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교회에는 드리지 않지만 다른 교회는 가끔씩 있는 헌금 목록 중에 하나가 일천번제 입니다. 일천번제 헌금은 주로 헌금을 1000번을 드릴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 제목을 놓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바로 일천 번제입니다. 그렇게 일천번을 드리는 일천 번제를 통하여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 제목을 아뢰고 구했을 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로 그 기도 제목을 들어주시는 놀라운 간증과 고백들이 성도들 사이에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천 번제가 성경적이냐 아니냐… 라는 논란은 굉장히 많이 있어 왔습니다. 내가 은혜 받았기 때문에 그게 모두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특별히 그 일천 번제라는 교회의 헌금에 근간이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걸 일천 번제라 그럽니다. 그런데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일천 번제의 성경적 의미는 번제를 일 천번 드리는 게 아니라, 천 마리를 한꺼번에 태워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일천 번제의 성경적 의미는 1000번 헌금 드리니까, 1000번 새벽 기도를 하니까, 그 정성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특별하게 부어 주신다는게 아닙니다. 이건 개인적인 간증은 될 수 있지만 성경에서 의미하는 일천 번제는 아닙니다. 천번을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한번에 천마리를 드리는 제사가 성경적 의미의 일천 번제라는 것을 아는 것을 중요합니다. 동시에 일천번제의 성경적 의미를 발견하면서 이 일천번제의 본질과 정신을 깊이 묵상해보기 원합니다. 그 당시 천마리라는 것은 동물을 셀 수 있는 가장 큰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천 마리를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일천번제는 나의 최고, 나의 전부를 드린다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일천번제의 정신은, 가장 큰 숫자의 동물을 드리면서 나의 모든 것과 나의 전부를 주님께 부어드리는 그 순전한 마음, 간절한 주님을 향한 마음을 주님이 받으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천 번제를 드릴 때 횟수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주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 주님을 향한 전심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예배로부터 시작하면서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 최상의 것을 드리며,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하나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드린 것 일천 번제를 드린 본질이자 정신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대하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역대기가 어떤 책이고 어떤 근본 질문과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기억하고 말씀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있는데 처음 세복음을 공관 복음이라고 합니다. 같은 관점을 가지고 쓰여진 복음서라는 것이죠. 반면에 요한 복음은 세 복음서들과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공관 복음서들이 다 커버하지 못한 어떻게 보면 큰 그림을 보기위해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과 다른 시선으로 예수님과 복음을 보게 만드는 거죠. 마찬가지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통하여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족의 역사들을 이미 상세하게 다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가 뒤에 전혀 자른 관점으로 후대에 증언되며 요한복음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역대기는 근본적으로 성전이 무너져 있고 페허와 잿더미가 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전히 언약 가운데 사랑하시는가,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가지고 역사를 재해석하며 증언되었습니다.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 속에 증언되는 이스라엘의 구속사를 전체적인 큰 그림 속에서 다시 한번 재해석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주셨다는 것도 역대기를 주셨다는 것도 참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역대하의 시작으로 특별히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관계를 통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대상은 다윗 왕에 대한 이야기이고, 역대하는 솔로몬 왕과 그 이후의 왕들의 이야기들입니다. 역대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윗의 성전 준비, 역대하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 실행입니다. 성전 건축 준비와 성전 건축 실해, 이 두가지가 바로 한 그림으로 역대기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하에서 솔로몬이라는 사람 자체보다도 다윗의 아들로서의 솔로몬이라는 관점을 일관적으로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은 죽어서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성전 건축에 큰 그림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여전히 솔로몬을 다윗의 아들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창대한 이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유는 물론 솔로몬 자신이 훌륭하고 대단한 이유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가 다윗의 아들이기 때문임을 강조하는 것이 역대하의 중요한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말씀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일관적인 강조점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역사를 재해석하고 만드는 겁니다. 개인의 역사건 국가의 역사건 모든 역사의 흐름이 하나님이 이끄시고 주도하시는 사건들이며, 하나님 은혜의 소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솔로몬의 인생이 창대하며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에게 성전 건축의 복을 주신 이유는 솔로몬 때문이 아니라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이 정체성, 이 속에서 복음의 기초를 놀랍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도 다 동일한 은혜의 시각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의 자녀 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정체성을 가지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게 복음의 시각인 것입니다. 