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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주제가 메시야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불신자가 성경의 전체 주제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메시야 그리스도의 오심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약은 약속대로 오실 메시아, 신약은 약속대로 오신 메시아,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다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체적으로 한 주제, 메시야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는 약속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3장 앞부분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을 때 응답으로 주실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주신 말씀을 전하면서 빅픽처를 본인은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남유다의 바벨론 포로된 상황에서 그들을 풀어 주셔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이상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약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크고 은밀한 일을 성취한다는 것은 바로 약속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그날을 통하여 성취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크고 은밀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살리시기 원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첫번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바로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죄인이라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고 심판 받은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하는데서 살 소망이 열리는 겁니다. 죄를 지적하는 것은 마음을 힘들게 하고 부대끼게 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죄에 대한 지적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병원에 갔는데 환자가 마음이 불편할까 봐 병명을 말해 주지 않는 의사가 있다면 그 의사는 직무 유기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고 심지어 환자가 눈물을 흘려도 그 환자의 상태와 병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진단하는 것이 의사의 임무이고 그걸 통하여 결국은 환자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죄 문제를 지적하시는 이유는 그 영적인 병인 죄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진단받는 것만이 결국 그들이 살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영적 상태가 정의와 공의와 언약이 다 무너지고 깨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그들이 망하고 심판받고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선한 말이자 살리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영적 상황과 처지를 자각하고 인정하고 나면 살 길이 열린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심판과 포로됨이 끝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하나님의 그 때가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약을 선물로 받아서 이 말씀을 듣고 다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이 말씀은 바로 다윗의 한 공의로운 가지 즉 약속의 메시아가 나게 될 것이고,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 약속의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시는게 뭐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회복시키시는 건 세 가지인데 하늘의 정의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회복시키는 겁니다. 이 세 가지를 회복시키는데 모든 전제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의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의 자리에서 가장 원하는 소망은 바벨론 포로됨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회복이고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때가 되어 이루어 주실 텐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은밀한 이루는 성취는 그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그림을 훨씬 넘어서는 놀라운 역사임을 분명히 보이시는 겁니다. 그것은 단순히 바벨론 포로됨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포로됨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이 회복되며 하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며, 주의 언약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의 포로됨을 바라보며 그들의 죄 문제로 말미암아 그들의 정의와 공의와 언약이 다 깨졌구나… 이것 때문에 그들이 망하고 심판 받았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방법 또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정의와 공의와 언약을 회복시키시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되며 그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영원 불변하게 있게 되는 놀라운 새로운 약속을 통해 성취됨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원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을 통해 이루게 되실 새로운 신약의 시대, 크고 놀라운 은밀한 일의 성취라는 것을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는 셀 수 없이 많듯 다윗의 자손과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신약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주님의 몸된 성도와 교회가 번성하게 될 거라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에 모시고 섬기는 그의 백성과 그의 몸 된 교회가 번성하게 되고 뻗어가게 되며 이스라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될 거라는 것을 이렇게 구약에서 약속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어둡고 힘들지만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 붙들고 우리는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납득할 만하고 규정하는 정의와 공의가 임하기를 계속 원합니다. 주님, 주님은 이런 식으로 공의와 정의를 이루셔야 됩니다….내가 이해하고 수용할 만한, 내가 박수치는 정의와 공의를 외치는데 예수님께서 가져오실 정의와 공의는 내 이해와 규정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다스림이 회복되는 하늘의 정의와 공의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정의와 공의는 그리스도가 나에게 오심입니다. 나의 인생의 유일한 해답은 결국 그리스도가 오심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지만 그날을 기대하고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 날이란 바로 다 무너졌던 하늘의 정의와 공의와 언약이 회복되는 날이며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포로됨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주 안에 거하는 날입니다. 선한 말을 성취하는 날, 이게 바로 크고 은밀한 일을 성취하시게 될 그날에 약속의 메시아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그분을 통하여 하늘의 정의와 공의가 회복되며 영원한 언약이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내 마음에도 이 세상에도 놀라운 일이 이루어짐을 믿으며 오늘도 그분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 약속하신 가장 크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일이 내 인생에 우리 교회에 풀어지기를 사모하며 주님이 오심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말씀하신 그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는 부분입니다. 바로 임박한 심판과 심판 이후의 구원과 회복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베푸실 크고 은밀한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부르짖고 붙들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이 누구신가를 마음에 품고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내 기도 제목을 아뢰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기억하고 바라보는 겁니다. 부르짖는 대상이 분명하고 기도의 대상이 분명하며 그 기도의 대상 앞에 내가 엎드려 나는 주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 찾아 다니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다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붙드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이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붙드는 이유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그 크고 은밀한 놀라운 일을 보이시는게 무엇인가? 바로 심판, 구원과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임박한 심판의 말씀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성을 허물겠다. 그 성을 시체로 가득 채우겠다. 성으로부터 여호와의 얼굴을 가리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가 이렇게 처참하게 불타고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가리셨기 때문이며 그 성을 헐고 성을 시체로 가득 채우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들이 오죽 악했으면 그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악했으면 이렇게 하시기로 결정하셨겠습니까?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며 결국 그것이 너희에게 전화위 복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해 주셨는데 남유다 백성들을 불순종하며 듣기를 거절합니다. 