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는 자기 며느리 룻이 이방 여인 임에도 불구하고 밭에 나가 이삭을 주었는데 자기 노력 이상의 엄청난 양의 보리를 수확해 온 것을 보고 부어진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룻을 통하여 그렇게 은혜를 베푼 자가 바로 보아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보아스를 통해 부어진 은혜를 보며 은혜 베푼 자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고백들은 보아스 한 사람에 대한 고백이라기 보다는 은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하는 내용임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첫째로, 보아스는 살아 있는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오미와 룻에게도 환대하며 그렇게 자신들을 환대하는 이면에는 죽은 남편의 가문을 기억하며 환대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즐겨하시는 분,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분임을 고백하며 그 은혜를 실체로 누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우리에게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그치지 않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돌보시며 그의 날개 아래 우리를 품어 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에 머물러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 생활임을 오늘 나오미의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두번째, 보아스에 대한 놀라운 고백은 바로 “기업을 무를 자” 중에 하나라는 겁니다. “기업을 무를 자” 란 말이 참으로 중요한데 히브리어로는 “고엘”이라는 의미로, 값주고 산다, redeem의 의미입니다. 몰락한 가문의 기업을 돈 주고 사 값을 지불하는 것이 기업 무를자, 고엘입니다. 그러니까 친척 중에 대를 물어 그 가문의 기업을 세워 줄 수 있는 자 중의 하나 라는 것이죠. 레위기 25장을 보게 되면 이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아주 중요한 힌트를 주게 되는데, 그 형제가 어떤 이유로든 몰락하게 되면 몰락한 가문의 땅을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엘, redeemer”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까운 친척이어야 되며 그 유력한 능력으로 그 기업의 값을 물어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되며 동시에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죠. 아무리 가까운 친척 이어도,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 집안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자원하는 마음의 각오가 없으면 기업 무를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나오미의 보아스를 향한 기업 무를자, 즉 “고엘 (redeemer)”에 대한 고백은 더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이 보아스에 대한 고백은 그냥 한 인간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룻에게 연민을 갖는 한 유력한 자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우리의 고엘, redeemer로서 죄값을 치르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진짜 기업 무를 자는 우리를 값 주고 사신 redeemer,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가 치러야 되는 죄값 일만 달란트, 우리가 절대 치를 수 없는 그 값을 친히 치루시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다 찢기시고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건져내신 진정한 고엘, 진정한 메시야에 대한 고백을 그림자와 같이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입술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놀라운 고백 후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조언합니다. 그 은혜 베푸는 자 기업을 무를 자 집에 가까이 있으라는 겁니다. 가까이 있고 떠나지 말고 그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는 겁니다. 이런 삶이 주님이 성도들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삶입니다. 주님 가까이 있고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매일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곁을 떠나지 않는 것, 주님 앞에 가까이 있고, 다른 사람들을 찾아 헤매지 않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 곁을 떠나지 않는 삶, 그게 주님의 원하시는 삶이라는 거에요. 오늘 말씀을 통해 기업 무를 자에 대한 깊은 영적 의미를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은혜 부어주시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이 사랑, 그 사랑 안에 살고 그 사랑만 붙들고 살아가는 삶 속에 풍성함과 충만함이 누려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그치지 않는 분, 보이지 않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분, 우리를 그 날개 아래 품으시며 돌보시는 분, 우리 죄값을 지불하시고 사신 고엘(redeemer), 이 모든 고백들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드러내는 고백임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래서 죄로 인해 죽어야 될 우리를 그 몸을 찢겨 죽으심으로 모든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우리를 건져 내신 분입니다. 그 기업 무를 자 이신 예수님께 가까이 계십시오. 떠나지 말고 함께 하십시오 그분 안에 거하고 붙어 사는 것, 그게 저와 여러분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주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머무는 삶임을 믿고 주님 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루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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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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