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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 가장 큰 핵심은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는 주의 선언입니다. 것이죠. 오늘 말씀에만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라는 선언이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청하는 자들의 본질적 문제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이런 끔찍한 일을 보이신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여호와인지를 백성에게 알리시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인데, 순기능적으로 알려 주시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역기능적으로 알려 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백성들을 축복으로 순종으로 이끄시면서 알려주시는 방법이 있고,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망각하게 되면 그들을 치시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주시는 역기능적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먼저 찾아가시고 그에게 약속을 주셨습니까? 그를 사랑해서도 분명하지만, 오늘 말씀을 근거로 보면 내가 여호와인지를 그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까?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주의 뜻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신 것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도 다 내가 여호와인 줄 그들이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왜 저와 여러분들이 미국에 와서 이민생활 가운데 그래도 이렇게 잘 살고 축복 가운데 내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까? 내가 착하고 내가 열심히 잘 살아서 물론 그게 있겠죠.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고 주신 주의 축복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고백하며 현재화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신앙이 분명한 자가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어 주시는 축복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망각하고 착각하며, 그의 뜻을 거역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백성인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아니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 대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붙들고 더 의지하고 의탁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에서 이탈하여 산마다 골짜기마다 산당이라는 것을 세워 놨습니다. 산당들을 세워놓고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만 믿는 대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정반대로 역기능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치시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면서 내가 여호임을 그들에게 알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그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되는 무지함과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을 심판하시고 재앙으로 모든 것을 치시는 그때가 돼서야 백성들이 아 하나님이 여호와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결국 그때가 돼야만 알게 되는 이런 백성이 되어버린 겁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망하는 “그때에야”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에 보이는 우상을 더 의지하고 의탁하고, 보이는 물질과 보이는 세상을 더 의지하고 의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이 바로 역겹고 토해내고 싶은 가증한 악을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가증함은 산당이라는 의미 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산당을 영어로 High Place라고 합니다. High Place인 산당은 어떤 곳이냐하면 나를 높이는 곳이며 나를 교만하게 만드는 곳이며 눈에 보이는 나의 필요를 높이는 곳입니다. 예배 드린다고 앉아 있는데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에 나를 높이고, 주의 이름 대신 나의 이름을 높이고 나의 부풀려진 자아와 눈앞에 필요를 절대화 하면서 교만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가증한 일을 행하는 곳이 바로 산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산당을 모두 멸하시고 심판하시고 무너뜨리실 때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때에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주의 심판 가운데 먼데 있는 자들은 전염병에 죽고 가까이 있는 자들은 칼에 엎드려 죽고 남아 있는 자들은 에워싸여 기근에 죽게 되며 모두 망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이분이 정말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신약에도 “그때에야”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되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부자는 손에 쥔 돈은 많았는데 하나님이 누군지, 여호와가 누군지 몰랐고 지옥에 가서야 그 때에야 비로소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 때가 오기 직전”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안 사람도 등장하는데,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같이 죽어가던 강도 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때가 오기 직전”에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 구원받고 낙원에 가게 되었다고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그 실체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며 이탈하고 곁길로 간다는 것은 교회를 들락날락하고 살아가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둔감해지고 어두워진다는 것은 결국 내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며 내 삶의 구석구석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터치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범하는 가장 큰 죄는 바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게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인지를 알려주시는 여러 가지 순기능들을 망각하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계속해서 곁길로 가며 가증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가 여호와인지를 알게 하신다는 겁니까? 역기능적으로, 반대의 방법으로 깨시고 치시면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시겠다는 이 경고를 우리는 무겁게 마음에 받아들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큰 그림으로 봤을 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기 위한 도구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잊지 않으면 사는 것이고, 그걸 모르면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 당한 시체들이 널부러지고 모든 것이 망하고 나서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전에 먼저 깨닫고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끊임없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겠다는 이유는 여전히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여러분들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결국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제대로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축복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계속 보여 주고 계십니다. 내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나에게 필요를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내 호흡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나의 인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시며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내가 지금 분명히 아는 것이 영적으로 깨어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나의 하루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 가운데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바라기는 나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으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으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존재를 올바로 인식하며 그분 앞에서의 삶을 살며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일어나게 될 끔찍한 심판의 현실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 살고 있었던 중심인 예루살렘이 이렇게 처참하게 망하고 심판 가운데 다 무너지게 되었는가? 그들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선민이었으며 모든 열방의 중심으로 삼아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도록 따로 세워주신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과 뜻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스르며 귀를 막고 등을 돌려 자기 뜻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드는 대신 세상 것을 의뢰하고 붙들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힘과 양식이 될 거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의 행위가 이방인들보다도 더 악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이런 죄악이 관영한 상태로 살고 있으면서도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그곳에서 우리는 제사를 드리고 있고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죄악에 빠져 있고 착각에 빠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에스겔은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망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망하는가? 