내가 잘해서, 성실하고 신실해서 하나님이 복을 부어주시는게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깨닫는게 복음입니다. 이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듯이,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받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아버지 때문에… 내 하늘 아버지 때문에…나의 주인 때문에…내 인생의 모은 생사와 복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 우리가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거 한마디로 모든 게임이 끝났다는 겁니다.나의 인생이 창대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심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자녀 됨을 통하여 누리는 권세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된다는 바른 믿음의 시각을 꼭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에서 시작이 중요하다는 속담이 여러 개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죠. 시작이 중요하다 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합니다만 동시에 끝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여러 속담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유종의 미를 거둔다.” 라는 말이죠. 아무리 잘 했어도 끝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이게 제대로 된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이 아름다워야 결국 아름답다는 것이고, 끝이 해피 엔딩이 되는 인생이 축복된 인생이라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이 잘 마무리되야 그 삶이 진정한 복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역대상의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역대상의 모든 여정이 끝이 나는데 그 끝이다 아름답게 마무리되며 끝이 납니다. 역대상에 증언된 다윗왕의 끝을 보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인생, 끝까지 아름다운 인생, 끝이 잘 매듭 되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첫번째 다윗이 가진 유종의 미는 바로 끝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며 찬양하는 인생을 살았다는 겁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 송축하라는 것은 praise and bless, 찬송하고 축하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릎을 꿇는다고 그럴 때는 경배한다 말하고, 반대로 하나님께서 무릎 꿇고 있는 인간을 향하여 가리킬 때는 축복하는 모습이죠.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자세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그의 유종의 미를 거뒀다 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왕으로서 가장 위대한 것은 어떤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인생을 끝까지 견지한 것입니다. 마음이 온전히 주님 앞에 드려지며 끝까지 순전한 마음을 주님을 붙들고 살았던 그의 삶 전체가 위대한 삶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죽음 앞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 기쁘고 즐겁게 드리는 그 마음이 나에게 여전히 유효한가…를 평가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되심을 찬송하고 찬양하는 것을 내가 기쁨으로 여기며 끝까지 살아가는 여호와를 송축하는 인생인가…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다윗의 놀라운 유종의 미는 끝까지 백성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하는 기쁨이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고요. 백성들과 함께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먹고 마실 수 있는 이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다윗왕과 같이 자기 삶을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존경 받으며 떠날 수 있으면 그 인생은 복된 인생이고 유종의 미를 거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끝자락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며 텅빈 인생으로 그냥 쓸쓸하게 죽어갑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도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크게 기뻐할 수 있고 함께 웃으며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인생, 그게 바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복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교제를 한참 동안 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영적 본질을 회복하는 건지 모릅니다.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나와 이렇게 크게 기뻐할 수 있고 나와 함께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 먹고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복된 인생이자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삶임을 잊지 않고 살기 원합니다. 마지막, 다윗 인생의 유종의 미는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장수의 복을 주셔서 왕으로 사십 년이나 일했습니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고 장수하는 것이 큰 복입니다. 또한 부하고 존귀를 누렸으며 풍요로움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윗의 인생에 유종의 미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외적인 복들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의 결과였다고 결론을 맺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그는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 예배를 향한 순전한 마음을 붙들고 그 하나님을 향한 마음 가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기에, 이런 놀라운 따라오는 복, 반찬과 같은 복들이 그에게 부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그 열정을 가지고 평생 붙들고 산 다윗왕, 그게 그의 인생의 마무리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은 언젠가 마무리 될 겁니다. 우리 인생은 언젠가 이 세상에서 끝이 나고 평가받을 것입니다. 언제 끝나는가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이 “어떻게 끝이 나는가?” 를 고민해야 됩니다. 다윗과 같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인생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사모하십시오. 인생의 끝자락에 나와 함께 크게 기뻐하며 나와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 그게 바로 복된 인생임을 잊지 마시고 그런 인생을 사모하며 살아가십시오. 