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성도 분들께 질문을 받는 여러 가지 삶의 고민들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술 담배 문제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 꼭 술 담배를 안 해야 됩니까? 사람마다 생각과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하는 마음에 있어서 나는 신앙생활의 Maximum을 위해 그 질문을 하는 건지 아니면 minimum 이 정도 까지만 해도 상관없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질문 하느냐를 주님은 바라보신다는 겁니다. 술과 담배 문제가 나에게 신앙 생활을 적절히 대강 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 마음 자체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 다는 것이죠. 내가 하나님께 전적인 헌신을 고민하면서 술 담배 문제를 고민하는지, 아니면 그냥 대강 신앙 생활을 하는 미니멈을 위해 고민하고 질문 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온전한 기다림과 온전한 순종입니다. 기다리라고 명령을 하셨는데 90%기다리고, 10% 못 기다린 것은 기다리지 못하나 것입니다. 순종하라고 명하셨는데 5% 순종 못했으면 그건 불순종이라는 겁니다. 주님 저는 90% 를 기다렸는데요…저는 95% 를 순종 했는데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분명히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 명을 받고 겉보기에는 사울왕이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진멸 대신 자신의 생각에 따라 취사 선택했으며, 순종을 하긴 했는데 완전한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각왕을 진멸하는 대신 살려서 사로 잡아왔고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은 진멸하지 않고 남긴 것입니다. 다 없애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찮은 것과 가치 없는 것”만 순종하며 진멸했습니다. 주 목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인 진멸 하기를 즐겨 하지 않은 부분은 좋은 것, 기름진 것과 모든 비싼 것들이었습니다. 눈에 보기에 귀하고 기름지고 비싼 것은 다 남긴 이유의 본심은 하나님께 모두 드리기는 아까운 겁니다. 하나님께 중요하고 귀한 것은 모두 드리기가 아까운 겁니다. 겉보기에는 순종하고 말씀에 잘 따라 간 것 같은데, 남는 것과 하찮은 것만 순종 하는 부분 순종은 결국 불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왕의 삶의 태도였고 하나님 만을 더 이상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 교만의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최고의 것을 드리며 순종 하는 대신 하찮은 것과 가치 없는 것을 드리며, leftover로 드려 놓고는 이 정도면 순종했다 하나님의 말씀 잘 지켰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이 이 반쪽 순종이 사울과 백성들의 합작품이라는데 있습니다. 사울왕은 계속해서 민심에 민감한 사람,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굉장히 신경 쓰고 민감했던 자가 사울왕 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 하지 하지 않고 기름진 것과 좋은 모든 것을 남기려는 취사 선택은 민심에 민감하다 못해 민심에 끌려 다니는 사울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기에 귀하고 아까운 것은 없애지 않고 순종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들어간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내가 취사 선택을 하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잘못된 결정이 지도자인 왕의 책임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마음으로 해석하고 왜곡해버린 책임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자리에 앉은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표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대표하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왕의 영적 타락과 무너짐은 단순히 그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영적인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왕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을 안한 건 아닙니다. 순종을 하긴 했는데 반쪽만 순종했고 취사 선택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영적 전쟁을 치루기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반쪽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런 순종을 하나님은 불순종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십니다. 그 취사 선택의 순종과 부분적 순종은 불순종과 다름없다 말씀하심을 마음에 깊이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 온전한 예배를 받으십니다. 남아있는 것, 하찮은 것, 가치 없는 것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반쪽 순종 취사 선택하는 순종을 드리는 헌신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 하나님 내 삶에 넘버 원입니다 고백하며 거룩하며 구별된 것을 드리는 순종과 헌신을 주님은 쓰시고 그것을 통하여 역사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하고 좋은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아낌없이 주셔서 우리는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 사랑의 수혜자임을 분명히 믿고 고백한다면 신앙생활 할 때 주님 나는 전심으로 주님께 드리고 전심으로 순종한다는 영역이 있어야 합니다. 남는 것, 하찮은 것을 드리고서, 반쪽 순종을 하고서도 순종 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넘버원으로 고백하는 영역에서, 전적으로 드리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곳에서 일을 하고 역사 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쪽 순종 대신 전적으로 드리는 헌신과 순종을 통해, 남는 것과 하찮은 것 대신 거룩하고 구별된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놀랍게 사용하시고 놀랍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데 쓰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15장 말씀은 사울왕이 인생의 high point 가장 높이 올라가는 성공의 때에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13장 말씀은 가장 힘들었던 low point, 삶에 찾아온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반응 했는가, 인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가를 증언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울왕에게 한번 하나님께서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 인생이 승승장구하는 황금기와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하나님을 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가? 안타깝게도 사울왕은 이번에도 그 기회를 놓쳐버리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15장 말씀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담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간청합니다. 1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라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보내셨고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르셨고 여호와께서 왕으로 삼으셨음을 망각하지 말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붙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도구로 이 자리에 세우셨음을 잊지 말고, 왕의 자리는 하나님이 세운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owner이고 왕은 manager 이니까 주인이신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만 산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로서 우리 인생의 고백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도하시고 주관 하셨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시고, 여호와께서 세워 주신 자리에 있고, 여호와께서 맡겨 주신 능력과 재물을 가지고 지금 내가 서 있음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사는 것입니다. 