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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는 52장까지 되어 있는 말씀으로 오늘이 마지막 장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가 했던 예언은 51장으로 다 끝났습니다. 남유다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도 몽둥이로 사용하신 바벨론도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말씀으로 모든 예언은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52장은 예레미야에게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2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인 1-11절은 시드기아 왕 바로 남유다의 마지막 왕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30절까지는 처참하게 불타고 폐허가 되는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34절은 또 다른 왕인 여호야긴 왕에 대한 회복을 결론으로 맺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이렇게 처참하게 멸망하게 되는데 그 끝과 결론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예레미야서를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드기아의 왕의 길이 있고 또 하나의 길은 여호야긴의 길이 있다는 것이죠. 시드기아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유다는 지금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 남은 카드인 시드기아가 결국 그 나라 전체를 어떻게 만든 겁니까? 파국과 멸망으로 이끌며 마지막 카드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겁니다. 한 개인도 공동체도 나라도 결국 하나님 앞에 이렇게 끝에 가서 마지막 평가를 받는데 그 끝이 시드기아의 길로 끝날 것인지 여호야긴의 길로 끝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선택지를 내밀면서 끝나는 것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왕에 대한 평가는 한 개인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그 나라 전체를 보여주는 대표 선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예언이 안타깝게도 결국 이루어지는 모습, 가지 말라고 그렇게 외쳤고 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외쳤던 불신앙과 불순종의 길을 결국 가게 되는 남유다, 그 남유다가 직면한 참담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드기아의 길로 끝나는 인생과 나라의 결론이 무엇인가? 오늘 말씀은 시드기야의 길을 세 가지로 요약해 선명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악한 사람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입니다. 본받았다는 것은 그 모습을 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본받을까가 너무나 중요한데 그 이유는 무엇을 보고 따라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우선순위와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아 왕은 하나님 말씀을 본받거나 믿음의 사람들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악한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았습니다. 주의 뜻과 말씀을 본받는 대신에 악에 쩔어 사는 사람의 모든 행위를 본받고 살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악한 왕을 모델로 본받아 따랐던 것이죠. 그게 그의 비참함의 결과의 첫 번째였습니다. 두 번째, 시드기야 왕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악을 행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말씀은 여호와 보시기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시드기야는 악한 왕을 본받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시드기야 생각에는 선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옳은 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로 갔다는 겁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안타까운 시드기아의 비극, 남유다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안 된다 그러시는데 상관없다 그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질주한 왕과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내 생각에 옳은 대로 가는 것 이게 악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 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일을 하면 선한 사람이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면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부분적으로만 맞고 단편적으로만 맞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인생에 정말 중요한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은 바로 “여호와 보시기에…”입니다. 내 눈에, 내 생각에 옳은 대로 가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바른 길을 가는 게 중요합니다. 신자로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내가 그냥 잘 살고 주변 사람보다 좀 나은 삶을 사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보시기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누군가를 알고 그분이 바라보시는 선과 악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세번째로 시드기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배반하니라.” 입니다. 바벨론 왕을 배반했고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했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을 개인적으로 배반한 것 뿐 아니라, 예레미야의 예언을 배반함으로 결국 하나님을 배반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끊임없이 시드기아 왕에게 주었던 예언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길이 사는 길이라는 것이죠. 싸우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적어도 나라가 불타서 쑥대밭은 되지 않으니, 말씀대로 곧 회복이 될 것이니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아 왕은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는 대신에 자기 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세계 정세를 보니까 지금 애굽에게 붙으면 살 거 같고, 바벨론과 싸우면 이길 것 같다는 자기 판단을 가지고 말씀을 배반하며 그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결정으로 온 나라를 구렁텅이와 불바다로 만들어 폐허가 되게 한 시드기아 왕의 끝은 어떠했습니까? 시드기아의 끝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3년을 버티다 성벽이 무너지니 왕이 도망갔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끌려왔습니다. 그의 눈앞에서 모든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거를 보고 그 다음에 그 눈이 뽑히고 사슬로 결박되어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혀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시드기야 왕의 눈을 빼버렸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상징인데, 왜 그의 눈을 빼버릴수 밖에 없었습니까? 왕의 눈이 그렇게 멀었고 그 잘못된 눈으로 말미암아 본인도 망하게 하고 나라도 망하게 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고 미래가 없이 두눈이 뽑히게 되었고 평생을 결박되어 사슬에 매어 감옥에 살다 죽는 것. 이것이 시드기야의 길의 결론이자 남유다 전체의 영적 상태였던 것입니다. 한해가 마무리되는 이때에 우리도 끝이 있고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의 결론이 시드기아로 끝이 날 것인지 여호야긴으로 끝이 날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며 한해를 끝내기 원합니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 마무리되며 하나님 앞에 분명히 평가받는 날이 있을 텐데 그 끝에 서서 어떤 평가를 받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시드기아의 길로 끝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을 우리에게 비춰보기 원합니다. 시드기아는 의도적으로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해야지…백성들을 비참하게 해야지 그렇게 결단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기 나름으로는 내 생각에 옳은 대로 간다고 했는데 그게 뭡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이자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이었다는 겁니다. 시드기야의 길을 따라가서 마지막이 비극으로 끝나는 그런 안타까운 결론이 되지 않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본받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인생인지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 시드기아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잊지 않고 주의 말씀이 반드시, 결국 이루어짐을 믿으며 주 앞에서 끝까지 신실하게 살다 내 인생이 선명히 주의 은혜 가운데 축복으로 마무리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어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심판을 바라보시는 마음이 통쾌하거나 기뻐하는 마음이 아니라 슬퍼하며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셨음을 배웠습니다. 그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는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살고, 바벨론을 살아가지만 그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빠져나오고 도망 나오는 것만 사는 길이라는 것을 구구 절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고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을 선언하시며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처참하게 폐허가 되고 무너지게 되고 심판을 당해 멸망하게 될 것인가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선포하는 시대적인 상황과 때는 언제냐 하면 시드기야 왕 제 4년입니다. 