입에 올리기에도 참담하고 이 땅에서 지옥을 맛보는 현실을 그대로 보게 되면서 망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정말 끔찍한 명령, 떡을 굽는데 떡을 인분을 가지고 구우라고 명하셨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 일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건 절대 넘을 수 없는 선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인분으로 불을 땐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도 상상하기 힘든데 어떻게 보면 그건 서막에 불과한 경고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머리털과 수염을 밀어서 1/3씩 다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그 상징의 의미는 1/3은 전염병으로 죽고, 1/3은 기근으로 멸망하고, 나머지는 사방에서 칼에 엎드려질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백성들이 다 죽는데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지옥 맛보기의 현장이 될 거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떡을 먹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인분으로 구운 말도 안되는 떡을 먹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일, 소위 말하는 이 땅에서의 지옥 맛보기가 그대로 벌어지게 될 거라는 겁니다.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자식을 잡아 먹는가…이거는 폐륜을 넘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삶이자 그냥 그 자체의 삶이 지옥인 겁니다. 이런 지옥이 예루살렘 성 안에서 벌어지게 되는 이런 끔찍한 현실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는 모든 양식을 끊을 것이라….선언하심을 마음에 깊이 담기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의뢰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양식을 의뢰해야 될 하나님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뢰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붙들고 살아갈 때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는 모든 것을 끊으심으로 본보기로 삼으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성소를 더럽히고,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과 뜻을 거슬러서 이방인들보다 더 죄를 많이 지으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이 살아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심판의 모델, bad example로 보여주시겠다 겁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안 믿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bad example로서 너희들을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들 앞에서 이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망해도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그렇게 처절하게 망하는 것을 보면서 본보기로 삼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조차도 야, 이건 정말 여호와 하나님 안 믿으면 큰일 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그 본보기로 삼으시겠다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수치와 심판의 모델로 본보기를 삼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빠르면 빠를수록 헛된 인생 안 산다는 것이죠.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뿐 아니라 내용도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고 삶의 내용이 바꿔지는 겁니다. 우리는 구원 열차 타는 티켓을 받은 백성들을 넘어서 지금부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뜻이 있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사 이 세상에서 주의 뜻 가운데 주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삶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내가 빛의 자녀로 살아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빛의 주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르게 된다면 남유다 백성과 마찬가지로 망각하게 되고 딴짓하게 되고, 곁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문제의식도 없이 회개하지도 않고 착각하며 살다가 bad example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주의 엄중한 책망을 마음에 담기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를 향한 이런 처절한 심판과 멸망의 말씀은 우리를 깨우시고 찌르시는 말씀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삶이 영광스럽게 쓰임받기를 사모하십니까? 아니면 수치스럽게 bad example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죄악에 머물러 살아가면서도, 심지어 이방 사람보다 더 죄에 뒹굴고 살아가면서도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이 살아가다가 철저하게 심판하심으로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어 이방인들 앞에서 모욕과 수치를 당한 그 bad example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한다는데 내 삶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만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나는 이제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면, 이미 구원을 받았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도 이제 안전하고 상관없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우리 또한이 경고와 책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경고의 말씀을 심각하게 마음에 받아들여 우리가 죄악으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스르지 아니하며,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내려 놓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말씀 가운데 빛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며 이 세상에서 축복의 통로로 빛의 하나님을 전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애곡과 심판에 대한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라 명하셨습니다. 입으로 전하는 것을 넘어 말씀을 담은 상징의 행위를 온몸으로 담아 백성들을 깨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진흙으로 예루살렘 성을 만들고 성벽에 언덕을 만들어서 그 성이 머지 않아 망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옆으로 돌아눕는 390일을 통해 하나님을 등지고 고집 부리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이시고, 떡을 인분으로 구워 먹는 것을 통해 예루살렘이 어떤 모습으로 망하게 될 것을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상징은 칼로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것인데, 패역한 백성들을 깨우고 돌아오라고 알려 주시는 상징이 아니라 그 때가 결국은 차서 이 일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보여 주시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칼로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깍으라 명하셨습니다. 사실 요즘에 남자들은 정기적으로 이발과 면도를 하니까 머리 자르고 수염 깎는 게 큰 일 아니지만, 이 당시에는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것은 굉장히 큰 일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사극을 보게 되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수염을 자르지 않는 것 조상이 주신 것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지키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기에 머리칼이나 수염을 자르는 걸 목숨 걸고 막았던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마찬가지로 이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머리나 수염 같은 건 함부로 자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이었는데, 제사장은 절대 몸에 삭도를 대면 안 되었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다는 거는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모두 박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충격적인 일을 하라 명하신 이유는, 극도의 슬픔과 애곡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 예를 들면 사별을 한다거나 참을 수 없는 통곡과 애도를 할 때 바로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머리와 수염을 깎으라고 한 날을 주목해야 하는데, 바로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입니다. 그 성읍이란 바로 예루살렘 아니겠습니까? 그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에워싸는 날이 차면 이렇게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저울로 달라 명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자른 걸 세 등분으로 나눠서 1/3은 성읍 안에서 그 머리털과 수염을 불사르고 나머지 1/3은 칼로 치고 나머지 1은 바람의 흩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뿌리를 뽑아 어떤 사람들은 성읍 안에서 불 타서 죽고 어떤 사람들은 성읍 주변에서 칼로 찔려 죽고 어떤 사람들은 바람에 흩어지듯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이 처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예루살렘 성이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 주시며 성이 포위 당하는 날,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면서 통곡의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할 심판이 이렇게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애곡과 통곡의 마음으로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밀면서 이렇게 보여주도록 에스겔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들을 선민으로 세운 이유 그들을 특별히 구별한 이유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해 이방인 가운데 두어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둘러 있게 하였다는 겁니다. 사실 이스라엘 주변에 있었던 나라들은 다 강대국이었습니다. 애굽도, 앗수르도 바벨론도 그렇고 주변에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강대국에 둘려 싸여 있는 미약하고 조그만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시각에 봤을 때는 모든 게 하나님 백성 중심으로 재편돼 있도록 그들을 두셨다는 겁니다. 이건 마치 뭐랑 똑같은가 하면 신약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의 위정자들과 강대국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 바로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시고 뽑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그 하나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그들을 가운데 두셨다는 겁니다.