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장 말씀은 장차 오실 약속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약속으로 오실 메시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어떻게 이루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배웠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신다는 것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성취와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오래 전에 이렇게 선명히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 말씀을 바라보니까 다 이해가 되지만 그 당시 이 예언을 들었던 대다수에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렇게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통과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시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된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유명한 말씀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의 맞음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이 모든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과하고 죽으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 때문이고,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때문에 예수님은 찔리고 상하고 예수님은 징계를 받으셨고 채찍에 맞아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모든 질고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오늘 말씀은 “마땅히 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분명히 선언합니다. 마땅히 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이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운명이고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우리들을 건지시기 위해 마땅히 벌받을 나의 죄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죠. 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인간의 실존과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오늘 말씀은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갈길로 갔거늘….이게 우리 인간의 실존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양 같다는 겁니다. 우리는 양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순하고 순종적이고 굉장히 목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 말씀에서 양 같다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분명히 목자가 지정해 준 길이 있고 따라가야 될 바른 길이 있는데 내가 양 같아서 눈도 어두우면서 압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릇된 길을 막 달려가는 그 인생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실존이라는 겁니다. 내 까막눈과 어리석은 머리를 믿고 내 마음대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나아가는 삶, 가야 할 길로 가지 않고 과녁을 벗어나 엉뚱한 길을 가고 내 고집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인생을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면서 방황하고 유리하는 인생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가만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시는 구원 이야기가 성경의 모든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도다….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우리를 위해 찔리시고 하시며 징계를 받으며 채찍에 맞으신 것이죠. 그걸 통하여 그의 피가 나를 살리시고 그의 죽으심이 나를 살게 하며 그 예수님을 통하여 나에게 생명의 역사가 임하게 되며 천국 백성 되는 것이죠. 그래서 천국은 내 이름으로 가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수 이름으로 가는 것이고, 내 공로로 말미암아 가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수 공로 의지하여 가는 겁니다. 이것을 믿는 게 구원이고 이것을 믿는 게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내 죄와 허물 때문이다…라는 것을 정확하게 믿고 고백하면, 그 십자가 사건이 나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나 때문에 흘리신 피라는 것을 고백하면 그 십자가 사건이 나를 구원하는 힘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나음으로 얻었고 내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내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십자가 복음을 붙드는 신앙 생활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시고 건지시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완성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십자가 영광을 우리에게 놀랍게 예언으로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이 죄 문제에 대해서 내가 둔감해지면 예수님을 믿고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나와 무관한 사건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십자가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십자가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은 없는, 기쁨과 평안이 다 사라진 껍데기의 종교 생활만 남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구원을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가 정말 깨닫고 고백한다면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찬양과 예배입니다. 종의 영광과 십자가의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신 예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를 그리스도로 주로 고백하며 받아들이며 그를 제대로 믿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상함을 입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징계를 받으시며 채찍을 받으신 게 내 죄와 허물 때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대신 죄값을 치루어 주시고 내가 감당해야 될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셨음을 내 마음을 드리는 고백으로 인정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종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십자가를 통과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찔리시고 고통 당하시며 채찍에 맞으시며 징계를 받으시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 살리시는 능력임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그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여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의 삶임을 믿으며, 나의 삶이 예수님을 향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으로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실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하고 중요해서 성탄절에 늘 단골과 같이 우리에게 들려졌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할 때 이런 메시야가 오실 거라고 믿은 사람은 극히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이런 예언은 말도 안되는 일이고 이런 메시야는 오실 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본질적 이유에는 이런 메시야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장차 오실 약속의 메시야 예수님을 가장 극명하게 잘 나타내는 두 모습이 오늘 말씀과 내일 말씀에 증언되는 바로 종의 영광과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종의 모습을 통해 오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 말씀 52장 뒷부분부터 53,3까지 말씀이고, 십자가를 통해 오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53,4부터의 내일 말씀입니다. 