그 진리의 소리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가두고 끝까지 갈대아인 바벨론 군대와 대항하여 싸우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바벨론은 하나님의 몽둥이었기 때문에 그 성은 완전히 헐어지고 성은 시체로 가득 채워지며 성으로부터 하나님의 얼굴을 가려 완전히 무너지고 자빠지게 되는 큰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말씀을 전해주어도 듣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들은 끔찍한 심판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 크고 은밀한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크고 놀라운 은밀한 일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말씀이 세 가지였는데, 회복과 구원에 대한 말씀은 다섯 가지입니다. 치료하신다, 즉 고쳐서 낫게 하신다는 거예요. 평안과 진실이 풍성하게 드러나게 하실 것이다. 포로에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내게 범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다…이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약속입니다. 완전히 심판으로 멸망한 그 땅이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땅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이 하나님의 크고 놀랍고 은밀한 일인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남유다만의 회복이 아니라 북 이스라엘의 회복도 반드시 있을 것을 강조하시며 그 회복된 성읍이 모든 민족들 앞에 기쁨이 될 것을,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크고 은밀한 일의 성취이며 응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다 있으십니다. 놀랍게도 70년 뒤에 남유다 백성들은 포로 생활에서 자유를 주시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더 크고 놀랍고 은밀한 일, 이 모든 것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깨닫지 못하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실 크고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치료하시고 고치시며 평안과 진실이 풍성하게 하시며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며 모든 죄악을 사하시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실 놀라운 역사인 것입니다. 어둠과 멸망을 향해 가는 이 세상에서 구원을 주시는 크고 놀랍고 은밀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포로 생활과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은 단순히 혈통으로서의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에 결박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그 죄와 사망의 포로됨에서 자유케 하셔서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되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치유하시고, 예수 이름으로 고치시며, 예수 이름으로 포로에서 자유케 하시며, 예수 이름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시며, 예수 이름으로 그들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는 것, 이것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으로 이 세상에 펼쳐질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크고 은밀한 일의 성취이자 응답임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자유케 하실 그 약속은 결국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실 놀라운 일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와 사망의 포로에서 자유케 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는 것을 통하여 모든 것을 제자리로 회복시키시는 새로운 창조가 예수 안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옛 자아는 가고 십자가에서 모두 못 박히며 새로운 자아가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그 새창조의 역사, 이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풀어내는 그 놀라운 비밀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가운데 하나하나 깨달아지는 기쁨을 누리기 원합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계획을 하나님은 갖고 계시고,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는 다 이루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일을 완성하셨고 그 크고 비밀한 일을 우리가 부르짖을 때 알게 하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 그 놀라운 하나님 나라 회복의 예언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분명한 약속으로 새겨지고 고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33장은 아마도 예레미야 말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별히 33장 3절은 기도를 한다는 사람은 아마 암송하고 있는 분들도 많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말씀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 구절이 얼마나 유명하면 기도할 때 333 기도라고 별명이 붙여 있을 정도로 익숙하고 친숙한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나는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이 한 절을 딱 붙들고 기도에 올인하고 수많은 성도들에게 기도의 능력을 붙드는데 놀랍게 쓰임 받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렇게 3절 한 절만 딱 떼어서 보지 않고 이 전체 맥락을 좀 바라보면서 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말씀이 어떤 배경에 나왔고, 그 부르짖음을 통해 약속하신 응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이 말씀의 배경은 바로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 이 놀라운 말씀을 주실 때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습니까?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아 왕이 예레미야를 잡아 투옥 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유다가 빨리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너희를 살리는 길이라는 진짜 말씀을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저 매국노 온 나라의 원수를 잡아넣어라…그래서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힌 겁니다. 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거스르게 하는 겁니다. 백성들이 기대하고 규정하는 하나님은 이렇게 하셔야 된다는 것에 맞지 않는 겁니다. 그 참 진리의 말씀을 거절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며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붙들어도 지금 살까 말까인데 그 진리의 말씀에 귀를 막고 감옥에 가두는 안타까운 모습… 그런 백성들은 여전히 소망 없이 심판과 멸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만 남아 보입니다. 그런 절망의 때에 감옥 안에서 다시 한번 예레미야는 약속의 말씀을 두 번째로 듣는다는 것이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진리의 말씀을 전했다고 감옥에 갇혀 있고 백성들은 말씀을 전혀 듣지 않는 그런 답답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동일하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은 바뀌지 않는데 주의 말씀은 다시 한번 예레미야에게 임했다는 이 놀라운 말씀이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여전히 상황은 갇혀 있고 암담하고 환경은 변하지 않고 기도 응답은 되지 않고 백성은 변하지 않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중요한 건 하나님의 말씀이 변함없이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를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풀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늘의 방법으로 하늘의 일을 행하심을 믿기에 하늘을 우러러 주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처한 상황과 환경을 넘어, 감옥 안에서라도 응답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먼저 집중하게 하십니다. 기도는 내 간절한 기도 제목을 내는 게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집중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마다 그 기도 제목 자체에 매몰되기 쉬운데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찔러주시고 깨워 주시는 건 뭡니까? 먼저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주목하고 바라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일을 행한다는 말이 창세기 천지 창조에 나오는 그 단어들이 그대로 쓰인 거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완전히 창조하시는 그 놀라운 우주적인 일을 행하시겠다… 그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시면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하여 새롭게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when we work, we work; when we pray God works. 내가 일하면 나만 일하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겁니다. 내 삶에 일을 행하시는 분,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분, 불가능해서 가능을 만드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고백. 그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먼저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이 영적 우선순위와 질서를 붙드는 싸움입니다. 하늘의 것을 먼저 붙들고 땅의 것을 붙들며 하늘을 먼저 바라보고 그 다음에 땅을 바라보고 내 필요와 간절한 기도 제목 전에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먼저 바라보고 붙드는 것이 올바른 영적 순서라는 것이죠. 그 질서가 사로잡혔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일을 이 땅에 품으시며 일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기도는 부르짖음입니다. 우리가 조용조용 침묵 기도를 할 때가 필요합니다. 근데 상황이 절박하고 나에게 탄식이 쏟아올 때는 주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 소리 내어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통성기도와 부르짖는 기도만이 기도라고 말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 소리 내어 하는 기도를 등한시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 살려주세요…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르짖는다…는 원래 의미는 부른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주님…주님을 호출하는 거죠. 