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 두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심으로 운행되고 움직인다는 걸 보여 주시기 위해 그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세웠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그 하나님의 백성됨을 망각하고 그들이 스스로 우월해서 그런 줄 착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반역하고 거스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대신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며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며 헛된 신앙 가운데 빠지고 살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본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이탈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르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악행이 주변에 주를 모르는 이방 나라들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냐 하면 설마 예루살렘이 무너지겠어? 우리는 그래도 제사와 예배는 드리는데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데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는 이런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은 따르지 않는데 심지어 이방인들보다 더 많이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은 지켜줄 거라는 착각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완악하고 착각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명히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루살렘은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망한다는 것이죠. 그것도 누구 앞에서 그렇게 망하게 한다는 거예요? 이방인들 앞에서 망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 환난과 재앙을 너희는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그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너희들, 역사의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될 백성들이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반역하는 너희들, 심지어 이방 나라들보다 더 타락하고 거짓이 만연한 너희들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반드시 결과를 직면할 때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 가운데 중심으로 두고 복의 근원으로 통로로 삼았는데 말씀을 듣지도 붙들지 도 않고 살아가며 악한 행위가 이방인들보다 더하며 그러면서도 망하지 않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을 결국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다양한 방법으로 동원하셔서 전하십니다. 마지막 때는 이렇게 극적인 방법으로라도 전하시며 안타깝게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주의 마음이 있습니다. 에스겔이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며 백성들을 향하여 통곡하는 그 눈물의 의미가 우리 마음속에 현재형으로 담기기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 되게 하시고 우리를 이방 나라들 가운데 두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며 그 모든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으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대단해서 무엇이 있어서 성도가 된 것처럼 착각하고 내가 남들보다 나아서 축복받은 줄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말씀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으며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쁘게 살아가고 더 죄악 가운데 헤매고 있다면 이 하나님의 경고 또한 엄중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엄중히 그들을 이렇게 치리하실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야 될 사명이 있으며 지금 하나님 뜻 안에 머무르며 예수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갈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주신 사명과 주의 뜻을 땅에 떨어뜨리지 말고 경시하지 않아 똑같은 착각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순종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주의 말씀을 듣지 않는 하나님 백성인 남유다, 특별히 포로된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주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 없이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거라는 것을 분명히 그들의 귀에 들리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지요. 더 나아가 말로만 전하라 명하신 게 아니라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그들에게 상징을 통해 몸소 보임으로 메시지가 얼마나 긴급하고 심각한 말씀인가를 그들이 깨닫기를 원하시는 주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을 입술로 전하는 것을 넘어서 온 몸으로 표현하며 간절히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 상징의 행동 중 하나가 오늘 말씀 앞부분에 등장하는 옆으로 누워 390일을 있는데 그 음식과 물을 딱 정해진 양만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옆으로 누웠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등을 돌려 고집을 부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대신 등을 보이며 귀를 막고 있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대신 내 고집을 부리고 있는 영적 교만함을 옆으로 누워 있음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집부리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동안 에스겔에게 떡도 물도 딱 정해진 양만 먹게 하셨습니다. 거의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딱 정해진 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안 되는 아주 꼭 필요한만큼만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떡을 구는데 어디다 굽게 하십니까?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에 피워 그 떡을 구워 먹으라는 겁니다. 생각만 해도 더럽고 역겨운 일이자 사람의 인분은 부정한 것이거든요. 근데 부정한 인분으로 불을 피워 떡을 먹는다…. 그 떡은 부정하기에 먹을 수 없는 떡이자 상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그 명령이 얼마나 충격적이면 에스겔 조차 내가 하나님께 나머지는 다 순종했는데 도저히 이것만은 제가 순종할 수 없겠다고 간청합니다. 제발 이 명령만을 좀 거두어 주시옵소서…제가 정말로 이것만은 못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간청을 들으시고 인분 대신 쇠똥으로 대신 구워 먹도록 허락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장차 직면하게 될 남유다의 현실이라는 것을 상징의 행동을 통해 그대로 보여 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정해진 물과 정해진 양의 떡만 먹게 되는 것도, 그들이 이만큼 기근과 굶주림에 허덕일 거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인분을 통해 구워 떡을 먹는다는 것을 통해 나중에 먹을 게 얼마나 없으면 정한 음식, 부정한 음식을 가리지 않을 정도가 될 정도로, 먹을 거만 있으면 달려들어 먹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이 너희들이 곧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도 모자라 이런 충격적인 상징의 행동들을 백성들 앞에 그렇게 하게 하셨냐는 겁니다. 얼마나 그들이 말을 듣지 않고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충격적인 행동을 하게 하셨는가….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집을 부렸으면, 그들이 얼마나 귀를 막았으면 이렇게 해서도 말씀을 듣게 하기 원하시는 주의 마음을 바라보기 원하시는 겁니다. 지금 에스겔과 함께 그발 강가에 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긴 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아닙니까?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그들의 오매 불망 소원은 무엇이었는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포로로 잡혀왔지만 예루살렘은 절대 망하지 않고 우리는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소망을 품고 그 포로 생활을 버티고 있었는데 에스겔의 수많은 상징적 행동을 통해 보여 주시는 본질이 무엇입니까? 너희 기대와 달리 예루살렘은 이렇게 처절하게 망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무너져 백성들이 인분으로 구운 떡이라도 없으면 난리나는 그런 끔찍한 현실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하며 떨며 그 죄악 중에 쇠폐하리라….선언하십니다. 그들의 쇠폐하는 이유의 본질은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예루살렘을 무너지게 하고, 예루살렘에서 양식을 끊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벨론 군대가 아니라 바로 바벨론을 몽둥이로 사용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이라는 정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들이고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고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떡과 돈을 더 의뢰하며,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함락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는 양식들을 다 끊어버리는 사건들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서 주시는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들인데 하늘 양식은 도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한 채, 그저 눈에 보이는 떡과 돈에만 집중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같이 붙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 버렸기에, 결국 그걸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의뢰하는 양식들을 끊어 버리시는 겁니다. 너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말씀보다 더 의뢰하고 있는 그 양식들을 다 끊어 버리시면서 그들을 망하게 하신다는 거죠. 