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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셉 목사의 새벽묵상

​새벽묵상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닌 들어야 할 말씀을 사모하라."예레미야 27,1-11 | 8-29-2025

8/29/2025

 
우리가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기준과 내 생각과 뜻에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언제나 옳음을 믿고 그 가운데 엎드리는 겁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 투성이기에,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에는 끊임없이 우리는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내 뜻과 계획과 내 생각과 기대에 말씀을 끼워 넣거나 취사 선택하기도 하고, 내게 맞지 않는 말씀이라며 거절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을 향하여 뛰쳐나가는 불순종을 경험하게 됩니다. 개인의 인생이 어려울 때도 나라가 어려울 때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는 사람이 있고요. 진짜 말씀에 귀를 닫고 내가 원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남유다 백성이 멸망한 그 본질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 않는데 있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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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늘 말씀이 증언되는 시점은 남유다 백성들이 망하기 일보 직전,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줄과 멍에를 만들어 내 목에 걸라 명하셨습니다. 보통 애완견이나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에게 줄이나 멍에를 매는 건데, 이걸 사람에게 맨다는 것은 그 줄과 멍에는 결국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시각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거는 것을 통해 남유다 백성들의 임박한 심판과 그에 따른 그들의 운명을 그대로 시각적으로 보여주시는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줄과 멍에를 시드기아를 보러 온 모든 사신들의 손에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누구냐 하면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왕들인데, 바벨론과 싸우려고 모인 연합군들입니다. 이걸 통해 선명히 보이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남유다와 함께 그들도 다 하나같이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될 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 시대에 왕과 모든 민족에게 선포한 말씀이 뭡니까? 너희는 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느부갓네살 왕은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결국 바벨론에게 망한다, 너희는 바벨론을 섬기게 된다, 그리고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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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께서 바벨론 같은 나라, 이방 나라를 도구로 쓰셔서 우리를 망하게 하실까? 어떻게 멸망하지 않을 것 같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망하게 될 것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벨론을 섬기고 포로로 끌려가는가?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머리에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씀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소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하나도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선명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회개하며 돌아와야 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주신 진짜 말씀을 백성들은 듣고 싶어 하지도 않고, 들을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은 듣고 싶은 말씀, 그들이 원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는 자꾸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냐 하면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하는 거짓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이 판치는 겁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왕이 쳐 들어와 망하기 일보직전인데, 뭐라고 예언하는 겁니까?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너희가 망하지 않을 것이다… 평안하다 평안하다…괜찮아….이런 귀에 듣기 좋은 포장된 말씀만 전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망한다는 얘기를 누가 듣고 싶어 하겠습니까? 너희는 바벨론에게 안 망해. 예루살렘 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포로로 잡혀가지도 않고 바벨론 왕을 섬기지도 않아…이런 말씀을 백성들은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계속 예레미야 같은 참 선지자를 핍박하고 박해하고 가짜 선지자, 거짓 선지자들에게 인기 강사라며 몰려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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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대가 어두울수록 진짜 말씀이 인기가 없고 가짜 말씀이 인기가 있게 되는 겁니다. 들어야 될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깨어 준비하고 대비하는 대신, 듣고 싶은 말씀에 길들여져 그런 소리만 계속 찾아가는 겁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주님 앞에 돌이킬 마지막 기회인데, 시드기야 왕은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주변 나라들에게 계속 줄대기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발버둥치다가 결국 본인도 나라도 다 망하게 되는 겁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씀에 빠진 사람들은 계속 어떤 일을 벌이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끝까지 바벨론과 싸우겠다는 거예요. 사람들을 모아 여러 나라들과 연합군을 조직해 바벨론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겁니다. 끝까지 자기 뜻을 주장하며 내 계산에 맞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며 내 뜻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해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결국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머리에 이해되고 수용되는 거, 받아들일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아멘….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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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넘어서는 하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믿으며,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 계획과 내 욕망과 자아 중심성을 모두 내려 놓고 주님의 말씀이 언제나 옳습니다…고백하는 영적 겸손입니다. 오늘도 그저 거짓 메시지로 평안하다, 괜찮다, 아무 문제 없다…라는 위로의 말씀만 듣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말씀으로 아플지라도 그것이 결국 나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끄는 진리의 말씀임을 믿기에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빚어 가시는 그 섭리에 순종하며 엎드리시겠습니까? 듣고 싶은 말씀,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씀에만 길들여 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한다는 것은 내 심령 골수를 쪼개며 때로는 나를 아프게 하며 때로는 나를 갈등하게 하며 때로는 나에게 포기하게 만드는 고통의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 가운데 내가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순종할 때 그 믿음의 순종을 통해 하늘의 놀라운 역사를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심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닌 들어야 하는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 가운데 순종함으로 엎드리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진실이 불편해도 진실을 지지하는 남은 자들이 있다." ​ 예레미야 26,16-24 | 8-28-2025

