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다윗의 하나님에게 합한 마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인생이 잘 나가고 왕으로 궁전에 거주하며 모든 것이 평탄하여 안정에 접어든 인생의 피크, 왕으로서 전성기를 달리는 그 때, 편안하게 자기를 위해 누릴 거 누리며, 호강하면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그 때에 다윗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죠. 복 주신 분은 하나님임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어떻게 더 기쁨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지금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잘 거주하는데 여호와의 법궤는 저 천막에 있는데 마음이 쓰인 것이고 성전 지어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또 하나 다윗의 위대한 점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태도와 함께 두 번째 다윗에게 배우는 것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룩한 부담감을 선지자 나단과 상의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어요. 왕이 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윗 자신이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였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그는 눈으로 목도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다윗이 가진 생각은 누가 봐도 좋은 일이었고 누가 봐도 하나님 기쁘시게 할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본인이 결정하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으로서 다윗은 결정 전에 나단과 상의하고 자문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다윗이 가진 영적 겸손함이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체험과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영적 교만입니다. 특별한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 중에 영적으로 교만한 해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죠. 나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찮게 여기고,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를 무시하고, 가정에서 남편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 특별해서 까딱 잘못하면 교만해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에게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줄 아는 것이죠. 자신에게만 하나님이 음성을 들어주시고 자신에게만 특별한 체험을 주시는 줄 아는 겁니다. 영적으로 겸손하다는 것은 나에게 주신 그 은혜를 동일하게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주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에게 물어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울인 다윗, 그 왕의 위치에서도 영적 지도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이 태도가 다윗의 탁월한 점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이유입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생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태도와 귀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그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그는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다윗의 이러한 영적인 겸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선지자 나단이 보기에도 너무 귀했고 너무나 좋게 여겨졌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쁨되기 원하는 그 마음이 선지자 나단이 보기에도 너무 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시라고 말합니다. 나단도 다윗왕도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확신하고 추진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임하셔서 지금 건축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윗왕도 나단도 모두 이게 좋은 마음이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 마음속에 있는 바를 행하는 게 바른 길인거 같은데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지금 성전을 짓지 말라 하시는가? 이유는 너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죠. 내 생각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내가 생각해도 이건 100% 인 거 같아도 하나님이 아직 아니야…그렇게 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계획이 다를 수 있고,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생각에 아무리 옳은 것 같고 하나님께 기쁘시게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No…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 태도와 자세가 틀려서가 아니라 시기적으로 아직 아니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해서 지금까지 인도해 오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지 아니하고 언제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그 백성들의 삶의 한 가운데 계셨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다윗을 인도하시고 이끌어 오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다윗이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도 아둘람 굴에 목숨 걸고 숨어 있을 때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셨고 지금도 이렇게 인생이 잘 나가고 승승장구할 때도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신 거죠. 다윗이 지금 이 시점에 성전을 짓게 되면 백성들이 하나님은 저 안에만 계신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무엇을 더 마음에 새겨야 할 때인가 하면, 하나님은 나의 삶의 한 가운데, 백성들의 삶 한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정확하게 믿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은 중요한 때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윗의 마음은 기쁘게 받으시지만 지금이 하나님이 이루실 때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윗의 이 영적 겸손함을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내가 위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가 영향력이 생기면 생길수록 내 가운데 교만이 싹트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왕임에도 불구하고 들을 귀와 영적 지도자와 함께하는 영적 겸손이 있었던 다윗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동시에 아무리 내 생각이 옳은 것 같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확신 할지라도 하나님이 멈춰서 라 할 때가 있고 하나님은 너의 생각과 뜻과 다르다 말씀하실 때가 있다면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그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이러한 바른 태도와 자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여러분들 가운데 머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이 왜 하나님께 합한 자이며 하나님께 합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끝까지 쓰임 받았는가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다윗은 지금 왕이 되어 그의 궁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이 궁전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백향목으로 잘 지은 궁전에 살고 있었다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왕정이 이제 안정화되고 모든 것이 평정된 평화를 찾게 된 시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13년 동안 거의 고난의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고난의 행군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장인이자 그 당시 왕이었던 사울의 지명수배를 받아 도망자로 살게 되었고요. 