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장에서 히스기야 왕과 남유다가 처한 상황은 앗수르의 공격 앞에 앞뒤 좌우가 꽉 막힌 상황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군대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멸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유다로 내려와서 포위하며 포하고 너희도 제 독 안에 든 쥐다…항복하라면서 지금 당근과 채찍을 계속 주고 있는 벼랑 끝 위기 상황입니다. 앗수르의 협박을 모든 백성이 다 아는 유다말로 하는 이유는, 미혹과 협박을 통하여 백성을 흔들기 위한 심리전을 펴는 겁니다. 백성을 흔든다는 건 뭐냐면 백성을 흔들어 두려움에 압도당하게 만들고 싸울 의지를 꺾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왕인 히스기야를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려 백성을 흩트려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앗수르 군대에 의해 포위당해 출구가 보이지 않는 벼랑 끝 위기 속에 이 앗수르가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는 이 협박과 미혹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직면하는 도전과 유혹과 미혹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앗수르 군대의 협박과 미혹을 통해 이 말씀을 풍랑과 어려움 속에 성도들이 직면하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의 모습으로 비추어 보기 원합니다.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사노라면 풍랑과 어려움이 찾아오는데, 그 삶 속에서의 어려움은 조그만 어려움이 아니라 히스기야가 직면하는 앗수르의 어려움이자, 여리고성의 어려움이고 골리앗의 어려움입니다. 여리고 성과 골리앗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공통적으로 내 힘으로는 절대 싸워 이길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거나 작은 게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을 머리로 분석하고 계산했을 때는 이길 확률이 0%인 절대 불가능한 어려움입니다. 지금 남 유다가 민족적으로 직면한 어려움인 앗수르 대군에 포위 당한 어려움이 바로 이길 확률이 0%로 보이는 큰 어려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벼랑 끝 어려움에서 앗수르가 히스기야와 남유다 백성을 향한 첫번째 협박과 유혹은 앗수르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바로 성 안에 있는 너희 모두 몰살당할 것이라는 협박입니다. 너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성을 포위하고 공격할 텐데 그러면 성 안에는 식량이 떨어지고 식량이 떨어지고 모든 게 끊기게 되니까 너희는 대소변이나 먹고 앉아 있는 비참한 끔찍한 지경이 될 거라는 듣기에도 거북한 협박하는 겁니다. 두번째 협박은, 앗수르 대왕 말씀을 들어야 살지 히스기야 말이나 하나님 말씀이나 들어봐야 소용 없다는 협박입니다. 너는 이 세상 왕의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듣지 말고 하나님이 보낸 왕의 말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이 계시면 네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 많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 대신 누구의 말을 들으라는 겁니까? 이 세상 짐승나라의 왕, 앗수르 대왕의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히스기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뭡니까? 이 어려운 풍랑 가운데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만 신뢰하라….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믿어서 뭐가 변하는데? 말씀이 안 믿어지고 믿지 말라는 미혹이 계속 스며들어 찾아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말라…대신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끊임 없이 마음 속에서 미혹하는 것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투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산다는 말씀, 믿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너를 건져 주신다는 말씀 믿지 말라는 겁니다. 대신 앗수르와 세상이 말하는 소리를 붙들어야 산다는 미혹을 끊임없이 주는 겁니다. 세번째 협박은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이 어려움에서 건져내지 못하신다는 협박입니다. 여리고와 골리앗과 같은 어려움 가운데 서게 되면 내가 아무리 머리를 쓰고 계산해보고 상황을 파악해 봐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때, 내 마음에서는 이 미혹과 협박의 음성이 들려오는 겁니다. 앗수르 군대에 대항해 살아남은 민족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이 너를 이 세상에서 건져 주신다고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그거 다 거짓말이라고 미혹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런 비현실적인 신앙을 버리라는 겁니다. 이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지금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고 흔드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건져줄 수 있겠냐고 비아냥 대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를 건져 주시지 못해! 여호와 하나님은 너를 절대 건질 수 없다….불신하게 만드는 겁니다. 세상에 항복하고 세상에 나아오면 너희는 죽지 않아…. 지금 세상에 저항하면 허기진 배를 쥐고 배설물을 먹고 살아야 되지만 이 세상에 고개를 숙이고 항복하면 너는 적어도 잘 먹고 잘 살수 있어… 세상에 항복하고 세상에 나오는 게 내가 살 길이야…. 이것이 성도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영적 전쟁이자 삶의 도전입니다. 이 앗수르의 협박과 미혹의 소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계속 들려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일상에 찾아오는 매일의 영적 싸움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하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점점 들리지 않고 믿을만 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며, 세상이 던져주는 말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고 믿을만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져서 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비현실적이고 상황 파악 안되는 말로 여기고, 믿지 못할 말, 의지하지 못할 말로 여기게 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진 미혹과 협박입니다. 눈이 있으면 제대로 보라는 겁니다. 왜 이렇게 현실적이지 못하고 상황 파악을 못하냐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잘 비교해 보면 누가 능력자인지 금방 나오는 거 아니냐…미혹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만 믿는 신앙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겁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며 하나님만 순전히 믿는 신앙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우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혹과 협박 앞에 마음이 우리가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요동치지 않으며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이 기적입니다. 잠잠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실제로 믿으며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거하는 것 이게 바로 기적의 삶입니다. 내가 처한 여리고 성과 골리앗과 같은 어려움 가운데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고 일하심을 믿는 믿음을 붙드는 것이 기적의 삶입니다. 여리고 성이 앞에 있고 골리앗과 싸워야 하고, 앗수르 대군에 포위당한 것 같은 절박한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 가운데 들리는 하나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말고 상황 파악 잘하게 하고 현실적인 세상의 말을 들으라는 미혹과 협박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에게 허무함을 가져오는 이 협박과 미혹 가운데,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바라보며 더욱 간절히 말씀을 붙들기 원합니다. 나의 처한 문제를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앗수르 대왕의 말로 풀려 하는 이 미혹이 현재형으로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신앙,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순전한 신앙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것임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삽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 훨씬 더 크고, 눈에 보이는 앗수르 대왕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훨씬 더 크심을 선명히 믿고 붙들어야 사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신뢰할 때 풍랑이 찾아오지만 무너지지 않는 자,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최후 승리를 얻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위기 가운데, 적의 우겨쌈을 당하는 어려움 가운데, 잠잠하게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말씀이 나의 성취되는 놀라운 은혜를 실체로 경험사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9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