아직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이자 바벨론은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 초강대국이 되었던 시점에 장차 있을 바벨론의 심판을 예언으로 주시는 겁니다. 남유다의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된 후, 바벨론이 믿어지지 않는 방법으로 심판 당하고 멸망하게 된다는 말씀을 주신 겁니다. 이 말씀을 직접 듣는 수많은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만 들리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의 계속으로만 여겨지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주신 그 말씀을 계속 전하는 겁니다. 주신 말씀을 하나도 빼거나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52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증언하기에 사실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는 오늘 말씀이 어떻게 보면 예레미야 모든 예언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전했을 때,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매국과 애국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가 친 바벨론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너는 매국이라면서 몰아세웠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때리기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도 보게 되면 바벨론 또한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이 망한다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런 예언의 말씀을 전하면 누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바벨론과 바벨론을 따르는 친 바벨론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뻔합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살 거라고 그렇게 전하다가 마지막에는 바벨론도 심판을 당한다고 하니….예레미야를 향해서 변절자라고 몰아세울 겁니다. 사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친애굽 주의자도 아니고 친바벨론 주의자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 붙들고 하나님 편에서 말했고 하나님 편에서 행동한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사람들은 프레임을 씌우고 오해하며 그걸 통해 예레미야의 말씀을 오해하고 변질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명에 목숨 다했을 뿐입니다. 너희가 망해서 포로로 잡혀가게 된 때에도 말씀대로 그 때가 임하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멸망하게 하시고 그것이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되어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을 주시는 겁니다. 전혀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씀들을 계속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에게는 믿기 어려운 이 예언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붙들지 말고 이 세상 가치에 흔들리지 말고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여호와께만 충성하는 믿음입니다. 남유다가 멸망하기도 전에 장차 있을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으로 주심으로 이 세상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머지 않아 반드시 심판의 때가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믿음으로 그것을 견디며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주의 권면입니다. 그렇기에 말씀 마지막을 보게 되면 주신 이 말씀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게 해서 그 말씀을 다 읽고 돌에 메어서 유브라데 강에 던지라는 것을 명하심으로써 끝나게 됩니다. 그 모든 말씀을 상징적으로 유브라데 강에 던짐으로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모두 감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굳이 바벨론까지 가서 유브라데 강에 돌을 묶어 던지게 하셨을까요? 유브라데 강은 바벨론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강입니다.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었고 바벨론에는 유브라데 강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강은 생명을 유지하는 신성한 곳으로 여겼던 곳입니다. 바벨론의 생명을 유지하고 신성하게 여긴 유브라데 강에 이 말씀을 던진 겁니다. 바벨론을 잠시 몽둥이로 쓰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바벨론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심판을 당해 정말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멸망하게 하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또한 돌과 함께 물에 빠진 책은 다시 건질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번복되지 않고 수정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 강에 빠진 돌과 함께 있는 말씀 같이 바벨론이 유브라데 강물에 가라앉듯이 결국 멸망하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 갇히고 넓은 시야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지도 수용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젖어 들고 동화되며 사람들에게 충성하는 것이 살 길인 줄 알고 이리 줄 서고 저리 줄 서고 눈치 보며 뛰어 다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그 말씀의 때를 믿고 믿음으로 견디며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예루살렘을 마음에 품고, 천국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며 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그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식을 믿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을 잠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이 때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단단히 붙들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한 해를 주와 함께 마무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레미야 예언의 마지막 부분인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긴 말씀을 은혜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심판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세 가지의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 내일 말씀을 통해 한 가지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에게 하시는 두 가지의 명령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겁니다. 반복적으로 예레미야 예언을 통하여 강조하시는 건, 바벨론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가운데 멸망하게 되는 가장 본질적 이유가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본질적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바벨론의 우상들을 심판하고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정화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심판과 하나님의 엄중한 그 경고를 받는 본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잡다한 우상들을 생각하지 않고 길들여져 살지 않고, 바벨론 우상에 절하지 않고 거기서부터 빠져 나와야만 산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수많은 세상 신들이 있습니다. 세상 우상을 생각하고 길들여져 가며, 그 우상에 절하는 것, 그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너지는 본질적 이유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지던, 우상들이 무너지던 둘 중에 하나가 일어나야 사는 겁니다. 그 모든 세상 신들을 벌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이죠. 그 모든 우상들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바벨론의 심판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붙들어야 될 진리이며 동시에 저와 여러분들이 붙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심판의 현장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벨론 땅을 살아가는 남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엄중한 경고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살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는 바벨론의 생활에 길들여지고 바벨론의 가치에 젖어 살게 되기 쉬웠습니다. 생각이 눈에 보이는 것에 몰두하며 마음에 두는 것이 하나님 아닌 다른 가치들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에게, 끌려가 포로 생활하는 바벨론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라는 겁니다. 