주의 이름을 호출하며 주의 이름을 붙드는 것, 그게 바로 여호와께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저 신세 한탄이나 그냥 기도를 나열하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되고 내가 기도의 대상이 누군가를 분명히 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항하여 부르짖으십시오. 이론이 아닌 실제로 내 삶에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의 이름을 부르짖고 붙들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을 초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일하시고 역사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부르는 자에게 응답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 응답은 내 계획과 뜻과 방법을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내가 지금 주어진 상황 가운데는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하고 눈물 나고 아픕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것은 그것이 응답될 거라는 것을 믿고 인내함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뜻과 내 방법, 내 시간과는 다른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오늘 말씀에서는 표현했습니까?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크다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큰 답을 주신다는 거고 은밀하다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끄집어내 보여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 크고 은밀한 일의 대표적인 것은 예레미야가 지금 선포하고 있는 구원과 회복의 약속 그 자체입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구원과 회복의 약속 그 자체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하실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말씀이 증언하고 있으니까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받고 선포할 때는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라는 분이 오신다는 것 자체가 머리에 없었습니다. 그가 상상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지 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에 대한 그림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저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예레미야는 대언하며 선포한 것뿐입니다. 그 말씀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우주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예레미야 선지자는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응답으로 주시는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먼저 바라보고 주목하는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바라보고 주목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시며 하나님만이 성취하시며 하나님만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첫 단추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일을 만드시고 행하시며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으십시오. 내 부르짖음의 대상,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하십시오. 하나님을 호명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기도 응답은 내 생각과 내 시간표와 내 뜻을 훨씬 넘어서는 큰 일이며 은밀한 일임을 믿기 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큰 비밀과 뜻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옵소서….말씀해 주시고 주님이 행하시는 그 크고 은밀한 일을 부르짖을 때 보여 주시고 확신 갖게 도와주옵소서…..그 기도가 저희가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되기 원합니다. 이 놀라운 말씀이 나의 기도의 원동력이 되며 기도의 능력을 붙드는 놀라운 도구 되기 원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주님이 응답하시며 크고 은밀한 놀라운 일들이 보여지는 귀한 역사가 풀어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남유다 백성들을 향한 두 가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약속, 두 번째는 그 심판 뒤에 때가 되면 회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의 타락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불신앙과 불순종입니다. 그들이 등을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쳐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신다고 탄식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순종에 빠지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마음과 얼굴을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겁니다. 마음과 얼굴이 하나님께 향해 있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에 귀를 막고 듣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겁니다. 그렇게 철저히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모습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그런 불순종은 예외없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에서 이탈하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끕니다. 하나님만 섬기도록 부름받은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불신앙에 빠진 것입니다.
아예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만 섬기면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를 알기라도 할 텐데, 그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고 예배하면서 자신들의 불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했던 겁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예배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고,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 집에 아무렇지도 않고 두며 살았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 거기에 몰렉 앞으로 자기 자녀들을 산채로 인신 재물로 드리는 것,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고 분노를 유발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이런 하나님 백성 남유다의 불신앙과 불순종, 특별히 자녀들을 불로 보내는 이런 끔찍한 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오죽하시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인 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심판으로 모든 것을 무너지고 망하고 불타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갈때까지 가버린 그들에게 노여움으로 그들을 쫓아내시며 그들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두번째 약속은 하나님의 심판을 넘은 회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하게 될 징계와 심판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에 하나님의 때가 되면 회복의 약속을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배신을 하고 우상 숭배하는 불신앙,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에 빠져 징계와 심판을 내리시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그걸 통과한 후 언젠가 회복시켜 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이 마음은 탈선한 자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이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녀가 올바른 길에 다시 들어서도록 자녀에게 기회를 주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하게 살게 할 것이라…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뒤의 약속,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안전하게 이 땅으로 돌아오는 상황의 변화에 마음이 꽂히고 그것이 회복의 본질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회복과 구원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면 앞의 약속이 회복되어 그 결과로 뒤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과 회복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회복과 구원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되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이 회복과 구원은 단지 이 땅으로 돌아오는 복이 아니라, 안전하게 돌아와서 사는 복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됨,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이라는 이 관계의 복이 회복과 구원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천국 국적 가지고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고 예수 안에 있다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그걸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기의 강제 안식의 시간을 통하여 참 예배와 참 관계로의 회복으로 이끄는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하늘의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하나님을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뭡니까? 바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는 예배 회복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만 제단을 쌓는 겁니다. 그걸 통하여 무너졌던 성전이 회복되고 무너졌던 예배가 회복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됨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하나님만을 기뻐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로 우리를 회복시키는 복으로 이끄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복의 첫번째는 관계가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됨이 회복되는 내면의 복이고 하늘의 복인 것입니다. 