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절호의 찬스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울왕을 단칼에 죽일 수 있는,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붙들고 사울 왕을 죽이지 않는 영적인 결단과 순전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울 왕이 굴 밖으로 나가고 나니까 사울왕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며 그렇게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다윗이 왕을 죽이려 한다라는 소문과 루머가 퍼졌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잘못된 말이기도 했고 동시에 사울왕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을 평생 원수로 삼기 위해 본인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건을 통하여 증명된 것은 뭐냐 하면 다윗은 사울왕을 죽이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 다윗이 자기 손을 들어 피를 묻히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인격이 잘 수양 되서가 아니라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중심에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 기준과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중하게 여기고 내 손을 들어 해야 하지 않는 영적인 결단과 분별력을 정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울왕에게 내가 죽이지 않고 이렇게 옷자락만 내가 베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데, 이 고백을 들으며 사울왕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옷이 찢어지고, 옷이 베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란 이유는, 예전에 사무엘을 통해 들은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두번이나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왕을 버리기로 결정하시면서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시죠. 이제 내가 너를 버릴거다…그때 사울 왕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들고 애원을 했고 사울이 붙들었던 사무엘의 겉옷자락이 찢어졌습니다. 그 찢어진 옷 자락을 보며 사무엘이 이스라엘 나라를 사울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었다고 선포합니다. 다윗은이 사건을 알지 못하지만 사울 왕은 이것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때 했던 사무엘의 예언이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사울왕의 옷자락을 베고 들고 있는 것을 통하여 그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영적인 의미이며 사울왕에게는 얼마나 그것이 소름 끼치는 일이었는지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윗의 분명한 영적 분별력과 하나님 말씀을 붙드는 결단,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놀라운 일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다윗의 삶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삶, 사람들의 기쁨 되는데 모든 것을 쏟는게 아니라 나의 기쁨 되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기쁨 될까를 고민하는 삶,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삶이 아니라 내 인생을 주님의 뜻에 조율하는 삶,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다윗의 삶이었습니다. 그 마음 속의 속마음이 이렇게 주님께 합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으며 자신의 감정과 이 솟구치는 분노를 다 잠재우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준을 붙들고 죽이지 않았던 놀라운 비결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고백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의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하는데 바로 갚아주심, 풀어주심, 건져주심..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갚아주심을 고백합니다. 내가 갚는 인생 아니라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인생이라는 것을 믿는 겁니다. 내가 모든 것을 갚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갚아 주심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다윗의 놀라운 고백입니다. 두번 째,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살다보면 다윗과 같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는 겁니다. 나도 감정 있고 힘도 있고 다 보복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실 거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내 마음을 쏟아내며 십자가 밑에 다 내려 놓는 것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악인에게서, 어려움과 눈물에서 건져 주심을 믿고 붙드는 것입니다. 그냥 머리로 믿는 게 아니라 삶을 통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는 테스트를 하신 겁니다. 사람과 환경과 내 감정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삶으로 영적 결단을 함으로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음을 다윗 속에서 그대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사울왕이 내 수중에 들어와 있는데도 내 감정은 지금 죽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손대지 않고 죽이지 않고 그를 가만히 놔두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세 가지의 놀라운 하나님에 대한 고백, 하나님이 나를 갚아 주심, 억울함을 풀어주심, 고난에서 건져 주심을 우리 마음속에도 선명히 새기며 우리가 만난 하나님으로 고백되기 원합니다. 다윗과 같이 내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광야 가운데 분명해져서 내 어깨에 힘이 빠지고 영적으로 겸손해지며, 영적 시야가 분명해져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고, 나를 움직이는 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되는 놀라운 은혜를 현재형으로 경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23장 말씀은 다윗이 거의 독 안에 든 쥐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잡히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보내셔서 어쩔 수 없이 사울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잡은거나 마찬가지인 다윗을 놓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정반대로 사울왕이 거의 굴 안에 든 쥐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전개 됩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영적으로 분별하고 행동하는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를 쫓아가서 싸우고 끝나자마자 다시 사울왕은 다윗을 찾으러 옵니다. 그냥 다윗을 찾기 위해 모든 것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때 또 한 명의 간신이 사울 왕에게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것을 밀고 하게 됩니다. 