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다윗이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쓰는 슬픔의 노래입니다. 마음을 다해 감정을 쏟으며 죽음을 애도 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사실 다윗에게 사울왕은 지긋지긋한 원수이자 밤에도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게 하는,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수많은 박해를 받았고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고 도망자로 숨어 지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젊은 날을 도망자로 광야에서 힘들게 만들고 끝까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장인어른이자 왕인 사울…그가 이렇게 죽었습니다. 얼마나 안도를 했을 것이며 이제는 끝났다는 평안함이 몰려 왔을지 모릅니다. 사울왕이 죽음으로 다윗에게는 고통이 멈췄고 도망자 신세가 멈췄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의 입장에선 사울왕이 죽었다는 게 다윗의 입지를 굳히는데 너무나 좋은 소식이자, 그에게는 승승장구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때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고 그때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이 죽었는데 다윗은 영적인 반응을 통하여 그것을 기뻐하고 내가 살아서 잘 됐다고 나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즐거워하는 대신 슬퍼하고 그 소식을 정말 비통해 했습니다. 오히려 그 소식을 좋은 소식이라고 착각하며 가져온 아말렉 포로를 그 자리에서 처단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 때 참 힘들고 어렵다 얘기할 때 많은 경우 감정 때문에 괴롭고 힘든 일이 참 많은 것입니다. 그만큼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진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게 되고 감정은 내 진짜 속마음과 속 사정이 뭔지를 알려주는 굉장히 중요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숨기기가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은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지만 사단 마귀가 미혹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이렇게 할 수 있어도 다윗의 마음 속 감정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다윗이 겉으로는 영적 반응을 보였고 위대한 결정을 했지만 속에 감정이야 속일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그렇게 놀라운 얘기를 하며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솔직한 진실의 소식은 내 마음에 있는 속 감정일 수 있습니다. 감정을 쏟게 되는 당연한 애곡과 애도는 바로 다윗이 그렇게 사랑하고 지켜주었던 우정의 사람 요나단에 대한 애도였을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다윗에게 하나님 역사의 추가 옮겨졌다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봤고,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기쁨으로 포기하며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고 쏟아부었던 자가 바로 요나단입니다. 그런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었으니까 다윗은 얼마나 슬프고 애도를 했겠습니까? 가족보다 가까왔던 형 요나단, 정말 다윗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귀한 사람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마음을 쏟으며 애곡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말씀은 다윗이 사울왕을 향하여 애곡 하는 슬픔이 그냥 슬퍼하는 척 하는게 아니라 당위성을 가지고 나는 슬퍼해야 된다고 주먹을 쥐는 게 아니라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쏟는 슬픔과 애곡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요나단 뿐 아니라 다윗은 진심으로 사울왕을 함께 애도하며 애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을 애곡하면서,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윗에게는 고난과 눈물, 어려움과 섭섭함, 그 모든 힘든 일들이 주마등과 같이 다 떠올랐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런 감정들이 마음속에 깊이 있었을 겁니다. 분명히 다윗이 사울왕을 향하여 느끼는 복잡한 마음, 기쁘면서도 슬프고, 섭섭하면서도 고맙고, 억울하면서도 감사한 이 양가 감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양가 감정이 다 느껴지는데 그 양가의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바른 감정이 자신을 이끌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감정을 드리는 것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감정이 내 인생을 흔들지 않고 그 감정이 주님 앞에 다스려지는 것을 다윗의 인생을 통해 분명히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애곡하는 노래 가운데 사울을 향한 섭섭함이나 억울함 같은 것이 하나도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애곡의 노래 중에 사울 왕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많이 했는지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한 사람, 꼴보기 쓰는 사람 나를 도망자로 만든 사람 나를 그렇게 원수같이 생각한 그 사울왕을 향하여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죽었다고 잘 됐다고 할렐루야 박수 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 있는지 높여주고 세워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 이것은 바로 뒤틀리지 않았던 다윗의 상태, 마음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덮인 영적인 다윗의 기적과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감정은 솔직하게 나의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겉으로 우리는 그냥 내 속마음과 다르게 얘기할 수도 있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영적으로 큰 사람은 그것을 솔직하게 얘기했음에도 그것이 하나님에게 합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미운 사람이 있고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고 치가 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가 결국 우리 인생에서 내 마음에 크기라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으면 적어도 미워하지 않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큰 사람이 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하는 자를 똑같이 미워하고 보복하고 몇 배로 갚아주는 뻔한 인생을 넘어서 내가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을 수 있는 영성을 갖도록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내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며 내 신앙의 성숙을 가르는 척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위대한 자이며 신앙이 성숙한 자이며 영적인 반응을 하는 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평생 미워하고 따라다니며 적으로 삼았던 그 사울왕을 마음 다해 감정을 쏟으며 애도한다는 것, 인간적인 생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마음을 쏟는 진정한 애곡을 통해 다윗은 사울왕과 함께 요나단을 기억하고 기리며 마지막을 영광스럽게 마무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슬퍼하는 그 열망을 갖게 됐다는 것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이자 다윗이 하나님께 합한 왕이 되는 이유였을 겁니다. 개인적인 복수나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음을 다해 애곡하는 다윗, 그 마음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며 영적인 마음이며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어떤 유명한 스님이 얘기했던 것과 같이 내가 내 감정대로만, 내 마음대로만 살면 인생의 하수, 내가 내 감정대로 살지 않고 감정을 잘 참고 살면 그건 중수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고수는 내 마음에 그렇게 참을 일이 점점 없어지는 인생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다윗은 지금 큰 인물이자 인생의 고수입니다.사울왕이 자신에게 한 그 힘들고 어렵게 한 모든 것들을 이 악물고 참았던 중수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물 흘러가듯 흘려 보내며 주님의 은혜로 마음으로 훌훌 털어내며 그것을 품으며 진심으로 애도하는 신앙의 고수였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감정이 신앙과 연결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내 삶에 덮여 내 감정대로 살아가는 하수 인생을 넘어서고, 감정을 꼭 참으며 억지로 이 악물고 살며 마음에 늘 병이 쌓이는 중수 인생을 넘어서기 원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흘러 넘쳐 내 마음이 주님의 평화와 기쁨에 사로잡혀 그렇게 참을 일이 없도록 내 감정이 상하지 않는 이 신앙 고수의 인생, 놀라운 하나님의 합한 놀라운 신앙의 깊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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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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