이게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이끄는 삶은 뭐냐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고 이 땅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눈에 보이는 가치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벨론으로 대변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차별성은 바로 우리 생각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마음 두는 곳이 어디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백성은 몸은 바벨론을 사는데 마음은 하나님께 두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세상의 한복판인 바벨론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는 싸움을 벌이는 겁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몸은 바벨론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데 마음은 예루살렘을 두고 살아가는 삶.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여호와를 생각하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살길이자 저와 여러분들이 살 길이라는 겁니다. 주목할 건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주어지는데 그 임박한 심판에 대한 예고를 할 때 예레미야는 기뻐하거나 행복하게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원수 바벨론이 무너지니까 너무 좋다…그럴 줄 알았다…그러면서 통쾌하게 박수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큰 탄식으로 슬프다..라고 반복하여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이 예레미야의 슬프다는 탄식은 예레미야 개인의 탄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탄식이기도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바벨론을 향한 그 심판이 이루어지는데 그 심판을 예고하고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도 슬펐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시는 마음은 너희가 큰 죄를 지었으니, 죄로 말미암아 결과를 직면해서 꼴 좋다…박수치며 통쾌하게 여기신게 아닙니다. 그 무너지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시면서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동일한 마음이죠. 저렇게 망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결국은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저렇게 무너지는구나…안타까워하셨고 슬퍼하신 겁니다. 출애굽기를 보게 되면 모세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뒤쫓아오는 바로왕의 군대가 그 모두 홍해에 빠져 수장 당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것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기뻐하는 톤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자 슬픈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접하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예수님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빨리 건져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 마음의 태도가 그들을 멸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지, 저들은 죽어도 마땅하다며 아무 슬퍼함도 안타까움도 없지는 않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이 시대 우리의 도전은 복음 자체가 잘못 돼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의 불신자들을 향한 태도가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 복음 밖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인 불쌍히 여기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박수치고 통쾌하며 꼴 좋다 말하는 대신에 그것을 슬퍼하며 안타까워하는 예레미야의 탄식을 마음에 담아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긍휼히 여기심이 이 세상을 향한, 복음 밖에 있는 자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엄중히 책망하시며 죄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아니하시지만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그 심판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심, 긍휼히 여기심을 마음에 담기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안타까운 탄식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에 그대로 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엄중히 책망하시며 죄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아니하시지만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그 심판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심, 긍휼히 여기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우상숭배가 너희를 망하게 한다는 엄중한 말씀을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지고 젖어 사는 삶에서,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두고 절하는 삶에서 빠져 나와야만 생명의 삶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마음에 두는 곳이 어디냐가 우리가 가야 될 종착점과 우리의 삶의 중요한 가치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땅에만, 이 세상에만 마음을 두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우리의 삶의 종착점, 바로 시온성을 마음에 두고 예루살렘을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겁니다. 이 땅이 아닌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을 잠시 살아가지만 너희는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이 중요한 삶의 원칙을 마음에 품고 주의 남은 자로서 이 세상에서 본향을 향하여 오늘도 뚜벅뚜벅 그 믿음의 여정을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 뒷부분은 많은 분량을 해서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서 이렇게 긴 분량을 할애하는 이유는 그만큼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이 그 당시에도 중요하고 지금도 중요하고 미래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론과 바벨론에 대한 심판과 멸망은 과거 시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그날을 모두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 영적으로 깨어 대비하라는 주님의 엄중한 소리로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표현하시는 세 가지의 단어가 등장하는데,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 내 원수 그리고 딸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단순히 과거에 그냥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제국으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이자 하나님의 원수이자 딸 바벨론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딸 바벨론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딸이 아닌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음녀 바벨론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손에 금잔을 들고 순을 들고 자신의 부유함과 풍요로움을 앞세워서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 악한 음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 대신 세상에서 마치 돈이 있으면 다 되는 것처럼, 힘과 명예가 있으면 다 되는 것처럼 착각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쏟아 붓게 만드는 술잔과 같은 유혹이 바로 음녀이자 딸 바벨론입니다.
좀 더 이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우리에게는 바벨론처럼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이죠. 저렇게 되고 싶다고 꿈꾸고 구하고 찾는 삶이 음녀 바벨론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하고 힘 있고 다른 나라들이 꼼짝도 못하고 벌벌 기는 그런 바벨론과 같은 삶을 꿈꾸고 선망하고 쫓아가는 모든 가치들, 그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할 것 같고 그거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될 거 같다는 여기는 바벨론의 가치들이 음녀 바벨론 딸입니다. 그런 음녀와 같은 딸 바벨론을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선언하십니까? 머지 않아 바벨론이 다 멸망하고 심판을 받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바위에서 굴리고 네가 불탄 산이 되며 영원히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하나님이 “그를 친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친히 끌어 내리시고 친히 치신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현실을 봤을 때는 메데 사람 즉 페르시아를 통하여 바벨론은 멸망하게 되는데 실제로 바벨론을 치시는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을 치시는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를 친다”는 반복적 말씀으로 강조하는 겁니다. 특별히 머지 않아 그 때가 이름을, 타작 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추수때가 이르리라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곧 오는데 그 마지막 때는 음녀 바벨론 딸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받는 때이고, 알곡과 같은 남은 자들은 거두어 드리는 추수 때라는 겁니다. 추수라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로 하나님이 수확하시는 때이자 모든 것을 결실하시는 때입니다. 동시에 타작 마당에서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엄중한 심판이 임하는 때입니다. 가라지는 다 모아 가지고 불에 태워 버리고 알곡만 모아두는 게 바로 타작 마당이죠. 그 추수의 때가 머지 않아 곧 온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지막 때까지 잠시 악인들과 음녀 바벨론을 놔두시지만 곧 머지않아 알곡과 가라지를 양과 염소를 가르시는 그 때가 속히 오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살라는 것이죠. 