그 하늘의 복, 내면의 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은 영원히 그의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겠다 약속하신 겁니다. 그 놀라운 구원과 회복은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복이 될 거라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끊임없이 그림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불순종,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기지 않는 불신앙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말씀으로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념비를 쌓으며 제단을 쌓습니다. 제단을 쌓는데 나를 위한 제단이나 나를 위한 기념비를 쌓는 인생이 있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위한 예배의 제단을 쌓는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남유다는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만을 예배하던 제단은 다 무너지고 내 이름을 높이기 위한 기념비를 쌓았고 우상 숭배를 위한 제단을 쌓으며 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절대화하며 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면서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며 섬기는 불신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불순종하여 말씀을 멀리하면, 하나님만을 예배하지 않으면 그 끝은 심판과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다 무너뜨리시고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이후 참 하나님의 백성됨의 회복과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구원의 제단을 다시 쌓으실 것입니다. 그 회복과 구원이란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는 그 관계 회복과 예배 회복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로 부름 받은 자이며 하나님만을 예배하기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 놀라운 관계의 회복, 그 놀라운 예배의 회복이 구원의 본질임을 잊지 않으며 그 하늘의 복이 나에게 부어지며 그 언약이 우리의 삶에 놀랍게 풀어지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붙들어야 될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러 선택지가 있는데 먼저 붙들고 먼저 해야 될 것을 분별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가 먼저 붙들었던 두 가지를 통해 신앙 생활의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를 붙들고 살아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예레미야가 붙들었던 우선 순위는 “먼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예레미야에게 주셨을 때, 먼저 순종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질문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곧 사람들이 살지 않는 황무지가 될 땅인데 굳이 값비싼 돈을 주고 아나돗에 가서 그 땅을 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산 땅에 대하나 매매 증서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명령이 예레미야에게는 질문 투성 이었습니다. 왜 그 버려지고 모든 것이 불타 황무지가 될 그 땅을 값을 비싸게 주고 사라 하시는 것인가? 왜 매매 증서를 또 만들라고 하시는가? 예레미야에게는 이 하나님 명령이 이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선 순종을 했다는 겁니다. 이해가 다 되고 납득이 돼서 순종한 게 아니라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됐지만 하나님이 명하셨으니까 먼저 순종을 한 겁니다. 질문이 많고 이게 왜 그렇지…라는 의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 우선순위를 뒤집어 거꾸로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먼저 순종하라 명하시는데, 우리는 내가 이해되고 내가 받아들여지고 내가 고개가 끄덕여지면 그때 순종하겠다고 반응하기 쉽습니다. 선 순종이 아니라 선 질문 후 순종인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명령 앞에 기도를 한다 그러는데 그 기도가 순종을 미루기 위한 기도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순종을 딱 하면 되는데 먼저 순종을 안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것이죠.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명령이 머리에 하나도 이해도 납득도 안 되는 복잡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먼저 신뢰했고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이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차별점입니다. 특별히 예레미야의 이런 먼저 순종, 선 순종의 태도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결국 불순종해서 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명하라 한 명하신 거 순종하지 않고 율법도 지키지 않고 목소리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 망한 이유입니다. 그런 이스라엘과 남유다 백성의 불순종과 예레미야의 선 순종은 오늘 말씀에서 아주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먼저 순종하고 나중에 질문하거나 고민을 나눠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건 먼저 순종하는 그 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다는 고백은 하나님의 명령에는 선 순종 후 질문이라는 이 분명한 우선 순위를 붙들고 살아가는 발버둥입니다. 신앙생활은 때로는 의문을 가지고 답답함을 가지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순종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슬프도소이다…내 마음에는 의문 투성입니다…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이 의문과 탄식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순종이 먼저인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 길에 순종하는 것이지 내가 다 이해되고 내가 다 납득이 돼서 순종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선순종의 은혜, 먼저 순종하고 후에 질문하는 그 기적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순종하고 그 다음에 질문하고 먼저 순종하고 하나님께 탄식으로 아뢰는 이 우선순위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분명해지시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예레미야가 붙들었던 우선 순위는 “먼저 하나님”입니다. 예레미야는 기도를 통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주신 이유를 간절히 묻고 싶었습니다. 그 간절한 제목와 의문을 가지고 기도할 때 그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먼저 이 기도 제목을 낸 게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백을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고백하는 게 그의 영적 우선순위였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고 그 기도의 절박함과 긴급함이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것들을 주님 앞에 묻고 내려 놓을 여러 간절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먼저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주목하는 기도입니다. 기도 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 기도의 절박함이 아니라 내 기도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확신입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간절히 기도하고 내 기도 제목이 심각하고 급한 것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기도하는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인게 분명한가? 이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의 절박함과 간절함에 매몰되다 보면 하나님에게도 기도하고 세상에도 기도하고 바알에게도 기도하고 부처님에게도 기도하고 그런 기도를 드리기 쉽습니다. 우리 기도는 하나님에게만 드리며 하나님을 분명히 고백하며 그분을 향한 분명한 기도가 되기를 주께서 원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도 신앙 생활에도 우선순위와 영적 질서는 너무 중요합니다. 질문이 많고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많으며 내게 수용되지 않는 많은 사건과 일들이 우리 인생에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고 수용이 돼서 순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순종합니다. 먼저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더 큰 일들이 부어질 줄 믿습니다. 내 기도가 능력의 기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고백하며 그를 바라보는 게 기도의 시작입니다. 나의 기도 제목을 먼저 드리기 전, 내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고백하며 그 고백 위에 나의 기도 제목을 드릴 때 놀라운 응답과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우리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믿기에 나의 상황과 처지에서 나를 건지시고 인도하시리 하나님을 믿습니다….이런 능력의 기도를 드리기 원하십니다. 이 선 순종, 먼저 순종의 기적,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적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풀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명하시며 망하기 일보 직전에 처한 남유다 백성들을 향한 예언의 메시지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온 나라는 이미 바벨론의 수중에 넘어갔고 예루살렘만 마지막 남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멸망시키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는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겁니다. 사실 그때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때인데 망하기 일보 직전인 그 절박한 상황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 안타깝게도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드기아 왕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옥에 갇혔습니다. 포위당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너희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길이 사는 길이며 너희는 아무리 싸워도 갈대인에게 이길 수 없다. 