8/28/2025

 
어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성전의 뜰 앞에 이 성전이 멸망하게 될 것을 선포하라 명하셨습니다. 한 마디도 빼지 말고 아픈 심판과 멸망의 예고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 말씀을 듣고 혹시라도 그들이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그런 말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감 없이 보태거나 빼지 않고 주신 그 말씀을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신 말씀을 듣고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반응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감히 네가 뭔데 이 성전이 멸망할 거라고 우리에게 말하냐며 분노했으며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진리의 소리와 충돌하고 부딪히는 것을 넘어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렇게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는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 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증언합니다. 그 큰 흐름 가운데 말씀을 거스르고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히는 어둠 가운데 믿음으로 반응하는 남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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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고발하고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몰아 세우며 막 선고하려 했습니다. 전체 흐름은 돌이킬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어둠이 되어버렸고 진리의 소리에 충돌하고 부딪히며 회개할 기회를 놓쳐 버리고 남은 게 멸망밖에 없는 성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중에 예레미야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죽이라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용기를 내어 진리의 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렇게 예레미야를 잡아 죄를 씌워 죽일 이유가 없다는 소리를 내는 겁니다. 진실이 불편해도 진실을 지지하는 소수에 남은 자가 있었고, 그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를 지키려 하고 예레미야를 변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포해야 되는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리를 불편해하고 진리에 귀를 막으며 진리를 죽이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숨겨 놓은 사람들, 믿음으로 반응하는 남겨놓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그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시는 겁니다.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새로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기에 오늘도 진리의 말씀은 선명히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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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은 자들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는 현장에서 용기 내어 일어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변호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변호하기 위해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의 예를 들고 나오는데 첫 번째는 히스기야 시대의 미가 선지자, 두 번째는 우리아 선지자 사건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레미야와 비슷한 심판과 멸망의 예언을 했을 때 히스기야와 모든 백성들이 그를 죽였느냐?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주께 간구해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던 이 역사적 사건을 들고 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왕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주께 간구했다는 겁니다. 두려워했다는말은 하나님을 경외, 즉 하나님을 중시하면서 존경하며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우러러 보되 두려워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히 여기지 않고 중히 여기며 무겁게 대한 겁니다. 이게 히스기아 왕이 하나님을 향해 가졌던 마음이었고 그게 말씀을 향한 반응이었다는 겁니다. 분명히 그 소리가 듣기 싫었고 불편하게 한 예언이었지만, 그 미가 선지자가 가져온 그 말씀에 대해서 믿음으로 반응하며 회개하여 온 백성이 살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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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건을 얘기하는데 미가 선지자와는 다르게 죽임을 당한 선지자 우리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아 선지자도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 말씀을 선포했는데, 여호야김 왕은 그를 잡아 죽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옵니다. 그를 잡아 죽인 이유가 뭐냐? 그가 바로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경외하지 않느냐가 드러나고, 우리가 살고 죽느냐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면 우리는 스스로 생명을 지금 해롭게 하는 거라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침 뱉는 일이며 우리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반의 아들 아이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며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이게 결론 말씀입니다. 이 남은 자들이 예레미야를 지지하고 보호하며 그를 죽이지 못하게 방패가 되어 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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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이 선포한다고 사람들이 모두 변화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는 그 진리에 무관심하고 대다수는 그 진리를 충돌하고 부딪히며 심지어 죽이려 한다라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거짓에 더 쉽게 반응하고요. 진리의 회개하는 대신에 진리의 귀를 막고 죽이려 하는 모습이 언제나 더 많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흐름에 쏠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의 말씀에 반응하며 진리를 변호하는 남은 자들을 숨겨 놓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둔 사람, 숨겨 놓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을 통해 죽음에 처한 예레미야를 건져 주시며 보호하시듯,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남겨둔 사람, 숨겨 놓은 사람들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시고 일하심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것도 없는 거같이 보이는 그때에 그 하나님의 때에 따라 이렇게 세우시며 일하는 남은 자들을 통해 이루어짐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진리를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일희 일비하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진리에 묶여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사는데 그 기회를 날려 버린다." 예레미야 26,1-15 | 8-27-2025

