선명히 바라보는 믿음의 진보를 위해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이 시간 주님 이 명하신 그 뜻을 이루는 삶으로 매진하여 부름 받은 자로 충성 다하고 살다가 때가 되면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천국으로 이사 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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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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