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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기록하게 하신 목적은 그 말씀이 들리게 하여 악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기록하게 하여 귀에 들리게 했는데 백성들과 고관의 말씀에 대한 반응과 여호야김 왕의 반응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말씀이 똑같았는데 말씀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달랐던 이유는 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생명의 말씀이 주어졌는데 한쪽에서는 마음이 찔려 3천명이 회개를 하는 역사가 있고 또 한쪽에선 마음에 찔려 돌을 들고 분노하여 그 전하는 자를 쳐죽이는 정반대의 반응이 있었던 것과 똑 같은 이치입니다. 말씀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왜 여호야김 왕이 그렇게 분노하며 말씀을 난도질하며 불에 태우게 되었는가를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신 말씀에 본인이 귀를 막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죠. 왕이 듣고 싶지 않았던 말씀이 바로 바벨론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어느 정도로 듣기 싫었으면 그 말씀을 잘라 불태워야 될 정도로 싫은 겁니다. 왜 이 땅에 바벨론이 쳐들어와 우리 망한다는 기분 나쁜 소리, 맥빠지는 소리를 두루마리에 적어 들려주냐는 겁니다. 마음에 찔리는 말씀을 주셨을 때 어둠에 속한 악한 자들은 이렇게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그 말씀 때문에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난도질하고 말씀을 불태우고 있는 왕의 끔찍한 만행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말씀이 면도칼로 찢겨지며 불에 타며 말씀이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왕의 주변에 있었던 대다수의 신하들의 반응은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옷을 찢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이 그렇게 무시당하고 땅에 떨어지는 만행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이 사건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옷을 찢는다는 건 뭡니까? 하나님 앞에 극도의 슬픔과 회개를 가지고 나올 때 옷을 찢었습니다. 그런데 신하들의 대다수는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옷을 찢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의 주변에 수많은 신하들이 거짓 선지자들과 간신들로 가득 차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도 않고 있는데 일조하는 것, 이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소수 사람들의 목숨을 건 믿음의 반응도 드러납니다. 목숨 건 용기를 내어 왕에게 충언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입니다. 말씀을 불태우고 있는 왕에게 말씀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마시라고… 이 말은 굉장히 하기 어려운 말, 목숨을 걸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하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말씀이 무시 당하는 현장에서 마음을 찢으며 왕에게 조언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왕은 안타깝게도 목숨 걸고 바른 말을 하는 그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말씀을 불태우는 것을 멈추는 대신에 오히려 말씀을 기록한 바룩과 예레미야 선지자를 잡아오라 명한 것입니다. 왜 잡아오라고 명했겠습니까? 잡아서 죽이려 그랬을 것입니다. 듣기 싫은 말씀을 적어서 나에게 낭독하게 한 눈의 가시와 같은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아오라는 것이죠.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룩과 예레미야를 숨기셔서 목숨을 보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신 것도 듣지 아니하고 목숨 걸고 왕에게 조언하는 신하의 말도 듣지 아니하는 왕의 안타까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 백성인 남유다 왕이 말씀에 대한 이런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것을 넘어 말씀을 그렇게 난도질하고 불태우는 이런 태도의 끝이 어떨지 당연히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야김 왕의 인생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의 집안에서 왕위가 더 나오지 아니하고 그의 인생 뿐 아니라 그의 시체도 버림을 받아 끔찍하게 비참하게 끝날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죠. 왕의 위협에서 숨겨 주신 후,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다시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내가 다시 말씀을 줄 테니까 그 말씀을 다시 두루마리에 기록하라는 것이죠. 하나님 백성인 남유다의 왕은 하나님 말씀을 경시하고 무시하며 부인하고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고 불태웠습니다. 왜 칼로 난도질하고 불태웠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다고 본인은 여긴 것이죠. 그렇게 말씀을 난도질하고 심지어 말씀을 불태우면 그 말씀은 사라진다고 여긴 겁니다. 왕이 불사른 두루마리 말씀을 다시 주시며 모든 말씀을 다시 기록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본질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이 그렇게 말씀을 경시하고 무시해도 인간이 그렇게 귀를 막아도 심지어 말씀을 난도질하고 불태워도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는 말씀을 정확하게 다시 보여 주시는 겁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은 끝까지 영원히 남는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난도질하고 말씀을 불태우고 있는 왕의 끔찍한 만행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대다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옷을 찢지도 않고 있는데 목숨 걸고 진리를 말하고 왕에게 진실한 말을 하려는 소수가 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하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사람의 말들은 조건적이고 부분적이며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마를 것들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히 존재하며 영원히 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여기며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중시 여기며 그 하나님의 말씀이 멸시당할 때 두려워하고 옷을 찢으며 애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믿고 따르는 성도라면 이 세상을 향하여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며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임을 분명히 하며 살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성도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기억하며 변하고 사라질 것 붙들지 말고 영원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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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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