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 후에 문제, 그 문제를 잘못된 방법으로 푸는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았던 전쟁, 동족이 서로가 서로를 원수로 싸우는 전쟁을 분노로 벌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물어보는 척 했지만 답을 다 정해놓고 하나님의 이름만 도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냐민 지파가 끊겨질 처참한 결과를 직면했지요. 그런데 회개하는 대신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냐 원망하였습니다. 본인들이 다 잘못해서 문제를 만들어 놓고는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를 사라지게 하신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위기를 다 하나님에게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인 걸 망각하고 적인 줄 알고 그렇게 모두 진멸하고 나서 갑자기 부랴부랴 문제 뒷수습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뒷수습이 쉽지 않은 이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급한 맹세가 있었습니다. 베냐민에게 자신들의 딸을 절대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신 게 아니라 본인들이 분노에 차서 이렇게 스스로 맹세한 것이죠. 또 하나의 맹세는 총회로 모였을 때 거기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한 것이죠. 입다를 통하여 맹세의 위험성을 그렇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다시 실수하며 성급하게 맹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베냐민 사람들을 지파가 사라지지 않고 아내를 구해줄까를 갑자기 고민하다가 첫번째 맹세 때문에 자신들의 딸들을 아내로 줄 수는 없고, 이 두 번째 맹세를 악용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다시 한번 손 들고 회개해야 되며 하나님께 방법을 물어 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묻지 않고 또 다시 자신들의 생각대로 자신들의 방법대로 해결책을 찾는 거예요 그 해결책이란 뭐냐? 또 한번 길르앗 거민들을 죽여 버리는 겁니다. 잘 보니까 회중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이 참석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맹세를 빙자해 베냐민 지파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아내를 주기 위해 또다시 잔인한 피흘림의 보복을 벌입니다. 부녀자와 어린아이와 다 죽여 버리는 거예요. 자신들이 분노로 만들어 놓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칼부림과 피흘림을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거예요. 만 이천 명을 보내서 400명의 처녀를 구해 오고 나머지를 다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겁니다. 이것을 문제 해결책이라고 가져온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문제를 가져오는 영적인 어두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게 성경에서 지금 영적 암흑기에 결론과 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아픈 역사라는 것이죠. 문제가 있으면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그 문제와 죄를 덮어 버리려는 것, 이것이 그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행하던 일반적인 방법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묻는 대신 내 스스로 뒷감당 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가나안 땅의 방식이었고 세상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에 철저히 동화되어 가나안 땅에 방식으로 싸우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무정한 삶을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문제가 있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원망이나 하고, 뒷감당이 안될 때 스스로 해결책이라고 가지고 와서 더 큰 문제를 만들고….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철저하게 세상적으로 철저하게 세상 방법으로 끊임없이 타락하고 있는 거예요. 문제를 해결한다고 뛰어다니지만 항상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영적 타락의 결론이라고 사사기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타락의 현주소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나의 일상에 가장 큰 죄는 내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뒷감당이 안되는데도 내 인생의 어려움과 지혜를 주님께 묻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불순종의 대가로 찾아온 그 결과 앞에 하나님께 원망만 하고, 문제를 해결한다고 뛰어다니지만 항상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문제 해결책 이라고 가져온 것이 또 다른 피 흘림 과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없는 가져볼 수 밖에 없는 그 연약한 인간임을 깨닫고 뒷감당이 안될 때는 모든 것을 멈추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물어보며 주님을 붙들기 원합니다. 끊임없는 타락 가운데 세상적으로 세상의 방법으로 길들여지며 무너지기 쉬운 우리 삶 속에 인생을 결단하고 돌아서며, 주님의 사랑 앞에 돌아가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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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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