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상당한 논란과 오해가 있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의 큰 오해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오늘 말씀을 슬기로운 직장 생활 정도로 해석하는 오해입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를 요즘에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로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을 거룩하고 성도답게 잘 할 수 있는가…라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에 대한 하나의 가이드라인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부분이 물론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이 말씀에 깊은 뜻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슬기로운 직장 생활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서 삶의 터전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오해는 이 말씀을 통해 노예를 가지고 있는 걸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더 나아가 성경이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있다는 오해입니다. 곰곰히 잘 좀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핍박의 시대였고 지금 에베소에 사도 바울이 평생 산 것도 아니에요. 에베소는 사도 바울에게 선교지였습니다. 선교지역... 그는 계속 이곳저곳을 가면서 교회를 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핍박과 선교지에 대해 그곳에서 잠깐 있다가 떠나는 교회는 지금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시대라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될 건 지금 종과 상전의 관계를 얘기할 때 이 큰 그림은 성령 하나님이 성도들의 삶과 교회의 삶의 역사 할 때 나타나는 놀라운 벽이 무너지는 기적 가운데 이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시는 기적이 뭐였냐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 허물어졌고, 남자와 여자의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상종할 수 없었고 심지어 지옥의 땔감이라고 여기고 있던 이방인이 한 공간에서 한 예수님을 같이 섬긴 거예요. 그 당시에는 남자만 예배 드렸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는 남성과 여성이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그림 안에서 종과 주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 막힌 담이 헐어지는 기적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놀라운 성령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남자 여자가, 종과 주인이 함께 예배 드리는 막힌 담이 허물어지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죄된 인간은 항상 나와 비슷한 사람과 담을 쌓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입니다. 나와 경제적인 상황이 비슷하고 나와 직업이 비슷하고 나와 공유할 게 비슷한 사람들하고 모이면 친하고 편하거든요. 나와 다른 사람들 하곤 담을 쌓고 싶은 것이 죄 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종이 주인과 같이 예배 드리는 것, 심지어 겸상하고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불가능했던 시대… 같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 했더니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주인을 친구같이 막 대하거나, 오늘 말씀을 보면 성실하지도 않고 눈가림만 하고, 억지로 일하는 이런 종들이 생긴 겁니다. 그렇기에 본성을 넘어 종과 주인 사이에 담이 허물어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는 파생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이 문제를 봐야 합니다. 이 문제를 거룩하고 영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영적 전쟁 관점에서 보여주고 증언하는 말씀이 오늘 말씀이라는 걸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첫번째로 성실하지 않고 눈가림만 하고 억지로 하면서 종들을 향하여 권면하는 것입니다. 순종 하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 하듯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억지로 종이 되었지만 그 섬기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이 시간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불성실하게, 눈 가림으로 억지로 일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마음을 담아 섬기고 기쁨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천국을 맛보는 마음, 천국을 맛보는 가정, 천국을 맛보는 교회가 되길 원하시며 이 막힌 담들을 다 헐게 하셨는데…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성실하게 살고 눈가림만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살며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영적으로 좀 정리해 보면… 우리 모두는 다 종입니다. 다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 주인과 상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자가 저와 여러분들인 걸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주인이 그리스도인데 우리는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종이 된 게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귀 뚫은 종과 같이 이 시간 내가 주님께 종 되기를 내가 주님을 주인으로 온전히 모시기를 결단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일상을 살아갈 때에 어떤 삶을 살아야 됩니까? 성실하지 않고 눈가림만 하고 억지로 하는 그런 삶, 죽지 못해 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나의 삶에 주님의 마음을 섬기듯이, 성실하게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이 시간 마음을 다해 하고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할 때 그 가운데 하늘의 역사와 하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성도들에게 하는 미혹은 뭐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데 입에서 맨날 성실하지 못하고 눈가림만 하고 억지로 하는 것 투성으로 만드는 겁니다. 더 나아가 모든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가 늘 부딪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눈가림만 하고 억지로 하고 성실하게 안 하니까 ….눈 가림만 하고 억지로 하는 삶으로 늘 불평과 원망과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마음으로만 늘 살아간다면 주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가, 특별히 나와 가까운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막힘이 없어야 하나님하고 관계가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나와 가까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 막혀 있어요. 부부 사이가 막혀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이 막히고, 내 직장 관계가 다 막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하고 관계가 뻥 뚫린다… 이거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이가 좋은 관계가 되기 위해 내 주변 가까운 사람 사이에 있는 관계를 올무와 같이 막히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깨서 잠에 들 때까지 너희가 살고 있는 그 삶의 터전에서 그렇게 기뻐하지 않고 억지로 죽지 못해…하는 그 삶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꾸 막히게 되며 너희의 마음이 지옥 맛보기라는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게 영적 생활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주인들 상전에 대한 권면입니다. 예수님 바라보듯이 종들을 섬기라는 겁니다. 그 당시에 로마의 문헌을 보게 되면 노예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사람 말을 알아듣고 사람의 말을 하는 짐승…그게 그 당시 노예의 정의였어요. 노예를 사고 파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 자리에서 노예를 죽여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주인과 종이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넘어, 종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말씀은 종들을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상전들에게 종들에 대한 위협을 그치라고 경고합니다. 상전이 말 한마디 하면 목이 달아나는 것이 종들이었기, 종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한 자유인이라면 이 시간 종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너희의 영적 생활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상전이고 더 중요한 건 하나님은 너희를 외모로 취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껍데기인 외적 지위, 신분, 주인됨으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지금 너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느냐 이것만 보신다는 거예요. 그 예수님의 마음으로 너희의 종들을 대하고 있느냐…이거 본다는 거예요…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시대상을 봤을 때 이 상전들을 향한 주인들을 향한 명령은 거의 파격을 넘어 혁명과도 같은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녹아질 수 없는 관계와 벽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깨어 있는 관계가 건강하고 사이가 좋아야 하나님 하고도 사이가 좋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의 관계 내가 깨어 있는 내가 삶에 있는 일터에서의 관계 내가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가 이 시간 좋고, 흔들리지 않고, 깨지지 않도록 이 시간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님을 대하듯 성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기쁨으로 하는 그 현장에 하늘의 복이 임하는 걸 잊지 마십시오. 이게 영적 전쟁의 현장이라는 걸 잊지 말고 내 삶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이 시간 성실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며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하는 역사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질 수 있도록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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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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