머지 않아 때가 되면 신기루와 같이 다 사라지게 하시고, 다 허물어지게 하신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그 뜻, 즉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을 모두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죠.이것이 바로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해가 마무리되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무겁고 중한 말씀을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라는 나라를 사용해 그 거대한 바벨론 음녀 바벨론을 치시고, 바벨론을 끌어 내리신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음녀 바벨론 딸이 미혹하는 것에 빠져 금잔과 술과 부유함과 풍요로움만 있으면 다 될 거 같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술에 취하듯 그 착각에 빠져 눈에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 매몰되고 이 세상 것에 모든 것을 쏟아 붇고 인생을 걸게 만듭니다. 머지 않아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모든 바벨론을 끌어내리시고 치시며 허물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대한 바벨론 제국도, 우리가 구하고 추구하며 저거 있으면 다 된다고 여기는 그 바벨론의 가치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다 허물어지고 무너지는 때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상을 넘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원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하심과 계획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나를 이끌고 가시는지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안경으로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실체와 영원한 가치를 믿는 성도가 이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는 방식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것을 믿고 우리는 그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상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며 그 뒤에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짐을 믿는 성도의 삶이 분명하기 원합니다. 섭리를 통해 하나님이 직접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영원한 것을 마음에 두고 뜻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50장 말씀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몽둥이로 잠시 쓰임 받은 바벨론조차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긴 분량을 할애해 증언하고 있고요. 그렇게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길게 증언하시는 이유는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은 곧 남유다의 구원과 회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심판은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과 회복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예레미야서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벨론의 심판 자체보다바벨론의 심판을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의 회복과 구원의 모습에 집중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바벨론을 심판하심으로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를 향한 구원과 회복의 모습을 세 가지로 요약하며 우리 신앙을 좀 점검했으면 좋겠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 소유됨을 분명히 믿는 회복입니다. 바벨론에 심판받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소유를 노략했기 때문이라 증언합니다. 하나님 소유된 하나님 백성 남유다를 노략한 것은 곧 하나님을 노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하나님 백성이라는 본질은 내가 하나님 소속이며 하나님 소유된 백성임을 분명히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신앙이 흐려지고 본질에서 멀어진다는 건 내가 열심히 안 산다는 것도 아니고 내 나름대로 노력 안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소유이고 하나님의 소속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게 신앙에서 멀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분주하고 복잡하게 살다보면 자꾸 본질에서 이탈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내가 가진 소유가 다 내 것인 냥 착각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내미시는 그 은혜의 손길을 바라보며 내 소속과 소유됨을 분명히 하기 원합니다. 신앙 회복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 소유된 백성임을, 내 인생이 하나님 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남유다 백성들에게 주시는 구원과 회복의 첫번째 메시지였음을 잊지 마십시오. 두 번째는 그 날을 준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신앙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건 하나님께서는 그 날이 우리에게 분명히 온다는 것을 믿고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날이 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밖에 있는 백성들, 은혜 밖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의 날입니다. 동시에 그 날은 하나님 안에 있는 백성, 은혜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날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계속 바벨론의 심판을 알려 주시는데 심판 받는 이유는 “여호와께 범죄함”이고 “행한대로 갚으시는 결과”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그 죄를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시고 행한 대로 모든 것을 처벌하시는 것이 바로 그 날에 임하는 심판입니다. 너희 마음대로 살고 그 행한 대로 그대로 갚아 주시는 게 바로 심판이라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 행한 대로 갚으시는 기준에 살아남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해서 하나님 앞에 행한 대로 다 갚으시면 우리 중에 거기서 살아남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날과 그때를 준비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붙드는 삶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죄악을 찾는데 죄가 없고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합니까? 우리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는 게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죽음 이후 어떻게 천국을 가게 됩니까? 내가 남들보다 좀 잘 살아서 내 행한 게 좀 나아서 가는 게 아니라,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를 눈과 같이 깨끗하게 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건 바로 이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하심을 구하고 신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날 그때에 천국에 들어가는 분명한 확신은 나를 용서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 있는 거지. 내가 잘 살아서 내 행함이 괜찮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신앙 회복입니다. 그 말은 지금 내가 잘 사는 거 같고, 남들보다 탁월하게 사는 거 같고 괜찮아 보이는데, 이 모든 게 내 인생이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어서 괜찮은 거지 내 스스로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내가 제대로 있는 건데 내가 괜찮아서 내가 스스로 잘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내 손을 안 잡아도 나를 붙들지 않아도 내가 괜찮을 것처럼 착각하고 살다 확 무너지고 자빠지는 겁니다. 나의 착각을 무너뜨리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신앙 회복일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손을 딱 놓는 순간 나는 자빠진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자각, 그게 바로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으로 회복되는 길입니다. 세 번째 우리 신앙의 회복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신앙 회복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처한 현실은 하나님을 떠나 흩어진 양과 같고, 하나님 아버지를 도망간 탕자와 같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하나님과 무관하게 산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을 나의 제자리인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부르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은혜를 통해 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양을 기르고 마음에 만족을 누리게 된다고 오늘 말씀은 증언합니다. 인생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구나…내 신앙의 본질도 결국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 하나님 안에서 나의 마음이 만족함을 누리는 것, 이게 바로 제자리 찾는 인생입니다. 바벨론의 심판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백성의 구원과 회복의 모습을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하나님 소유됨의 회복이 누려지기 원합니다. 하나님 신뢰함의 회복이 누려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은혜가 누려지기 원합니다. 