이 종의 영광과 십자가의 영광을 큰 그림으로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말씀과 내일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십자가를 통과하는 고난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가 어떤 모습일지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사람들 보기에 너무 상해 있을 정도로 연약하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메시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놀랐다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사람들이 놀랄 만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너무 대단하고 왕이나 장수와 같아서 놀란 게 아니라 그렇게 오실 거라고는 기대하고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오셨기 때문에 놀란 겁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말은 땅에서 나오는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는 모습, 그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모습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약속으로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기대할 때는 무언가 흠모하고 바라보고 주목할 만한 그런 대단한 모습으로 올 것을 하고 상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런 대단한 모습도, 흠모할 만한 모습도 하나 없이 오셨다는 겁니다. 10대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 그것도 야외 말구유에서 태어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야 말로 오늘 말씀과 같이 연한 순과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오는 뿌리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고 그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하디 약한 모습, 연하디 연한 모습,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가장 약하디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너무 볼품 없고 연약해 보이는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이런 초라하고 나약해 보이는 모습, 주목할 것 없이 너무 볼품 없어 보이는 종의 모습을 통해 것들을 통하여 이런 메시아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정도로 약속으로 오실 메시야는 어떤 강함도 어떤 놀라움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성취하시며 오신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예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하나 없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신 말도 안되는 사건을 통해 그만큼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심을 통해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음을 말씀은 선명히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 종의 모습으로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이렇게 놀랍게 성취하는 것이죠 이처럼 이사야서에서 말씀으로 오래전에 이미 예언해 주시고 약속으로 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대신에 자신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모습을 여전히 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속의 메시야 예수님이 이런 아기의 모습으로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왔을 때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놀라기만 한 겁니다. 사람들이 봤을 때는 약속의 메시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모습이 너무 나약하고 너무 초라하고 무언가 기댈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오실 것임을 예언하는 겁니다. 그렇게 볼품이 없고 연약하고 초라한 것을 넘어 멸시를 받고 버림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신다는 것을 예언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며 간고를 많이 겪는다고 증언합니다. 예수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경배하며 고개를 숙이는 대신에 예수 하나님을 멸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의 하늘 역사를 이 땅에 보이시는 놀라운 치유와 회복과 가르침 사이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과 충돌하고 부딪히고 거절하는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예수님이 틀렸다고 소리지르고, 결국 예수님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을 넘어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종의 모습으로 오시는 약속의 메시아, 사람들의 기대와 상당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모습으로 오시는 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주신다는 겁니까? 내 종이 형통하리니….즉 하나님의 영광이 종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명이 드러나도록 쓰신다는 것이죠. 볼품이 없고 정말 믿을만한 데가 없고 초라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며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너무 연약하고 너무나 약하디 약한 모습으로 기대거나 흠모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종으로 오신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놀라운 도구로 하나님이 이렇게 나의 종을 형통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개편되도록…하나님께서 그 종을 형통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멸시 받고 버림받으며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충돌하고 부딪히고 거절하는 이 모든 것들을 몸소 경험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의 모습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그 종을 형통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모든 신약의 역사이며 그리스도가 오신 역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오신 메시야,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내가 구원받고,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예수님을 나의 주로 구세주로 나의 왕으로 모시는 놀라운 고백이 우리에게 현재형으로 고백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서 전체 큰 주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39장까지는 하나님이 불순종한 종 이스라엘을 향하여 경고와 책망의 메시지를 주셨고, 망한 그들을 향하여 40장부터는 회복과 구원의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는 삶의 자리는 아주 절망스러운 멸망과 잿더미 위에서 포로로 잡혀 가는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든 고향 땅을 잃고 강제로 포로로 끌려간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그들에게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다. 너희가 잊어버린 시온, 너희가 잃어버린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겠다. 이 구원과 회복에 대한 메세지는 이사야 후반부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죄로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가 성경 말씀입니다. 그 구원과 회복에 놀라운 약속을 이루시는 방법이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 그를 통한 구원과 회복의 약속은 잿더미 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축복일 뿐 아니라, 온 열방과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마중물로 온 민족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대한 증언이 3-6절 사이의 말씀입니다. 출애굽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앗수르의 압제 속에서 신음하던 상황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이야기가 다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는 그냥 과거, 현재, 미래라는 그냥 단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과거에 역사하신 그 하나님이 현재에도 역사하시고, 미래에도 그의 때에 역사하신다는 이 통전적인 관점으로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그걸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지금 이 시간에서 여전히 회복과 구원의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라고 선언하는 겁니다. 깰지어다…털어버릴지어다…일어날 지어다…이 한마디 한마디가 큰 울림과 외침으로 선포되는 겁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일어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큰 외침으로 선포되는 겁니다. 