8/27/2025

 
오늘 말씀은 크게 두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예레미야의 하나님께서 말씀하게 하신 성전 선포, 그 성전 선포에 대한 백성과 지도자들의 반응이 증언되고 있습니다. 25장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심판하시어 온 열방과 민족이 그 심판에 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예레미야를 통해 성전 앞에서 다시 한번 선포하기를 명하시는 것이 성전 선포의 말씀입니다. 이때는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였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요시아의 아들이었던 여호야김은 11년 동안 통치한 악한 왕입니다. 이제 나라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판을 향하여 마지막 질주하고 있는 그때, 시간이 얼마 없고 정말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그때에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모든 사람들이 제사 드리고 예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이 경고의 말씀을 한 이야기도 빼지 말고 감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제사와 예배를 드리어 오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는 제사, 껍데기 예배를 그냥 드리고 있었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육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몸은 성전을 들락날락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반응하지도 않는 것이죠. 그래서 성전에 제사와 예배 드리러 오는 그들을 향하여 성전 뜰에서 외쳐 소리치며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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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심판에 대한 경고 말씀을 들리게 하라 명하셨습니까?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올 수도 있어서…. 그리하면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려했던 뜻을 돌이키시려고….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어차피 안 돌아올 게 분명한데 그래도 혹시나 듣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들에게 내릴 심판과 재앙을 미루시려고 하나님은 대비하고 준비하고 계신 겁니다. 혹시 네가 선포하는 이 말씀 듣고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심판하려 했던 그 뜻을 뒤집을게…이게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전혀 가능성 없어 보이는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여전히 기대를 내려 놓지 않으신 겁니다. 지금도 취소하실 준비를 하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대는 혹시나 그 악한 길에서 돌아와 구원받을 자가 없을까?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끝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 않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문 밖에 서서 돌아올 자들을 기다리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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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 성전 경고를 들은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반응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을 듣고 백성들과 그 지도자들의 반응이 등장하는데 실로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하여 너희가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않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있음을 안타까워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를 붙잡아 죽여야 된다고 소리 치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전하고 있는 네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얘기 절대 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왜 저주의 소리를 내뿜냐는 것이죠. 그래서 예레미야의 죄명은 신성 모독입니다. 어찌 너 같은 사람이 감히 성전이 그렇게 멸망할 거라고 무너질 거라고 예언하냐는 겁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모여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모여드는 거예요. 예레미야가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그런 반응을 바라보며 얼마나 답답하고 눈물 나고 안타깝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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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가 당하는 이 말되는 성전의 재판과 그를 죽이려고 몰려드는 이 모습은 나중에 예루살렘에 똑같은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되실까를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성전을 향하여 성전 지도자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예레미야와 똑같습니다. 너희 성전을 다 무너뜨리라는 겁니다. 46년 이상 지었던 이 성전을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겠다는 거죠.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을 장사치로 만든 사람들에게 채찍을 드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향하여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예레미야에게 했던 이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겁니다. 성전을 모독했다고 예수님을 몰아세우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진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진리의 소리를 죽이게 되는 겁니다. 이게 그들이 가진 마지막 기회인데 그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고 곧 심판에 직면하게 될 그들을 바라보며, 자기의 목숨을 걸고 다시 한번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나를 죽이든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나는 상관없어. 나는 목숨 내놨다는 겁니다. 나는 죽여도 좋은데 하나님 말씀을 제발 들어… 이게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고 목숨 걸고 전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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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저 위로 받고 격려 받고 우리 얘기만 들어주기 원합니다. 위로와 사랑이 굶주렸다고 찾아오지만, 우리가 정말 들어야 될 말씀은 너 그렇게 살면 망해. 너 그렇게 살면 큰일 난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죄에서 돌이켜 지금 그대로 살면 안 된다는 그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게 우리가 들어야 될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예루살렘에 있었던 백성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그 진리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고 순종하지 못했고 돌이키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 하는 건 하나님의 말씀을 죽이는 거며 하나님의 진리의 소리를 죽이는 겁니다. 그 진리의 소리를 듣기를 거절하고 충돌하며 그 진리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심판과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너희가 그렇게 자랑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모든 민족의 저주 거리가 될 정도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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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느냐? 그들이 불순종했고 죄를 짓고 졌고 곁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끝까지 거절하고 박찼기 때문입니다. 듣기만 하면 순종하기만 하면 돌이키기만 하면 청종하기만 하면 돌아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듣기를 거절했고 순종하기를 거절했고 그 진리의 소리를 죽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는 백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의 엄중한 광야에 외치는 소리를 우리가 다시 한번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렇게 살면 망하고 죽는다는 이 심판의 메시지를 오늘도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돌이키면 살고 말씀으로 돌아가면 살고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면 삽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이 진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진리의 소리를 죽이려 한다면 결국 남유다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심판과 멸망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은 돌이켜야 되고 청종해야 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될 때라는 것을 잊자 말고 말씀으로 돌아가며 순종하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심판도 구원도 예루살렘부터 시작된다." 예레미야 25,15-38 | 8-26-2025