사울 왕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간신배들은 사울에게 빌붙어서 사울이 원하는 것들을 제공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 3000명을 이끌고 추격해 갑니다. 다윗에게 600명 정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600명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5배수인 3000명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윗과 그의 사람 600명을 죽이기 위해 3천명을 전국에서 다 모아 가지고 최고의 정예 부대를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윗이 있을 만한 곳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지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어디 있었냐면 사울왕의 군대가 있는 동굴 깊은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3000명의 군대가 굴 밖에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 군대가 들어오는 순간 자신들은 도망갈 데가 없으니까 몰살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3000명의 군대와 사울왕이 저 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들을 발견만 하면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고 숨죽이고 벌벌 떨면서 있었는데 거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사울왕이 혼자 굴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용변을 보러 군대는 밖에 둔 채 혼자 사울왕이 들어온 겁니다. 지금 자신들은 죽었다 생각했던 다윗의 사람들, 이제 우리는 사울 왕의 손에 죽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마음에 터질 수 없는 분노와 떨림과 흥분이 있었던 것이죠. 사울왕이 혼자 용변을 보러 굴 안으로 들어온 이 상황이 다윗의 측근들에게는 모두 뭐라고 느껴졌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우리를 그렇게 피말리게 했던 사울왕을 우리 손에 붙이신 절호의 찬스라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측근이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칼을 들어 치시라고…부추기며 말합니다. 그 동안 사울왕 때문에 도망자로서 당한 고생과 피눈물을 생각하면 손이 부들부들 부들 떨리는데, 우물 안에 든 쥐와 같은 사울왕을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찬스에 고민하지 않고 당장 처단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시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다윗과 그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피눈물을 지나왔습니까? 얼마나 어려운 고난의 길 눈물의 길 도망자의 길을 갔습니까... 다윗의 입장에서도 지금 죽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이 들겠습니까? 지금 당장 눈 딱 감고 한번 칼로만 치면 그동안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사울왕이 그대로 끝나는데….머리 위까지 죽이고 싶은 충동이 다윗에게도 막 올라왔을 거예요. 그 상황이 어렵고 절박하다는 것을 다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것이 여호와께서 사울을 죽이고자 허락하신 하나님이 주신 그 날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측근들은 얼마 전에 기브아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가려고 다윗이 고민할 때 모두 나가 싸우는 것을 반대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거기 내려가면 우리가 위험해지고 우리의 위치가 노출되니까 가면 안된다고…큰일난다고 다 막았던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귀해 보이지만 그것은 때로는 영적인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다윗의 측근들이 모두 이 날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며 행동을 촉구할 때,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이 이끄는 결정, 거기에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서 하는 결국 감정에 휩쓸리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다윗은 분별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은 그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사울왕을 죽이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울왕이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이 상황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다윗의 측근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했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눈으로 바라봤을 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테스트였다는 것을 다윗은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세우고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내 손으로 죽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순간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것이 절호의 찬스라고 막 북추기고 있는데 내 분노와 억울한 감정이 이끄는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이 기뻐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근거로 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죽이고 싶은 나의 충동과 욕망을 다 꼭꼭 누른 채 죽이지 않고 겉옷만 살짝 베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목을 뵙고 싶고 딱 처단하고 모든 걸 끝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었고요. 내 육신의 열망을 죽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만을 신뢰함으로 결정하며 나아가는 위대한 다윗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것은, 영적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민심을 거슬러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민심이 원하는 거와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있다는 그 순간을 분별하는 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눈 딱 감고 죽이고 싶은 충동,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충동,목을 베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에 확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부추기는 그런 상황으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기에는 절호의 기회인 것 같은데 그 때를 잘 분별하여 내 감정이 이끄는대로, 사람들이 몰아가는 대로 결정하는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며 영적 원리를 붙들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 원합니다. 