그게 인생의 큰 복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십시오. 나의 인생 마무리, 끝에 서서 다윗과 같이 이렇게 여호와를 송축하며 살아 왔음을 고백하며 내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그 은혜가 끝까지 지속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혼자 가려면 빨리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제일 빨리 진행되는 것은 자기 혼자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나 혼자 하는게 가장 빨리 가지만 그렇게 해서는 멀리 오래 갈 수가 없다는 것이죠. 멀리 오래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 가면 안 되고 같이 가야 합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그냥 백성들에게 명령하면 되는 자가 왕이었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명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는 것은 영적인 일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히 경험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기 위해 왕이 혼자만 뛰어서는 되지 않고 백성들이 반드시 자발적인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혼자 모든 것을 하지 않았고 백성들과 함께 일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 가는 일에 초대하였습니다. 백성과 함께 백성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영적 지도력을 발휘해 백성들이 한 방향으로 기쁨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두 가지 이유를 들며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일에 동참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성전이 혼자 세워지면 안되고 백성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함께 가야 되는가? 첫 번째는 솔로몬이 아직 어리고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왕으로서 굉장히 하기 어려운 고백입니다. 그 당시 왕은 꼭 신과 같이 섬기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왕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너무나 공공연하게 얘기했던 게 그 당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대를 이어 곧 왕이 될 솔로몬이 아직 어리고 부족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혁명과도 같은 말입니다. 민주주의가 발달된 이 시대에도 이런 고백이 어렵습니다. 하물며 수천년 전 왕정 시대의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고백이었는가를 상상해 보면 다윗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냥 겸손함으로 표현할 수 없는 다윗의 겸손하고도 탁월한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겸손하게 백성들의 동참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공사는 너무나 크니 백성들이 함께 손잡고 이 일에 동참하기 원한다는 이런 놀라운 통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다윗이 왕임에도 스스로가 온전히 헌신하는 솔선 수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함께 일하자는 권면이 힘이 있는 것입니다. 전쟁 할 때 뒤에 앉아 가지고 너희들은 나가 싸워라 나는 여기 있겠다…이렇게 말하는 게 대부분의 왕 이었는데 최전선에 서서 목숨과 위협을 무릅쓰고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장군 밑에 부하들은 목숨 걸고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지금 다윗은 이미 본인이 먼저 하나님께 미리 최고의 헌신을 주님께 이미 드린 상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왕인 나도 이렇게 쏟아부으며 헌신 했기 때문에 너희도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헌신하기 원한다는 그 말에 힘이 있고 파워가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이 그렇게 쏟아 부으며 헌신한 행동의 내적 동기가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헌신과 애씀이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도 아니고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도 아니고 단순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내적 동기가 하나님께 합하여 있었고 내적 동기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이었다는 겁니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성전을 사모하는 순전한 마음을 죽을 때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순전한 마음의 내적 동기를 근거로 그런 많은 헌신과 준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백성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너희도 나같이 많이 헌신 해라…이걸로 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주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으로 드리기 원한다…이것에 동참하기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 다윗에 함께 함을 통하여 성전을 세워 가자 라는 것을 통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렸고 기쁨으로 드렸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억지로 드리지 않고 즐거이 드렸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거기에 기쁨으로 반응하며 그들도 자원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드리면서, 사람들에게는 기쁨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는 거예요. 이 놀라운 영적인 은혜를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잘 되는 영적 공동체 특징은 항상 사람들에게는 기쁨, 하나님에게는 영광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헌신하고 애쓰는 모든 밑바닥에는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백성들 가운데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고요. 