삶의 상황 속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 가운데 다시 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힘을 내어 다시 일어서기를 외치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선포와 명령은 마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치유를 하실 때 그 치유의 현장에서 너의 자리를 들고 가 걸어가라…. 말씀하신 선포와 똑 같은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든 상황에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자, 모든 것을 포기한 자가 예수 이름을 힘입어 치유함을 받고 누웠던 자리를 들고 일어가 걸어가는 놀라운 역사는 이사야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놀랍게 성취되고 있음을 증언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회복과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를 내 마음에 확신으로 붙들기 위해 두 가지를 그의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심…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 있느니라…선포하시는데,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현재형으로 깨달은 자가 엎드리면서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죠.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분임을 피상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그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야 정말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구체적으로 고백하며 경험할 때 그 함께하시는 자리에서 엎드리고 무릎을 꿇게 돼는 겁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 놀라운 하나님 현존의 체험, 하나님은 늘 모세에게 함께하셨는데 그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그 하나님의 현존을 구체적으로 직면하며 그 가운데 엎드리고 신을 벗고 무릎을 꿇고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현재형으로 경험하며 “내가 여기 너와 함께 있느니라…” 이 은혜를 붙드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하나님이 여기 계시는구나…이걸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의 문이 열리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으로 손을 붙들어 주시고 위로하심을 넘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 들어간다는 겁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패배감과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 가운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 있는 백성임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함께하심과 함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다스리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을 때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현실에 내가 압도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통치하심이 나에게 소망,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고 있으면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심지어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갈지라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붙들고 주신 약속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세상의 통치와 다스림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어둠의 권세가 나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율법이 나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죽음이 나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어떤 권력이 나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다스리심이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 복된 소식, 복음의 본질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백성들의 복된 소식의 선언입니다. 나라의 멸망과 포로로 끌려가는 절망 속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시온이여…예루살렘이여 다시 한번 그들이 누구인지 깨우쳐 주십니다. 깰지어다…털어버릴지어다…일어날지어다…하나님의 백성을 깨우시며 일으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지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 있는 백성이 되었다….이 복된 소식으로 우리에게 회복과 구원을 주십니다. 약속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실 회복과 구원의 성취는 단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만이 아니라 단순히 예수님의 공생애 때 있었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되는 것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는 겁니다. 주신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약속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이 하는 천국백성의 복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심을 분명히 믿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이 지금 여기 계심을, 내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 있는 자임을 깨닫고 약속으로 주시는 회복과 구원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사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의 삶이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지만 그날을 주목하며 살아는 자들입니다. 이 땅을 충실히 살아가지만 다가올 천국을 주목을 주목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두 부분에 대해서 매우 중점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먼 미래에 있게 될 일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그날들, 그날이 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하게 될 일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하게 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거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순종과 죄악에 대한 결과를 직면하게 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엄중이 경고하며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또한 시간이 훌쩍 지나 언젠가는 바벨론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될 그날도 있게 된다는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주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데, 거리도 너무 멀어 절대 못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놀랍게 회복과 구원의 역사가 펼쳐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인 너희들이 영원히 살 곳은 거기 바벨론이 아니라 그 포로됨에서 해방하여 돌아오게 하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겁니다. 그 회복과 위로의 하나님의 소식, 구원의 하나님의 소식을 마음에 품고 오늘을 살아가지만 그 날을 주목하며 살아가고, 땅을 살아가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에서 반복하시는 “시온”이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 잊혀진 단어 시온…을 반복하시며 너는 내 백성이라 선언하시며 하나님이 그날에 믿지 못할 그 회복과 구원의 소식을 그들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붙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불신과 두려움입니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하나님의 엄중한 선언이십니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다는 겁니다. 바벨론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매일의 삶이 절망과 두려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망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두려움에 압도당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항상 두려워 하고 종일 두려워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로 살고 있었던 겁니다. 