너희가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것을 예레미야가 예언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시드기아 왕은 참 진리의 말씀을 듣기 싫었고, 더구나 왜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전해 그렇게 사기를 꺾느냐….예레미야의 부정적인 말이 퍼지지 않기 위해 그를 옥에 가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걱정하면서 그렇게 될까 봐 감옥에 가두는 것, 그게 그 당시에 외적인 상황이기도 하고 영적 상황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대신 그 진리의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귀를 막는 것이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진리를 전파하시고 하나님 독생자 되심을 선포할 때도 그 말씀을 듣고 영접하여 새 생명 얻은 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많은 사람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그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이고 거짓은 참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망하기 전에 그렇게 심판 당하기 전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 왔어야 합니다. 그런 얘기를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은 그 진리의 소리를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모습, 풍전 등화와 같이 망하기 일보직전,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간절하게 필요한 상황인데, 그 상황에 진리를 가두고 하나님 말씀을 못 듣게 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까 봐 노심초사 하고 있는 그 모습, 그러니까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심판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은 그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불순종하며 바벨론과 싸우다가 다 망하고 무너지고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불타 황폐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는가 하면, 아스돗에 있는 사촌의 밭을 값 주고 사라는 명령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돈 주고 밭을 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나게 되면 모든 땅들이 다 황폐해지게 되죠.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모든 정상적인 일들이 다 무너지는데 거기서 누가 땅을 거래하고 집을 거래하겠습니까? 남 유다 백성들은 곧 바벨론에 망하고 그 땅은 가치가 휴지 조각과 같이 될텐데, 누가 그 땅을 돈 주고 사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망할 땅, 그 황폐해질 그 땅의 밭을 굳이 돈을 지불하고 미리 사라고 명하신 겁니다. 그것도 땅을 사기 위해 그 지불해야 할 돈의 가격이 굉장히 비쌉니다. 은 17세겔 당시 노동자의 1년 6개월 정도의 월급과 맞먹는 상당한 액수입니다. 그렇게 굉장히 비싼 값을 주고 그 땅을 사라는 겁니다. 그리고 매매 증서를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봉인하고 하나는 봉하지 않고 가지고 있으라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명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분명히 바벨론에게 이 땅이 빼앗겨서 쓸모없는 땅, 황폐한 땅, 소용 없는 땅이 되는 게 분명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때가 임하면 그 땅을 사고 파는 때가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먼저 그 땅을 값 주고 사라 명하신 이유는 나중에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황폐한 땅에 회복이 있게 될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소망이 황폐하고 무너진 이 땅에 임할 것을, 하나님의 소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않을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 것을 통해 선명히 알려주시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해보게 되면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멸망하고 심판을 당하지만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보면 필요 없고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돈 주고 값을 치르더라도 그들을 끝까지 데리고 오겠고, 끝까지 그들을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하시는 겁니다. 심판이 끝이 아니라 심판 뒤에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으로 알려 주신 하나님의 큰 뜻을 시청각 교재와 같이 선명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끝까지 진리를 거절하고 진리의 귀를 막으며 진리를 감옥에 집어넣는 시드기야 왕과 남유다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반면 교사 삼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될 말을 듣고 하나님이 찌르시고 깨우시는 말씀을 통하여 돌아오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이유 없이 가치 없이 정말 살 의미가 없는 거 같은 그런 존재입니다. 나에게는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는,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동시에 이유가 없는 땅,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쓸모 없는 땅을 비싼 돈 주고 사라 하신 주님의 마음을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망해가고 심판 당해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이 무너진 그 백성들을 끝까지 포기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기 원합니다. 그렇게 망하게 된 그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값 주고 다시 사서라도 돌아오게 하겠다는 그 주님의 마음, 심판이 끝이 아니라 심판 뒤에 복과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나중에 다시 돌아와 그 땅을 사는 날, 회복하는 날이 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반드시 회복되고 구원될 날이 있음을 약속으로 받아 소망 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회복과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며 언젠가는 돌아올 날이 있음을 이렇게 그림 언어로 보여주시는 주님 말씀에 소망을 붙들고 오늘 하루도 은혜 가운데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약속과 언약의 말씀입니다. 구약을 옛 언약이라, 신약을 새로운 언약이라 부르면서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선 그 백성 이스라엘과 광야 시내산에서 옛 언약을 먼저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바로 옛 언약입니다. 그 옛 언약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어떤 존재였는가 하면 신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을 잘 모시고 살아가는 신부와 같은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부로서 그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며 살았어야 되는데 어땠다는 겁니까?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며 영적 음란에 빠져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맺은 그 옛 언약을 내팽개치며 인간은 배신하듯 하나님을 떠나갔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모든 언약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언약의 관계를 파괴한 그들의 죄악을 하나님은 묵과하실 수 없었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그들에게 임한 심판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진 결과입니다. 그들은 결국 심판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고 망하게 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당하도록 두셨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도구를 써서 하나님의 몽둥이로 말미암아 처절하게 멸망했고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옛 언약을 내팽개친 하나님의 백성은 그 상태에서 그냥 끝났어야 됩니다. 더 이상이 그런 민족에게는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은 그냥 끝내 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잿더미가 된 이스라엘 땅,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이 끝이 아니라 그들에게 회복과 새롭게 심어지는 때가 있다는 회복과 소망을 주시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출바벨론을 통해 그렇게 돌아오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심의 가장 큰 절정은 하나님이 그들과 맺게 되는 새로운 언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바벨론의 포로됨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을 그들과 맺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약속을 주시냐 하면 이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옛 언약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언약을 맺어서라도 회복시키겠다는 겁니다. 옛 언약을 다 깨뜨리고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사랑해야 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하고,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렇게 옛 언약이 다 깨져 버렸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답니다. 모든 언약을 스스로 파괴하고 옛 언약이 깡그리 다 파괴되었는데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것이 오늘 말씀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언하는 구원과 회복의 피크입니다. 옛 언약은 어디다 기록되었는가 하면 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광야의 돌판에 기록된 것이 바로 옛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은 어디에 기록될 것인가 하면 더 이상 돌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판에 기록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옛 언약은 돌판에 새겨서 모든 것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새 언약은 다시는 깨지지 않을 마음 판에 새기시는 겁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선언하십니다. 