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앗수르 군대의 협박과 위협 가운데 절대절명의 위기를 직면한 히스기야왕이 보여줬던 영적 반응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대로부터 너와 너의 나라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는 모욕을 들었습니다. 히스기야와 백성들을 이간질 하려고 히스기야 왕의 말을 믿지 말라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히스기야가 인생을 걸고 추진했던 종교개혁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이 쓸데없는 것이라며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모욕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모욕적 이야기를 듣고 히스기야왕은 자존심이 너무 상했을 겁니다. 속으로는 화가 터져서 손이 다 떨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 견디기 힘든 모욕과 국가적 위기 가운데 감정을 터트려 일을 그르치는 대신 제일 먼저 한 일이 재를 뒤집어쓰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설명이 안되는 놀라운 믿음의 반응인지 모릅니다. 인생의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앞뒤 좌우가 꽉 막힌 외통수 속에 사람들은 눈이 캄캄해 져서 왜곡된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던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나 눈에 보이는 힘을 의지하려는 게 대부분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을 했습니다. 그 대군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남유다가 망하기 일보 직전인데, 히스기야 왕은 눈 앞에 캄캄해 질 때 허둥대며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나 힘을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며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다는 겁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순전하고 놀랍고 대단했던 왕이었던 이유는 모든 본질을 꿰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영적반응을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 마음을 쏟아 놓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번째로, 내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자존심 상하는 모욕도 힘들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당한 모욕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한 것에 대한 영적 반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도 모르는 앗수르 군대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이 그렇게 화가 나서 하나님에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영적 반응은 앗수르 군대로 말미암아 내 자존심이 짖밟혀 힘들고 내가 모욕당하는 것도 억울하고 눈물 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내가 힘들고 어렵고 내가 모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내 자존심이 꺾이는 걸 가지고 그냥 못 참아서 감정이 폭발하며 어쩔줄 몰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모욕당하는 것에 우리는 별로 화가 나지도 마음이 어렵지도 않다면 이게 영적 문제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모욕당하는 것이 내 자존심이 꺾이고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고 아픔임을 체득하는 것이 바로 영적 반응입니다. 내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영적 반응입니다. 큰 풍랑과 어려움이 나에게 찾아올 때, 그 풍랑과 어려움이 나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가, 혹은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가게 만드는가…이것이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는 갈림길입니다. 큰 풍랑과 어려움 속에, 적들이 우겨 싸는 압박 가운데 눈앞이 캄캄 해지고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과 같은 암담함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감각과 느낌을 다 내려 놓고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성전으로 달려간다면 그것이 바로 놀라운 믿음의 반응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름을 붙들고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않는 마음, 하나님의 성전에 내 풍랑과 어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이건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믿음의 반응이고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분명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만 보일 수 있는 영적 반응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생이 잘 나갈 때도, 인생이 어려울 때도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가 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반대로 믿음 없는 삶이란 인생이 잘 나갈 때는 교만해서 하나님을 떠나고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낙심하고 원망해서 떠나갑니다. 내 인생이 잘 나갈 때는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고 인생이 안될 때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의 믿음 생활은 결코 자연적으로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이 아니면 안되는 초자연적 삶입니다. 두 번째 히스기야 왕이 보인 영적 반응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충고를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 눈 앞에 캄캄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질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위대한 점은 앗수르가 포위해 나라를 무너뜨리려 하는 큰 위기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샤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고, 또한 앗수르 왕은 하나님께서 처리하셔서 죽게 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전혀 바뀐 게 없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여전히 앗수르 군대의 압박과 위협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나서도 계속해서 문제와 어려움은 더 커져만 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을 주셨지만 눈에 보이는 상황은 변한 게 없는 겁니다. 주신 말씀 때문에 갑자기 그 다음날 모든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덥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주어진 겁니다. 내 변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말씀을 주시면 말씀을 누구나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상황은 그대로…여전히 죽을 것 같은 상황과 압박이 가득한데, 여전히 앗수르 군대는 위협하고 당장 죽을 거 같은데 그 변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말씀만 주셨고 그 말씀을 붙들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주신 말씀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하늘의 힘을 버티고 인내하며 주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구하며 그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반응입니다. 히스기야의 놀라운 믿음은 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신 말씀을 먼저 붙들고 믿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그 다음날 모든 환경과 상황을 변하게 하시고 그 변한 상황과 함께 말씀을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에게 주셨던 것은 변화된 상황이 아니라 그냥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너는 나 믿고 마음을 담대히 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결국 저 앗수르 왕은 죽게 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겁니다. 여전히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앗수르 군대는 당장 남유다를 삼킬 것 같은 전혀 변하지 않는 상황 가운데 이 말씀을 붙들고 일어나라는 것이 히스기야에게 주었던 도전이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도전입니다. 상황과 환경의 변화는 말씀을 믿고 붙들어서 그 말씀 가운데 일어섰을 때 하나님이 그 다음에 보여 주신다는 겁니다. 먼저 말씀을 믿어야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여주시면 상황이 바뀌면 그때 말씀을 믿겠습니다… 생각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 먼저말씀을 믿으라는 겁니다. 상황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신 말씀만으로 네가 새 힘을 얻고 말씀에 의지하여 일어서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후에 역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들이 풍랑과 같이 찾아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답이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와 같이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믿음의 영적 반응이 내 삶을 통하여 펼쳐지도록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믿음을 붙들기 원합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철저히 의지하고 내가 나를 붙들고 가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그 삶을 살아낼 힘을 하늘로부터 공급받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 피할 수 없는 풍랑 속에서,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원합니다. 히스기야왕과 같이 내 자존심과 내 이름이 모욕당하고 먹칠 당하는 것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을 넘어서 살아계신 하나님 이름이 모욕당하고 먹칠 당하는 것에 대해 반응하는 거룩한 분노가 우리 가운데 회복되기 원합니다. 또한 상황과 환경이 변하지 채 말씀을 먼저 주실 때 그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는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주신 그 말씀에 나를 의지할 때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 말씀 가운데 나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고 일하심을 믿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힘을 얻고 담대한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으며 최후 승리를 믿는 그 영적 반응이 내 삶의 반응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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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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