8/26/2025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모든 주변 나라 전체를 덮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도적과 같이 그러나 아주 구체적으로 찾아오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남유다 만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에 대한 진노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열방과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를 심판하시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이걸 통하여 그 날이 되면 분명히 구원과 심판이 갈라지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며 동시에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우주와 열방의 모든 민족의 하나님 되심을 선명히 선포하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심판의 잔을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여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명하십니다. 진노의 도구가 가득한 그 심판의 잔을 예루살렘부터 모든 민족과 나라가 마시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들이 비틀거리며 미친듯이 행동하는 그 본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하고 계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쳐 돌아가며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을 통하여 그들이 죄에 대해서 심판에 직면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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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잔이 하나님의 백성 예루살렘과 남유다로부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제일 먼저 마시고 그 진노의 칼이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바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그들 예루살렘과 남유다를 제일 먼저 심판하시고 치시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한 대표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먼저 선민으로 세우신 것은 그들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로부터 모든 열방이 복을 받기 위해서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가 되도록 구별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선 아무 문제가 없고 세상에서는 별 상관하지 않고 세상에서는 다 합법이라 그러는데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선과 기준으로 살아가기에 그걸 거절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가야 될 길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바라보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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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포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죄짓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데를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속한 자같이 살았으며 자기만 생각하고 살았고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까만 고민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일 먼저 심판으로 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아니하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불순종하고 살아가는 그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먼저 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으로 치실 때 그들에게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기대고 있는 두 가지를 치시고 거두어 가십니다. 하나님 대신 내가 기대고 내가 자랑스러워하고 붙들고 있는 거를 싹 거두어 가시는 거예요. 남유다 백성들에게는 그 두 가지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이죠. 그들에게 성전이라는 곳은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곳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니까 우리는 누구도 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곳에 건물 안에 들어가면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죠. 자신의 신앙 상태와 상관없이 예루살렘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있으면 나는 아무리 잘못하고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다고 착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무너뜨리시는 겁니다. 그 자랑과 착각에서 온전히 그들을 뿌리 뽑아 끌려가면서 그들의 죄가 무엇인가…를 철저히 드러내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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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먼저 심판 당하는 것을 통하여 온 열방에 무엇을 보여주신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듣지 않으면 저렇게 망하고 모든 게 무너지는구나…라는 것을 대표 선수 같이 보여주신 겁니다. 주변 다른 나라들은 그걸 통하여 저렇게 대표 선수가 망하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정신 차려야 되겠다….자신들을 돌아보고 회개했으면 사는 겁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망하는 것을 바라보며 주변의 이방 나라들은 뭐라고 생각했는가 하면, 너네 뭐 하나님 잘 섬긴다 그러더니 결국 샘통이다…그들을 멸시하고 무시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방 나라들도 이 하나님의 심판의 잔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면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먼저 망하고 무너지는 남유다를 바라보며 자신들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지 못한 주변 이방 나라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모든 열방이 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 이 하나님의 심판이 대표 선수를 먼저 치시고, 그 심판의 물줄기가 파도와 같이 모든 열방을 덮어 모든 나라들이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회개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모든 민족과 열방이 예외 없이 이 하나님의 심판을 다 받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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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백성, 대표선수인 이스라엘부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대표 선수로서 선민으로서 사명을 잃어버리고 거룩하고 구별되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거절하고 불순종하고 살았을 때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심판의 잔이 임하며, 심판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열방을 향하여 퍼져 나가게 되는 것이죠. 동시에 구원도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걸 온전히 뒤집는 사건을 우리는 신약의 복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나가서 이 복된 소식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하하 명하신 겁니다. 심판의 소식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어 온 열방으로 덮힌 것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 예수 십자가 복음의 복된 소식인 겁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이 복된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죠. ​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 십자가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언한 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잔이 거꾸로 뒤집어지는 놀라운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의 날이 이르게 되는 거죠.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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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심판밖에 남아 있지 않는 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 길로 가는 것이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며 내 주변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지 않고 똑같이 바라보지 않고 똑같은 길로 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열방과 민족을 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며 그 심판의 말씀을 통하여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앞에 돌아오라…선언하십니다. 구원의 날이 심판의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말고 깨어 준비하라는 것이죠. 구원과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안자면 내 죄에 대한 결과를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자각하고 인정하며 주님 앞에 두 손들도 나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내가 외부로부터 건짐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삶,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이 구원이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심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시작되는 이 엄중한 심판을 바라보며 먼저 믿은 자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그 엄중한 기대감이 있으며 기준이 있다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십시오. 복음으로 말미암아이 심판의 물결이 구원의 물결로 바뀌는 그 꿈을 꾸며 예수님 안에 꼭 붙어 살아가며 예수님의 복음이 심판을 넘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생명의 이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선명히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23년동안 전해도 안 들을 사람들은 안 듣는다." 예레미야 25,1-14 | 8-8-2025​