옛 언약을 깬 하나님의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선언은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새로운 언약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 속에 새기고 내 마음 판에 새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맺게 되는 새로운 언약. 그래서 새 언약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깨진 모든 우리의 관계가 예수 이름으로, 예수 보혈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해 마음에 모심으로 예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 백성으로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거예요. 원래 잃어버렸던 천국을 다시 회복하게 되며, 내 존재의 본질이 회복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과의 깨진 관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본질을 잃어버렸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의 본질,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 놀라운 본질적 관계가 회복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은 결국 새로운 언약으로의 회복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회복을 넘어서고, 무너진 성전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언약으로의 회복입니다. 내 마음판에 새겨지는 진정한 고백, 보이지 않는 성전의 회복입니다.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이 세워지고 회복되는 것,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 이게 바로 새 언약으로부터 주시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장막을 치시며 내 안에 거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 중심이 보이지 않는 성전이 되도록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새 언약은 단순히 율법의 회복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성전 예루살렘의 회복도 아닙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회복만도 아닙니다. 이 새 언약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를 주시는 회복입니다. 옛 사람은 완전히 가고 예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놀라운 회복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영접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이 새 언약은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과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입술로 하는 껍데기 고백이나 육으로 하는 고백이 아니라, 내 마음 중심에서 내 마음 판 속에 새겨 주신 예수님과 맺는 이 새로운 언약,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해 내 마음판에 새기게 하심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조명하심과 도우심으로 하는 하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판에 새겨질 새 언약은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라…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새 언약은 어느 누구도 깰 수 없는 영원 불변의 언약이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이름으로 맺게 되는 새 언약,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지는 새 언약은 누구도 깰 수 없는 영원 불변의 언약이 되는 겁니다. 그 새 언약의 주체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보혈의 능력에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전하고 선포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그는 예언했고 그것을 말씀으로 기록하였지만, 이 놀라운 큰 그림을 다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모든 새로운 언약이 이렇게 완성되는 그림자라는 것을 후대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을 깨뜨리고 모든 관계가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들, 그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 그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언약을 다시 세워서라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담기기 원합니다. 깨질 수 있는 돌판 대신 영원히 깨지지 않는 마음판에 그 새 언약을 새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담기기 원합니다. 새로운 언약과 새로운 예배와 새로운 창조로의 그 회복으로 이끄시는 주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잊지 아니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되시며 우리는 하나님 백성 되는 이 본질의 회복으로 돌아가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지키시겠다는 구원과 회복의 말씀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을 끝까지 말씀대로 듣지 않았고 그 결과 망했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게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라는 말씀도 거절했고 그렇게 철저히 망하고 나서도 하나님께서는 70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2년 만에 모든 풀려간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마음과 눈이 다 팔려버렸습니다. 그렇게 가능성 없는 남유다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에게 출 바벨론을 통한 구원과 회복을 약속해 주시며 소망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셔서 칼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광야에서 은혜를 입게 하셨다는 그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상기시키십니다. 그 출애굽과 동일하게 때가 차면 너희에게도 출바벨론이 있을 것이라는 구원과 회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심판이 끝이 아니라 출 바벨론의 은혜를 통하여 너희가 다시 돌아오고 내가 너희를 다시 세울 실 것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출바벨론을 약속만 붙들고 있으면 안되고 그 약속을 통해 진짜 회복하기 원하시는 진짜 하나님의 본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출 바벨론을 약속 밑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본심이 오늘 말씀에 세 가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하나님 말씀의 회복, 제자리를 찾는 회복, 예배의 회복입니다.
첫 번째는 바로 하나님 말씀의 회복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이라…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건 이게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 말씀들이 선포되고 들려졌지만 남유다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기를 거절했고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마음과 눈이 다 팔려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받는 태도가 결국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예레미야는 선명히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하여 회복돼야 되는 게 무엇인가 하면 말씀을 말씀대로 듣지 않은 것에 대한 돌이킴과 회개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말씀대로 들려지지 않는 게 그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고 말씀의 회복이 그들 가운데 일어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뜻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회복의 첫 번째는 출바벨론이 아니라 말씀의 회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회복은 제자리를 찾는 회복입니다. 제자리를 찾는 회복이란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원래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는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우상을 섬기며 있어야 할 제자리를 떠나 유리하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대신에 세상의 말과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빠져 그들은 완전히 이탈한 상태, 심판 가운데 놓인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는 회복이자, 하나님만이 왕과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제자리 찾기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말씀에서 제자리를 찾는 회복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심” 에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이 말씀을 듣는 대상은 남유다 백성들이고, 북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 전에 아시리아에게 멸망하여 나라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는 남유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제자리 찾기의 큰 그림임을 약속하고 계신 겁니다. 사마리아 산들, 에브라임…모두 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단어들이 반복되면서 남유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회복되는 것을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신약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이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은 단순히 혈통으로서의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얘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영적 아브라함 자손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모든 열방과 민족,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로,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회복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거라는 놀라운 약속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에 돌아가는 것만 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본심과 뜻은 이토록 더 깊고 심오하며 남유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장차 예수를 믿는 온 민족의 하나님이 될 것임을 선포하시며 하늘의 관점에서 제자리 찾기의 큰 그림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세 번째 그들에게 회복은 바로 예배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본심은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 예배가 회복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며 보이지 않는 성전이 다 무너지고 보이는 성전도 무너진 남유다 백성들에게 예배 회복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시온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의 대표로, 시온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에게 나아오라는 선포는 곧 예배의 회복입니다.