죽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풀같이 하루 있다 사라질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취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잃어버려서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이 다 사라진 겁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았기에, 하나님을 두려워야 될 자리에 사람들이 올라와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세상에 올라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가득차는 것입니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현주소 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세상을 두려워하며, 풀과 같이 사라질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며 영원히 바벨론 나라가 존재할 것처럼 두려워하며, 온종일 두려워할 것에 사로잡혀 생각과 마음이 두려움에 완전히 지배당한 채 살고 있는 겁니다. 마음에 불안이 가득차고 두려움이 가득차 있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회복과 구원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취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찔러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분별과 싸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 속에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적이 열리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내 마음에 온종일 두려워하고 있는 내 생각을 하나님으로 채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증언하는 것이죠. 하나님에 대한 기억으로 채우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채우며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고 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내 마음에 있던 온갖 두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죠. 내 마음의 짙은 먹구름이 하늘의 빛으로 말미암아 물러가듯이 모든 두려움들이 사라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세상의 두려움, 사람들의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그 두려움이 물러가는 기적….그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백성들이 누리는 놀라운 기적의 삶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돌아올 때 너희에게 주신이 약속, 그날에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며 약속의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그 회복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심을 분명히 믿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두려움이 물러가며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취할 때 하나님을 뭐라고 고백하게 됩니까? 하나님이 나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회복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 바다를 뒤흔들고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놀라운 전능하신 하나님…그 하나님께서 백성의 억울함을 기억하시고 기억하심을 넘어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겁니다. 내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꼭 붙들며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회복과 구원의 일을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취하는 것이죠. 나의 생각과 기대를 훨씬 초월하여 하나님의 일과 약속을 믿음으로 받기 위해서, 내 마음에 가득한 두려움을 내려 놓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시겠구나….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회복이 시작되며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며 생각의 변화가 시작되며 두려움이 물러가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에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두려움, 사람들과 상황을 향한 두려움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두려워함으로 먹구름이 물러가듯 두려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 나에게 약속으로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내 억울함을 기억하심을 넘어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이 놀라운 약속의 성취가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말씀의 후반부는 잿더미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위로와 소망,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에는 아무것도 변화할 수 없는 것같은 절망과 크게 보이는 것은 그저 사람들, 환경과 내가 처한 현실 밖에 보이지 않는 그 답답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어떻게 세워 주시고 회복시키 주시는가? 먼저 하나님이 그들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워 주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존재감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바로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 땅에서 구하고 따르는 것이 재색 명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의를 따르며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임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나를 너무 이 세상에 쉽게 내어주지 않는 자들, 나는 하나님의 의를 따르며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게 살 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란 여호와를 앙망하며 여호와의 팔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줄을 놓거나 영적으로 둔감해지면 자꾸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앙망하며 세상의 팔에 의지하여 살아가려 하는데, 그때 정신 차리고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세상이 아닌 하늘을 앙망하며, 세상의 힘과 팔을 의지하며 사는 대신 하나님의 팔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꾸 상황과 사람들과 눈앞의 현실만 것만 커지고 하나님이 점점 작아지는 우리들에게 너가 누군지를 정확하게 깨달으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하신 후 오늘 말씀은 소망과 희망,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취하며 살아가는 두 가지 비결을 제시하는데 첫번째는 들을지어다, 두번째는 생각할지어다…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귀 기울여 들어야 될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들을지어다…주의하라…귀를 기울이라….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사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어떻게 들어야 되냐 하면 주의하고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나간 생명이자 능력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간 하나님의 호흡이자 계시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라는 겁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양식입니다….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며 그 말씀을 주의하며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주목하여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생명과 능력을 취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살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해 봐야 산다는 겁니다. 나라는 존재는 정말 연약하고 작고 부족한 존재임을 하나님 창조를 통해 생각해보라 명하십니다. 먼지와 같고 진흙과 같은 나의 인생을 태어나게 하시고 작품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생각하여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통해 내가 이렇게 놀라운 작품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구나… 놀라운 하나님의 숨결로 지어진 존재가 나구나…생각해보라는 겁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예를 들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들을 기억해보라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셨습니까? 약속은 받았는데 100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었습니다. 