이 한 말씀을 우리가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딱 붙들면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비교의식 가운데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그 비교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분명한 영적인 기준을 주시는데, 하나님은 결코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여 평가 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입니다. 대신 분명한 내 인생의 평가 기준을 주셨는데 바로 내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과 “내가 남긴 것”에 대한 비교로 평가하신다는 겁니다. What did you with what you’ve been given? 하나님께 받은 것과 하나님 이름 앞에 남긴 것을 분명히 평가하신다는 거예요. 이 분명한 영적 기준을 붙들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있고, 대신 내가 이 시간 하나님께 받은 걸로 뭘 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점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 교회 예배당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면 나중에 어떤 평가가 있겠습니까? 이 받은 선물로 너희는 무엇을 남겼는가를 분명히 물어보신 다는 거예요. 우리는 선물 주신 성전을 통해 새 생명을 남겼고 구원 받는 자들을 남겼는가..분명히 평가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의 그 받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 자리와 재물과 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평가에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만큼 그것을 통해 여러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를 분명히 하나님은 평가하신다는 겁니다. 이 영적 평가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 이 평가 기준을 정확하게 붙들고 거기에 인생을 걸 때 우리는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알아 내가 하나님께 남기는 것을 정확하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 이것이 바로 사울을 향한 사무엘의 분명한 직언이었습니다. 사울왕이 이 말씀을 취하고 마음에 분명히 새겼으면 여기서 반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죠. 이 말씀을 듣고 주님 그렇습니다…저 다시 한 번 새 출발하겠습니다. 그랬으면 그의 인생 역전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울왕은 사무엘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습니다. 사울왕의 자리를 하나님이 세우시며 맡기신 하나님의 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원수 아말렉과 영적 전쟁을 통해 진멸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까지 다 죽이는 잔인하고 인정 사정 보지 않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아말렉이라는 민족은 단순히 한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방해하는 세력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고 가시는 일을 방해 했지요. 결코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 안됩니다…그랬더니 예수님은 단번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베드로가 사단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베드로가 가진 생각 자체가 사단이 심어준 생각이었다는 것은 분명히 깨닫고 정신차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 성경에서 아말렉은 역사적인 민족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그 세력 전체를 지칭한다고 보면 됩니다. 아말렉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직후에 제일 먼저 공격한 민족 그것도 앞에서 공격하지 않고 뒤에서 비겁하게 공격해서 힘없는 어린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공격한 야비한 민족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는 아말렉과 영적 전쟁이 시작되어 전쟁터에서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는 겁니다. 전쟁터는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우지만 실제로 전쟁의 승패는 전쟁터에서 나는 게 아니라 기도터에서 난다는 것을,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 줘서 이기는 사건이 바로 바로 아말렉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기도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승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며 여호와의 도움으로 이긴 전쟁이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그 아말렉과의 전쟁 승리 이후 하나님께서는 “ 내가 아말렉을 없이 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에서 사울 왕이 받은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입니다.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여 아말렉과 의 영적 전쟁을 승리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사울왕이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왕이 아말렉과의 전쟁에 나갈 때 누구를 의지하여 나가야만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만 의지하여 나가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믿음의 반응을 보인게 아니라 머리를 굴리며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영적 전쟁을 나가려 하는데 자신의 군대가 몇명인가 계수하고 있는 겁니다. 단순히 숫자를 세는 게 아니라 그 군인들의 숫자의 힘, 군사력을 의지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증거가 뭐냐면 자꾸 사람 수를 세고 자꾸 계산기를 두들겨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세력을, 숫자를 의지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군대가 얼마이고 내가 가진 힘이 얼마이고 세면서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겁니다. 영적 전쟁을 나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여 그 분을 붙들고 승리하려는 대신 숫자를 세어보고 계산기를 두들겨 보는 사울왕의 불신앙, 이런 전조 증상들이 결국 사무엘상 15장 뒤에서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붙들고 취해야 하는 절대 진리입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그게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주님 앞에서 승리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고, 영적 전쟁 앞에 두고 계산기 두들기며 머리 쓰지 말고 주님만 철저히 의지하며 주님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조율 되시기를 사모하십시오. 