8/8/2025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70년 동안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언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는 때가 여호야김 왕의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 원년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와이 백성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마지막으로 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그들이 모두 처참히 멸망하게 되고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 남유다 백성이 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한 가지로 지적하는데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입니다.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이게 남유다 백성들이 망하는 이유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끈질기게 전했냐 하면 23년 동안 전했습니다. 23년동안 꾸준히 전했다고 증언하는데, 여기서 “꾸준히”란 말은 “반복적으로”입니다. 23년 동안 어쩌다가 가끔씩 선언한 게 아니라 정말 끊임없이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이 백성들에게 경고하며 선포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만 보내신 게 아니라 다른 선지자들도 보내 끊임 없이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결국 남유다 백성들은 듣지도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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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 세번이나 반복될 정도로 그들은 듣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순종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꾸준히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외치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남유다는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불순종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은 어쩌다가 정신 못 차려서 잠깐 잊어버린 게 아니라 그들의 반복적인 습관이자 그들 삶의 열매였습니다. 말씀을 경시하고 무시하며 말씀을 멸시하는 태도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는 겁니다. 말씀을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듣지 않음이 아예 몸에 베어 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그때 바빠 가지고 정신 못 차려 가지고 못 들었습니다…그때 제가 정신을 잃어버려 깜빡 했네요…그들의 불순종에 대해 이런 핑계 댈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23년 동안 한 번도 아니고 수 백번 꾸준히 반복해서 끊임없이 말씀을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너는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번,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듣지 않았고 반복적으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핑계 불가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심판을 받고 멸망하는 이유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듣지 않는 삶, 그 삶의 끝은 뭐라는 겁니까? 심판과 멸망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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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동안 끈질기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고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말씀을 외치게 하셨는데 어떻게 너희는 그렇게 일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의도적으로 습관적으로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있느냐? 하나님의 깊은 탄식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23년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더 이상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때에 하나님의 때가 임하니까 바벨론을 통하여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벌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느부갓네살을 통해 죽임을 당하고 처절하게 망하면서 주변 국가들이 놀라고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간절한 소망은 본인이 전하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소망하며 간절히 외쳤습니다. 심판과 멸망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며 그 말씀을 전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약속으로 주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이 폐허가 되게 할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그 땅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폐허가 되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라는 겁니다. 모든 땅이 폐허가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바라보기 원하셨는가 하면, 너희 백성들의 마음이 이렇게 황폐해져 있다라는 것을 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약속의 땅의 황무함을 통해 죄로 말미암아 황폐해진 너의 마음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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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간이 70년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강조하는데, 이 바벨론 포로됨의 70년이 어떤 의미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너희가 안식일을 무시하여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시며 이 70년은 바로 강제 안식이라는 겁니다. 너의 땅이 불순종으로 너무 황폐해져서 너의 마음이 죄로 너무 황폐해져서 강제 안식으로 몰아서 70년 포로시기를 보내게 하신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바벨론의 포로가 잡혀 가는 시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70년 동안 망해서 이 땅이 이렇게 황폐한 것을 바라보며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이렇게 내 마음이 황폐해졌구나…는 것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참 안식으로 회개로 돌이킴으로 주님께 엎드려 은혜를 구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70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며 70년 동안 모든 땅이 황폐해져 있는 그 강제 안식 시간 동안 은혜를 구하면 남유다 백성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죠. 왜 하나님께서 강제적인 안식을 주시게 되었는가를 끊임없이 돌아보면서 ​ 70년 동안 다시 한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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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동안 남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전해졌는데도 그들이 불순종하고 듣지 않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들을 마음이 없으면 23년을 전해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이 땅에만 고정되어 현실과 현상에만 집중하여 그들의 마음이 황폐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인 하나님을 주목하는 대신에 내가 이룬 것, 만든 것에만 주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여러 방편으로 반복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는 우리의 습관이자 삶의 패턴이자,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딴짓하기에는 멀리 돌아가기에는 이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 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그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사모하십시오. 황무한 땅을 바라보며 황무한 내 마음을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돌아와 주님의 축복 가운데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내 뜻과 방식을 끝까지 고집하면 나쁜 무화과이다." 예레미야 24,1-10 | 8-7-2025

8/7/2025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향하여 이루실 계획을 두 광주리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또 다른 광주리에는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인생이 나아갈지를 선명히 보여 주시는 환상입니다. 이 두 가지의 좋은 무화과, 나쁜 무화과는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는 방식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환상은 바벨론의 침략 가운데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후에 보여주셨습니다. 지금 남유다의 상황에 대비해 보면 사람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좋은 무화과는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바로 바벨론의 침략 가운데 살아남고 그 땅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이 안타까운 인생이고 나쁜 무화과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와 상상을 완전히 뒤집으시는 것입니다. 극상품의 좋은 무화과가 오히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바벨론에 잡혀서 포로로 끌려간 목공이나 철공들 같은 사람들이 나쁜 무화과가 아닌 좋은 무화과라는 겁니다. ​ 바벨론이 끌려가지 않는 것이 좋은 무화과일 거라는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리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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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것이 좋은 무화과의 인생인지, 남유다 백성들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으로 분명한 명령을 남유다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몽둥이로서 바벨론이 와서 너희를 침략하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포로로 잡혀갈 텐데 그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결국 너희에게 복된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러 번 반복하여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며 그들에게 망하기 전에 돌아오라고 그렇게 반복하여 말씀을 선포했는데 주신 말씀을 듣지도 않고, 경시하고 무시하며 듣지도 않고 심지어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는 일을 계속하더니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마지막 기회,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복된 길이자 좋은 무화과 되는 길이라는 것도 거절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근거하여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순종하는 겁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오는 때에도 하나님이 이렇게 경고를 주시는데 바벨론과 끝까지 싸우려 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지 않으려고 계속 발버둥치는 겁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수용이 되지 않은 것이죠. 내 생각에는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게 좋은 무화과이며 복된 길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는 거절하겠다면서 싸우는 겁니다. 그게 나쁜 무화과가 되는 것을 모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받아들이기는 거절하며 불순종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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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 말씀 믿지 않겠다,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끝까지 그 말씀을 거절하는 겁니다. 바벨론과 싸우며 저항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 당시에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쁜 무화과가 되는 겁니다. 그들은 살아남아서 예루살렘에 머물게 되었거나 혹은 근처 애굽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저 멀리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았으니까 스스로는 우리는 살아남은 자, 좋은 무화과라 자부했을지 모르고, 복 받은 인생이라 자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그들은 말씀을 거절한 불순종한 백성이자 축복의 길을 걷어찬 안타까운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저항하는 마음, 끌려가지 않고 남은 것이 마치 자신들이 대단해서 그런 것처럼 착각하는 그런 교만들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쁜 무화과라 엄중히 선언하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저렇게 말씀하셔도 우리는 내 머리와 생각에 이해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으니 따르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결국 나쁜 무화과가 되어 하나님은 그들을 다 버리신다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흩어 버리는 것 같이 너희를 흩어 버리고 환난을 당하게 하며 모든 수치를 겪게 하고 조롱과 저주를 받게 되며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너희에게 닥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런 불신앙과 불순종의 모습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도 똑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환영하고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메시야가 오시는 방식도, 메시아가 일하시는 방식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방식인 십자가의 방법도 그들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환영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나쁜 무화과가 되어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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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포로로 끌려가는 남유다 백성들을 잘 돌보시고 때가 되면 그들을 다시 이 땅에 돌아가게 하실 것이며 그 포로로 잡혀간 상황을 통하여 그들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그들의 죄를 돌이켜 회개하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어 돌아오게 하실 좋은 무화과의 길을 이미 준비하셨습니다. 죄에게 돌이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의뢰하는 그 회복된 마음으로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하실 복된 길을 이미 준비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금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자들이 다 좋은 무화과로 여겨 주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내가 조율되는 것입니다. 내 머리와 생각에는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망하는 길이고 나쁜 무화과라 여기지만, 그 정반대에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엎드리는 겁니다.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겠다는 것, 그게 나쁜 무화과가 되는 불신앙이자 불순종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그 예루살렘 땅에 남아 있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같이 보일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정반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눈에 보기에 어떠한가, 상황에 가장 적절한 대응이 무엇인가가 아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국 그들에게 철저한 재앙과 심판이 임하느냐, 아니면 결국 회복으로 인도함 받는가가 갈라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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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온전히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생각과 달랐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순종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 이것 만이 좋은 무화과 열매가 되는 비결이자 믿음으로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내 삶의 방점을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냐 순종하지 않느냐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내 뜻과 생각을 고집하고 내 방식을 고집한 자들은 결국 예루살렘에 남아 나쁜 무화과가 되었고, 나와 충돌함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한 자들은 결국 회복되어 돌아오는 좋은 무화과가 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가운데 순종하는 길로 부름 받은 좋은 무화과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나와 충돌할 때, 하나님 말씀이 내 생각이나 뜻과 충돌할 때, 내 방식을 내려놓고 내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그 말씀이 나와 충돌할 때 내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이 언제나 옳습니다…라는 철저한 순종으로 끝까지 좋은 무화과로 주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이다." 예레미야 23,33-40 | 8-6-2025

