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두 며느리 중에 한 며느리가 모압 자기 백성 친정집으로 돌아간 후에 남겨진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가 대화하며 강권하는 내용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 들에게 나를 따라 돌아가지 말고 이곳에 남으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며느리들을 위한 권고였습니다. 나를 따라오지 말고 너의 백성과 너의 가족이 있는 익숙한 이 땅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그 깊은 수렁 속에서도 며느리를 자기의 딸과 같이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동시에 그 나오미의 권고 속에 모압에서 이민 생활이 나오미에게 얼마나 힘들어 있는지를 반증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남편도 죽고 자기 두 아이들도 다 죽은 그 척박한 이민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래서 나오미는 룻에게 강권하는 겁니다. 내가 너를 정말 딸과 같이 생각하는데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너가 베들레헴으로 가면 너에게는 이민 생활이 시작되는 건데 내가 경험한 그 힘들고 눈물 나는 이민 생활을 네가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그러지 말고 너가 익숙한 그 너의 백성의 땅 모압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죠. 더 나아가 룻이 나오미를 따라 온다는 게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넘어 그냥 가시밭길과 고난의 길이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이방 여인이 와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둘째 치고라도 과부로서 그 곳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것도 시어머니 마저 죽게 되면 이방 여인인 룻은 어쩌자고 그 고생 길을 가냐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로 강하게 권고하는 겁니다
며느리를 자기 딸과 같이 생각하며 따라 오지 말라고 정을 떼는 나오미를 향한 룻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나에게 이곳에 머물라고 강권 하지 말고 난 어머니를 따르기로, 어머니의 하나님을 따르기로 이미 마음이 확정됐습니다…얘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 놀라운 룻의 대답을 마음 속 깊이 묵상해보기 원합니다. 왜 룻이 지금 시어머니 나오미를 그렇게 따라가려고 했을까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룻은 지금 손익 관계나 이해 관계를 통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바른 관계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생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대부분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고 주판을 돌려보는 건 뭡니까? 이 결정이 나에게 이익인가 손해인가…이 사람과 함께 가는게 나에게 이익인가 아닌가? 다 손익 관계과 이해 관계를 따지는 겁니다. 심지어 교회를 선택할 때도 이 교회가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고 어떤 이익을 주는가…이게 지극히 당연하고 일반적인 대부분의 결정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겠다는 결정은 이해관계나 손익 관계로 봤을 때는 전혀 타산이 맞지 않는 결정이었습니다. 룻은 손익관계와 이해 관계를 넘어 바른 관계성을 붙들고 선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룻은 아마 시어머니의 한결 같은 삶을 봤을 겁니다. 지금 시어머니 나오미는 인생의 가장 깊은 나락에 떨어져 있습니다. 자기 남편도 죽고 자기 두 아들도 다 죽고 이민의 땅 그 척박한 골에서 남겨진 게 아무것도 없는 절망, 이제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그 여인 그 고난과 눈물 가운데도 이 시어머니 나오미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의 삶을 며느리들에게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이 며느리들을 구박하지 않고, 너희들 때문에 내 아들들이 죽었다고 원망하지 않고 이 며느리들이 나에게 선대했다고 고백하는 믿음의 관점을 가지고 산 비결을 룻은 알게 된 겁니다. 그렇게 나오미가 거룩하고 구별된 삶, 한결 같은 삶을 살아가는 비결은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모압 땅이 당연히 룻에게는 편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가까이 먹을 수 있고 친정도 가까이 있고 아는 사람도 많은 익숙한 땅이었는데, 거기에는 그들의 이방 신들을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어머니를 따라 가는 베들레헴 일하는 곳은 척박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며 자기가 차별과 설움을 당해야 될 지도 모르는 그런 낯선 땅인데 거기에는 어머니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이죠. 그러니까 룻이 선택하는 것은 이해관계와 손익 관계를 통해 ‘나의 유익과 필요를 채우는 가 아닌가’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보면 며느리로서 시어머니를 쫓아가겠다는 결단일 뿐 아니라, 어머니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룻의 확정된 마음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신앙 고백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해 관계와 손해 관계를 넘어 바른 관계를 최우선에 두는 결정을 영적인 결정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최 우선되는 선택, 나의 이해 관계와 손해 관계를 넘어 더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는 결정이 바로 영적인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룻의 결단이 얼마나 확고 했는지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주고 거기 묻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덤까지 같이 가겠다는 단호한 결단, 마음이 확정되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설득하는 것을 멈춥니다. 룻이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결정은 영적인 결정임을 알았고, 신앙을 따라가겠다는 결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이해관계/손익 관계와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가 부딪치고 충돌 할 때, 나는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자가 되는가, 이게 변함없는 영적인 자들의 삶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이 땅을 산다는 것은 내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과 손익관계를 넘어서야 하는 삶이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가 우선되는 선택을 하는 삶이자, 그 영적 선택을 통해 하늘의 은혜가 임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인생의 수많은 결정에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이해 관계와 손익 관계를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만, 내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에 인생을 건 선택은 그 이해관계와 손익 관계를 넘어 주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최우선에 둔 선택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을 주님께서 저희에게 이 말씀을 통해 도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 이해관계과 손익 관계를 넘어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하늘의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과 기획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드시고 내 인생이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를 최우선에 두고 살아 주님의 뜻이 나의 삶을 통해 펼쳐지며 하늘의 복과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삶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4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