결국 그들은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들을 다 끊으시고 모든 것들을 허무시고 나서야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는 중요한 도전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시는 사인임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지금 돌아오고 지금 회개하면 너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라는 주의 사랑의 메시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에스겔에게 명하신 상징적 행위들의 의미가 우리에게 동일하게 알려 주시는 경고임을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원인은 죄악 때문이라는 주님의 엄중한 경고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의 양식을 끊으시듯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들을 끊으시게 될 거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뢰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주님께서는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피할 수 없는 심판이 곧 임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들을 다 끊어 내시기 전에 말씀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와 남유다 백성들의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입에 꿀송이 같이 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함께 배웠습니다. 그 의미는 말씀이 너무 좋아서 은혜가 되고 소화하기가 편하고 맛이 달달해서 입에 꿀송이 같이 단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반드시 이루신다는 의미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꿀송이처럼 단 이유는 본질적으로는 그 말씀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이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4장 말씀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의 운명입니다. 예루살렘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처음에는 말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외쳐도 목소리를 높여 외쳐도 백성들이 듣지를 않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예 상징의 행동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지를 백성들에게 선명히 보이라고 명하신 겁니다. 첫번째 상징은 어제 말씀을 통해 배웠듯이, 토판에 예루살렘 성을 만들고 그 성을 에워싸고 성벽에 흙으로 비탈을 만드는 것을 통해 어떻게 망하게 되는지를 선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성주의에 흙으로 만든 언덕을 만들게 되니까 밖에서 군인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성벽으로 올라가게 되는 모습, 그 예루살렘 성벽을 에워싸는 모습들을 통해, 예루살렘이 이렇게 에워쌈 당하고 이렇게 망한다는 것을 모든 백성들이 알도록 하신 것이죠.
오늘 말씀은 이어서 등장하는 두 번째 상징인데 에스겔에게 등을 보이고 왼쪽으로 눕고 오른쪽으로 누으라는 명령이십니다. 390일이면 1년이 넘는 시간인데 그 긴 시간 동안 에스겔은 등을 바닥에 완전히 닿지 않은 채 한쪽으로만 누워서 지낸 겁니다. 잘 때도 완전히 눕지 않고 한쪽으로만 누워서 자니 얼마나 팔이 결리고 힘들겠습니까? 근데 하나님께서는 이상하리만큼 이런 이상한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390일을 한쪽으로만 누워서 있으라….는 이 상징을 통해 예루살렘이 왜 심판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상징으로 보이신 겁니다. 먼저 한쪽으로만 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 아는데 중요합니다. 한쪽으로 눕는다는 것은 등을 보인다는 것이죠. 등을 보인다는 것은 내가 너 싫어…라는 표현이기도 하고 내 뜻을 고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고 반역하며 하나님 뜻 대신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집하는 게 바로 한쪽으로 등을 돌리고 눕는 것이죠. 하루를 한 해로 상징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에스겔의 390일동안 한쪽으로 누운 상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390년동안의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과 반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90일 후에 40일을 오른쪽으로 누으라고도 명하셨는데, 이 40일은 바로 남유다의 죄악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390년과 40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고 남유다가 망하는 때까지가 약 430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고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 성전이 무너지기까지 그들은 이렇게 죄악을 감당하고 불순종하고 한쪽으로 누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등을 돌리고 자기 고집대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하여 지금 에스겔이 선포하는 경고는 무엇이겠습니까? 왜 예루살렘 성전이 그렇게 에워쌈을 당하고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망하게 되는가? 그들의 죄악 때문이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모습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임에도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마음도 들을 뜻도 없습니다. 말씀을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여전히 건재하니까 그 성전이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줄 것처럼 착각하고 헛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죠. 죄에 뒹굴고 있고 하나님 대신 이방신들을 더 섬기고 더 의뢰하고 살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와 제사를 드리니까 우리는 문제 없다는 헛된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단지 성전에서 예배 드리고 제사를 드린다는 이유로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다는 이유로 너희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이지 절대 괜찮지 않다는 겁니다. 너희는 곧 망하고 모두 에워쌈을 당하고 모두 죽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인데 하나님께 등을 보이고 누워 하나님의 뜻 대신 자기 뜻을 고집하며 귀를 막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변명을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결국 마음이 완고해서 그런 것이며,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냐? 지금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이 말이 더 중요하고 내 처한 현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들의 착각입니다.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의지하며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 대신 세상과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 대신에 내 뜻과 내 고집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입에 쓴 말씀, 마음이 아픈 말씀이며 가슴이 찢어지는 말씀임에도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반역하고 있음에도 말씀과 무관하게 살면서도 별 문제 없다고 착각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찌르고 깨우기 위함입니다. 지금 회개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아주 처절하게 망하게 될 거라며 너의 헛된 우상과 헛된 소망을 무너뜨리시는 겁니다. 너희의 헛된 우상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내가 처절히 무너뜨리고 너의 헛된 소망과 헛된 우상을 다 무너지게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그들의 죄악의 결과이자 하나님 대신에 헛된 우상을 섬기고 의뢰한 결과이고,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은 내 입에 내 귀에 듣기 좋고 내가 소화하기 좋은 말씀만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무너지기 전에 망하기 전에 지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주의 엄중한 경고이자 사랑의 초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영적 상태가 괜찮으십니까? 혹시 교회는 들락날락하는데 하나님을 향하여 한쪽으로 누워 등을 보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반역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살아가면서도 자기 뜻을 고집하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찮다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교회 건물이 건재하니까 나는 괜찮고, 교회에서 예배 드리니까 나는 괜찮다고 착각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내 영혼의 괜찮음은 지금 이 시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보이지 않는 성전의 회복이며,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며 그 말씀이 이루어짐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이 시대와 우리 교회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담아 취하여 하나님께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반역함과 자기 뜻을 고집하는 모습에서 돌이키어 주 앞에 엎드리고 겸손히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 주시고 생생한 환상의 체험을 통하여 말씀의 사람이 되고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하는 자로 사명자로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 입에 꿀처럼 달았다고 증언합니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았다는 것은 말씀 자체가 좋았고 그 말씀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그 사람들 또한 정말 꿀송이 같이 너무 좋아해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이 입에 꿀처럼 달았다는 의미는 그렇게 듣기 좋았고 먹기 좋고 참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씀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그것을 이루신다는 것 때문에 꿀처럼 달았다는 겁니다. 우리 눈에 보기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거나 사람들이 정말 꿀을 먹듯이 그 말씀을 너무 좋아하며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기에 꿀처럼 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꿀처럼 단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사람들에게는 꿀처럼 달달한 말씀을 줘서 고맙다는 환대와 믿음의 반응을 보는 대신에 박대를 당하고 외면을 당하는 겁니다. 심지어 우리가 배운 것처럼 가시로 찔림을 당하고 전갈이 와서 무는 거 같이 충돌하고 부딪친 일들이 계속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계속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시면서 내면의 단단함을 가지고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듣든지 안 듣든지 말씀을 전하고 두려워할 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금방 알게 된 겁니다.