우리는 내 자신과 내가 이루러 놓은 것을 확신하는 게 아닌, 나를 구원해 주시고 용서해 주신 분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겠다는 고백과 함께 그 만족함이 누려지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 삶에 제자리를 찾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나를 소유로 삼아 주신 분, 나를 용서하시는 분을 신뢰하며 주님께 돌아가 내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그 만족함이 내 마음에 풍성히 채워지는 은혜를 누리며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넘어 주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주셨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남유다를 포함해서 이방의 주변 나라들 또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선명히 증언하시면서 남유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라, 너희가 믿을 뿐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간절히 손을 내밀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방 나라들에 대한 모든 심판이 끝난 후에 심판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몽둥이로 쓰셨던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로 피크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부터는 하나님이 몽둥이로 사용하셨던 강대국인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아주 긴 분량을 할애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당시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선포하는 삶의 자리는 목을 내놓고 예언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당시에 바벨론은 가장 전성기, 세계에서 어느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초 강대국이었는데, 그런 바벨론이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예레미야에게는 목숨을 걸고 전하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는 남유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할 때도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전할 때도 또한 바벨론에게 목숨을 걸고 하는 예언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대가는 남유다에게서도 목숨의 위협을 받고 바벨론에게서도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받았던 오해는 무엇이었습니까? 남유다 백성들이 끊임없이 매국과 애국의 프레임으로 예레미야를 매국의 자리로 몰아갔던 오해입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해라….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바벨론의 말을 들으라… 했던 예언의 말씀으로 인해 예레미야 너는 매국노다…라는 오해와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 말씀의 끝은 결국 이 바벨론조차도 하나님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견해나 프레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 백성을 심판하는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신 것은 바벨론이 대단해서도 아니었고 바벨론이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도 아닌, 잠시 사용하신 몽둥이와 도구일 뿐이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몽둥이로 사용되는 도구였던 바벨론이 쓰임받는 동안에 정신 못 차리게 되니까 바벨론조차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내용은 굉장히 길고 여러 장을 할애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쳐들어와서 무너뜨린 그 강대국 바벨론이 얼마나 급작스럽게, 얼마나 무섭게 무너지고 멸망하게 되는가를 선명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대 망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라, 어느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세계 최강의 나라 바벨론이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그것도 확실하게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망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대신 섬기던 우상들과 신상들이 다 무너지고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벨론이 무너지게 되는가 하면, 한 나라가 북쪽에서 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게 한다는 겁니다. 북쪽에서 오는 한 나라가 바로 바사,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페르시아 바사라는 제국은 너무나 작은 미미한 나라였기에, 그 하나님의 심판이 페르시아를 통해 일어나 바벨론을 멸망시킬 거라는 것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북쪽으로부터 한 나라가 와서 결국 모든 바벨론을 멸망시키며 그 모든 것들이 무너뜨리게 될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 페르시아의 공격이 얼마나 심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정신 없이 도망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렇게 바벨론이 참담하게 급작스럽게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왜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중요한가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할 날이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구원받는 날이라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바벨론이 멸망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그때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이 멸망하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망할 것이라는 겁니다. 동시에 그 날은 포로로 갔던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회복되어 돌아오는 날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라는 선언입니다. 이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바벨론을 향한 심판과 멸망의 날이 결국 남유다 백성들의 구원과 회복과 돌아옴의 날이 되는 것을 분명히 알라 선포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망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를 잊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들을 다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날, 구원의 날, 회복의 날이 곧 오고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면서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며 하나님과 함께 연합하자… 영원한 언약을 붙들자…백성들이 외치는 그 날이 올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다시는 우리가 죄를 범하지 말고 불순종하지 말고 다시는 하나님과 떨어지지 말자….고백하는 그 날이 올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구원과 회복의 날입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외에 영원한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초강대국 바벨론도 한때 쓰임받는 몽둥이었다가 결국 심판받고 멸망 당하게 되는 것을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또한 바벨론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의 구원과 회복의 날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바벨론에 멸망하고 무너지는 날은 망하는 남유다 백성들이 구원받는 날이고 회복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그 당시의 눈으로는 바벨론이 망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남유다 백성들의 구원과 회복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시며 말씀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내 견해나 프레임으로 가두고 해석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상황이나 환경에 가두고 일어나지 않을 일로 단정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올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반드시 그날이 온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살기 원합니다. 바라기는 상황과 환경이 이끄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이끄는 그 믿음의 길을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과 함께 주변에 여러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언을 계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게달과 하솔과 엘람이라는 나라들은 솔직히 우리가 별로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입니다. 애굽이나 블레셋이나, 모압이나 압몬, 다메색 같은 나라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에도 자주 언급되는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게달과 하솔과 엘람은 성경에도 잘 등장하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나라들인데, 그런 나라들을 향해 하나님께선 콕 집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큰 나라와 큰 일에 집중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작은 일들과 작은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별로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이 작은 나라들이 아니고, 작은 일들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동시에 이런 작은 나라들 또한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게달과 하솔에 대한 심판이 앞부분에 등장을 하는데 게달은 이스라엘의 동남 쪽에 거주했던 작은 부족 국가로 알려져 있고 하솔은 아라비아 지역에 추정되는 작은 부족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작은 부족국가로 대규모로 양을 치면서 인접한 항구 도시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역의 큰 도시를 끼는 중간상인의 역할을 하며 살았던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왜 게달이나 하솔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백성들이 되었는가? 