마치 굳어버린 것 같은 아브라함의 몸 가임기가 훨씬 지난 사라,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을 다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오직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 말씀이 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생각하여 보라는 거예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아브라함 처한 상황과 같이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0%인 상황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삶의 자리이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에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해보면, 내 눈앞에 현실과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이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과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취하는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생각할수록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하나님이 커 보일수록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작아지고 상황과 사람들이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억울한 일만 생각하고 분한 일만 생각하다 상황에 사로잡혀 압도 당하여 살다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해보면 난공 불낙과 같은 여리고성과 같은 바벨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바벨론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하늘의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에 옷같이 헤어지며 하루사리 같이 죽는 것같이 망한다는 역사가 있으리라….이것을 믿음으로 취하며 붙들게 되는 겁니다. 그걸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공의가 영원히 우리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떡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세상 소리만 귀 기울이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주의하며 귀 기울이는 자로 사는 삶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잿더미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나는 성도이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들어야 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자꾸 상황과 사람들, 눈 앞에 현실만 크게 보일 때 나라는 존재를 깨워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나를 던져야 하는 겁니다. 이 하나님 말씀을 내가 붙들고 나의 존재감을 말씀 가운데 비춰보는 거야 말로 내가 깨어나는 비결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 인생이란 여러분 결국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남아 있는 만큼 결국 내가 내면이 단단해지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그 묵직함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의하며 귀를 기울이십시오.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이 오늘이 시간 나에게도 역사하시는 것을 믿으며 고백하며 나아갈 때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생명을 취하며 그 하늘의 은혜와 능력을 풍성히 공급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 이사야 50장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불완전하고 불순종하는 종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완전한 종이자 순종의 종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에 대해 대조하고 있죠. 그래서 앞부분은 불완전한 종으로 불순종으로 충돌하고 부딪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질책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고 뒷부분은 그런 이스라엘과 대비되는 완전한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에 대한 순종과 겸손에 대한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대조의 말씀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찌르는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이런 불순종으로 늘 충돌하고 부딪히고 죄악 가운데 헤매는 그런 종으로 살지 말고 이런 죄에서 돌이켜야 너희가 산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도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불완전한 종이자 불순종의 종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모습은 어땠냐 하면 승승장구하며 좋은 일이 있으면 모든 이유와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반대로 바닥을 치는 어려움과 힘든 일이 찾아올 때면 늘 그 이유와 원인을 외부에서 특별히 하나님에게서 찾으려 했던 겁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내 앞에 찾아오면 갑자기 하나님 이런 일이 왜 나에게 벌어집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이죠. 잿더미가 된 나라의 멸망과 포로 생활의 고통 중에 외부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원인과 이유를 찾으려는 이런 마음이 그냥 본능적으로 든다는 것이죠.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였던 반응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나라가 망하는 참담한 상황 가운데 그들이 가졌던 생각은 뭐냐면 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듯이 우리를 버리셔서 우리가 이렇게 망한거구나….하나님에게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막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나름 기도하고 나름 매달렸는데 우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셨고 침목하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고 내팽개치신 분으로 여기며 하나님에게 모든 핑계를 대려고 하는 그런 불안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의 죄와 불순종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난과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과 포로된 가운데 그 이유와 원인을 하나님의 탓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돌리는 겁니다. 그들의 죄악과 불순종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실제로 그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자 하나님이 자신들을 잊은 것처럼, 버린 것처럼 하나님 탓하고 앉아 있는 모습… 이게 불안정한 종 이스라엘의 모습이자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응답이 뭐라는 겁니까? 내가 너희를 잊은 적도 없고 내가 너희를 버린 적도 없다는 것이죠. 어떻게 내가 너희를 버리고 어떻게 내가 너희를 잊느냐…선언하시며 너희는 죄 때문에 망하고 팔렸다는 거죠. 그들이 그렇게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것은 너희들의 죄 때문이지 하나님이 너희를 버려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백성 사이를 이혼증서를 쓰듯 이혼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이혼하듯 갈라놓게 만든다는 겁니다. 지금 너희에게 닥친 모든 일들은 다 너희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한 것임을 정확하게 직시하라는 것을 선명히 증언하는 것이죠.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동일한 책망과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는 잊지 않으시며 분명히 도와줄 마음도 있으시고 보호하려 하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원하지도 구하지도 않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불순종과 죄에 빠져서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길을 살아가면서 죄악과 불순종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닥을 치는 어려움을 당하거나 큰 일을 당하면 갑자기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내가 하나님께 뭔 잘못했습니까… 하나님이 혹시 나를 버린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것, 이것이 부족하고 불안정한 종 이스라엘의 모습이자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도우러 왔는데 사람들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할 자가 없으니 어찌 됨이냐…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직면한 어려움은 너희의 죄 때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부르심도 도움의 손길도 거절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것임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야 회복과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겁니다. 