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여호와께로 나아가자는 선포 또한 예배의 회복입니다. 시온의 높은 곳에 올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호와의 복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예배의 회복입니다. 회복돼야 되고 세워져야 될 게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시급하고 중요하게 다시 세워져야 하는 것은 무너진 예배와 무너진 보이지 않는 성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출 바벨론에 앞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회복되어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복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회복, 제자리를 찾는 회복, 예배의 회복이 출 바벨론을 통해 회복되기 원하는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며 바벨론에 포로된 남유다 백성들에게 출바벨론을 약속해 주셨고, 죄의 포로된 우리들에게 출 세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약속이 성취됨을 분명히 믿으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본심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으로 회복이며 제자리를 찾는 회복이며 예배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상 가운데 그 상황의 변화만을 놓고 간절히 기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삶의 위기는 처한 상황의 위기를 넘어 하나님 말씀이 말씀대로 들려지지 않는 위기입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고 붙들지 않는 위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들어 주시는데 처한 상황과 현실의 변화와 함께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본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들으며,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말씀의 부흥과 회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회복되기를 사모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모으시고 지키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세상의 복이 아니라 여호와의 복과 하늘의 복을 붙들고 살아가는 그 회복과 부흥이 우리에게 회복 되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되시고 나는 하나님 백성 되는 이 놀라운 제자리 찾기의 역사가 놀라운 그 비전으로 우리 삶에 현재형으로 고백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30장 말씀은 심판을 넘어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증언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출애굽 시켜 주셔서 실컷 자유인으로 만들어 놨더니 누군가의 종노릇하겠다고 달려갔던 그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삶, 결국 그들은 심판으로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됨의 종살이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과 멸망이 끝이 아니라,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출바벨론 할 때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날이 있다는 것을 약속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장차 오게 될 출바벨론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과거에 출애굽의 그림을 깨닫게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애굽의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 주시고 자유를 주신 그날이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때가 이르면 바벨론 포로생활의 삶이 끝나고 돌아올 날이 있게 될 것임을 소망으로 붙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출애굽, 출 바벨론을 통하여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결박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고 구원해 주시는 참 자유의 약속을 동시에 보게 하는 그림자와 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되어 살아가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회복과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데, 그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세 가지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절망, 구원받을 자격 없음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부터 구원과 회복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뭐냐면 끊임없이 우리는 내가 내 스스로를 고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 인생에 약도 있고 처방도 있어서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붙들려 있는 겁니다. 내 어깨의 힘을 빼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나에 대한 여전한 가능성 있음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냐는 착각이자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심지어 온 나라가 망해 저 멀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도 내가 스스로 노력하고 무언가를 하면 결국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착각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그들의 현실, 죄로 만신창의가 된 그들의 삶의 현실에서 고백하는 게 무엇입니까? 내 상처는 너무 중해 고칠 수도 없고 내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내 스스로 계속해서 약을 찾고 처방을 찾고 스스로 고치려 발버둥치는 모든 가능성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상처는 내가 고치고 스스로 처방 받은 약으로 낫게 해 보려는 이 모든 발버둥을 내려놓는 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내 인생의 구원과 회복의 문제는 스스로에게서 나올 수 없는 철저한 타력 구원의 존재입니다. 자력 구원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건짐을 받아야만 되는 타력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입니다. 나의 구원받을 자격 없음을 철저히 인정하며 주님 앞에 어깨에 힘을 빼고 두 손 들고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회복의 첫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내 죄에 대한 철저한 고백에서 구원과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왜 심판이 임했고 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는가? 그들이 당한 심판과 포로됨의 본질적 문제는 결국 죄 문제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진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은 죄를 달고 살았고 악행과 여러 죄의 열매들을 주렁 주렁 달고 살았습니다. 또한 본질적으로 그들 죄의 핵심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지 못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삶의 주인이 누구이며 왕으로 모실 분이 누구인가를 선명히 고백하기 원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왕되심과 주인 되심을 거절하며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우상들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멸망과 어둠의 길로 끊임없이 질주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 때부터 계속해서 불순종의 연속인 삶을 살았습니다. 남유다 백성들 또한 끊임없이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끊임없이 부르시며 돌아올 기회를 주셨는데 그들은 결국 끝까지 거절하며 회복 불가능한 때가 되어 버린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성도로서 우리 인생의 제일 중요한 문제는 죄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깨진 죄 문제, 내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며 하나님을 왕으로 넘버원으로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게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임을 깨닫는 게 구원과 회복의 시작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 주목하며 세상은 바벨론만 주목할 때 성도인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님을 주목하며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실 회복과 구원의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때가 되면 이 날이 분명히 오고 놀라운 약속들이 그들에게 펼쳐진다는 것이죠.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되며 폐허인 성읍이 다시 세워지며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나오는 역사가 분명히 부어질 겁니다. 이 날이 분명히 그들에게 선물로 주어질 겁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형편과 처지만 생각하면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 보이는 상황과 처지에, 현실과 현상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끄시며 회복시키실 그 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기적, 고난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기적의 삶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붙들고 그 날이 오고 있음을 기대하며 인내하는 겁니다. 