그는 굴에 숨어서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과 난관을 겪으며, 마침내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도 바로 평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과정을 통하여 다윗이 온전히 왕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왕으로 모든 것을 세우고 안정화 단계에 왔으며, 그가 그렇게 소원했던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오는 일까지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마무리되고 숨 좀 돌리고 평화의 시대가 오게 된 때,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위대한 왕으로 높이며 이제는 승승장구만 하면 되는 때가 바로 다윗이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 거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 인생이 마침내 고생해서 인제 성공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룬 것 같고 더 이상은 올라갈 때가 없을 거 같은 그 하이 포인트에 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 때 어떤 생각을 하냐면 야…이제부터는 내가 내 마음대로 즐겨야지,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내가 살아야지…이제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나를 집중하고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수고 했다고 말하고 나를 위해 사는 겁니다. 모든 생각이 나에게 닿아 있고 모든 plan이 나에게 가 있는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걸 뭐라고 그럴 수 없는 것이죠 그게 보통 평범한 사람들의 당연한 생각들이니…그동안 고생 그렇게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좀 떵떵거리며 너를 후에 당당하게 살며 너를 위해 즐기고 마음껏 쓰고 소위 말하는 호강하며 지내라…이게 틀린건 아니지요. 그런데 다윗은 그런 평범한 인생을 넘어 굉장한 비범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뭐냐면 그의 궁전의 그렇게 거주하고 있을 때, 인생의 피크에 있을때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한 겁니다. 하나님에게 어떻게 하면 더 기쁨이 될까…감사를 드릴까를 전심으로 생각한 겁니다. 왕이 되고 나서, 높은 자리에서, 성공해서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커진 겁니다. 이 생각과 태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신 축복이 부어 질 때가 있어요. 그냥 내가 조금 잘 해서 얻는 어느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 외에는 고백할 수 없는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부어지는 은혜와 복이 부어 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어주신 분인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사울왕과 같이 놀랍게 부어진 복들만 바라보며 그 복 자체의 머물러 있게 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성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부터 흘러 넘치는 복을 받고 나서 그냥 내 미래의 내 앞날에 만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이 아닌 자기에게 매몰 되고 말아요.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 부어지는 복이 주어져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겁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람, 다윗과 전형적으로 대비되는 사람이 바로 사울왕이지요. 작고 부족한 사울왕을 세워주신 하나님, 은혜로 부어주신 승리를 경험한 이후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신 이후 승승장구 하니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 뜻이 앞서 나가며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게 시작한 자가 바로 사울왕 이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망이 없었던 자이지요. 바로 유대인 같은 자…. 결국 하나님에게 등 돌리게 되고 하나님에게 결국 버림받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다윗왕은 이 위험성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의 인생에 하이 포인트에 있을 때, 그 인생의 최고 전성기 때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낼가, 내가 어떻게 하면 또 떵떵거리며 살지… 그런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하나님에게 관심을 먼저 두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누리는 모든 게 하나님의 부어 주신 복이고 은혜였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까지 서 있고 왕이 되었는데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이렇게 편하게 지내고 있는 게 누구한테 죄송 했던 거예요? 하나님에게 죄송했던 거예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요. 누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도 아니에요. 그의 마음에 자발적인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생각하며 그것을 기쁨으로 여긴 자가 바로 다윗왕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난 가운데 도 잃어버리지 않았고요 그 인생이 잘 나갈 때도 잃어버리지 않고 심지어 왕이 되어 모든 것을 가진 그때에도 잃어 버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 마음 자체를 하나님의 굉장히 기쁘게 보셨고 이런 다윗의 순전한 마음을 통해 하나님은 놀랍게 다윗을 통해 일하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가 실패와 문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거둬 가지 아니하시고 더 많은 축복으로 그에게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남게 하신 거예요. 바로 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과 태도 때문에…. 사실 우리 인생이 그런 하늘에서 부어지는 은혜와 복 가운데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흘러 넘치는 복 가운데 하나님이 여러분들은 보이십니까? 그 축복 가운데 그리고 나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더 기뻐하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냐…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함이 있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마음이 있을 때 이 태도가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흘러 넘치는 은혜와 더 놀라운 복이 머물게 하실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가져야 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을 중시하는 태도… 내가 신앙이 깊어 지고 영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나의 관심이 하나님을 향한 관심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한 관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 가는 거에요. 