그런 불완전하고 불순종하는 종 이스라엘과 대비되는 완전한 종이자 순종의 종 메시야를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스승에게 들은 말씀 그대로 잘 듣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럴 때 내 삶이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중심이동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삶에서 순종의 삶으로 예수님의 완전하신 종의 모습 안으로 들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귀가 열리며 말씀을 내가 딱 붙들고 나아갈 때 결국 나의 중심과 마음이 바뀌게 되며 내 인생이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남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능력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과거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계획을 우리가 나의 삶의 한 복판에서 발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잊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심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고 그의 도움을 거절하며 살았던 불순종의 삶,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던 죄의 삶을 인정하며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오기 원합니다. 나의 영적 현주소를 정확하게 직시하며 회개함으로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올 때 우리에게 새출발의 역사가 있으며 완전한 종이신 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과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열릴 줄 믿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불순종과 죄된 삶을 직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순종의 길로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서 49장 앞부분을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종의 모습과 십자가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걸 배웠습니다. 종으로 낮아지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십자가를 통과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그때에 고난의 중 메시아 예수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 이것이 큰 주제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그리스도 관점으로 이사야의 예언을 바라본다면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과 구원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회복과 구원을 넘어서는 사건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온 백성과 방언, 모든 민족과 열방을 향하여 열리는 회복과 구원인 것이죠.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고난을 통과하심으로 온 민족과 열방의 구원과 회복을 이루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를 오늘 말씀은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한 모든 자들에게 오늘 말씀에 약속으로 주신 회복과 구원의 역사가 임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하나님이 이 놀라운 회복과 구원의 계획을 모른 채, 바벨론 포로 중에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혹시 우리를 잊어버리신 것이 아닌가… 라는 그런 깊은 절망과 고민을 가지고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바벨론 포로에 끌려가며 나라가 다 무너지고 잿더미가 된 그 상실감과 절망 가운데 그들의 마음에 깊이 담긴 상처는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셨다는 절망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쓰임 받는 종도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를 다 버리셨고 잊어버리셨다는 절망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다 잊어버리셨다는 생각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선언하십니까? 절대 너희를 잊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 엄마됨을 포기하는 그 엄마의 마음과 같이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잊지 아니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마음에 새겼다 선언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모르나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아니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시기에 손바닥에 새기면서 기억하시기에 잘못된 길로 가는 그들을 깨우시며 경고하셨습니다. 그리로 가면 심판의 길이고, 그리로 가면 죽음과 사망이야…끊임없이 책망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경시한 채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을 계속 살았던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결국 파멸과 무너짐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포로 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잊어버려서 망하고 포로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속된 인도하심과 사랑의 책망을 거절하고 죄의 길로 질주한 결과하는 겁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명히 약속하시는 겁니다. 나는 너희를 결코 잊지 않고 너를 위해서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회복과 구원을 약속해 주신다는 겁니다. 장차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임을 약속해주시는 것이고, 그때 일어날 놀라운 일들을 오늘 말씀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를 삼켰던 자들이 모두 떠나갈 것이라…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이라….이처럼 너희를 기억하고 잊지 않으며 긍휼을 풀어서 너를 회복과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거죠. 여호와는 내 구원자요 내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라는 겁니다. 포로로 잡혀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 메시야를 보내주심으로 이루실 이 약속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온 인류를 향한 회복과 구원의 계획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회복과 구원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잊지 않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우리들도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들도 똑같이 사랑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놀라운 긍휼을 베푸시듯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긍휼을 얼마나 베푸시는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본질적인 탄식과 절망은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신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혹시 잊지 아니셨을까…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히 믿음으로 붙들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손바닥에 새기시며 결코 나를 잊지 아니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릴지 모르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아니하신다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약속대로 메시야를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회복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로 나의 구원자 되시고 구속자 되신 하나님, 나의 전능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붙들게 되기 원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모든 열방이 어떻게 회복되고 구원되는 함께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 발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구원 계획과 역사를 우리가 마음에 새기며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며 힘있게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49장 말씀은 종의 노래라고 알려진 네 편의 시 중에 두 번째 입니다. 