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2장 말씀은 로얄 페밀리인 예루살렘에 엘리 제사장 집안과 그 아들들, 저 변방 시골에 이름없는 평신도 집안인 엘가나 집안과 사무엘을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촛대가 사무엘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제사장 사역을 감당해야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겨 사무엘이라는 영적 지도자를 세우실 수 밖에 없었던 그 안타까운 모습을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영적 타락과 탈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그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에게 엄중히 묻고 계신 장면입니다. 아버지가 되던 제사장이 되던 대표의 위치에 있을 때 그 자리가 권한의 자리가 아니라 책임의 자리라는 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영적으로 중요합니다. 집안에서 아버지가 해야 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아버지는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가지의 책임을 엘리 제사장에게 묻고 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명한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는 것입니다. 밟았다는 말은 그 본질에서 이탈하여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을 밟았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한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백성들이 드린 제물이 라 할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 는 예배와 제사 자체입니다. 예배를 영어로는 service라 하지 않습니까? 예배는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service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 자리로 부르시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전심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이자 구약 시대의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자신을 온전한 제물과 제사로 드리는 예배자로 서는 것을 실패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늘 살았고 머물렀지만 그리고 성전에서 사역을 감당했지만 그는 문설주 뒤에 의자에 앉아 있었던 사람, 즉 예배자로 예배 한 복판에 들어가는 자가 아니라 저 예배당 뒤에서 그냥 관리자와 감독자 역할만 했던 사람이 엘리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엘리 제사장의 영적 하향 곡선과 영적 둔감함을 그 아들들이 그대로 보고 자랐다는 것이죠 두번째,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긴 책임을 깊게 묵상하기 원합니다.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경계선을 주신 게 뭐냐면 하나님보다 자녀들을 더 사랑하며 안된다는 것이죠. 자녀들이 우상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는데 자녀들이 하나님 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위치에 올라 가면서 결과적으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배워 되는 영적 질서를 배우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영적 질서가 있습니다. 그 영적인 질서란 하나님이 넘버원, 그 다음이 너라는 거죠. 너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하나님이 반드시 중심 되시고, 주인되시는 이 영적 질서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 하나님의 영적 질서를 순종하는 법을 통해 자녀에게 가르치기를 성경은 명령하고 있는 것이죠. 엘리 제사장은 분명히 자녀들을 사랑했을 겁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한 것이죠.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고 하나님을 중히 여기는 영적 질서를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데 자녀들을 더 중하게 여기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 드리는 것을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않고 알기를 경시 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내가 더 중요하니까…하나님보다 내 인생이 더 중하니까…하나님을 향한 영적 질서가 다 무너져서 결국 그런 영적 타락과 탈선의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영적 질서를 배우지 못한 아들들은 아버지의 훈계 또한 멸시하게 되면서 그들은 파멸로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한 책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되는 거룩하고 구별된 성도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들은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다 내가 더 중요하니까… 심지어 하나님께 드린 재물도 내 눈에 좋으면 내 스스로 먼저 가져가는 것을 서슴지 않게 한 그 책임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일 좋은 것을 내 스스로 취하는 것이 영적인 범죄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귀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나의 깨어 있는 첫 시간을 주님 앞에 드리는 나의 고백과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실 때 마다 마음으로 입술로 고백하는 겁니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처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 고백을 가지고 새벽기도에 나오는 여러분들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시간, 첫 물질, 첫 헌신을 주님께 드린 것을 통하여 내 인생의 넘버원은 하나님 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제일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을 뭐라고 했냐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라 증언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자가 되느냐, 내가 가장 좋은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내가 하나님을 중히 여기는가, 경시 하는가를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하게 바라보며 존중하는 성도 되기 원합니다. 일차적으로 그 자녀들의 탈선은 본인들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책임을 아버지에게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에게 분명히 묻고 있음을 깊이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가리키고 익혀야 되는 것은 영적 질서라는 겁니다. 교회는 영적 질서가 있어야 되고 가정에는 영적 질서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 질서를 통해 하나님께 엎드리는 법을 자녀에게 가리키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엎드리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결국 예배와 제사를 중히 여기는 것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며 예배의 대상으로 모시며,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 앞에 엎드리는 영적 질서를 가정에서 교회에서 체득하는 현장이 되기 원합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중히 여기지 않으며, 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가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는 영적 질서를 지켜 주님만을 붙들고 나아가는 귀하고 복된 성도의 삶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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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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