8/6/2025

 
​오늘 말씀은 반복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에 대한 핵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 그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마음에 새겨 보기 원합니다. 먼저 이 엄중하다는 것은 엄하고 중하다…라는 의미로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말씀을 엄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앞에 엎드리는 태도이고, 말씀을 무겁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엄하고 중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가 엎드려 무겁게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내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말씀에 대한 태도가 결국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중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도 중시 여기고 무겁게 여기는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도 경시, 가볍게 여기며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남유다 백성들이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거짓 가르침과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결국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것이 그들에게 쌓여 있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영적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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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가볍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죄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어 순종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나의 필요를 위한 사용의 개념으로 두는 것입니다. ​ 말씀 듣고 이게 나한테 얼마나 유익할까를 내가 취사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다기 보다는 내가 말씀 중에 좋은 걸 뽑아 나에게 사용 개념으로 바꿔 버리는 겁니다. 이게 말씀을 엄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의 심각한 죄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한다 그러는데 말씀을 엄중하게 대하는 대신 가볍게 여기고 경시기면 말씀을 사용 개념으로 두는 겁니다. 나에게 유익한게 뭐고 나에게 필요가 뭔가에만 맞춰서 나 중심으로 말씀을 끌어다 쓰는 사용의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 그대로 무겁게 나에게 다가와야지 말씀을 마치 쇼핑과 같이 이곳저곳에서 뽑아 쓰는 개념으로 사용 개념으로 두는 것, 이것이 바로 말씀을 경시하는 자들의 심각한 죄입니다. 이게 말씀을 망령대로 사용하는 죄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무거운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고 농담과 같이 여기며 말씀의 귀를 막고도 아무런 문제 의식을 여기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적 문제인지 알지 못하는 것 때문에 결국 남유다 백성들은 망하게 되고 심판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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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어제 배웠지만 하나님 말씀을 말한다 그러면서 내 말을 하고 내 체험을 말하고 내 꿈을 얘기하면서 나에 대한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포장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가까이 가는 대신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입니다. 왜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며 땅에 헛된 것들을 절하며 그것에 분향하고 살아가게 됐습니까? 왜 자꾸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붙들게 됩니까? 그 본질이 바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을 경시 여기며 가볍게 여기며 살기 때문이며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사용 개념이 될 수 없고 내 필요에 따라 뽑아 쓰는 개념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은 내 인생의 순종의 개념으로 내가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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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 경시하는 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심판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남유다 백성들을 버리신다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신 적이 없는데, 먼저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무관하게 살아가며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너희를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릴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버리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오래 전에 반복적으로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끝까지 은혜로 그들을 돌이키기를 원하셨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고 경시하며 무시하는 그 백성들을 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는데,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을 경시하고 무시하고 살아가는 그 백성들에게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르게 만드시는 겁니다.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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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신앙이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며 경시 여기며 나에게 필요한 사용의 개념의 도구로 변질시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임을 직시하십시오. 말씀을 내 마음대로 조장하고 조작하고 만들어 끌고 다닐 수 있는 사용의 개념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불신앙이라고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망령된 행동, 하나님 말씀을 내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용의 개념으로 두는 일에 대해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경고를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말씀을 말씀대로 순종하고 엄중하게 여기며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하게 대할 때,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복이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받고 순종할 때, 그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무겁게 대하여 심각하게 대하여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며 그 말씀을 통해 하늘의 복 가운데 거하는 귀하고 복된 인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펼쳐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기도 "하나님의 불과 방망이가 있음을 잊지 말라." 예레미야 23,23-32 | 8-5-2025​