오늘 말씀은 그 꿀처럼 단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했을 때의 반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신 말씀을 힘있게 그렇게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백성들이 시큰둥하고 별로 들을 마음이 없는 겁니다. 말씀을 들을 열망도 없고 말씀을 듣는 법도 모르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말씀은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는 어떤 착각이 있었는가 하면, 예루살렘은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이었습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오고 나서 사람들은 두고 온 예루살렘은 늘 좋은 기억만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도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충돌하면서도 그 예루살렘이 언젠가는 회복이 되고 언젠간 나라가 괜찮아져서 우리를 다 포로로부터 부를 날이 있을 거라는 이런 막연한 장밋빛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그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견디고 있은 것입니다. 에스겔과 함께 잡혀온 많은 포로는 예루살렘이 아직 함락하기 전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입니다. 그니까 바벨론 포로의 상황이 삶의 자리인데 아직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나라는 이미 기울었는데 멸망하기 일보 직전인 그때 많은 예루살렘에 그곳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주께 회개하고 돌아오며 주님께 정말 죄를 무릎 쓰고 주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회개하고 나온 대신에 이런 막연한 낙관론을 가지고 살았다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이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라는 착각에 빠져 영적 자기 객관화를 완전히 잃어버린 겁니다. 이런 막연한 낙관론과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정신 차리라고 찬물을 끼얹으시는 겁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입술로 전하는 말씀을 넘어 것을 그들에게 시청각 교육으로 말씀을 더 담대하게 선포하게 명하시는 겁니다. 눈에 보이게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정확하게 보여 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 가지의 징조 즉 시청각 교육을 보여 주십니다. 첫 번째 시청각 교육이 1-3절에 등장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는 토판을 가지고 거기에다 예루살렘을 그리라 명하셨습니다. 그 토판의 그림을 보면 아 이거는 예루살렘 이구나…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토판으로 만든 예루살렘 성읍에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성 주변으로 사다리와 모래 언덕을 쌓으면 성벽에 비탈이 생기니까 군인들이 쉽게 그냥 성벽을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완전히 에워싸서 도망갈 곳이 없게 되고 군인들은 언덕을 올라가듯이 성벽으로 올라가니까 결국 성벽이 아무런 보호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무슨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시는 겁니까? 예루살렘은 곧 이렇게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너희의 기대와 달리 완전히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지고 다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시청각 교육을 하시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건재하니까 우리는 괜찮고 언젠가 우리를 불러올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착각에서 깨어 나라는 겁니다. 차라리 너희가 지금 포로로 나와 있는 게 오히려 복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게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본질적 의미입니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이 특히 좋아한 말씀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 시청각 교육을 바라보며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수 있느냐? 항의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거죠. 그것은 그들에게 꿀송이처럼 단 말씀이 아니라, 그것은 아픈 말씀이고 찢어지는 말씀이고 마음이 무너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신 겁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남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다른 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사 드리고 있으면 예배 드리고 있으면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건재하면 자신들도 괜찮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을 구하는 것이 아닌데 마치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을 구하는 것처럼 착각한 그들의 그 우상을 모두 깨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전한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그들의 죄를 직면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착각을 완전히 무너뜨리심으로서 지금 너희는 하나님께 당장 돌아와야 될 족속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하나님의 숨결이자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해야 될 사명이 있기에 에스겔는 순종하며 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백성들을 향해, 그러면서도 막연한 낙관론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너희가 소망을 갖고 있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이다…이 토판과 같이 모든게 사라지게 될 것이라….외치는 그 소리를 오늘 우리 마음으로 담아 듣기 원합니다. 주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주의 길을 가지 않고 죄악을 행하며 주의 뜻을 벗어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엄중히 지적하시는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리기 원합니다. 에스겔의 주의 마음을 담은 그 선포가 이 시대를 향한 주의 선포임을 잊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진정한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듣기 좋고 먹기 좋고 받아들이기에 너무 기쁜 말씀이어서 꿀처럼 단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이 꿀처럼 달다는 엄중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헛된 소망과 헛된 우상을 다 무너뜨리시는 주의 뜻 가운데 엎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세우셔서 백성들을 깨우는 역할, 주신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여 깨우치는 것이 영적 파수꾼으로서 에스겔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특별히 백성들이 듣느냐 듣지 않느냐 그들의 행동이 변화하느냐 변화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 말씀을 알려 주었는가, 알려 주지 않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나아가 내가 너에게 준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여 그들에게 고하고 알려주라….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러면 영적 파수꾼으로 그런 사명을 에스겔에게 주셨다면 그 다음에 빨리 가서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을 전하며 그들을 깨우치도록 달려가라…이렇게 명하셔야 할 것 같은데,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들과 이야기들이 계속됩니다. 분명히 영적 파수꾼으로 에스겔을 세우시고 그 명령을 하달했는데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백성들에게 즉시 달려가는 대신, 멈춰 서기를 명하신 것입니다. 영적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맡기신 후, 백성들에게 나아가는 대신 아무도 없는 광야로 들로 가게 하셨고, 말을 못 하게 하고 집에 가두시는 이런 말을 못할 환경에 에스겔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으로 세운 에스겔에게 엔진을 달아 주셔야 될 거 같은데 오히려 브레이크를 거는 거와 같은 이런 이해되지 않는 명령들을 하시는 겁니다. 즉시 나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깨우치라 이러지 않고 너는 지금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는 것이죠. 분명히 지금 당장 가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사명을 주셨는데 그리고 나서는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그러지 않으시나, 네 혀가 입천장에 붙어서 말못하는 자가 될 거라 그러시지를 않으시나… 이렇게 하실 거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명을 주셨는가 의문이 들 정도 입니다.
그렇다면 사명을 주시고 파수꾼으로 그를 세우셨는데 왜 그를 꼼짝할 수 없게 묶이게 만들고 방 안에 가두시고 말을 못하게 하셨는가…라는 겁니다. 사명자로,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셨으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길을 좀 열어 주셔야 되는데 다 막아 버리는듯한 이런 명령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에스겔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이 영적 파수꾼으로 해서의 사명은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야 되는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즉 그의 힘이 아니라 하늘의 힘을 붙들고 해야 되는 사명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이런 명령을 주신 겁니다. 지금 당장 뛰어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의 힘을 넘어서는 하늘의 힘을 공급받는 게 먼저라는 겁니다. 나의 열심과 힘을 가지고 달려 나가면 곧 자빠지고 넘어지게 되는 것이 너의 받은 사명의 무게라는 겁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의 열심이 아니라 주의 열심을 담아, 나의 힘이 아니라 주의 영이 부어 주시는 힘을 공급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말을 못하게 하시고 집에 가두시고 멈춰 서게 하신 겁니다. 그리스도의 힘, 성령 하나님의 힘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이 중요한 원리를 놓치면 한 때 열심히 했다가 반짝 냄비와 같이 끓었다가 식어버리고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열심히 하다가 제풀에 지치고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뛰어나가는 거보다 더 중요한 건 먼저 힘의 공급이 어디인가를 점검하는 겁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힘, 영적 파수꾼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나의 힘으로 부터입니까? 아니면 하늘의 힘으로 부터입니까? 이것을 명확하게 점검하지 않고 이 공급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나갔다가 다 자빠지고 넘어진다는 겁니다. 