그들의 작은 유목민이자 중간 상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 변해 가만히 있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도둑질하고 탈취하고 빼앗는 삶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길을 가다 강도 만난 자들을 만나듯, 길가는 자들 협박해 가지고 강탈하는 그런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물질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주변의 나라들에게 도둑질과 노약과 탈취하는 것을 일삼으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백성들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내 주변의 것을 도둑질하고 노략질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를 게달과 하솔에 보내셔서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을 예고하고 계신 겁니다. 그들의 악함과 물질에 대한 탐욕, 주변 나라들을 도둑질하고 노략질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무너지게 하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엘람은 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까? 엘람의 본질적인 심판 원인을 엘람의 힘에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라 증언합니다. 엘람은 그 당시에 자신들의 힘을 자랑스러워 하며 살았던 자입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했으니 그들의 활을 꺾을 자가 없다 착각하며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며 살았던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며 자신의 활과 군사력을 의지하며 그것이 나를 지키는 것처럼 살았던 자들이 바로 엘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이 세상에서 내 힘을 의지하고 군사력을 의지하고 붙들고 살아가며 그것을 자랑과 교만의 근거로 살아가는 엘람은 결국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심판을 받는 것이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기력한 것인가를 철저히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엘람의 힘에 으뜸가는 활을 다 꺾어 버리시겠다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의 교만의 증거, 그들의 자랑거리, 그들이 붙들고 있었던 그 힘을 다 꺾어 버리심으로 사방에서 밀려오는 심판을 막아대지 못하고 결국 온 세상으로 흩어지는 백성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이 세 나라 그달과 하솔과 엘람의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신 단 한 가지는 즉시 도망가라는 거였습니다. 지체 말고 피하고 도망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고 거기서 빨리 피하고 도망가는 자는 순종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며 피하고 도망가라는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무시하면 결국 그들에게 심판과 멸망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달과 하솔과 엘람이 심판 받았던 이유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내 이익과 나의 필요를 위해 주변 사람 것을 노약질하고 도둑질하고 빼앗는 것을 일삼는 이런 하나님께 범죄하는 모습들…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세상을 의지하고 눈에 보이는 힘을 의지하고 내 자신을 의지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군사력을 붙들고 나는 괜찮고 대단하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그런 삶….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심각한 범죄이자 무너져야 되고 허물어야 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하시고 계심을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들, 그달과 하솔과 엘람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통하여 강함이 우리를 지키는 힘이 아니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하는 바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오래 가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강하고 힘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 바르고 순전한 백성과 나라와 백성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될 길이라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도망하라 피하라 말씀하시는 이 경고의 음성을 듣고 애굽으로부터 도망가야 사는 거고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고 피해야 사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생명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것은 생명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외면한 자들은 생명을 은혜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잊지 않으며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 길에 머물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남유다가 멸망할 것에 대한 예언을 주시고 동시에 그 심판은 남유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나라로 확대될 것에 대한예언도 주셨습니다. 남유다가 의지했던 애굽도 멸망할 것이며, 남유다를 괴롭혔던 나라들도 하나하나씩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하시면서 하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우주와 만문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남유다 백성들에게 너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누군가를 분명히 알라 선포하시며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큰 그림의 연장 선상에서 오늘 말씀은 다메색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다메색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다메색 그러면 다마스커스로 더 유명한 도시로,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아람 왕국의 수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메섹은 아람 전체를 대표하는 큰 도시였습니다. 처음으로 다메색이라는 곳이 성경에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을 분명히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포기하듯이 하소연하며 말한 것이 내 몸에서 난 아들은 바라지 않으니까 내 상속자는 나의 종인 다메색 사람 엘리에셀이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었는 엘리에섹이 바로 다메색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메섹이 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는가? 오늘 말씀은 굉장히 짧은 말씀이어서 왜 다메색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지 않으나 우리가 다른 예언서의 말씀을 보게 되면 왜 다메색이 심판을 받게 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이사야 17장에도 등장하고 아모스 1장에도 등장하는데 다메색이 왜 심판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1장을 보게 되면 다메섹은 늘 힘과 무력을 가지고 주변 나라들을 괴롭히는 것을 늘 낙으로 살았던 백성들이었습니다. 즉 주변 나라들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혀 늘 괴롭히고 공격하였다는 것이죠. 예로부터 다메색은 군사적, 상업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굉장히 큰 도시였습니다. 다메색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은 쇠악해지고 분열되는데 다메색은 커져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가 됩니다. 나중에는 남유다의 침략을 위해서 북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도 하는 나라가 되는 게 바로 다메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굉장히 포악하고 험악하며 무력을 잘 쓰는 나라로, 굉장히 호전적이고 폭력적이고 늘 괴롭히는 나라였습니다. 다메색은 그렇게 번영하고 축복과 물질이 가득한 그런 도시였는데 그 도시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경쟁하고 침략하고 괴롭히는 나라가 되며 눈에 보이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붙들고 세상의 즐거움만 따라간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고, 그렇게 호전적으로 주변 나라들을 괴롭히고 하나님 백성들을 힘들게 했던 다메섹,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다메색이 실제로 망하는 때를 보게 되면 정말 종이 호랑이 같았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굉장히 사람들이 싸움 잘할 거 같이 호전적이었는데, 겉으로는 매우 용감해 보였는데, 겉보기와 너무 달랐던 종이 호랑이, 그게 바로 다메색이었다는 겁니다. 다메섹에 심판이 아직 임하지 않았고 망한다는 소문만 돌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심판이 아직 임하지도 않았는데 그 소문으로도 간담이 녹았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소문만 듣고 낙담하며 손발이 벌벌 떨며 평안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다메색을 심판하는 날에 그들이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을 당하듯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며 망하게 될 것을 선명히 보여주십니다. 