내 충동과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호와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내가 처단하지 않겠다는 하나님 말씀의 원칙을 붙들며 자기의 칼을 내려놓는 다윗의 모습을 저와 여러분들은 마음에 새기며 배우기 원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결정은 분노와 억울함이 이끄는 결정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며 선호하는 민심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결정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는 영적인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사울왕은 다윗을 쫓고 있고 다윗은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도망자 신세로 이곳저곳을 도망가고 있습니다. 사실 아둘람 굴에 잘 숨어 있었는데 기브아 사람들을 때문에 자기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고 그 백성들을 구원 했었고 결국 그것 때문에 또 다른 곳으로 숨어가서 십광야 수풀에 숨어있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십광야 수풀에 숨은 다윗에게 목숨 걸고 찾아온 진짜 친구 요나단은 다윗으로 하여금 그 절망스러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도와준 귀한 친구였습니다. 이런 귀한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다윗을 등돌리고 배신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었던. 그 대표로 십광야 사람들이 사울왕에게 다윗이 숨어있는 위치를 고발하는 겁니다. 다윗은 전국 지명 수배자이니 그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게 우리 의무라고 말하니 사울왕의 귀에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을 한 사람들에게 사울왕은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참 가슴 아프면서도 씁쓸한 얘기인 게, 사울왕 자신은 여호와의 복을 걷어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함께하지 않고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가 사울왕입니다. 하나님이 싸우라는 주적인 아말렉이나 블레셋은 뒤로 한 채 자기가 설정한 한 팀의 다윗, 자신의 사위이자 호위무사인 다윗을 평생의 원수로 삼으며 모든 분노와 질투를 쏟아붓고 있는 자가 사울 왕입니다.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제사장과 그 가족을 말도 안 되게 몰살하고 진멸한 자가 사울 왕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울왕의 입술에서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코미디 중의 코미디입니다. 마음은 하나도 없이 입술로만 고백하는 공허한 메아리이자, 여호와를 망령되이 행하는 대표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왕의 이 말을 통하여 십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의 복을 받았겠습니까?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는 그 말을 통해 과연 그 사람들이 복을 받았겠냐는 것이죠. 사울왕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앙이 익숙해지는 것이 귀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데 믿으려는 마음과 의지도 없는데,믿음 믿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도 없이 아멘 아멘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터져 나오는 마음 없고 의미없는 반복 구호일 뿐입니다. 그게 오늘 사울왕과 같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 없는 말 잔치만 되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익숙해지는 것을 통하여 마음이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깨어 있지 않으면 이렇게 사울왕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며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사울 왕은 그렇게 다윗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고 이제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잡으려고 내려갑니다. 상황이 다윗에게는 위치가 노출되어 잡히기 일보 직전인 큰 위기입니다. 다윗이 피하는 족족 사울왕이 쫓아오고, 도망가면 또 쫓아오고…당연히 사울과 그의 군대가 훨씬 기동력이 빠르겠죠.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소위 말하는 정규군이었으니까…급히 피하는데도 사울과 그의 군대가 지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소위 말하는 포위되어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거의 게임은 끝나고 다윗이 사울의 손에 잡히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냐 하면 마침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온 겁니다. 지금 당장 사울왕이 빨리 가서 그 블레셋 사람들을 대항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되 버린 거예요 그래서 사울의 입장에선 눈앞에 지금 다윗을 두고 어쩔 수 없이 잡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에워싸서 다윗을 잡기 일보 직전 이었는데 왜 하필 그때 블레셋 군대가 그렇게 쳐들어왔는가?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운이 좋았다, 혹은 우연이라고 말합니다만, 믿음의 사람들은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이 다윗을 건져 주신 은혜의 손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보내서 사울 왕이 다윗을 잡지 못하도록 마침 그때에 치러 내려오게 허락하신 것이죠. 사울 왕이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기 일보 직전이어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시고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나단과 같이 나에게 믿음으로 나를 지켜주고 나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고 하고, 힘들게 하고 나를 배신하며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힘주고 나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는 그 믿음의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또한, 내 삶이 힘들고 어렵고 적에게 우겨쌈을 당하여 에워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손길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믿고 고백하십시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손길과 보호하심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믿으며 살아가십시오. 내 영혼이 민감해지며 영혼이 깨어 주님께 조율된다는 것은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열납되기를 정말 사모하며 나의 입술과 마음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공허하게 망령되이 사용하지 않으며 내 마음과 열정, 나의 우선순위를 드리며 정말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고 간구하십시오.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붙들고 주님을 힘있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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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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