신앙 생활할 때 나의 열심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나의 열심을 넘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압도하고 사로잡아야 되고요. 하나님의 힘이 나에게 공급됨을 내가 정확하게 인식하며 그의 힘과 권능에 연결되어 사명을 감당하며 성도의 삶을 살아내는 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주실 때, 그냥 보내시는 게 아니라 반드시 하늘의 힘과 능력을 먼저 공급하시며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그 막대한 사명, 말씀을 받아 백성을 깨우는 그 역할을 주시고 나서 뛰어 나가는 게 아니라 먼저 공급 창고를 정확하게 알게 하시는 겁니다. 너 힘으로 가면 자빠지고 넘어진다. 주의 힘을 공급받고 주의 영을 공급받으며 주의 영광 가운데 네가 나아가야 한다는 것 잊지 말라는 겁니다. 달려 나가는 게 첫번 째가 아니라 하늘의 힘을 공급받는 것이 첫번째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에스겔에게는 그의 말이 아니라 주신 말씀만을 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즉 에스겔에게 그의 말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게 하려는 영적 숙성의 과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집에 문을 닫고 사람들이 너를 못 나오게 하며 혀를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을 못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까? 우리가 대의를 가지고 옳은 얘기를 막 하다 보면 주신 말씀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과 나의 옳음을 말씀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내가 생각하는 옳음과 내가 생각하는 부분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끌고 오는 경우가 많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그냥 전하는 겁니다. 시대를 깨우는 영적 파수꾼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내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말과 내 견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파수꾼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명에 조율되기 위한 숙성의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너는 너의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려준 말만 하는 자야…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하기 위해 말씀을 주시자 마자 집에 가만히 있고 입에 천장이 붙어 있게 만드시는 것들이 바로 영적 숙성 과정이라는 겁니다. 내 입술에 힘을 빼고 내 어깨에 힘을 빼는 과정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바로 뛰쳐나가서 주의 복음을 막 전하려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뛰어 나가는 대신 3년 동안 아라비아 반도에서 멈춰 서게 하시고 숙성시키십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하며 입을 닫게 하시고 그가 푹 익게 만드셨어요. 3년 가까이 그 영적 숙성 과정을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사용하십니다. 은혜 받고 바로 뛰쳐 나가는 게 아니에요. 은혜 받고는 멈추어 서고 어깨에 힘을 빼는 숙성의 과정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까딱 잘못하면 은혜 받은 것에 심취하여 내 말과 내 경험과 내 견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영적 파수꾼으로서 에스겔이 해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렇다는 거를 알려 주는 거지 내 말과 내 견해와 내 옳음을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 말로 그들을 꾸짖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패역한 백성들을 꾸짖는데 주의 말씀으로 꾸짖지 않고 내 말로 꾸질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위험한 겁니다. 백성들에게 바른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깨우고 꾸짖어야 하는데 그냥 내 말로 꾸짖으려 하고 내 말로 깨우려 하는 겁니다. 이러면 큰일 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영적 숙성을 위해 에스겔에게 방에 가두어 못 나오게 하시고 입천장에 혀가 붙게 만들고 말 못하게 만들고 네 말이 사라지게 만드시는 주의 깊은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에스겔에게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영적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나아가 백성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하며 그들을 깨우치고 주의 진리를 고하는 그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내 힘이 아니라 하늘의 힘을 공급받으며 주의 영광 가운데 내가 연결되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나를 움직이는 파워 소스, 힘의 원천이 내 힘과 내 열심을 넘어서는 주의 힘과 주의 열심에 연결되며 그 하늘의 힘을 덧입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 원합니다. 그때 우리는 끝까지 갈 수 있는 거며 완주할 수 있으며 나의 힘을 넘어서는 주의 힘을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내 견해와 나의 옳음을 말씀으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내 옳음과 내 말로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사람의 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도 깨우쳐 지지도 돌이키지도 않음을 잊지 마십시오. 주신 말씀 주의 말씀을 잊는 그대로 받고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말로 백성들을 꾸짖고 백성들을 깨우는 일이 아니라 주신 말씀 그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것을 전하는 전달자의 역할로 우리가 부름 받았음을 마음에 새기며 내 힘이 아닌 주의 힘으로 나아가며, 내 말이 아닌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영적 숙성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며 그 파수꾼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파수꾼이라는 것은 군대에서 저 위에 올라가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군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위험이 있을 때 그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웠다는 것은 성벽 위에 가장 높은데 올라가서 위험을 감지하고 백성들에게 고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의미에서 파수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며 그들의 죄를 경고하고 돌이키게 하는 책임을 갖는 것입니다. 영적 파수꾼으로 부름 받은 에스겔이 해야 될 제일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주의 말씀을 듣기 전하기 전에 먼저 주의 말씀을 충분히 채워지도록 들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순서가 여호와의 말씀이 먼저 임하며 하나님의 말을 듣고 채워, 그 다음에 그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여 백성들을 전하며 깨우는 겁니다. 말씀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겁니다. 사명자로 부름 받은 영적 파수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분히 젖고 채워져야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채워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함으로 시대를 깨우는 파수꾼으로 선지자의 역할을 부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의 사명이며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깨우게 만드신 파수꾼이 해야 될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에스겔의 해야 할 일, 소위 말하는 job-description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영적 파수꾼으로 에스겔이 감당해야 될 사명 그리고 그의 사명 밖에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경계를 그어 주고 계십니다. 에스겔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의 사명은 백성들이 변화하느냐 변화하지 않느냐 그 말씀을 듣고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백성들에게 고하고 알려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겁니다.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곧 죽는다는 말씀을 백성들 귀에 들리도록 전하라는 겁니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곧 멸망한다.” 는 이 주신 말씀을 전하지 않아 백성들이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죽으면 그건 누구 책임이라는 겁니까? 전하는 자인 파수꾼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아니하면 곧 멸망한다.” 말씀을 전했다면 그건 백성들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백성들이 깨우치고 변화를 받아 돌이켜 생명을 얻든지 끝까지 귀를 막고 돌이키지 않다가 죽든지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의 책임이지 그건 영적 파수꾼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는 에스겔의 사명은 가서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고하고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겁니다. 영적 파수꾼의 책임은 백성들이 주신 말씀을 들었는가 듣지 못했는가에 달린 겁니다. 적어도 inform, 알려주고 고했는가의 유무라는 겁니다. 큰 쓰나미가 지금 막 오고 있는데 큰 쓰나미가 지금 오고 있다는 것을 돌아다니며 동네 방내에 전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가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쓰나미가 오는 곳 조차를 모르고 있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파수꾼은 그 쓰나미가 온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듣던지 듣지 않던지 알려주고 고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 얘기를 듣고 쓰나미가 왔으니까 도망갈까 말까를 선택하는 건 그들의 몫이라는 것이죠. 영적 파스꾼으로서 에스겔은 사람들의 반응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가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지 않건 말씀에 귀를 막든 말씀을 통하여 무관심하던 그것은 너의 소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중요한 건 그 말씀을 제대로 고했는가 알게 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사람의 행동이 변하든 변하지 않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말씀을 그대로 알려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게 영적 파수꾼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우리는 말씀을 전하고 나눌 때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에 자유롭지 못한 것을 넘어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내가 전하는 것을 듣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파수꾼으로서 우리 역할은 그들의 행동이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가 아니고 그들이 듣느냐 듣지 않느냐가 아니고 그들에게 알려 주었는가 알려 주지 않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 진리의 말씀을 알려 주었는가 알려주지 않았는가에 있다는 겁니다. 