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11절부터 계속되는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 가운데 마지막 부분으로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없이 한 몸으로 세워져 있음을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 사이의 담,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 이 모든 막힌 담들이 헐어졌습니다. 그 막힌 담이 헐림으로서 이방인들을 향하여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기에, 오늘 말씀에는 이방인 성도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지체가 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외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고 이제는 모든 성도들과 동일한 천국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초대교회부터 가장 큰 문제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이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고, 복음 자체가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됐고 초대교회 장자인 예루살렘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모인 교회였으며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의 중심인 회당을 중심으로 선교여행을 갔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들을 통해 시작 되서 이방인에게로 넓혀 간 것이기에,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 조금씩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을 위한 종교이고 거기에 우리는 깍두기같이 참여하는 것이다…이런 생각이 강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교회에 우리는 은혜로 그냥 껴 있는 존재들이라고 이방인들 본인들도 생각해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교회 됨을 강조하면서 이방인들을 향하여 정확하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인이 되시고 나서부터 유대인들 공동체에 깍두기로 저 구석에 딸려오는 이방인들, 그거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막힌 담을 하시고 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사이에 차별과 구별이 없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차이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차이가 아니라 그리스도 밖에 있느냐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차이로 하나님의 자녀됨, 천국 백성됨, 성도 됨을 나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방인들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분명히 있기만 하면 차별 없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천국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 된다는 것, 이게 복음의 능력인 걸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제부터 교회 안에서는 외부 사람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닌 모든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천국 시민이고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갈 때에 가지고 있는 분명한 성도됨의 정체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이냐, 그리스도 밖이냐로 나누어질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지체들은 어떤 것으로도 차별이 없고 나눠지지 않으며 오직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가를 통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절대 하나 될 수 없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건축 공법을 이용해서 사도 바울이 증언하는데, 그리스도 안에 몸으로서 성도들이 지체로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고 지어가고 있는가를 알려줍니다. 건물이 지어짐도, 교회의 세워짐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인데 그 기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본질은 그리스도가 모퉁이돌, 기준이 되는 주춧돌 되심 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왕으로, 그리스도로 모시고 고백하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그 곳은 교회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기초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와 기초로 모시면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 몸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란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한 기초와 주춧돌과 중심과 기준이 되는 곳이고, 또한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건축 요소인 성도들이 좋은 곳이 바로 좋은 교회입니다. 좋은 성도들이란 착하고 그냥 나이스한 성도들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 아들이라는 이 분명한 고백을 가지고 사는 성도, 그 기준이 명확한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좋은 재료가 되어 각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을 만드는 벽돌, 성전이 세워지는 벽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물을 세우는 벽돌로서 서로 그리스도 안에 조율되며 그리스도 안에 연결되는 것, 이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소망과 목적을 가지고 교회의 벽돌로서 서로가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며 함께 지어져 가는 신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현존이고 성도들이 십자가의 사랑 안에 서로 연합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어가는 신비한 곳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에클레시아 바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 그 공동체 자체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공동체가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세워져 가는 것, 지어져 가는 것이 교회의 신비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됨의 본질임을 잊지 않고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연합하며, 하나님의 질서 아래 하나되어 가며 세워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건물을 지을 때 벽돌 중에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있는 벽돌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도 수많은 벽돌들이 있고요. 심지어 땅에 묻히는 벽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늘 보이는 벽돌이 되겠다고 주장한다면, 주목받는 자리와 빛을 받는 자리에만 내가 쓰임 받는다 생각하면, 교회는 함께 지어져 갈 수 없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벽돌이 될지라도 주목받지 않는 벽돌이 될지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세우는데 그것이 필요하다면 내가 기쁨으로 그 음지에, 보이지 않는 곳에 벽돌이 되겠습니다…라는 성도들로 인해 교회가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 보시면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고 기도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벽돌로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그 희생하는 성도, 짐을 지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는 항상 힘과 능력이 있으며 항상 든든한 교회입니다. 반대로 휘청거리는 교회의 특징은 성도들이 보이지 않는 곳, 땅속에 헌신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보이는게 전부인 줄 알고 보이고 주목받는 데서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면서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이 몸 된 교회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가며 함께 세워지는 겁니다. 교회는 함께 지키고, 함께 세우고 함께 이루어져 가는 겁니다. 내가 주님께 사용 받는다는 은혜를 붙들고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지어져 가는데 헌신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지체라면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짐을 믿는다면 우리가 벽돌로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보며 그리스도 안에 연결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 원합니다. 실제로 보이지 않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도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튼튼해 지고 단단해 지고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 되는 비결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 헌신하며 눈물을 쏟으며 이 시간 보이지 않는 벽돌로서 자기를 희생하는 여러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며 하나되어 우리의 모든 다름이 녹아져서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주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놀라운 신비를 저와 여러분들이 현재형으로 경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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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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