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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교회 교회와 성도가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이 민감한 것에 민감하지 못하고 둔감할 것에 둔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일에는 철저히 둔감하며 세상 일과 땅의 일, 특별히 내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는 목숨 걸고 민감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민감한 것에 둔감하고 둔감할 것에 민감한 삶을 살아갔던 그들은 땅과 세상에만 모든 것을 거는 육적 공동체가 되어져 가고 있는 모습을 세상 법정으로 나아가는 소송과 송사의 모습에서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좀 잘 먹고 잘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은 내가 소송과 고소를 불사하더라도 당연히 손을 봐야 하는 게 당연한 세상 원리이고 그런 원리가 당연하게 교회 안에 들어와 지체들 사이에도 쌍방 고소와 고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내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나가서 서로 그렇게 쌍방의 고소를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사실 이기는 게 하나도 없는 모두 패배자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피차 고발함으로” 이미 허물이 있다는 건 교회 안에서 쌍방으로 고소해서 세상 법정으로 가면 둘 다 패배하는 게임이라는 겁니다. 왜 패자만 남느냐 하면 교회 안에 형제 자매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 서로 원수되기 때문에 승자 없이 모두 패자가 되는 것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도 별 수 없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때문에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껍데기만 봤을 때는 소송과 고소를 통하여 얻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재판에서 이기기만 하면 내가 얻는 유익이 있고 갖게 되는 보상이 있을 겁니다. 그건 현상계의 껍데기 문제이고 본질계인 영적 문제로 봤을 때는 이기고 지는 게 없이 둘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영적인 것을 다 놓치고 포기한 대가로 그들은 세상에 나의 이익과 유익을 얻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그런 사소한 분쟁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서 밖으로 나가 내 이익과 내 것을 지키려고 지체를 고소 고발하며 세상 법정에 나가는 것 자체가 영적으로 봤을 때는 이미 허물이고 영적으로 봤을 때는 그게 모두 패배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거룩하고 구별되게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영적 원리로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역할이 다 마비되는 비극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좀 속고 차라리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고소고발을 안 하는게 낫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성도니까 내 억울한 걸 그냥 방치해야 하고 그냥 교인들은 일방적으로 참아야 된다…. 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민감함과 둔감함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 마음을 쏟아 붙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영적인 것에 민감한 성도가 되는데 세상 것에는 그렇게 소송과 고소를 불사하고 얻으려 하는 그런 열망과 민감함이 주변 지체를 원수로 만들고 교회 공동체의 영적 기능을 다 마비시키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고소와 소송에서 이긴 결과와 대가로 너희가 영적으로 나머지를 다 잃어버리게 된다면 차라리 손해보고 속임을 당하고 좀 어려운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이 반복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하는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영적인 걸 다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을 얻으면 만족하는 존재냐는 겁니다. 너희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이런 문제는 너무나 둔감한 거 아니냐는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적 심각성이 없는 거예요. 그저 자기 유익과 이익을 지키는 것에만 목숨 걸고 불을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눈에 불을 켜고 민감하고 인생을 던져야 될 문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유업 받는 거 아니냐고 엄중히 지적하는 겁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철저히 너희가 둔감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는 왜 아무런 반응이 없냐는 것이죠. 이런 것을 놓고 소송을 하고 이런 것을 놓고 정말 불의와 의를 따지며 정말 목숨 걸어야 되는데 그런 절박한 마음조차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존재의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함인데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이런 문제에 이렇게 둔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음행 하고도 간음하고도 속이고도 이런 잘못된 일을 하고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고 회개하려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철저하게 둔감하며 죄를 쌓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 반면에 세상적인 일과 내 유익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 걸고 싸우고 민감하게 세상 법정도 불사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은 그냥 먼 세상 이야기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고 반대로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서 내게는 그저 둔감한 문제가 되어 버린 그들의 영적 현실을 엄중히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엄중히 경고합니다. 교회에 들락날락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위기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 생활하는 본질은 이 땅에서 조금 잘 지내고 더 잘 먹고 좀 더 오래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종교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도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을 넘어 다른 세상이 있음을 분명히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지만 그날을 준비하며 이 땅을 살아가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영적 원리가 이끄는 주의 백성들로 살아가는 겁니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가는 분명한 고백 가운데 다시 태어난 존재가 예수 안에 있는 성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문제보다 더 큰 세상 문제는 없고, 이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결론 말씀과 같이 너희가 그렇게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고 소송과 송사하면서 라도 얻으려는 그런 세상의 유익과 이익보다 정말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성도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겁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받는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게 하심입니다. 이 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없고, 더 민감해야 될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보다 더 큰 복은 없고, 이 세가지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는 없기에 여기에 가장 민감하며 여기에 마음을 두고 눈에 불을 켜고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 성도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부분을 우리가 분명히 붙들고 있으면 나머지 것은 좀 있어도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세상 것에 좀 둔감한 존재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적으로만 자기 유익과 이익에만 너무 민감한 육적 활성화의 상태이고 거기에만 목숨 걸고 나오기에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영적 원리는 철저히 무시하고 경시하며 살아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고 교회 나와서 신앙 생활하는 목적이 이 세상에서 좀 더 잘 먹고 잘 지내기 위한 수단과 도구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변질되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이런 영적 문제에는 철저히 둔감하며,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게 하심에는 전혀 관심도 마음도 두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저 세상에서의 내 이익과 유익을 지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민감하게 살아가다 끝나는 육적인 존재 밖에 되지 못함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와 영적인 것에 민감하게 살기에 이 세상 것에 조금은 둔감해져도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유익과 이익에 조금 둔감해져도 상관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게 하심을 선물로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눈을 켜고 목숨 걸어야 될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죄씻음과 거룩함과 그들이 의롭다 함을 얻었는지 아닌지에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변 사람들을 봤을 때 물어봐야 될 본질적 질문은 저 사람이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지 아닌지…가 되어야 합니다.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게 하심이 없는 자들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하며 그것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신앙 생활하는 게 우리 모습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고린도 교회의 책망을 통하여 우리를 돌아보고 우선순위를 교정하며 다시 한번 본질을 향하여 나아가는 주의 귀한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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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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