우리 마음속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리잡은 이 생각 자체에, 태도 자체를 하나님은 기뻐하심을 알고 붙드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고민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누구와 강요해서가 아니라 누가 협박해서 아니라 해야 된다는 당위성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나의 삶의 태도가 하나님 중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를 붙드는 열망이 있기 원합니다. 이 다윗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태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저와 여러분들이 품는 마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며 내가 어떻게 지음 받았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 중심으로, 내 삶을 내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물으며 위대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나 다움을 잃어버린 삶을 살게 되고, 내가 주어가 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보면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라 고백합니다 (26절). 눈에 보이는 모든 신들과 우상들이 헛것이고,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 눈에 보이는 가치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 헛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끊임없이 나 자신만을 묵상하고,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만을 묵상하는 것 이게 바로 만국의 모든 신들이 헛것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헛것에 내 눈과 마음을 다 빼앗기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인간의 오작동이라는 것이죠. 그게 영적인 어둠이고 죄에 결박된 우리 인간의 실존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반복적으로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하늘을 지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가치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가치인 영의 세계, 눈에 보이는 이 땅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 이것을 다 하늘로 표현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나 자신만을 묵상하고 상황과 환경만을 묵상하며 자신을 중심과 기준으로 살아가는 그 삶에서 우리를 건져 내셔서 위대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맛보아 알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영의 눈을 깨워 뜨게 하시며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하늘나라에 통치 가운데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깨워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영원한 천국과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믿음으로 믿고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건짐 받은 놀라운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의 삶을, 우리 공동체의 삶을 여호와께서 통치하심을 선명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30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될 때 중심이 바뀌고 바라보는 것이 바뀌게 되며,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내가 주님의 다스림과 하늘나라 법 아래 있는 자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출애굽 말씀을 묵상해 보게 되면 애굽에서 노예 상태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바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세상에 결박되어 안식과 자유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영적 상태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달라고 요구할 때 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Let my people go so that they can worship God…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우리 백성들을 풀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노예로 이 세상 가치에 매몰되고 눌려 안식과 자유를 잃어버린 채 결박된 우리를 건져 내셔서 죄의 결박을 끊으시고, 나의 존재는 하나님 안에 쉴 수 있는 존재이며 예배를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 그게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나다움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감사하며 찬양하게 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고백합니다. (34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게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 드리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에 모두 빼앗기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신앙 생활이란 건 결국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내 삶의 중심으로 두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내 삶의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19절). 이 세상에서 승리했을 때 그 모든 승리의 원인은 하나님께 돌리는 것 그게 바로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내 삶의 힘과 능력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을 믿으며 주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는 백성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바라보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분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는 것, 나의 힘과 능력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을 믿으며 주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천국 백성의 삶입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을 들어 쓰시는 주님의 계획 가운데 조율되며 내 인생을 통해 주님 영광이 드러나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감격으로 바라보며 찬송하며 기도하는 기도문을 은혜로 나누고 있습니다. 다윗은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무한한 감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기도문에서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감사가 바로 구원해 주신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우리 백성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죠 (15절).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 한가운데로 도시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의 삶 한 복판에, 이스라엘 백성들 삶의 중심에 들어오고 있음을 우리에게 그림 언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마음에 품고 영원히 기억하는 삶이 바로 백성들 중심에 말씀이 머무는 것이며, 구원해 주심을 망각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조상에게 하신 약속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16-17절). 