8/5/2025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미혹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 특별히 거짓 선지자와 거짓 예언자의 문제를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 선지자와 거짓 예언자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미혹을 당하고 있는지는 드러내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와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치리하실지를 우리에게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 거짓 예언자와 거짓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가까이에도 멀리에도 계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망각하며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죠.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천지의 충만하신 분이고 어디에나 계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시선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숨길 수 있는 행실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잘못 전하는 가르침에 빠진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착각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그들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나를 보지 않으신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사람들 앞에 잘 숨기면 하나님께도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백성들의 착각에 대한 책임을 지금 누구에게 돌리시는가 하면 거짓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에게 돌리고 계신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 예언자와 선지자들이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니까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며, 하나님을 잊으며 살아가는데도 문제의식이 없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숨어서 살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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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을 주목하여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거짓 선지자와 예언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대신에 내 생각에서 오는 내 말을 전하며 내 주관적인 꿈 이야기를 전하면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고 있음을 선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오긴 하는데 중요한 거는 강조점이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꿈을 꾸었다, 내가 특별한 체험을 했다…말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말과 체험을 주님의 뜻과 계획으로 그냥 포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말하는 게 아니라 내 개인적인 말과 경험을 하나님 말씀으로 변질시키며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내 말과 내 체험이나 꿈을 하나님과 연결지면서 마치 하나님 말씀인 것처럼 호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마음에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거짓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그들이 예언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아니라 죄악에 마음에서 나오는 간교한 것을 예언하고 전한다는 것을 엄중히 책망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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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짓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의 문제는 예레미야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 말씀을 주신 대로 전하는 자로 서는 게 아니라 자꾸 사람들에게 미혹하는 꿈 얘기하고 환상 얘기하고, 본인이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왜곡과 변질이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우리 한국 교인들은 특별히 간증집회 좋아하고, 신비주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간증이나 기적이나 체험이나 꿈 얘기하면 그냥 사람들의 눈과 귀가 쫑긋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순전한 복음에는 눈과 귀가 쫑긋하지 못한 게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꿈과 체험 이야기, 간증과 신비적 이야기를 들으려고만 오면 결국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간교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책망은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마음에 담아야 하는 하나님의 책망인 줄 믿습니다. 그 주관적인 꿈과 체험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대치하게 되며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우선순위에 두게 만든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겁니다.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지 목사의 개인적인 견해나 말, 체험이나 꿈얘기가 말씀을 대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나 지금이나 거짓을 말하는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백성들을 미혹하고 오해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백성들이 들어야 될 것을 듣지 못하고 영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 장애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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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런 거짓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시고 치신다는 겁니다.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는가? 선지자들 가운데 겨 같은 선지자가 있고 알곡과 같은 선지자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씀을 성실함으로 전하는 알곡과 같은 선지자들이 있고 자신의 말과 꿈을 하나님 말씀으로 대체하며 하나님 말씀보다 위에 두고 있는 자들은 겨와 같은 쭉정이 같은 선지자라는 겁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 말씀이 불과 방망이가 되어 그들을 모두 부수고 태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불로 검증을 받고 하나님의 방망이를 통과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남게 만드는 것…그게 심판이자 구원이고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순전한 복음으로 회복 될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그들의 거짓과 헛된 자만,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백성들을 미혹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한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들어야 될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여 백성들이 하늘을 섬기지 못하고 땅을 섬기는 자가 되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며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드는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불과 방망이로 말씀 가운데 덕지덕지 붙어 있는 불순물과 비본질적인 것들 것 다 태워 정금만 남게 하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정화작용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참선지자들을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시고, 가라지 같은 그들을 불과 몽둥이를 태워 소멸시키고 깨끗해 하시는 때가 곧 올 것을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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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멀리에도 가까이에도 충만하며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살 수 있다… 하나님께 숨어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바로 불신앙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전히 거짓 선지자들은 가짜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미혹하고 착각하게 합니다. 그들의 전하는 메시지가 내 귀를 즐거워하게 할지 모르나 진리에서 벗어나 미혹하게 만들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나를 무너뜨리고 미혹하게 만드는 것임을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은 불과 같고 몽둥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 내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는 거짓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반드시 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게 만드는 것에 대하여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그들이 전한 불순물과 비본질이 가득한 것들을 불과 몽둥이로 다 정화시킬 때가 곧 올 것입니다. 그런 가짜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를 멀리하십시오. 하나님 말씀만을 듣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선명하게 선포되는 강단을 사모하며, 말씀이 있는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진리 가운데 단단히 묶여 은혜 가운데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주신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마음에 있는 내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포장하지 말라."예레미야 23,9-22 | 8-1-2025