장정들은 쓰러지고 군사들은 멸절하며 온 땅이 불타게 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메색은 아람의 핵심 도시로 한 때는 강성했고 한 때는 대단했고, 돈과 사람들이 모여는 중심도시였는데, 그 도성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겉으로 대단해 보이는 도시가 종이호랑이가 되어 망하는 건 한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니까 망하는 게 한 순간이고,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더라는 겁니다. 다메색이 한 순간에 심판을 받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건 무엇이겠습니까? 진짜 두려워하고 의식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라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야 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엄중히 묻고 계십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겉으로 대단해 보이고 힘있는 자들입니까? 우리보다 강한 주변 나라들입니까?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다메색도 그들이 망할 거라는 소문만 듣고도 낙심하여 벌벌 떠는 종이 호랑이었습니다. 바람 한번 불면 다 무너지는 추풍 낙엽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두려워야 될 것은 사람들도 주변 나라들도 아닌 바로 여호와 하나님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그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에 서 있지 않음을 두려워해야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거나, 주변 사람들이나 나라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진정으로 두려워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에서 벗어나 있음을,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지 않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 하나님 없이 세운 모든 부와 명예와 강한 군사력들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무너지고 흩어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절대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하나님을 붙들지 않는 자들의 몰락, 하나님을 붙들지 않는 나라들의 몰락이 정말 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 좀 있다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그 대단한 나라가 하나님께서 바람 한 번 불게 하시면 부르시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겁니다. 온 세상과 우주의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며 주님만 바라보며 그 은혜 가운데 돌아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길 위에서 있지 않음을 두려워하며 아무리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이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으면 무너지고 망할 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껍데기를 절대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곧 사라지는 안개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만을 붙들고 하나님의 길 위에 서서 은혜 가운데 걸어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압과 암몬의 심판에 이어 오늘 말씀은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열방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주고 계시는 것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열방과 만방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돔 백성은 잘 아시지만 야곱의 형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니까 야곱과 형제의 자손이니 모압이나 암몬과 마찬가지로 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가까이에 있는 형제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고, 어렵게 하고 괴롭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왜 에돔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리하며 이것을 우리의 마음에 비춰보면 좋겠습니다. 왜 형제의 나라였던 에돔이 결국 그렇게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 첫번째 이유는 바로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에돔에 대해서 지혜란 말이 반복해서 나오냐 하면 그들은 스스로 대단히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그 지혜는 내 머리에서 나오는 지혜이며 내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지혜를 거절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롭다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면서 내가 지혜롭다고 생각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인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는 자들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인생을 어둠 가운데 끝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지 않는 비결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잊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나를 비춰보면 내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없이는 나는 스스로 깨달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며 주님의 지혜만을 구하며 붙들며 살아가는 삶이 나를 생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고 그 착각이 허물어지는 역사가 있을 때 우리 삶에 삶의 빛이 임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에돔이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고아와 과부를 버리고 함부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엔 약한 자들, 소위 말하면 안 중요한 사람들,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자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을 성경은 고아와 과부들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해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조롱하거나 무관하거나 그들의 등을 처먹는 경우가 많은데, 에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고아들과 과부들을 버려도 상관없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돌보니라고 주변에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지 않았고 그들을 버려도 상관 없는 존재 정도로 여긴 겁니다. 고아와 과부가 죽어도 상관 없고 버려도 상관 없는, 이웃과 무관한 존재로 살아간 백성이 바로 에돔이었습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에돔이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돔은 심판하시는데 고아들과 과부들을 주님이 살리신다는 거예요. 에돔을 심판하시면서 에돔이 버렸던 고아들은 내가 살린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과부들은 나를 의지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데, 우리가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데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모릅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껍데기를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거죠. 스스로 지혜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결국 심판을 당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시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에돔이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겁니다. 내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다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사실 이 세가지가 다 연결되어 있죠.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뭐를 의지하는 겁니까? 산꼭대기에 성을 지어놓고 나는 스스로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그걸 의지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기에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그 산꼭대기를 의지하고 거기에 지은 성을 의지하며 스스로 나는 엄청 대단한 것처럼 마음에 교만이 찾아와 우리를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게 하나님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공통 분모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결국 세상을 의지하게 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눈에 보이는 껍데기를 의지하며 교만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속이게 되는 것이죠. 그런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겁니까? 너희를 끌어내린다는 거예요. 그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평안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서 우리를 끌어내리신다는 것이죠. 