그걸 통하여 백성들에게는 기쁨 하나님께는 영광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혼자 하지 말고 함께 손 붙잡고 올해 타 같이 가는 이 함께 정신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우리 하나 하나는 작고 여리고 부족하나 우리가 함께의 정신을 붙들고 주님의 일을 함께 감당 한다면 그 일을 통하여 힘을 다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우리에게 임하며 길게 오래 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또한 일하는 열심과 헌신에만 집중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하는 내적 동기가 주님 앞에 기쁨으로 드려지는 자원하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흘러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는 기쁨, 하나님께는 영광 되어 주님에게 선명하게 쓰임 받는 귀한 영적인 공동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왕은 자기 손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성전을 짓고 싶었고 그 성전을 이루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고 그의 뜻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꺼이 자기 뜻을 포기하는 결단과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그러면 자기 뜻을 내려놓는 겸손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이루어질 성전 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은 솔로몬에게 나누고 있는 성전 설계도입니다. 이 성전의 설계도가 다윗이 노력하고 연구해서 나온 설계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감을 통해 주신 설계도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넘겨주는 성전 설계도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여호와의 손이 임하며 받게 된 설계도였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성전은 피상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함께하시는 곳이라고만 말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설계도 자체가 하나님의 영감과 손으로 주신 설계도를 가지고 하나님이 세우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적인 눈으로만 보면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돈이 세우는 것이고, 자재와 물건들과 인프라가 세우는 것이고, 솔로몬이 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면 본질적으로 이 일은 영적인 일이며 하나님이 솔로몬을 택하시고 솔로몬을 통해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임을, 하나님이 세워가심을 바라보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은 솔로몬이 짓는게 아니라, 아버지가 준비한 재물과 자재를 가지고 짓는게 아니라, 솔로몬이 생각하는 설계도를 가지고 세워 지는게 아니라, 너를 택해서 하나님이 지으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설계도를 가지고…솔로몬을 사용하셔서 세워 가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건축이 영적인 일이 되는 비결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성전 건축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분명히 믿고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어가시고 세워 가시기 때문에…그래서 다윗의 당부는 마치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 들어가기 직전에 당부했던 내용과 거의 흡사합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일을 행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신다.”사람들의 불평과 수군거림, 흔드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믿고, 너를 통해 일하심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산다 는 것은 나의 인생을 향한 주님의 설계도를 믿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성전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지혜, 하나님의 영감으로 세워주신 설계도에 맞춰서 지어가듯, 우리 인생도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지혜, 하나님의 영감으로 세워주신 설계도에 맞춰서 지어져 가는 겁니다. 영적으로 살고 영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교회를 짓는 일이든 내 인생을 짓는 일이든 그 설계도가 사람들의 손에 그냥 사람들의 머리로 제작된 설계도가 아니라 주님이 만드신 설계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야 되며 우리 인생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적인 눈으로만 보면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돈이 세우는 것이고, 자재와 물건들과 인프라가 세우는 것이고, 사람들이 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면 본질적으로 이 일은 영적인 일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임을, 하나님이 세워가심을 바라보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그렇게 주님의 설계도에 의해 세워짐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 자녀들에게 너의 인생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그 설계도를 가지고 너의 인생이 지어줘야 된다고 다윗과 같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은 말씀에 근거하여 설계되고 지어져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주시는 설계도를 붙들고 나아가는 그 겸손한 마음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나의 인생을 하나님의 설계도에 맞춰 하나님이 세워 가심을 믿는게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공부를 전심으로 해야 하고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고 말씀에 조율 받아야 하는 겁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어떻게 지어지는 지를 그리고 내 인생이 어떻게 지어지는 지를 다시 한번 묵상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성전도 내 인생도 다 주님의 영감으로 주님의 손으로 주신 설계도를 통하여 세워지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성전이 세워진는 것도, 내 인생이 세워지는 것도 영적인 일을 잊지 하시며 나의 삶 가운데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세우시는 우리 인생을 고백하며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의 솔로몬을 향한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제 아들이 커서 집을 떠나게 될 때 아버지가 그 떠나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 세상을 떠나기 전 유언과 같이 남기는 마지막 말과도 같습니다. 솔로몬에게 큰 성전 건축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기고 이제 자신은 역사의 현장에서 후퇴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날을 준비하고, 이제 솔로몬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이어져야 되는데 그 아들의 향한 간절한 당부와 유언이 이 한절 말씀에 녹아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이 짧은 말에 다윗의 깊은 마음이 다 녹아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 아들을 부르고 마음을 담아 당부를 합니다.
