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랴라는 여인 하나가 남유다 전체를 영적으로 파괴시키고 영적 파탄이 오게 만들었는지를 성경은 경고하며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도 비극적으로 죽고 자기 아들도 1년만에 죽었는데 슬퍼하거나 애곡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숨겨 놓은 본색을 드러내며 나머지 왕족의 씨을 다 말리며 자기 손자들을 다 죽이고는 왕위에 오른 자가 바로 이 악한 여인 아달랴입니다. 정통성 없는 북 이스라엘 이세벨의 딸이자 스스로 불법적으로 자리에 올라 남유다를 완전히 장악한 악한 여왕이 되어 6년이나 남유다를 완전히 영적으로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이세벨과 그 딸인 아달랴를 단순한 한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력의 대표로 바라보고 있고,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악한 여인이 이스라엘에 들어와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들어 쓰시며 지나치리 만큼 바알 우상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진멸하며 제거하는 일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땅인 아달랴와 결혼한 철저한 대가를 남유다는 혹독히 치르며, 피비린내 나는 가족 학살을 통해 다윗의 씨가 완전히 말라 모든 것이 끝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딱 한 아기, 1살된 요아스를 살려서 성전에 숨겨서 6년을 잘 키운 상태에서 7년째가 되는 해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악한 여인 아달랴가 불법적으로 왕위에 올라 여왕 행세를 하는 7년 째, 제사장 여호야다가 목숨을 걸고 말씀을 의지하여 용기를 내는 겁니다. 그 목숨을 걸고 용기 내는 것은 지금 아달랴 여왕은 불법으로 스스로 올라간 정당성 없는 여인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다윗 자손 가운데 남유다 왕위를 이어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따라 다윗 가문에서 왕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 다윗의 혈통에서 장차 약속하신 메시야 예수님이 태어 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남은 아이 하나를 지키는 것이, 그 남은 아이가 왕을 계승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이 목숨 걸고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제사장의 선포였지만, 사실 아달랴에게 완전히 찍히기를 각오하는, 목을 내 놓는 반란을 일으키는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아달랴 입장에서는 펄쩍 뛸 말인데, 자기 생각에는 모든 다윗의 씨앗을 다 진멸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다윗의 후손이 있다는 선언이자, 아달랴 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목숨 건 용기었던 것입니다. 아달랴 여왕에게 그동안 숨겨 놓은 다윗의 씨앗이 남아 있다는 선포이자,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아달랴 여왕은 불법임을 선포하는 그 놀라움….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제사장 여호아야는 용기를 낸 개혁과 바른 길에 서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봤을 때는 그저 목숨을 걸고 기존 정권에 대항하는 반란밖에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여호야다는 이 하나님의 질서를 남유다에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인생을 던졌고 목숨 걸고 반란을 일으켜 성공하게 됩니다. 그 성공의 이유는 목숨을 건 결단을 놀랍게 쓰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전 안에는 무기도 있었고, 호위하는 군인들, 특히 뜻을 같이하는 부장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전에 다윗 왕가의 왕실 호위병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 그 바른 길로 나아가는데 쓰임받겠다는 열망으로 이 일에 함께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한 이 반란이 기적과 같이 성공하며 아달랴 여왕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질서를 다시 세우며 일곱살이 된 그 아이를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 가문의 씨가 모두 말라 버려 하나님의 약속이 사라질 것만 같은 풍전 등화의 위기 가운데, 제사장 여호야다를 들어 쓰시며 목숨 걸고 남은 아기를 지키게 하셨고, 불법으로 왕의 자리에 올라간 아달랴를 처단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반란이 성공될 때, 아달랴가 했던 말 “반역이다…반역이다”를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반역은 본인이 제일 먼저 저지른 장본이었는데 말입니다. 악한 자로서 자기 손자들의 다 죽이면서까지 다윗 가문에 씨를 말리며 왕위에 올라온 반란의 주범인 아달랴 여왕이야 말로 반역 중에 반역이었는데, 막상 자기가 쫓겨날 때가 되니까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반역이라고 외치는 이런 말도 안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반역이다…반역이다…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 아달랴는 왕궁에서 칼에 죽임을 당하는 비참하게 인생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처럼 아달랴 여왕이 칼에 죽음으로서 소위 말하는 거룩한 쿠데타가 성공 하게 됩니다. 이처럼 꺼져가는 등불인 다윗 자손 하나를 지켰고, 그 어린 소년을 왕으로 세움을 통해 하나님의 질서를 다시 한 번 세우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왕위를 다윗 가문으로 세우는 정통성의 회복일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있었던 바알 우상을 철저 깨뜨리는 성전 정화이자 부흥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하여 다윗 왕가가 사라지지 않고, 그 씨앗이 보존되어 나중에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일곱살 아이를 왕으로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곱살 짜리 왕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제사장 여호야다가 과도기에 정권을 가지고 있다가 요아스가 좀 장성하면 왕을 물려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는 거룩한 반란이 끝난 후 굳이 일곱살 된 왕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겁니다. 여호야다는 자기가 왕이 될 수 있는 기회, 주변 사람들도 당연히 왕이 돼야 된다고 떠미는 그때에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절하며 일곱살 된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겁니다. 이 말은 자기 스스로 왕위의 욕심을 갖기 위해 이 일을 벌인 게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고백하는 자신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마치 세례 요한과 같이 자기는 한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있다가 소리와 같이 사라지는 자로 내가 머물겠다는 그 뜻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영적 질서를 다시 세워짐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씨가 계속 전승되게 되며, 그 결과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어떻게 보면 이세벨과 그 딸 아달랴 같은 자들이 불법으로 왕위에 올라 권세를 휘두르는 어둠과 타락의 시대입니다. 이 어둠과 타락이 고착화 되면 이게 문제라는 건 알지만 문제를 고칠 능력도 그리고 그거에 대한 용기도 없이 그 영적 파탄의 시대를 그냥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때로는 목숨 걸고 용기를 내야 할 일이 있음을 깨워 주십니다. 이런 불법과 어둠과 타락이 가득한 때에 한 사람이 말씀에 목숨을 걸고, 한 사람이 말씀에 용기를 내어 나아갈 때 역사의 흐름이 바뀌게 됨을 잊지 마십시오. 동시에 여호야다의 유일한 관심은 다윗 왕가의 씨가 끊어지지 않으며 그것을 복원시켜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데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지 왕이 되려고 욕심을 내지 않았음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이렇게 자기 것에 욕심내지 않고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 지는 데만 쓰임 받기를 사모하며 기꺼이 낮아진 자를 놀랍게 사용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여호야다와 같이 준비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 걸고 용기 내는 자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암흑과 어둠의 시대의 역사를 바꾸시기 원하십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는 인생이 되어, 이 어둠과 타락의 시대에 주님의 영적 질서와 기준을 다시 회복하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우리 인생이 선명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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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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