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절대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대는 평화가 있고 통일 왕국으로 모든 것이 안정화되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대단하고 화려하고 모든 능력을 가진 왕인 것 같았지만 다윗왕의 집안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가 계속 터졌습니다. 그 문제의 원인은 우선 본인 자신의 살인죄와 간음죄에 있었고, 결국 죄의 상처들이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쳐 자녀들 사이에 간음죄과 살인죄가 일어났습니다.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을 잃었고, 또 큰아들 암논을 잃게 되었습니다. 딸은 부끄러운 일을 당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되었고, 압살롬은 형을 죽인 후 도망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안에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펑펑 터지고 있고 마음이 참담하기도 하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시간을 다윗왕이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다윗왕의 마음이 향하는 자는 바로 도망간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물론 압살롬이 잘못하고 문제가 많이 있고 형을 죽인 후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자식에게 문제가 있을 때 부모는 그것을 부모의 탓으로 돌리려는 천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부모의 잘못이 아닌데 꼭 나 때문에 자녀가 잘못된 것처럼 모든 것을 껴안으려는 좋게 얘기하면 사랑이고 안 좋게 얘기하면 잘못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죠. 암논이 다말을 욕보일 때도, 압살롬이 암논을 죽일 때도 결국 다윗의 명을 따라 움직이게 되었기에 다윗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연결고리가 된 것입니다. 모두 아버지 다윗을 연결고리로 살인죄와 간음죄가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다윗의 마음에는 결국 이게 나 때문에 생긴 거라는 자책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압살롬을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지만 이게 왕권의 정통성이라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세운 나라에는 정통성이 중요한 문제인데 그 압살롬은 단순히 살인을 한 게 문제가 아니라 왕의 후보인 세자를 지금 살인한 것이기에 정통성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압살롬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도 죄를 직면하지도 않았고 아버지에게 살려 달라고 무릎 꿇고 빌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아들을 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누가 읽었는가 하면 군대장관인 요압이 읽었다는 겁니다. 요압이 다윗왕의 속마음을 읽고 나서, 어떤 일을 벌이냐 하면 한 여인을 고용하는 겁니다. 과부인 그 여인에게 상복을 입혀서 왕에게 가서 요압이 시킨 말을 그대로 가서 하도록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명을 받은 대로 이 여인은 다윗왕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지금 이 여인이 다윗왕에게 하는 이야기와 예전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왕에게 한 이야기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가 직접 사실을 얘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통해 다윗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고 찔러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다윗왕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남의 이야기 듣듯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도, 오늘 이 여인의 이야기도 들르면서 다윗왕은 이게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사람은 당장 죽여야 된다고 화를 냈었고, 오늘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세번이나 어명을 내리게 됩니다.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듣게 되면 마음에 닿지도, 마음을 찌르지도 않은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대할 때 남의 이야기 듣듯이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 들리면 대단하지 않은 가벼운 이야기로 들리고, 그게 내 마음에 담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와 오늘이 여인의 이야기에 공통점입니다. 동시에 차이점도 있는데, 나단이 이야기를 가져온 이유는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진리 선포였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다윗왕이 죄에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리에 직면하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이 여인이 가져온 이야기의 목적은 다윗왕이 진리에 직면하게 하기 위함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다윗왕의 속마음을 대신 누군가가 멍석을 깔아주고 추진해 주기 원함을 드러내 줄 뿐입니다. 요압이 이 여인을 고용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다윗왕을 사랑하기 때문도 아니고, 철저하게 요압 자신을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큰아들 암논이 죽은 이 시점에, 다윗 왕조의 다음 왕권을 생각해야 되는데 머리를 굴려보니까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압살롬이라는 것을 요압은 읽은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을 어떻게 다음 왕으로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며 차기 왕조를 고려하여 포석을 두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 여인의 이야기의 목적은 철저히 자기 성공을 위한 것이며 출세와 권력을 위한 요압의 열심일 뿐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 마음의 속도 읽을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자입니다. 지혜롭다는 건 결국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자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정말 지혜로운 자입니다. 반면에 자기의 속마음도 읽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속마음도 읽지 못하고 하나님의 속마음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압은 다윗 왕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의 속마음을 읽어서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줄을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내가 힘과 권한이 있을 수록 나의 마음을 읽고 나를 위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추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힘과 권한이 있을 때 요압 같은 자가 나의 마음을 읽으며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다른 사람 속마음을 읽어 이득을 취하는 인생을 넘어,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는 사람이 되어 진리가 나를 깨워주며 하나님 말씀에 늘 묶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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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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