종의 노래로서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를 명확하게 증언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종의 노래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여러 시선과 관점이 가능하겠지만 종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종으로 지으신 자, 하나님의 영광을 속에 드러낼 자라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무너진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회복과 구원을 주시는 방법, 그들을 일으키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세우시는 방법은 바로 약속의 메시아를 보내시는 일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놀랍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메시야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속에 드러날 자인데 그 영광이란 하나님의 속성이 그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가장 빛나고 가장 아름다운 그 놀라운 영광을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예수 안에서 드러나게 하시고 보여주시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실 그 영광이 바로 종으로서 오시는 영광이라는 겁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심으로 보여주실 하나님의 영광은 종이 되심으로 보이실 영광이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보이실 영광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계속 반복되는 건 장차 오실 약속의 메시야가 종으로 오심, 종이 되심에 대한 선언입니다. 종으로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일으키시며 그들을 세우신다는 겁니다.
사실 메시야가 종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이사야서의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대하고 상상한 메시야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며 기다리는 메시야는 왕으로 모실 메시야, 큰 장수로 오실 메시야로 카리스마로 압도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리는 하늘의 힘으로 무장한 강력한 영웅의 모습을 기대하고 상상했습니다. 자신들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나중에는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왕, 모든 전쟁에서 이길 큰 장수로서의 메시야를 기대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드러낼 메시야는 종으로 오시는 메시야라고 분명히 선언하시는 겁니다. 종으로 오셔서 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고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이런 메시아의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많은 이 시대의 사람들도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영광을 하나님께 여전히 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방식으로 왕과 같은 메시야만, 큰 장수와 같은 메시야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신 종으로서 오시는 영광, 십자가를 통과한 영광은 구하지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약속으로 오실 메시야가 이루시고 드러내실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는 겁니다. 종이 되심으로 드러내실 하나님의 영광이야 말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진짜 영광이고, 십자가를 통과하시며 드러내시는 영광이야 말로, 그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높이 들리시는 하늘의 승리를 그대로 보여주시는 진짜 영광이라는 겁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는 말씀대로 오시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고 성취하시기 위해 종의 모습으로 오심으로, 십자가를 통과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길 원치 않으시며 스스로 낮아지며 가장 낮은 이 땅에 아기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가장 약한 어린 아이로 오셔서 사람들이 주목하지도 않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상상을 완전히 뒤집은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하시며 승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는 방법이 약하고 연약한 종의 모습으로, 힘이 없어 보이는 십자가를 통과하시며 스스로 죽으심으로 이루시는 영광이었습니다. 종으로 오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예수님은 인기나 화려함도 없고 주목할 것도 없어 보이는 그런 초라한 모습으로 말씀을 이루고 성취하신 겁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이 가져 오시는 영광을 거절하고 충돌하고 부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도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영광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말하면서도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하늘의 영광을 부인하며, 종의 영광과 십자가의 영광을 외면하며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화려하고 대단한 영광, 힘과 권력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찍어 누르는 영광을 붙들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성도라면서도 기대하고 상상하는 영광, 여전히 추구하고 원하는 영광은 오직 눈에 보이는 대단함과 화려함과 세상이 말하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영광만을 구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 아래 크기 싸움을 벌이고,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싸움만을 벌이고, 큰 힘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이 영광이라 착각하고 크고 화려한 성공 뒤에만 영광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겁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부활은 없고요, 종으로 내려가고 낮아지지 않고는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하늘의 영광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종으로 내려오신 영광, 십자가를 통과한 영광이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방법임을 진짜 진리로 붙들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예수님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되 버리고 마는 겁니다. 약속으로 오신 메시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종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하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놀랍게 드러내신 분입니다. 그 메시아가 가져오실 영광인 십자가의 영광과 종의 영광을 정말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취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말씀으로 믿고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분명 믿고 살아간다면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내려 놓고, 말씀이 계시하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정말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준비하는 자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계시된 메시야를 기대하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가져오실 하나님의 영광은 종의 영광이고 십자가의 영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텐데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영광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이고 종이 되셔서 낮아짐으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영광임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통과한 영광, 종으로서 낮아지는 영광을 통해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는 하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은 십자가를 지시는 방법으로 종이 되셔서 낮아짐으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영광임을 잊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붙들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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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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