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장 첫 부분은 약속의 아들 사무엘을 선물로 받은 후에 그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한나의 찬송과 기도의 시였습니다. 그 한나의 기도를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구구절절 고백하며 주님께 순전한 마음으로 나가는 한나를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한나의 찬양과 고백 뒤에 완전히 또 다른 반대편의 우울하고도 답답한 이야기가 대조되고 있는데 바로 제사장의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는데, 그 아들들은 모두 성전에서 자라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놀랍기만 한데, 첫 번째는 불량자들이고, 두번째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엄중한 성전 사역자들에 평가를 통해 이 시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껍데기가 아닌 중심을 붙들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달으며 이 말씀을 깊이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먼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불량자였다는 엄중한 평가입니다. 성전에서 자란 제사장 아들들인데, 담배 좀 피고 술 마시는 그냥 행실이 좀 삐딱한 정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주 극도로 악한 불량배들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로얄 페밀리에서, 성전에서 나서 자란 제사장의 아들들이 이렇게 망나니가 될 수 있는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중직자들과 목회자들 자녀들이 이렇게 불량자가 되는 경우를 제법 많이 보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철없는 비행 청소년, 철없는 10대 정도였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1장 말씀을 통해 배웠지만, 이 두 아들은 이미 성전에서 아버지를 도와 제사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어린 철없는 소년들이 아니라 제사장으로 성전 사역자로 섬기고 있었는데도 불량자였다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자랐어도, 성전에서 사역자여도 이렇게 불량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행실도 불량 했고 마음도 불량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도 불량 했고 하나님에게도 불량 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더 충격적인 평가인데 여호와를 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않고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들은 성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누구보다 성전을 잘 알고, 제사를 인도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사역자였음에도 하나님을 알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분명한 관계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망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그 모든 간절함이 이끄는 사역이 아니라, 그냥 기계와 같이 일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가 아니라 여호와를 알지 않았다…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과 알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내가 주님을 알고 싶은 갈망이 있어요. 원함이 있고 소원이 있어요. 근데 내가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아니했다는 본질적인 뉘앙스는 그들이 알기를 거절하고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갈망도 원함도 없고, 하나님의 알 수 있는 길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 알기를 거절해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정신과 몸이 다른 것에 팔려 있었기 때문에….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고, 하나님을 알고 싶은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타락의 본질적인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사역자로 살아가는데,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은 전혀 세상과 차별성이 없는 것을 넘어, 세상 보다 더하면 더한 그런 불량배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 시대의 문제는 항상 그 시대의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의 문제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엄중한 성경의 평가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들도, 사역자들도 모두 교회에서 지도자로 서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기본적으로 그 인격이 지속적으로 조율 받아야 하고, 그 바탕이 불량자가 되지 않아야 되는 엄중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역하고 봉사하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 일하고 있다는 이 본질을 놓치게 되면 이런 불량자가 되는 겁니다. 성전에서 자라고 성전 생활이 익숙하지만, 하나님을 모른 채 신앙 생활의 껍데기에 맛을 들이면 이렇게 망나니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많이 왔다갔다 하고 교회 생활에 익숙해도 하나님을 모른 채 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겉으로 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역을 하는데 하나님을 알지 않고 하나님을 알 필요도 없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게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분명한 기준은 하나님을 아느냐 알지 아니하느냐…입니다. 성전에 올 때, 몸과 마음과 주님 앞에 조율 돼야 되는데, 예배 드리러 전심으로 나오지 못하고, 예배하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며 그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심지어 사역자도 이런 불량 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 사람들만 만나는 신앙 생활에만 익숙해지면 우리도 불량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주님 앞에서 신앙 생활하고 예배자가 되십시오. 나의 신앙 생활은 주님 앞에 단 독자로 주님 앞에 홀로 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아는 자로 서십시오. 나의 유일한 예배 대상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을 더 알아가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이 엄중한 경고를 반면교사 삼으며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붙들고 신앙 생활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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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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