사울왕의 실패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반성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더 깊게 들어가는 복된 한주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의 전쟁 승리 업적과 그 집안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14장 전체를 알지 못하면 사울이 정말 용맹하게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승장구하는 초대 왕으로서의 업적, 향하는 곳마다 이기고 약탈 자의 손에서 건지는 사울의 업적을 증언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들에서의 승리는 사울왕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믿음의 아들 요나단의 믿음에 반응이자,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업적임을 말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기를 다 잃은 채 두려워 떨고 있었으며, 상황과 눈에 보이는 군사력에 압도 당하여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지 못한 채 스스로 번제를 드리며 무너졌고 전쟁에 나갈 의지도 용기도 없이 그냥 서 있었던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왕 대신 요나단이 믿음으로 그 인생을 던지며 블레셋과의 전쟁터로 뛰어 들어갔고 하나님께서는 그 요나단의 믿음의 반응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영적 승리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사울왕이 아닌 요나단이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영적 승리를 이끈 일등 공신이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고 그런 일등 공신 요나단을 죽이려는 사울 왕에게 온 백성이 막아서며 구해 냈습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전쟁들에서의 승리는 사울의 업적이 실제로는 요나단의 업적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의 업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업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승리들을 사울왕의 위대함에서 나오는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사울왕 자신입니다. 오늘 말씀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사울왕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싸울 의지도 마음도 없었으면서, 영적 전쟁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아가지도 못했으면서,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로 부어주신 승리들을 맛보면서 자신이 위대하고 잘 싸워서 이긴 결과들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약탈자인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그들의 손에서 건져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사울왕을 통해 백성들이 건짐 받은게 아님을 백성들은 다 아는데, 사울왕 자신만 모르는 겁니다. 초대 왕으로서 놀라운 업적을 쌓아 온 영웅으로서의 사울왕이 백성들을 건져 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사울 왕은 승리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영적 현주소를 착각한 채 내가 힘이 강하고 용맹해서, 우리 이스라엘의 군대가 잘 준비되어서 전쟁에서 나가는 곳마다 이긴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 안타까운 착각, 전조 증상의 정점은 사울왕이 힘이 있는 자나 용맹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다는 말씀에 녹아 있습니다. 사울왕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과의 여러 번의 큰 싸움이 있었는데, 그렇게 블레셋과의 전쟁들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앞서 싸우신 은혜의 열매들 이었습니다. 요나단과 같이 믿음의 반응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승리하는 전쟁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영적 전쟁들에서 승리하면서도 여전히 용맹한 자들과 힘이 있는 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전쟁에 나갈 때마다 여전히 누구를 모으고 누구에게 집중했는가 하면 힘이 있는 자들과 용맹한 자들입니다. 사울왕은 여전히 영적 전쟁의 승리가 뭐에 달렸다고 믿고 있는 겁니까? 사람의 힘과 모여 있는 세력에 따라 그 승패가 갈린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많고 적음에, 눈에 보이는 힘있고 용맹 있는 자들의 많고 적음에 전쟁이 승패가 갈린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쏠리고 불러 모은 이유는, 이런 힘있고 용맹한 사람들을 모으는데 전쟁에 승패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믿고 신뢰함에 승패가 있는게 아니라, 군사력과 용맹함, 그리고 사람의 힘에 전쟁에 승패가 있다고 믿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사울왕이 이렇게 가는 곳마다 이기고 약탈 자들의 손에서 백성들을 건지게 된 것은 사울왕 자신의 용맹함도 능력과 노력의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승리가 생기면 생길수록 향하는 곳마다 이기며 승승장구 할 수록 자기 자신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싸울 의지도 용기도 없어서 벌벌 떨고 있었던 그 부끄러운 모습을 선명히 새기며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붙드는 왕이 되었으면 더 큰 승리를 경험하는 쓰임받는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격지심이 생길 정도로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신차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의지하지 않는 사울왕, 은혜로 부어주신 승리들을 자신의 업적으로 취하며 착각하는 사울왕을 하나님이 점점 더 사용하기 어려우신 지경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더 나아가 이런 전쟁들의 승리가 나와 내 군대의 용맹함과 힘있음에서 나온다고 착각하는 불신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승리는 자신의 업적으로 착각하며 그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왕이 되는 대신, 무기와 군사력, 용맹한 자들과 힘있는 자들을 의지하는 왕인 사울왕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결국 15장에서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 말씀은 불안한 모습으로 전조 증상들에도 돌이키지 아니하는 사울왕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녹아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인생을 돌아보면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부어 주신 여러 놀라운 성공들과 업적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성공들과 업적들이 실제로는 나의 업적이 아니라 부족한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주신 열매라는 것을 나는 실제로 믿고 고백하는지를 물어보고 계십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명한 영적인 현주소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종종 사울왕과 같이 착각하며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로 부어 주신 승리들과 업적들을 내 노력의 결과인 냥 착각할 때, 향하는 곳마다 이기고 승승장구 하는 것 같이 보일 때 그게 다 나의 업적처럼 보이고, 내가 놀라운 일을 한 영웅 같이 보이면서 은혜를 부어 주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성공들과 업적들이 나의 노력과 능력의 산물이었다고만 착각하고 내가 중심에 서게 되는 순간 우리도 사울왕과 같이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전조증상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든 성공과 업적들이 나의 업적이라고 착각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드는 대신, 힘있고 용맹있는 자들을 붙들고 돈을 붙들고 나아가며 이런 것들이 나에게 승리를 주는 비결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다가 와르르 무너지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짧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성공들과 업적들이 주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음을 철저히 믿고 고백하며 주님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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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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