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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해서 모세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으로 은혜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통과하며 그들의 옛 자아와 신분이 완전히 죽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태어나는 세례와 중생의 역사를 구약에서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신령한 음료와 음식을 먹으며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놀라운 은혜와 역사와 신비 체험을 일상의 단위로 경험했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대다수는 기뻐할 수 없는 자였으며 결국 광야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어떻게 신령한 음료와 신령한 음식을 매일 먹으면서 일상으로 신비 체험을 하면서 일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했는데 그럴 수 있느냐? 그렇게 하나님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 신령하지 않게 살 수 있느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그럴 수 있다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우상숭배였고 두 번째가 음행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세 번째 이유가 등장하는데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기는 커녕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것이죠. 당연한 삶에는 감사가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 감사 위에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놀라운 은혜인 메추라기 역사를 그들이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을 모두 독에 물려 죽어가게 만드셨습니다. 그 불뱀 사건의 본질은 바로 광야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셨던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넘어 하나님을 시험한 것으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처방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고 말씀해 주신 겁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쫙 갈렸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는 절대 다수 중에 많은 사람들은 저거를 본다고 어떻게 살 수 있어? 그러면서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지 않고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눈으로 주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 놋뱀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놋뱀 사건은 죄라는 불뱀에 물린 우리들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붙들어야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임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죄라는 불뱀에 물려 지금 멸망과 심판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에게 남는 건 멸망, 즉 영원 형벌밖에 없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우리의 인생이자 죄라는 불뱀에 물려 모든 인류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대로 보내셔서 믿음으로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산다는 복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주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바라보지도 붙들지도 않고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가듯 죄와 함께 죽어가는 겁니다. 오직 누구만 살게 됐습니까? 장대에 달린 그 놋뱀을 바라보고 붙든 사람들…. 누구만 살게 됩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붙든 사람들… 저 예수 이름만이 나를 살릴 능력의 이름임을 분명히 믿으며 그분을 바라보고 붙든 사람만 살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두신 게 없습니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을 바라보고 붙드는 자만이 사는 것입니다. 그 예수 안에 들어간 사람만이 사는 것이고 그 예수 이름을 의지한 사람만이 사는 겁니다. 그 이름을 믿기를 거절하며, 바라보지 않고 붙들지 않은 사람은 죄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시험하다 망했고 원망하다 망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데, 매일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데도 그들은 감사가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교만해지면 은혜로 받은 게 다 당연해지는 겁니다. 오히려 어디를 동경하고 그리워합니까? 어디에 마음을 둡니까? 애굽이라는 삶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마음에 두는 겁니다. 그 하늘의 놀라운 은혜가 당연해진 삶에 감사가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자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온 겁니다. 결국 원망과 시험으로 그들이 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이 본보기가 되고 또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이게 결론 말씀입니다. 출애굽 사건 이후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불신앙과 원망과 불평과 시험으로 망한 이야기를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수해 주신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뭐를 위해서요? 본보기를 위해서라는 겁니다. 지금 너희도 까딱 잘못하면 광야에서 다 죽었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본보기로 이 말씀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 말씀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관통하는 경고와 본보기라는 겁니다.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고 엄중 경고하시는 결론 말씀입니다. 이런 망한 백성과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께 원망하지 말자고 사랑으로 안타깝게 권면하는 겁니다.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라 사라진 모습이, 은혜에서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 바로 누구의 현주소라는 겁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현주소라는 것을 엄중 경고하며 알기에 너희는 이러지 말라고 다시 한번 권면하는 겁니다. 내 인생을 조금만 돌아보면 내가 받은 모든 것들 가운데 은혜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 소유라고 여긴 많은 것들이 다 내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빌려온 것들이에요. Own이 아니라 Loan인 것이지요. 이것을 알면 알수록,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당연한 게 하나도 없고 다 감사할 제목들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를 향한 경고와 본보기로 생각하며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 날마다 넘어지는 사람들이고 까딱하면 이렇게 감사대신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는 백성이며 잠깐만 정신 못 차리면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붙들고 세상에 젖어 살 수밖에 없는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나를 향한 채찍으로 찌르시는 말씀으로 담으면 그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고가 고린도 교회를 향한 본보기일 뿐 아니라 이 시대 우리를 향한 동일한 본보기가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본보기로 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우리를 쳐서 복종시키며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광야에서 거룩한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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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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