그 첫번째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라는 것이죠. 다윗이 마음 다해 믿고 섬긴 여호와 하나님이,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들 솔로몬의 하나님이 되는 것, 이게 다윗의 제일 첫번째 당부였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자녀에게 전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은 여러번 배웠지만 그냥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통전적인, 체험적이고 고백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내가 굴 속에서도, 고난 가운데서도, 도망자의 신세 가운 데서도 목숨의 위협 가운데서도, 골리앗의 그 위협 가운데에도 무너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승리했던 이유, 지금까지 왕으로 쓰임 받은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 아버지 다윗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하나님 되는 것을 고백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윗은 그 수많은 당부 중에 너는 너의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야 돼, 이것을 제일 먼저 얘기했다 라는 것이죠. 두번째 다윗이 솔로몬에게 했던 당부는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하는 신앙 생활의 큰 두 기둥입니다. 구원받고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것은 뭡니까? 이미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고 천국 백성으로서 나의 존재와 나의 신분을 확신한다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하는 것은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는 겁니다. 구원에는 조건이 없지만 구원받은 이후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그 부담감과 사명이 존재하는 것이죠. 온전한 마음이란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 wholehearted/single-focused mind입니다. 나누어진 마음이 아니라, 한 가지로 집중된 마음과 기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섬기는 것 자체보다 섬김을 통해 그 마음과 내적 동기를 주님께 드리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모든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지, 보이지 않는 내적 동기를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갈 때 진실한 신앙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려면 하나님은 우리의 껍데기를 보시는 것을 넘어 우리 마음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항시 잊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보이는 껍데기와 행동으로 사람을 규정하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게 우리가 보는 것 전부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껍데기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먼저 보시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늘 중요하게 보심을 안다면, 하나님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드리는 이 내적 동기의 순수함을 가지고 우린 주님 앞에 서야 한다 라는 것이죠. 이것을 지금 솔로몬에게 다윗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큰 은혜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내 삶 가운데 임하기 위해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자원하는 마음과 전심으로 드리며 섬기는 이 중요한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새벽기도 몇 번 했고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성경 통독에 기도 얼마나 했고, 이런 행동과 행위들이 거룩한 습관으로 이어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습관이 몸에 배는 것은 신앙 생활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한 것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습관화 된 신앙으로만 머물면 그것이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내 신앙 생활이 내 마음과 연결되어 내 마음을 드리는 습관이 될 때 거기서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습관과 나의 순전한 마음이 합쳐져 주님께 드려지면 여기서 놀라운 폭발력이 나오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죽기 전 우리 아들과 우리 딸에게 남겨줄 영적 유산이 있습니까? 다윗과 같이 우리가 남겨줄 수 있는 영적 유산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부름 받았으며 그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 나눠지지 않은 마음 그리고 순전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삶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영적 유산의 첫번째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 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첫번째 우리 자녀들의 향한 간절한 기도 제목이어야 되고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남겨줄 가장 소중한 영적 유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부터 늦지 않았습니다. 내 스스로 먼저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가십시오. 내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있어야 그 고백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수됨을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기 전, 내가 믿은 그 하나님은 너희들이 알고 믿기를 원한다는 분명한 영적 유산을 전수하는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이런 우선순위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자녀들이 믿고 따라가는 은혜가, 그래서 살아 있는 신앙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우리 성도들의 가정을 통해 풍성히 경험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다윗 자신의 신앙 고백을 솔로몬에게 이야기하며 전하는 두번째 부분입니다. 1-3절에서 성전을 성전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발판인 여호와의 언약궤가 중심으로 서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이 성전을 성전 되게 하는 것이지 건물 자체나 인간적인 노력이 성전이 성전 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 임재 중심으로 성전을 바라보는 분명한 고백을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택함에 대한 고백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을 거의 정리하면서 솔로몬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왕 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왕으로 잘 섬긴 것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그 은혜 밖에 없었다고 (4절)…” 본인은 왕이 될 자격과 조건이 하나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아버지 집에서 자신을 택하신 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사실 아버지 이새의 눈에 봤을땐 다윗은 후보에도 오를 수 없는 그래서 후보로 부르지도 알았던 아들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택하여 주신 것이죠. 