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을 통하여 히스기야가 남 유다에 찾아온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보였던 믿음의 반응을 배웠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보이는 어떤 힘을 찾아간 대신 제일 먼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절망에 압도 당하는 대신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열망했습니다. 위기 가운데 이런 믿음의 반응은 절대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이자 초자연적 은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환경은 전혀 나아지거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앗수르 군대는 남 유다를 포위하고 있었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앗수르 군대에서 마지막으로 남 유다에 최후통첩을 보내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항복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놓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다 진멸 당할 것이다…라는 마지막 최후통첩을 히스기야가 받게 됩니다. 이제 온 나라가 진멸할 위기, 마지막 항복을 종용하는 최후 통첩의 압박과 협박 속에, 히스기야의 결정에 따라 백성들이 모두 멸망하느냐 아니냐의 기로에서 있는 절대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마지막 최후 통첩의 소식을 가지고 히스기야는 또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벼랑 끝에 서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믿음이 진짜였던 이유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믿음은 껍데기 믿음이 아니라 진짜 믿음이었던 것이 이런 벼랑 끝에 서 있는 위기 가운데 온 나라가 진멸하고 항복해야만 하는 압박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최후통첩을 펼쳐놓고 히스기야는 이 상황에서 나를 도와 주시고 남 유다를 도와주세요….라는 탄원 기도가 먼저가 아니었다는데 있습니다. 그가 처한 위기를 놓고 기도하는 게 첫 번째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묵상하는 기도가 첫번째였습니다. 나라가 진멸될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그가 했던 첫번째는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속성을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기 합당하신 참 하나님입니다…고백하는 겁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쏟아내는 기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신지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그 하나님이 우리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믿음의 기도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기와 어려움과 급한 일이 있어도 그냥 살려주세요…도와주세요 기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먼저 고백하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붙들면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겁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는 결국 내가 처한 상황의 전쟁이 이 분명한 기도의 순서를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시는 전쟁이 되도록 하나님을 초대하는 기도입니다. 지금 현실은 히스기야와 남유다는 이길 능력도 힘도 없는 전쟁 앞에 서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군사력으로는 100%질 수 밖에 없는, 이길 수 없는 전쟁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믿음의 기도는 남유다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으로 만드는 기도입니다. 이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욕하고 홀로 영광 받으셔야 되는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하는 저 앗수르 군대를 주님께서 친히 싸워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온 천하에 선포해 주시옵소서. 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는 구원의 싸움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이 싸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만 천하에 선명하게 보여 달라는 이 놀라운 믿음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어려움과 기 가운데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반응,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내 어려움과 위기 상황을 토해 내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어떠 하심을 붙들고 기도하는 믿음의 기도, 하나님을 전쟁에 친히 초대하는 믿음의 초대….그럴 때 앗수르와 치루는 전쟁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쟁이 되며 내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싸움이 되며 내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시는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의 기도를 히스기야가 모든 민족이 말살 당하기 일보 직전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히스기야의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로 절대 이기기 불가능한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남유다를 보게 됩니다. 하루 아침에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치셨습니다. 지금 남한의 현재 군인 수가 60만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수천년 전 당시에 하루에 18만 5천명이 다 죽은 겁니다. 이것은 인간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선명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도 결국은 말씀대로 하나님의 손에 죽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의 역사하심 외에는 설명되지 않은 놀라운 승리이고 그것은 단순히 남유다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주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다. 내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싸움, 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전쟁이 되도록 믿음의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죠. 그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 되고 그 승리는 누구의 승리가 되냐면 하나님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위기와 역경 가운데 히스기야가 했던 믿음의 기도이고 저와 여러분들이 붙들어야 되는 믿음의 기도라는 겁니다. 이 믿음의 기도가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던 비결이고 여리고성이 무너졌던 비결이고,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는 비결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하는 불가능한 상황 그냥 희박한 확률의 상황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0%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승리를 주셨던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그 구원의 손길이 나의 일상의 삶에서의 직면하는 전쟁에서도 이렇게 나를 건지시고 구원하심을 고백하는 놀라운 역사가 되는 겁니다. 벼랑 끝에서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제일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붙들고 나아가는 삶이 기적입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았는데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벼랑 끝에서 처한 전쟁을 하나님이 이끄시는 전쟁으로 내 인생을 걸고 맡기는 삶이 기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과 믿음 생활은 내 힘으로 수행하는 자연적인 생활이 아니라 하늘의 힘을 붙들고 나아가는 초자연적 믿음 생활입니다. 큰 어려움과 위기 가운데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붙들고 살아갈 때만 위기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고 주신 말씀을 붙들고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될 믿음의 기도라는 겁니다. 위기 상황을 먼저 묵상하는 게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묵상하는 겁니다. 상황을 놓고 기도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먼저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정말 홀로 영광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평소에도 하나님을 늘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인생의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먼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심 외에는 설명되지 않은 놀라운 그 전쟁의 승리를 경험하여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아지며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손길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아지며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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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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