익숙한 자기 친척 집을 떠나 고향 땅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게 될 때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된다는 이 구원의 약속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현실화 된 것이 바로 출애굽의 역사이자 가나안 땅 정착의 역사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망각하지 않고 영원히 기억해야 될 하나님의 구원 하심의 핵심 그것이 가나안 땅 정착으로 우리에게 증언되고 있는데요. 출애굽 이야기는 등장하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 정착과 땅 분배 대한 이야기를 구원의 약속 성취, 큰 그림으로 증언합니다. 출애굽 이후 40년이 지나 가나안 땅을 정착하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기 하나 변변치 않았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싸워 이겨 그 땅을 차지할 확률이 거의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과 조건은 절대 그 땅을 차지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저 객이 되었고 숫자도 적었던 유랑하는 나그네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건 단 한가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믿음만을 가지고 하나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갔던 싸움이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이었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했으며 하나님이 주신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땅을 배분 받았던 놀라운 구원의 역사이며 언약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황과 환경으로 불가능했던 그 놀라운 일들이 주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 이것을 그들이 기억하고 영원히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며, 그들의 감사와 기쁨의 가장 중요한 제목이 그 구원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망각하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사, 신약 이후 지금까지 교회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고 지킨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잊어버리고 망각하면서 무너진 역사이자,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서며 회복된 역사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되게 만들고 천국 백성 되게 만드는 그 거룩하고 구별됨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망각하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그 약속을 지키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힘 또한 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며 지킨 그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감사가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구원해 주심이라는 것을 진짜 믿고 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백성들은 결국 나의 일상의 삶에서 내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봐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고백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약속을 붙들며 살아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내 마음에 품고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천국 백성이자 하나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 가운데 살아가는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비결은 날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주신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잊지않고 망각하지 않고 영원히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기억하고 망각하지 않고 감사한다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처절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아니할 때 결국 무너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한다는 고백 (23절)이 바로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는 결국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언약과 약속에 대한 무한신뢰, 그것을 우리가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데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주님의 구원 하심과 은혜를 붙들고 나의 힘과 도움이 오직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온다는 것을 고백하며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 온 이후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장면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올 때 다윗은 옷이 내려온 것도 모를 정도로 기뻐하며 춤을 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삶의 한복판에, 백성의 삶의 한복판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이며 기쁜 일인지를 기쁘게 몸소 표현하게 된 것이죠. 오늘 말씀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넘어 다윗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감사의 축제 잔치를 여는 장면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그렇게 장막 가운데, 백성들 한 가운데 들어오게 된 것이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다윗은 깨달은 것이죠.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왕이 된 사건, 그 이후에 법궤가 마침내 들어오게 된 것 까지 모두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성대한 잔치를 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백성들에게도 같이 임하도록 성대한 잔치를 열게 됩니다 온 국민들을 향하여 큰 축제를 벌이게 되고 모든 백성들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기념품도 주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온 이 날이 다윗이 왕으로 등극한 날도 아니고 대단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의 눈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온 것이, 자기가 왕으로 등극한 날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기사와 역사를 알리라고 선포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다윗을 향해 박수를 치고 다윗을 위대한 왕이라며 막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고 그 시간을 미소로 즐기면 되는데, 그 백성들의 환호성과 열광 가운데 다윗왕은 착각하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일하신 결과일 뿐임을, 말씀이 내 삶 한 가운데 들어오셔서 역사하신 결과라는 것을…그래서 나를 노래하고 나를 찬양하고 내가 놀라운 일을 전하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다윗은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의도적으로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구하며 살겠다고…나는 그의 얼굴을 먼저 찾을지라… 나는 그의 이름을 먼저 구하겠다. 이게 바로 다윗왕의 위대한 점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어려움이 굉장히 많이 있었고요. 