8/1/2025

 
​오늘 말씀은 참 목자이신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 뒤에 등장하는 가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 말씀입니다. 어제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 왕들에 대한 죄악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이 가짜 왕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진짜 왕이자 참 목자이신 메시아가 오실 것을 그림자와 같이 보여 주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가운데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셔서 참 왕이시자 진짜 목자이신 그분이 오신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연장 선상에서 보면 그 참 목자이자 왕이신 메시아가 오신다는 그 예언은 가짜 왕과 오늘 말씀에 가짜 목자이자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 사이에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참목자이신 메시아와 대비되는 그림 안에서 바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거짓 목자들에 대한 경고를 엄중히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악과 간음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악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 자체이고, 간음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행도 간음했다는 경고도 악과 간음의 행위보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붙든 그들의 영적 간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죠.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선지자들조차도 간음과 악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심지어 제사와 예배 드리러 와서도 이 악과 간음에 대해 돌이킬 마음 조차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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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이게 normal, 정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이 말씀 그대로 나에게 오게 되면 반드시 말씀이 내 심령 골수를 쪼개고, 내 가슴을 통과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내 심령 골수를 쪼개며 내 마음을 찌르는 말씀을 통해 내가 변화하든 내가 그것 때문에 반응을 하든 둘 중에 하나가 있게 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거룩한 말씀이 나에게 올 때는 그 말씀이 무겁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있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과 가짜 선지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다 보니까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이 무거움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 결과 간음하는 자가이 땅에 가득하고 저주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며 광야에 초장이 마르고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게 정직하지 못하는 온 백성들의 악한 행위와 문제들이 드러나는데 이런 현상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말씀을 말씀대로 전하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선명히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될 선지자와 목자가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것이 본인만이 아니라 온 백성을 무너지게 만들고 온 백성이 소경이 되어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드는 일이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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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조차도 하나님 앞에 악과 간음에서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참담한 그 본질적인 문제가 어디 있는 겁니까? 그들이 강단에서 예배 중에 제사 가운데서 선포하는 말이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결국 누구 말이라는 겁니까?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 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자기 말을 하면서 그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호와의 입술에서 나온 전해 주신 말씀 그대로를 전하는 대신 내 마음에서 나오는 내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 본질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목자와 선지자들이 하나님 말씀 대신 그렇게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전하고 내 말을 전하니까 말씀을 무겁게, 중하게 대하는 대신 가볍게, 경하게 대하는 겁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가득한데 그들에게 그냥 괜찮아…너희가 원하는 건 그냥 위로 받고 공감 받는 거지….그리고 회개와 돌이킴 대신 평안하다 말하고 끝나는 겁니다. 영적으로 대비시키거나 준비시키지 않고 평안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악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죄에 대한 결과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가르치는 겁니다.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아…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어떻게 살아도 다 받아주셔…죄에 대한 대가도 심판도 없어….이런 말씀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명에 붙들리지 않으니까 그냥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 생각을 자기 말을 계속 전하고 또 그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귀에 듣지 불편하지 않고 편하니 좋아하는 겁니다. 이런 얄팍한 말씀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겁니다. 은혜 받았다고 말하며 위로 받았다고 말하며 인기 있는 자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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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이 사라진 결과, 사람들의 말만 남은 결과 남유다 전체가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소돔과 다름이 없고 고모라와 다름이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선지자로부터 시작한 이 영적 문제가 결국 온 땅에 다 퍼지게 만든 거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이 모양이니 백성들은 뭐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사는 남유다가 악과 간음에서 돌이킴이 없이 소돔과 고모라와 별로 다르지 않는 도시가 되도록 만든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도 섬기며 무너지기 쉬운 존재이고, 하나님을 떠나기 쉬우며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말씀이 나를 찌르고 깨워 말씀이 나를 돌이키게 만들고 정신차리게 만드는 역사가 있기 원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내가 하나님을 멸시하는데도 평안하다 착각하고, 내가 완악한 대로 행하는데도 재앙은 없고 죄의 결과는 없다고 착각하면서 나는 말씀에 은혜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 문제는 말씀이 임하지 않기에 영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하는 게 없고 영적으로 자기 현실을 직시하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때가 차매 결국 아무런 대비도 준비도 없이 그들이 망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엄중한 책임이 가짜 선지자와 목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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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할 때 말씀이 나에게 말씀대로 전해질 때 나에게는 불편할 때가 있으며 나에게는 마음이 상할 때가 있으며 내 뼈가 떨릴 때가 있는게 정상입니다. 어떨 때는 술에 취한 것 같이 너무 좋아 그 말씀에 젖을 때가 있는 게 노말입니다. 말씀이 나에게 전해지는데 아무런 부대낌도 없고, 아무런 불편함도 없다면 그게 비정상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 귀에 좋은 것만 듣고, 내가 원하는 얘기를 들어 은혜 받지 말고, 말씀을 통하여 내 영적 현실을 자각하고 영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할 게 무언가를 깨달음이 은혜 받음임을 잊지 마십시오. 성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듣기를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 말씀을 주신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전하기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진리 가운데서 있는 성도, 진리 가운데 서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말씀대로 듣기를 사모하는 백성들, 말씀을 말씀대로 전하기를 사모하는 선지자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죄에서 백성들이 돌이키며 악으로부터 회개하며 내 영적 현실을 직시하며 내가 영적으로 깨어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가 되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비결임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이 살아 있는 말씀이 말씀 그대로 나에게 들려 지기를, 나에게 담아 지기를 간구하고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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