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의 삼손은 시작부터 굉장히 특별했으며,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실인으로 구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자라면서 하나님의 복이 부어졌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는 아주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삼손은 정말 놀랍게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으며 사사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놀랍게 일하겠구나…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압제를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삼손을 통해 하시겠구나…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14장을 넘어오면 그런 큰 기대를 날려버리는 삼손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특별하게 태어난 삼손, 잘 준비된 삼손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13장에서 그렇게 놀랍게 준비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해 놀랍게 예비된 삼손 같았지만 그가 하는 결정과 행동이 결코 영적이지 않고 세상적이며 자기의 육신의 욕구를 따라가는 아주 잘못된 방법으로 그의 인생을 결정하면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4장에 들어서는 삼손은 사명과는 거리가 먼, 여자에 빠져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에 반복되는 표현은 “여자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딤나에 삼손이 내려가 제일 먼저 본 것이 여인이었습니다. 그것도 블레셋 여인을 본 것이지요. 결국 삼손이 여자를 제일 먼저 봤다는 것은 그의 관심사와 마음에 열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죠. 내 눈에 꽂혔다 그러죠. 내 마음의 열망하고 소망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삼손이 여자를 보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명이 가득 차 있었으면 그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을 제일 먼저 보았을 것입니다. 그 블레셋 여자를 보고 바로 충동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결국 내 눈에 보는 게 모든 판단 기준이 되는 거예요. 결혼과 같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정 또한 자기 눈에 보는 것으로 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즉흥적으로 판단 기준을 삼겠다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더 심각한 것은 삼손의 눈에 꽂힌 여자를 블레셋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으로 구별하여 살게 하신 이유는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의 눈에 꽂힌 여인이 누구냐면 블레셋 여인입니다. 지금 자신의 사명과 배치되는 거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의 사명은 블레셋을 적으로 두고 싸우고 이겨야 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이 그에게 주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눈에 블레셋의 여인이 눈에 들어오니까 금세 사랑에 빠지는 소위 금사빠가 되어서 사명이고 뭐고 내 눈에 좋은 이 여자를 아내로 삼겠다는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에서 백성을 구원해야 할 특별한 사명을 부음받은 나실인이, 적군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매력에 빠져서…. 삼손은 더 나가 부모의 조언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그 당시에는 연애 결혼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데려오는 여인과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삼손은 부모에게 떼를 쓰는 거죠. 내가 한 눈에 반한 여인이 있으니까 이 여인 데려와서 내 아내 삼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부모가 분명히 삼손에게 조언을 합니다. 이 결정이 잘못된거 모르느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블레셋에서 여인을 취하려 하느냐….부모가 분명히 직언했고 바른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 삼손은 들을 귀가 없죠. 내가 좋아하는 데 내눈에 좋은데 무슨 상관이냐는 거죠. 부모의 훈계와 조언을 경시하고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 말을 듣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니까 상관 마시고 이 여자 데려오세요… 말합니다. 이게 바로 삼손의 영적 하향곡선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과 특별한 힘을, 특별히 구별된 사명에 사용하도록 부름 받은 나실인이 이렇게 잘못된 길로 지금 한 발 두 발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손에 눈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패턴을 그 영적 지도자이자 사사인 삼손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 말씀에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이 서로 갈라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조카 롯에게 양보합니다. 네가 좌 하면 내가 우 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 한다. 롯이 제일 먼저 보고 주목한 것은 뭐냐면 눈으로 보이는 환경과 땅의 조건이었습니다. 눈에 보기 좋았던 소돔과 고모라가 그의 눈에 확 들어 왔고 그곳을 선택해서 먼저 떠났습니다. 즉 롯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 판단 기준은 겉에 보이는 환경과 조건이 전부였으며, 그 땅이 좋다고 찾아갔습니다. 그 눈에 보기 좋은 땅에는 전쟁과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환경과 조건을 따라 선택한 것입니다. 그 땅이 멸망과 심판의 땅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영적인 맹인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롯이 그렇게 떠나고 나니까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나의 영적 상태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을 내 마음에 두고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믿으며 보이지 않는 가치와 보이지 않는 천국과 다스리심을 믿으며,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주목하며 나아가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아니 무엇을 먼저 보시며 무엇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결국 무엇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무엇에 갈망과 열망으로 바라보는 것을 제일 먼저 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 오셔서 무엇을 제일 먼저 보시며 무엇을 가장 오래 보십니까? 집에서 무엇을 가장 오래 가장 먼저 보십니까? 그게 여러분들의 믿음의 대상이며 그것이 여러분들의 열망과 갈망이라는 것입니다. 삼손은 이런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완전히 놓쳐 버렸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저버리면서까지 블레셋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부모의 훈계를 경시하면서 떼쓰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이 모든 것이 짧은 네 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롯과 같이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 이쁜 여인에게 그냥 모든 것이 꽂히며, 그것을 가지고 판단에 모든 기준을 삼아 사명도 다 저버린 채 블레셋의 여인에게 직진하고 있는 그 모습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타산 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삼손과 같이 그냥 그 길을 직진해서 나아가 실패와 실수로 나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내가 열망하고 집중하며 바라보는 것이 혹시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며, 사명과 충돌한다면, 멈추고 내려놓는 결단이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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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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