이 에돔의 세 가지 심판 받는 이유는 우리를 향해서도 엄중히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고 약자를 버리고 함부로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교만한 이런 인생을 버리고 벗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이 세 가지의 심판 받는 이유와 함께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결론과 같은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나를 향한, 우리 공동체를 향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주의 결심하신 계획 이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이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끊임없이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구하는 건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때문임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붙들기 원합니다. 내 주변에 나를 돌보느라고 버려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주변 이웃에 대해 무관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에게도 무관한 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주변의 약한 이웃들에 대해 관심 가지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않는 것이 에돔의 심판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될 중요한 삶의 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만이 우리를 살리는 참 지혜임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 아는 지식에 열망하며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그 계획과 의도대로 조율되어 주님의 길을 뒤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만 관심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하나님은 온 백성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도 주의 관심 가운데 있으며 신자들만이 아니라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관심 가운데 있음을 알려 주시는 놀라운 말씀이 여러 주변 나라들에 대한 예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압의 심판 이후에 등장하는 암몬에 대한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암몬 자손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즉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형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도 하고 하나님의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던 형제의 나라가 바로 암몬 족속입니다. 그런 암몬 족속이 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직면하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 암몬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던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향하여 중보 기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압 자손을 통해서도 배웠지만 주변 사람들이 힘들 때 많은 사람들은 조롱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아이고 저 샘통이다. 저럴 줄 알았다… 그러면서 조롱하는 자들,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있냐 하면 아예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나와 상관없이 무관한 자들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힘들던 어렵던, 고통 당하면서 끌려가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보다 더 최악인 사람들이 있는데, 힘든 이웃의 등을 쳐먹는 사람들입니다. 안 그래도 힘들어서 버티기 어려운데 그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기름 부으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암몬 자손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너무나 어려운 상황 가운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에 암몬 자손들은 그 이스라엘의 등을 쳐서 땅을 불법 점령하는 그런 악한 일을 범했습니다. 1절에서 증언하는 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 했던 암몬의 악행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공격을 당해 어려울 때, 암몬이 갓지파가 분배받았던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여 땅을 차지한 겁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을 그들이 몰래 가로채는 일을 했던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대적하고 등쳐 먹는 일을 했던 것이 역사적으로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길을 비켜주지 않았던 민족이 바로 암몬 족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벨론 포로에 끌려간 다음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할 때도 남유다 백성들을 방해하는 자들이 바로 암몬 자손들이었습니다. 이 압몬 자손은 형제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며, 특별히 약하고 어려울 때 등쳐먹는 인생,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암몬 자손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대적하는 세력이 된 것에 대해 하나님은 엄중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게 바로 암몬 자손이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라는 것을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암몬 자손이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기들의 난공불락의 성벽과 재력을 자랑하며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암몬 지역은 굉장히 산세가 험해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성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방어하기 쉬운 곳이죠. 난공블락의 성을 만들면서 이렇게 어려운 험한 지형에 누가 와서 우리를 공격할 거야? 우리는 누구도 공격할 수 없어…이 성이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 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을 바라보며 자신감이 생겼고 우리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겁니다. 동시에 그들은 가진 돈과 재물을 의뢰하는 겁니다. 우리는 돈도 많고 힘도 많고 우리가 지은 성은 난공블락이야….교만함으로 자랑하고 결국 난공 불락의 성과 돈을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흔드시면 그 난공불락의 성이 속절 없이 무너질텐데, 재물도 한번 거두어 가시면 끝인데 거기에 나의 인생을 걸고 그게 안전할 거라고 착각하며 그것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는 가짜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다 허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내 사방에서 너에게 오게 한다는 겁니다. 안전하다고 붙들고 있던 것들,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을 싹 흔드시면서 두려움이 사방으로부터 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것들을 허무시면서 너희가 의지하고 붙들었던 재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너희가 안전하다 여기는 난공불락의 성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게 하겠다는 겁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교만에 대해서 지적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교만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 아닌 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며 사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 주는 것을 자랑하면서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면서 그게 나를 지키고 나를 안전하게 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 좀 많게 되면 돈이 좀 많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 말씀 같이 돈과 재물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돈이 많으면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돈이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착각합니다. 탄탄하고 큰 건물을 지어 놓으면 저 건물이 저 성이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돈을 자랑하고 돈을 의지하며, 하나님 대신 난공블락의 성을 의지하고 성을 자랑하며 살아가게 되는게 교만의 폐혜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암몬 자손은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 두 가지가 암몬 자손을 향한 심판의 경고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라고 믿습니다. 주변 이웃들의 어려움에 등쳐먹는 인생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피눈물 흘리고 있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거나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절대 관망하지 아니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세상 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며,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고 착각하는 그 삶의 태도가 하나님 앞에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대신 내가 가진 돈을 자랑하고 내가 세운 난공블락의 성을 자랑하며 그걸 의지하는 삶이 결국 교만으로 패망하는 지름길임을 말씀을 통해 깊이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돈이나 내가 지은 성벽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주 안에서 참된 안식과 안전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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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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