그들의 행동의 변화와 변화하지 않음, 그들의 들음과 듣지 않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job description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핵심 과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이 진리를 알게 했는가, 알게 하지 않았는가? 알려 주었는가 알려 주지 않았는가? 이것에 달린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불신자들이, 세상 사람들이 죽는 것이 우리가 깨우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그거만큼 심각한 일이 없다는 겁니다. 안 알려 줘 가지고 모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알려주고 고하고 그것이 전달 됐음이 분명해야 한다…이것이 영적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구원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 또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적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부르시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파수꾼으로 어떤 사람은 직장의 파수꾼으로 어떤 사람은 저와 같이 교회 공동체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아 주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며 나누며 그들을 깨우고 살리는 역할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이 시대를 깨우며 백성들을 깨우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 영적 파수꾼으로서 성도의 역할임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우리가 파수꾼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먼저 주의 말씀을 받는 겁니다. 주의 말씀을 한결같이 끊임없이 받아 채우는 겁니다. 말씀에 접촉하여 말씀에 가까이 지내는 겁니다. 내가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고 내가 말씀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신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임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채우는 이 일에 내 삶을 매진하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그 말씀을 받아 이 세상을 깨우고 사람들을 깨우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의 행동이 변하냐 변하지 않느냐 그들이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알려 주었는가, 알려 주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고했는가 고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사명임을 잊지 말고 이 세상을 향하여 말씀으로 깨우는 사명에 매진하는 선명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늘문을 여시며 에스겔에게 하늘의 현실을 보여주시는 놀라운 환상의 말씀이 두번째로 보여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사용하실 때 그를 선지자로 부르셔서 그에게 전할 말씀을 알려 주시며 먼저 그에게 말씀을 충분히 채워 주셨고 동시에 그에게 금강석과 같이 단단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셔서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패역한 백성들이 듣던지 안듣던지 상관하지 말고 선명한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에서 놀라운 주의 환상을 에스겔에게 보여주고 계시는데, 두번이나 반복하여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신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두번이나 반복하여 환상 중에 에스겔을 주의 영이 들어올리셨다 (lifted me up)는 겁니다. 주의 영이 임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의 영이 그를 들어올리신 겁니다. 나를 들어올려 내 인생을 들어 쓰시는 분이 계시는 것이죠. 내 인생을 들어올리시고 들어 쓰시는 분에게 나를 의탁할 때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경험되는 겁니다. 에스겔을 들어올리시는 주의 영이 하나님의 환상으로 그에게 임할 때 그는 먼저 엎드렸습니다. 그는 주 앞에 죽은 자처럼 엎드렸습니다. 즉 주의 영이 들어올리시는 놀라운 인생은 내가 주 앞에서 낮아지며 주님 없으면 죽습니다...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내가 스스로 기념비 세우고 내가 높아지려는 인생에는 절대 임할 수 없는 것이죠. 내가 높아지려는 인생 대신 주님이 높여 주시는 인생이 되기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삶에 주의 영이 들어 쓰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리실 때 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합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온다는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시에 그 찬양 소리는 네 생물들이 날개를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생물 곁에 크게 울리는 바퀴 소리였다고 증언합니다. 네 생물들은 바퀴를 통해 움직이는 소리는 주의 뜻과 주의 원하시는 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즉 네 생물들이 순종하는 소리가 바로 찬송 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주의 뜻에 따라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 인생이 움직이고 순종할 때 그 모습 자체가 바로 하늘에서는 주를 찬양하는 소리라는 것을 에스겔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하는 찬양도 귀하고 소중한데, 더 중요한 찬송은 우리 인생이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조율되어 나아가는 순종 그 자체가 바로 찬송 소리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의 인도함을 받느냐가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 삶이 주의 뜻에 따라 주가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그것이 하늘에 들려지는 찬송 소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며 주와 함께 있고 주의 인도하심을 받음을 분명히 믿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며 나를 들어 쓰시는 인생 되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또 한번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리시는데, 두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 생겼고,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셨습니다. 주의 영이 그를 들어올리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의 마음에 담긴 겁니다. 그게 바로 패역한 백성 남유다를 향해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는 거죠. 이것은 자기 감정이 아니라 그 에스겔의 마음에 주의 마음이 담긴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네가 주신 말씀을 전해도 백성들이 폐역해서 절대 안들을 거라는 것을 미리 경고하셨어요. 그래서 듣던지 안 듣던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 말씀을 들을 마음도 귀도 없는 패역한 백성을 바라보며, 심지어 주의 말씀을 거절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그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기까지 왔는데도 회개가 없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지, 그 하나님의 마음을 거룩한 분노, holy discontent 라고 합니다. 임박한 심판에 직면하고도 아무런 문제 의식도 위기 의식도 없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군대가 거인 골리앗에게 모욕당하고 있을 때 가만히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거룩한 분노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10대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나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저 할례받지 않는 자와 싸우겠다고 하지요. 아무리 골리앗이 두렵고 무섭고 커도 어떻게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데 가만히 있는 건 참을 수 없는 거룩한 분노였고, 이게 주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장사치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임하셨죠. 그래서 채찍을 들어 그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그 변질과 부패를 바라보는 거룩한 분노, 그게 주의 마음인 겁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 받은 선지자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들어올리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전하는 겁니다. 지금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올려 그 하나님의 마음을 담게 하시는 겁니다. 패역한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그 마음,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담게 하시는 거예요. 에스겔에게 말씀을 채워 주셨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말씀을 먼저 채워 주셨죠. 말씀을 채워 주시고 주의 영이 그를 들어올리시면서 주의 마음을 담게 하신 거죠. 우리가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 주의 영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바로 내 마음에 주의 마음이 되는 것이고, 주의 마음을 담아 주의 사명을 전하는 겁니다. 복음의 말을 전하는데 주의 마음을 담아 전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삶에 주의 마음이 담겨 내 주변의 사람들을 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이게 바로 주의 영에 들어올려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주의 마음인 겁니다. 또한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리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임하는 것과 함께 일어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그를 감동시키신 겁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임했고 그 권능이 에스겔을 감동시켰다고 증언합니다. 이 감동시켰다는 원어의 의미가 뭐냐면 나를 견고하게 하다. 내 마음에 빛을 비추다…라는 의미입니다. 어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마음을 금강석과 같이 단단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죠.