살면서 실수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끝까지 세우시고 소위 말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다윗에게 임한 이유는,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구하며 찾는 자세와 태도였습니다. 수많은 위기와 어려운 가운데도 실패와 좌절 가운데도 하나님의 능력을 찾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여호와 은혜를 붙드는 삶, 하나님 말씀이 그의 삶 한복판에 들어오시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가 다윗왕에게서 떠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통해 역대상은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영적 진리를 알려 주는데, 내 인생이 세워지는 것보다 내 집이 세워지는 것보다, 내 직장과 내 사업이 잘 세워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이 세워지는 게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죠. 내 마음속에 정말 내가 열망하고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세워지며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며 하나님의 역사가 세워지는 것이 정말 우선적인가…다윗왕은 진심으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임재를 이토록 갈망 했으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으며 하나님의 일을 세우는 것을 나의 일이 세워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긴 분명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영적인 일에 하나님의 일에 가장 기뻐하며 그 마음을 드리며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와 축제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잿더미와 폐허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기 위해 모인 이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나의 집을 세우고 나의 인생을 세우고 나의 가문을 세우고 나의 직장을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게 더 크고 우선이며 그 기쁨이 내 인생의 기쁨 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역대기 관점에서 큰 맥을 가지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이며 새언약을 계승하면서 성전재건을 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붙들어야 될 진리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 부어 주시고 하나님 이끌어 주셔야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이 다윗왕과 같이 말씀이 내 삶 한복판에 들어와 이끄시는 삶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모든 기사를 전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를 결단하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 가운데 머물기 위해 이런 다윗의 순전한 마음이 우리 가운데 회복되기 원합니다. 하나님말씀이 내 삶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말씀이 내 삶을 이끄시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세워지기 원합니다. 내 인생이 세워지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 뜻과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임을 마음속에 열망과 고백으로 담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 삶이 내 삶의 갈망과 열망이 될 때 이것이 정말 나의 소원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와 은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임재가 먼저 세워지며 경험되는 그 기쁨과 환희를 누리기 원하며, 다윗왕과 같이 그것이 진정으로 기쁨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다윗 왕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법궤를 가져오다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됐기 때문에 다윗왕은 두 가지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장소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련했고, 두 번째는 사람들을 준비했습니다. 사람과 장소를 신중하게 잘 준비한 것이죠. 쉽고 편안한 방법인 수레에 끌고 법궤를 가져오다가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에 특별히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온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세상에 편리한 방법이나 쉬운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방법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져올때는 편리함을 따라가지 않고 말씀대로 따라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들도 준비됐고 장소도 준비되었고 메어가는 방법도 다 준비되었습니다. 이게 준비가 다 끝난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더 준비한 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법궤를 매어 가는 자들의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죠. 몸을 성결하고 거룩하게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 시선에는 장소가 준비되고 사람들이 준비되고 방법이 준비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영적 준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 일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갈 때 가장 중요한 준비는 바로 마음 준비, 거룩함과 성 결함을 준비하는 것임을 다윗은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왕과 같이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돌아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레슨을 배우고 다시 돌아오기 원하십니다. 그 레슨이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준비하는 지혜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우리에게 풍성히 머물기 위해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준비하는, 거룩함과 성결함의 내면 준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가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 자세와 태도에 따라 그 일이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인도하시는 영적인 일이 되는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움직이는 일이 되는가가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표면적인 일 밑에 보이지 않는 내면과 태도 준비를 볼 수 있는 영적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보기 좋은 사람과 장소와 방법을 찾는 것이 영적인 일의 특징입니다. 장소와 사람과 방법이 준비되어 있어도 그것을 이끄는 사람들의 마음에 거룩함과 성결함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이 이끄시는 영적인 일이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하게 준비해야 되는 것은 바로 우리 내면에 거룩함과 성결함으로 주님 앞에 준비된 마음과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의 준비 거룩함과 성결함을 늘 준비하여 하나님 앞에 풍성하게 그리고 끝까지 쓰임받는 주님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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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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