그러니까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늘 망각하지 않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다윗 자신이 뽑힌 것 뿐만 아니라 자기 집안이 유다 지파 가운데 택하심을 받은 것도 모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자격과 조건 때문에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은 것 뿐이다…이것을 끝까지 망각하지 않고 마음에 새긴 것입니다. 그거 외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면 나는 자격 없는 자라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며 살았던 것이죠
결국 우리 인생에 있어서 은혜로 산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아니면 난 하루도 살 수 없는 인생, 영적으로 파산하는 인생임을 철저하게 감격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격을 붙들고는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라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며 십자가 은혜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키고 살았던 자가 바로 다윗 왕이었고,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를 성경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위대한 왕으로 온 이스라엘에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결국 나의 인생에 내가 왕으로 이렇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 하나님이 자격 없는 날을 세워 택하셔서 왕으로 삼으신 것뿐이다…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 붙들고 겸손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엎드리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지금 젊은 솔로몬에게 도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솔로몬에게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첫 번째 아들도 아니었고요. 솔로몬의 어머니는 어떻게 보면 다윗의 부끄러운 실패와 흑역사를 그대로 품은 여인 밧세바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인을 통해 태어난 솔로몬을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은 마치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자격 없던 자신을 택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동일하다는 겁니다. 인간적인 조건과 배경을 봤을 때는 더 좋은 아들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전적인 은혜로 솔로몬을 왕으로 택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망각하지 말고 꼭 붙들고 평생 살아야 되는 좌우명과 같은 붙들 진리는 뭐냐면 너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택하셔서 왕이 되었다는 이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 아들 솔로몬 앞에 남기고 싶은 유언과 같은 이야기합니다. 지금 솔로몬에게 본인이 평생 품고 살아야 하는 신앙 고백은 자격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뽑아 선택하셨다는 이 초심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것만이 네가 살 길이라는 것을 솔로몬에게 강조합니다. 지금 솔로몬은 초심은 굉장히 좋았던 겁니다.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법고를 힘써 준행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았음을 철저히 고백하고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7절). 오늘과 같이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 품고 나아가면 하나님께 쓰임 받고 끝까지 하나님 앞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성전을 건축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한결같이 가지고 가면 그의 나라를 영혼이 견고하게 하나님이 세워 주신다는 것을 약속하십니다. 반복해서 다윗은 전심을 다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어떻게 성전이 세워지는지,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겉으로 봐선 사람들이 성전을 세우는 것 같고 재료와 자제를 가지고 세우는 것 같지만 결국 세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은혜로 택함 받았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고 그 초심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만이 성전을 온전히 세울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만이 하나님께 끝까지 섬기고 쓰임 받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꾸 자격이 있어 내 인생이 여기까지 왔다는 착각이 생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의 시선이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사랑으로부터 딴 곳으로 지금 옮겨가고 있는 영적인 하향 곡선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무너지게 되는 것은 내가 자격이 있고 내가 준비가 되고 내가 이렇게 스팩이 있고 내가 이만큼 모든 것을 갖추어서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다고 착각하는 순간 무너지는 것이죠.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초심의 마음을 붙들고 품으십시오. 자격 없는 나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그 은혜 없으면 파산하는 나, 완전히 무너지는 나를 직면하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붙드십시오. 그래서 이 은혜를 기억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는 거예요. 자격없는 나를 택하여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내가 지금까지 산 것도 모두 주님의 은혜라 철저히 고백하며 주님의 계명과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시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선명한 신앙고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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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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