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에 왔다 갔다 하지 않는 그 담대한 그 마음이 금강석과 같은 마음입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에스겔을 감동시켜 그를 견고하게 하고 그 마음에 빛을 비추어 하나님에게 조율을 인생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의 인도하심을 받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누구의 마음을 담고 누구에게 공급받으며 누구 힘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호와의 영이 나를 들러 들어올리시는 이 놀라운 환상이 오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임하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에스겔을 들어 쓰신 주의 영이 똑같이 저와 여러분들을 들어 올리시며 들어 쓰시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주의 영이 들어 쓰시면서 내 마음에 마음이 채워지기 사모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하는 놀라운 역사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여호와의 권능으로 힘을 받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내가 주먹 쥐고 내가 힘내며 살아가는 삶을 넘어 주의 권능이 힘 있게 임하며 공급받아 살아가는 겁니다. 주의 권늠이 힘있게 임하여 감동시키시는 인생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 여호와의 권능이 나를 감동시키는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살아가는 거룩한 분노가 있는 인생,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순종으로 나아가는 찬송소리가 있는 인생 되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나를 들어 쓰시는 분에게 내 인생을 맡겨 주며 주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하여 주의 권능의 힘으로 공급받으며 주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선지자로 구별하여 세우셨고 그에게 말씀을 입에 주셨습니다. 패역한 백성들에게 주의 말을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선지자 스스로가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며 입을 벌리듯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먹으라 명하시며 에스겔에게 충분한 말씀을 공급해주시고 채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과 사역을 할 때도 그 원리가 똑같습니다. 사역과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말씀과 가까이하며 듣고 먹으며 말씀이 내 안에 채워져 있어야 주신 사명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에스겔에게 주님께서는 먼저 그에게 말씀을 충분히 공급하여 주시고 말씀이 채워진 후에 그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서 주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을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될 백성인데 그들이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실 것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겁니다. 그럼 왜 그들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가? 먼저 그들이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서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강조하십니다. 소통의 문제라든지 언어 문제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듣지 않는 문제는 언어 문제나 문화 문제나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본질적으로 그들이 주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는 뭐냐? 그들이 듣기를 거절하기 때문, 즉 이스라엘 족속이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서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 보면 “이마가 굳는다.” 라는 말이 몇 번 등장하는데 이마가 굳는다는 것은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 왕의 마음이 완고하고 강팍하다는 표현과 비슷한 관용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주의 말씀을 향해 마음이 완전히 닫혀 있고 딱딱해진 상태 그게 바로 이마가 굳었다는 의미입니다. 못 듣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데 소통이나 언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들을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들의 이마가 굳어지고 그들의 마음이 딱딱 해져서 그들은 말씀을 듣고자 아니한다는 겁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먹을 때에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입을 벌려 주님이 주신 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입을 열고 마음을 열려 먹은 말씀은 꿀과 같이 달았다고 묘사합니다. 그런 에스겔의 마음밭 상태와 정반대의 모습이 바로 이마가 굳은 상태입니다. 주의 말씀을 들을 의지도 마음도 없는 상태, 그게 바로 이마가 굳은 완고한 백성입니다. 하나님 뜻과 순리를 거스르는 백성,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백성, 타락하고 변질되고 썩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버린 본질적 이유는 그들의 마음밭 상태와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마가 굳어 마음과 귀를 막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마음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가운데 직면하게 됐는가? 아무리 경고해도, 아무리 심판에 대해 알려줘도 꿈쩍도 안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쓰나미가 곧 밀려온다고 경고해도 꿈쩍도 안하고 있으면 결국 임박한 쓰나미 재앙에 직면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남의 이야기 듣듯이 듣는 겁니다. 아무리 크게 떠들고 아무리 경고하고 아무리 심판에 대한 끔찍한 말씀을 전해도 꿈쩍도 안 하는 겁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을 의지도 뜻도 마음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마가 굳은 완고함 때문에 전한 말씀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을 들어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 저항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남은 카드가 멸망과 심판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그들이 들을 마음이 없는 굳은 이마, 완고한 마음임에도, 겉으로 봐서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의 사명은 무엇이라 명하십니까?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전하라는 겁니다. 네가 분명히 말씀이 충만하여 은혜 받은 상태로 말씀을 전해도 그들이 듣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에스겔의 사명은 그들이 듣고 변화하느냐 변화하지 않는가에 대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죠. 에스겔의 사명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주가 명하신 말씀을 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반응과 결과는 에스겔의 소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의 가장 기쁜 보람이라면 말씀을 듣고 변화하는 것을 볼 때 아니겠습니까? 혹은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들을 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도 아무리 성령 충만함으로 말씀을 전해도 전혀 듣지도 아니하고, 전하면 전할수록 반항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절망하고 낙담하고 심지어 두렵고 무서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말씀을 잘 전했는데 하나님 백성들이 무관심하고 오히려 백성들이 충돌하고 부딪칩니다. 그 완고한 백성, 듣기 싫어하는 백성, 말씀을 전한다고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 백성을 보며 두려워할 수 있고 무서워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에스겔의 마음을 금강석같이 내면을 단단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신 겁니다. 돌과 같이 딱딱해진 마음과 굳은 이마와 같이 그들의 패역하고 악한 모습을 깨시기 위해 흔들기 위해 주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단단히 준비시켜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패역한 백성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두려워할 필요 없고 아무리 그들이 달려 들어도 두려워할 필요 없도록 단단하게 만드신 겁니다. 주신 말씀을 전할 때 내가 기대하고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할지라도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말라는 것이죠. 전하라고 명하신 그 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가 사명이라는 겁니다. 안들을 것 같은 자들에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냥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반응과 변화는 전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그것을 받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나에게 사명은 주신 말씀을 전하는데 있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반응은 그 받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에스겔에게 맡기셨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패역 해져 주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고 말씀을 듣고 하지 않으면 남는 카드가 심판과 멸망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생명의 말씀이 전해져도 듣고자 하지 아니하면 그 이마가 굳어지고 그 마음이 딱딱 해져 부패하고 타락하고 썩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순리와 진리의 길을 역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결과 심판과 멸망에 직면하게 될 뿐입니다. 에스겔에게 주신 사명도,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그렇게 패역한 백성들에게 듣던지 듣지 않던지 그 주신 말씀을 그대로 읽는 그대로 전하는데 있는 것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주신 주의 말씀을 듣던지 아니 듣던지 선포하는데 있는 겁니다. 예수님만이 진리이며 예수님만이 빛이며 예수님 안에 들어오는 것만이 소망임을 분명히 선포하며 그 말씀 가운데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말고 담대하게 그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모든 반응과 결과는 듣는 자들에게 있음을 잊지 않으며 주신 사명 감당하여 그 말씀이 들리게 하는데 수고하고 애쓰기 원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에스겔과 같이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말며 사람들의 반응이나 관상 보고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그 말씀 그대로 전해지는 그 사명 가운데 나아가 끝까지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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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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