동시에 그 다가올 하나님의 때, 그 날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백성이 되기 위해 이 두 가지가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회복과 구원의 약속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너무나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에 대한 철저한 절망. 어깨에 힘을 빼고 모든 자격과 가능성을 포기하고 내려 놓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본질적 문제가 죄 문제였다는 것을 철저히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믿음 생활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삶이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구원과 회복입니다. 그렇기에 남유다와 이스라엘의 죄의 본질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됨을 거절하며 그들을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의지하지 것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되었고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그 회복과 소망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실체로 펼쳐지기 위해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내 어깨에 힘을 빼기 원합니다. 가능성 없음과 자격 없음을 인정하는 나에 대한 철저한 절망이 바로 회복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고 나의 가능성 없음과 자격 없음을 철저히 인정하고 두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내 가장 본질적 문제인 죄 문제를 주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내 삶에 왕으로 모시지 않은 모든 것을 회개하며 두 손 들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나의 하나님 되시며 내가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 됨, 이 제자리 찾기가 바로 구원과 회복임을 잊지 않고, 주의 은혜에 거함으로 회복과 구원과 소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펼쳐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9장까지는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예고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패역과 불순종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포기했으며 말씀을 듣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며 살아간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심판밖에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심판이 임하기 전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외치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참 말씀을 백성들이 듣지 않았고 그 말씀을 전함으로써 오히려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때로는 감옥에 갇히고 죽음의 협박을 당했습니다. 결국 남유다 백성들이 심판으로 망하고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결국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가 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예레미야의 눈물이자,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부터 33장까지 말씀은 그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뒤로 한 채 이제는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도우심과 보호하심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멸망과 심판에 대한 말씀을 뒤로 한 채 30장 말씀부터는 그 심판의 메시지를 넘어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말씀이 말씀으로서 들리게 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포로로부터 돌아오게 되는 구원의 회복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말씀이 말씀으로 들리게 되는 게 구원과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하나님 말씀이 임했다…는 말씀이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와 함께 반복하여 등장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임하고 그 하나님 말씀을 모두 적으라 명하십니다. 그 모든 것을 적으라는 것은 바로 말씀을 마음에 새겨 내면화 시키고 말씀이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구원과 회복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남 유다 백성들이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안 주셔서 안 들린 게 아니라 들을 마음과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말씀을 내 뜻으로 왜곡, 변질시키며 내가 원하는 것만 취사 선택하며 거짓 선지자들의 가짜 말씀에 길들여진 어둠의 시대였기에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회복과 구원의 시대가 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이 말씀대로 선포되며 말씀이 말씀대로 들려지게 되는 것임을 선명히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그들은 왜 포로가 되었고 그들은 왜 망하게 되었습니까?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나고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예배가 무너졌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리에서 이탈해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고 결국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판을 통하여 그들에게 회복과 구원과 위로의 길을 동시에 마련해 주시는 분, 그 하나님의 큰 사랑의 밑그림을 말씀이 말씀대로 들림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듣고 마음에 담아 그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며 말씀이 내 삶을 이끄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정말 나에게 필요하냐 내가 듣고 싶어 하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내가 그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분명한 순종과 분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망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고, 말씀이 안 들리면 말씀의 기근을 경험하며 결국 망하고 심판을 직면합니다. 반대로 부흥과 회복의 비결은 그 말씀이 말씀대로 들리며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말씀이 역사하고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신 하나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고 그 말씀대로 붙들려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삶의 우선 순위가 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겁니다. 두 번째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는 바로 그들을 포로로부터 돌아오게 할 날이 온다는 약속입니다. 심판을 넘어 하나님께서 포로된 그 땅에서 돌아오게 될 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약속하신 겁니다. 그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며 회복시키는 것, 그 땅과 나라를 회복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우리에게 돌아올 날이 있고 회복될 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돌아갈 본향이 있으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회복의 때가 온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심판으로 포로생활과 환난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라면서도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구나. 하나님만 예배하고 섬기는 삶에서 이탈해 세상과 우상을 섬기고 있었구나.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되겠구나…라는 것을 환난 가운데 주를 바라봄으로써 온몸으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포로로부터 돌아오는 것, 죄와 방황의 길에서 돌아오는 것,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인 구원과 회복이라는 겁니다. 포로 생활 가운데 그들이 예배하고 섬길 분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그들이 회복되는 것, 그걸 통하여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날이 있다는 것을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로 말씀의 약속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부흥과 회복은 말씀의 회복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말씀을 거절하며 말씀을 취사 선택하는 것이 망하는 지름길이며, 말씀이 말씀대로 들리는 것이 회복의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심판 후에 다가올 회복이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의 생활로부터 돌아가게 할 날이 있으며 그들을 환난으로부터 건져 내시는 날이 있으며 구원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들의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잃어버린 하나님과 함께하심,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며 섬김으로 돌아와 그들의 정체성과 하나님 백성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됨을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며 섬김으로 그들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과 회복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하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됨을 믿으며 그 소망 가운데 회복과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회복과 소망과 구원의 메시지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때가 되면 은혜로 말미암아 제자리로 돌아오며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의 그 날이 오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땅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정체성을 잊지 않고 말씀을 말씀대로 붙들고 구원과 회복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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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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